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쉬지 말고 기도하라.

2년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3년 12월 19일)

어제에 이어, 오늘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사도 바오로의 이야기를 계속 한다. 배철현 교수는 자신의 책, <<신의 위대한 질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자 '기도(祈禱)'를 풀이하면 '자신의 목숨을 자신의 도끼로 찍으려는 시늉을 하며 간절히 원하는 모습'이다.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기도가 이와 같다. 40일 금식기도를 했다는 사람에게 아무런 삶의 변화도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신이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깊이 묻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욕망만을 무작정 요구했기 때문이다. 기도는 오히려 신이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깊이 묵상하는 행위다." 기도는 자신이 욕망을 신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해야 할 임무를 경청하는 수고이다. 그러니까 기도는 나 자신을 위한 최선을 찾는 행위이고, 습관적으로 해오던 생각과 말, 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에서 출발한다.

우리가 말하는 기도는 흔히 절대자인 신에게 자신이 원하는 욕망을 요구하는 행위로 알려져 있다. 기도를 기복(祈福)으로 생각한다. 그런 의미의 기도는 자신의 욕망을 강화하기 위해 신의 이름을 이용하는 자기만족일 뿐이다. 기도의 '기(祈)'자를 풀이하면, '빌 기'자이지만, 날카로운 도끼(斤)를 자기 앞에 겨누는(示) 수련을 뜻한다. 도(禱)는 목숨(壽)을 자기 앞에 내놓고 구(求)하는 행위이다. 기도는 자신에게 주어진 오늘이라는 시간을 위대하게 만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굳은 결심이다. 기도는 무엇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아도 되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가려내는 결단의 순간이다. 그렇게 해서 기도는 자신만의 심연(深淵)으로 들어가 자신에게 쌓여 있는 적폐(積弊)를 제거하는 행위이다. 배철현의 <<수련>>이라는 책을 읽고 내 생각으로 정리한 것이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그건 '영적 성숙, 영혼을 살찌우자'는 거다. 그 '살찌움'으로 '허심'의 세계를 구축하는 거다.  지식은 계속 기술을 확대해서 인간 마음에 소유에 대한 증폭, 곧 욕망을 불어넣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너무 많을 것을 갖고 싶고 누리고 싶어 지는 거다. 이 마음을 해체하는 게 지혜인데, 이 지혜가 개입하지 않으면 무조건 욕망을 향해 나아간다. 그래서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우리가 더 자유로워질 수 없는 거다. 한편 지성은 사회적 관계에 대한 많은 시행착오와  토론, 논쟁, 교육 등을 주도하는데, 이 지성이 지혜와 연결되지 않을 때, 그것은 엘리트와 대중의 차이가 강화되는 쪽으로, 그래서 엘리트가 대중을 지배하고 군림하는 식으로 나가게 된다.

"구하라, 받을 것이다. 찾으라,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리라,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구하면, 받고, 찾으면, 얻고, 문을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마태복음 7:7-8)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신약 성경>>의 한 구절이다. 우리는 이 구절은 하느님에게 은혜를 간구하는 마법의 기도문으로 여긴다. 그러나 하느님은 소망을 그냥 쉽게 들어주는 신이 아니다. 그리스도도 사막에서 악마에게 유혹을 받을 떼도 아버지 하느님에게 섣불리 은총을 구하지 않았다. 사실 하느님에게 물리적 법칙을 깨뜨리고 우리를 도와 달라고 간구하는 것 자체가 부당한 일이다. 말 앞에 수레를 매달 수 없듯이, 문제를 마법적인 방법으로 해결해 달라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문제를 해결할 강한 의지와 올바른 성품, 지치지 않는 힘을 기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는 편이 낫다. 아니면 진리를 볼 수 있는 눈을 달라고 하는 게 더 낫다.

예를 들어, 누군가와 말다툼할 때는 누구나 자신이 맞고 상대방이 틀렸기를 원한다. 희생하고 변해야 할 사람은 상대방이지 내가 아니다. 만약 내가 틀렸고 내가 변해야 할 사람이라면 과거에 대한 기억, 현재를 살아가는 방법, 미래에 대한 계획 등을 자시 고민해 봐야 한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더 나아지기로 결심하고, 구체적인 방법을 생각해 내야 한다. 그리고 그 생각을 실천해야 한다. 사실 이 모든 것이 힘들고 고단한 과정이다.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 새로운 행동을 습관으로 만들려면 반복적인 실천이 필요하다.

구체적인 방법은 옳은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지, 평화를 원하는지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옳다고 계속 주장할지,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협상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이때 필요한 기도는 '내가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이 모든 것을 바로잡으려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때 수치스럽고 섬뜩한 진실에도 마음의 문을 열어 두어야 한다. 자신이 듣고 싶지 않은 진실이라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자기 자신 스스로 결함을 바로잡겠다고 결심하고 결함을 찾아내기 시작하면 온갖 새로운 생각과 만나게 된다. 그런 생각들은 자신의 양심과 나누는 대화이고, 어떤 점에서는 하느님과 의논하는 것이다.

윤정구 교수에 의하면, 기도가 세상을 바꾸는 원리인 것은, 누군가의 간절한 기도가 물꼬가 되어 이 기도를 실현시킬 수 있는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일 머리가 있다. 그냥 기도만으로는 안 된다. 윤교수는 "기도를 통해 세상이 만들어지는 원리는 말그대로 제심합력을  통해서"라고 말했다. "제심합력", 잘 모르는 말이다. 사전을 찾아보니, 한문으로 다음과 쓴다. '齊心合力'. "많은 사람들이 한 마음이 되어 노력(努力)한다"는 뜻이다. '제심(齊心)'에 방점을 찍고 싶다. 제가 '가지런할 제'자이다. "만물제동(萬物齊同)"을 말하는 <<장자>>의 "제물론"도 이 한자와 같다. '제'는 고르게 한다는 말이다. '제한다'고 하는 것은 '하나로 한다'는 것이다. 영어로 하면, either, or(이것이냐 저것이냐)가 아니라, both, and(양 쪽을 다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 쪽만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양쪽을 다 보아야 한다.

무슨 일을 하려면, 우선 '제심'이 필요하다. 사람들의 생각을 고르게 하여야 한다. 이는 온라인으로만 소통해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휴먼 터치(human touche)'가 필요하다. 첨단 기술이 발전할수록 역설적으로 사람의 따뜻한 감성이 더욱 중요해지는 트렌드를 일컬어 '휴먼 터치'라고 명명한다. '휴먼터치'는 기술이 인간을 흉내 내거나 대체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기술이 무한대로 발전해 나가더라도 그 안에 "인간의 손길은 언제나 필요하다"는 점이 오히려 핵심이다.

이런 '휴먼 터치 속에서 '제심합력'을 동원하려면, 공동의 정신모형을 만들어야 한다. 그 정신모형의 중심에는 선한 세상에 대한 염원인 목적과 사명의 스토리가 담겨 있어야 한다. 이 목적과 사명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 그 믿음이 우리의 일상의 삶과 만나 우리에게 희망이 전달되면, 그것이 소명이 된다. 이러한 소명을 받아 미래를 향한 삶의 동력을 받는 동안 우리는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 그게 나이와 상관 없이 사는 청춘이다. 그러니까 청춘이란 미래를 염두에 둔 상상체험으로 죽음이 현재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운명을 연기시키는 방식이다.

종교가 무엇일까? 나는 언젠가 배철현 교수의 글에 만난 다음 주장을 받아들인다. "종교는 흔히 신념 체계라고 잘못 알려져 있다. 종교에서는 무엇을 믿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삶에서 소중한 것을 