본문 바로가기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무평불피(無平不陂)


사진 : 권우성 기자(오마이뉴스)

#인문운동가_박한표 #우리마을대학 #복합와인문화공간뱅샾62 #희망가 #문병란 #무평불피 #공평 #공정 #평등 #공의 #평정심 #목계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1월 5일)

1.

오늘 아침은 우선 "무평불피(無平不陂)"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해본다. 공간적으로 보아, '평평한 것은 기울어지지 않음이 없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 말은 <<주역>>의 제11괘인 <지천태(地天泰)>괘의 3효 효사에 나온다. "태(泰)"는 크고 넉넉하고 여유롭고 자유로움이다. 땅(곤괘)이 위에 있고, 하늘(건괘)이 아래에 있다. 위에 있어야 할 하늘이 아래에 있어 올라가려 하고, 아래에 있어야 할 딸이 위에 있어 아래로 내려가려 한다. 그래서 위와 아래의 소통이 잘 될 수 있는 상황이고 태도가 나온다. 평평할수록 안정과 평안에 가깝다. 차별이 없고, 차이가 적어야 한다. '차별'의 반대가 '평화'라고 늘 생각한다. 왜냐하면  위 아래 격차가 없는 것이 ‘평(平)’이니 그와 반대되는 글자는 ‘차(差)’이고, 서로 어울리는 것이 ‘화(和)’이니, 그와 반대되는 글자는 ‘별(別)’이니, 문자의 뜻으로 보자면, ‘평화’의 반대말은 '전쟁'이 아니라 '차별'이기 때문이다. ‘평화(平和)’를 글자 뜻 그대로 풀면 ‘수평적 조화’이다. 평화는 '압도적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의와 사랑'으로 이루어진다. 예컨대, 하마스에 비해 '압도적 힘의 우위'를 가진 이스라엘이 '평화'를 이루지 못한 것도, 정의와 사랑을 버리고 '압도적 힘의 우위'에만 집착했기 때문이다. 전우용 교수한테 배운 거다. 여기서 정의는 내가 당해서 싫은 것을 다른 이에게 하지 않는 거고, 사랑은 내가 대접 받고 싶은 대로 다른 이를 대접하는 하는 일이다. 이 중에 대립 되는 것이 차별이다. 구분하지 않는 거다. 이때 마음에 평화가 이루어지고, 그 마음에서 말과 행동이 나오는 거다.

2.
인간 세상도 위와 아래의 소통이 잘되면 대체로 태평(太平)에 가까워진다. 잘 살거나 못 살거나 전체적으로 사는 수준이 비슷하면 평안하고 행복 지수도 높다. 그러나 세상 이치를 보면, 한때 평평해지더라도 영원하지 않다는 거다. 평평한 것은 기울어지고, 기울어진 것은 평평해진다.  자연 상태에서 땅은 평지가 되었다가 비탈이 되었다가 하면서 일정하지도 않게 평평함과 기울어짐을 오간다.

3.
평평하다고 알고 있는 것이 사실은 기울어진 것이 아닐까 자문해 본다. 크게 보면 비탈인 것도 아주 작은 구획으로 나눠서 보면 평평하다. 인산 세상도 그렇다. 우리는 사회 속에서 공평과 공정을 강조한다. 실제 어느 만큼 공정할 수 있을까? 타고난 신체 조건과 두뇌, 집안 환경 부모의 능력, 지역 환경 등은 아무리 해도 공평하게 맞출 수가 없다. 인간의 삶은 변수가 많아 그 공평과 불공평함이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개인의 의지와 노력, 고난 극복에 따라 타고난 불공평함이 상쇄되어 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일반적이지 않지만, 유복한 환경이 반드시 좋기만 한 것도 아니고, 박복한 것이 반드시 나쁘기만 한 것도 아닌 면이 있다. 사주 명리학에는 "재다신약(財多身弱)"이라는 말이 있다. '재물이 많으면 몸이 약해진다'는 뜻이다. '재다신약' 팔자를 가진 사람이 돈이 들어 오는 운을 만나면 죽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아니면 감방, 부도, 이혼, 암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거나 아니면 두세 개가 동시에 걸리는 수가 생긴다고 한다. "재다신약'은 돈 들어오는 해가 가장 겁나는 해라 한다. 그리고 관고신약(官高身弱)이란 말도 있다. 벼슬도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돈 많고, 지위가 높다고 부러워 할 일 아니다. 사람들은 아름다움, 돈, 권력, 명예, 섹스와 같은 것을 소유하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인생은 이 다섯 개의 요소와 맺고 있는 관계, 즉 그것들을 체험하고 활용하는 방식이 더 중요하다. 행복은 이 다섯 가지를 소유하고 있다고 증명하는 데 있지 않고, 그것들과 관계의 누림 속에 있다.  

4.
'평지를 가다 보면 꼭 언덕을 만나게 되고, 올라가다 보면 내리막길을 만나고, 내려가다 보면 또 오르막 길을 만난다. 고난 없는 행운은 없다. 우리네 인생은 롤러코스타와 비슷하다. 때론 아주 높이 올라가다 가도, 이내 곤두박질치듯 추락하기를 반복한다. 좋은 일만 있을 리가 없고, 나쁜 일만 있을 리도 없다. 세상의 이치 자체가 상승과 하강, 득과 실의 순환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지금은 평지를 가는 것 같아도 가파른 언덕길이 기다리고 있다. 삶에 역경이 찾아올 것이라는 말이다. 이럴 때 낙심하지 말고 인내하면 다시 평지로 나아갈 수 있다. 고난과 시련도 일시적일 뿐이다. 반대로 지금 힘든 상황일지라도 그것이 영원할 리 없다. 상실과 고통 마저도 결국 행복으로 돌아올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잘 빠지는 함정이 지금의 상황이 미래에도 변화가 없으리라는 생각이다. 그건 현재와 미래를 겹쳐보는 데서 발생하는 착시 현상이다. 우리는 롤러코스트를 즐겨야 한다. 올랐을 때 환호성을 내지르고, 내려갈 때는 비명을 지르며 박진감 넘치는 순간을 만끽하는 거다. 물론 오르막과 내리막 사이에서 중용을 잃지 말아야 한다. 행복할 때 지나치게 들뜨지 말고, 불행할 때 절망에 빠지지 않는 자세를 <<주역>>은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주역>>은 이어서 "무왕불복(無往不復)"을 말한다. 모든 세상만사의 이치가 변화와 순환이니, 가서 돌아오지 않는 것이 없다고 말하는 거다.

5.
과거 때문에 불행한 사람이 있고, 과거 때문에 행복한 사람도 있다. 전자는 화려했던 과거의 기억 때문에 현재가 초라해 불행하고, 후자는 과거의 형편에 비해 현재가 편안해 행복해한다. 삶이 결코 공정하거나 공평하다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내 편에서 생각과 해석은 달리할 수 있다. 과거의 큰 불행도 내 입에서 가볍게 나오면 듣는 사람도 그리 받아들인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시간은 지나갔으므로 이제 내 탓인 시간만이 남은 것이다. 어디에 선가 날아온 화살에 팔을 맞았는데, 화살이 날아온 곳과 이유 등을 분석하느라 화살을 뽑지 못한 채 산다면 어찌 되겠는가? 중요한 건 화살부터 뽑아내는 것이다. 삶을 항해에 비유하면 인생에서 부는 바람과 파도를 피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어떻게 내게’가 아니라 ‘나에게도’ 이런 일이 닥칠 수 있다고 준비하는 사람에겐 평범한 이 순간이 소중한 것이다. 중요한 건 상처 받지 않는 게 아니라 상처의 시간을 다독여 잘 보내는 것이다. "삶을 사랑하고, 죽음을 생각하라! 때가 오면 자랑스럽게 물러나라. 한 번은 살아야 한다. 그것이 제1의 계율이고, 한 번만 살 수 있다. 그것이 제 2의 계율이다." (에리히 케스트너, <두 가지 계율>)

6.
결론은 살면서 중요한 것이 평정심(平靜心)이다.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의 주장이 기억난다. 에피쿠로스에 의하면, 인간의 욕망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이다.
▪ 자연스럽고 필요한 욕망으로 인간의 생존을 보장하는 기본적인 욕망으로 먹고, 마시고, 잠자는 것이다.
▪ 자연스럽지만 불필요한 욕망으로 식탐이나 성적 욕망과 같은 감정들이다. 이런 것들은 소유하면 할수록 더욱 더 갈망하게 만들기 때문에 수련을 통해 절제하고, 제어해야 한다.
▪ 자연스럽지도 않고 불필요한 것으로 명예와 권력 그리고 재력(財力)이다.
우리는 에피쿠로스를 쾌락주의자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가 주장하는 쾌락은 "육체적인 고통과 마음 속의 걱정거리가 없는 상태"이다. 그에 따르면 고통과 근심의 원인은 자연스럽지 않고 필수적이지 않은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하는 데에서 생긴다. 그러므로 사치를 멀리하고 검소한 식사를 하면서 건강을 유지하는 것, 명예와 권력에 대한 욕구에서 벗어나 걱정거리를 없애는 것 그리고 그것들을 통해 개인적인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이다.

7.
나는 내가 나의 호를 목계(木鷄, 나무로 만든 닭)라 졌다. '목계'처럼 완전한 마음의 평화와 균형을 지닌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다. 완전한 평정심을 이룬 모습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좀 더 쉽게 말하면, 어깨의 힘을 빼는 것이다. 최고의 싸움 닭은 뽐내지 않는다. I am who I am이다. 나는 나일 뿐이다. 평상심으로 자신의 감정을 제어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 때 중요한 가치가 '부드러움'이다. 교만, 조급함, 공격적인 태도의 사나움 대신
▪ 세속과 하나가 되기도 하고(노자가 말하는 "화광동진 和光同塵", 자신의 광채를 누그러뜨리고 이 풍진 세상의 눈높이와 함께 한다),
▪ 움직이지 않기가 태산처럼 원칙을 지키며(조급함을 버린 『손자병법』에서 말하는 "부동여산(不動如山)"의 여유),
▪ 부드러운 감성을 지닌 사람이(노자가 말하는 유약승강강(柔弱勝剛强): 부드러움과 유약함이 결국 강하고 센 것을 이긴다.)이 되고 싶다.

8.
오늘이 24절기 중 23번째 절기인 소한(小寒)이다. 아침까지 한파가 기승을 부릴 것이라고 한다. 한 해의 절기는 겨울에 들어서는 입동(立冬)에 이어 눈 내리는 절기인 소설(小雪)과 대설(大雪), 연중 밤이 가장 긴 동지(冬至), 추위의 절기인 소한과 대한(大寒)으로 마무리된다. 절기 이름으로 보면 ‘작은 추위’인 소한 다음의 ‘큰 추위’인 대한 때가 가장 추워야 하지만, 중국 황하 유역을 기준으로 한 절기여서 우리나라와 차이가 있다. 실제 우리나라에서는 소한 무렵이 가장 춥다. “대한이 소한 집에 가서 얼어 죽는다”, “소한의 얼음이 대한에 녹는다”라는 속담까지 있다. 예전에는 소한부터 날이 풀리는 입춘까지 한 달간 혹한에 대비해 땔감 등을 집안에 쌓아 놓았다. '소한 추위는 꾸어다가라도 한다'는 말이 있다. 그런 아침에 용산에서 밤샘 시위를 했던 모습이 짠하게 전해지고 있다. 그들의 헌신과 용기에 깊은 감사와 박수를 보낸다. 그들은 지금 단순히 한 시대의 사건에 참여하고 있는 것 뿐만 아니라 우리가 공동체로서 지켜야 할 가치를 일깨우고,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를 이루고자 하는 희망의 불씨를 밝힌 것이다. 자명한 사실은 '시련 없이 성취는 오지 않고 단련 없이 명검은 날이 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미 만들어진 길을 따라가는 것은 쉽고 편하다. 하지만 새롭게 만들며 가는 길은 어렵고 힘들다. 하지만 그 길은 희망이다.

희망가/문병란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는 헤엄을 치고
눈보라 속에서도 매화는 꽃망울을 튼다.

절망 속에서도 삶의 끈기는 희망을 찾고
사막의 고통 속에서도 인간은 오아시스의 그늘을 찾는다.

눈 덮인 겨울의 밭고랑에서도 보리는 뿌리를 뻗고
마늘은 빙점에서도 그 매운맛 향기를 지닌다.

절망은 희망의 어머니 고통은 행복의 스승
시련 없이 성취는 오지 않고 단련 없이 명검은 날이 서지 않는다.

꿈꾸는 자여, 어둠 속에서 멀리 반짝이는 별빛을 따라
긴 고행 길 멈추지 말라 인생항로 파도는 높고
폭풍우 몰아쳐 배는 흔들려도 한 고비 지나면
구름 뒤 태양은 다시 뜨고 고요한 뱃길 순항의 내일이 꼭 찾아온다.

다른 글들은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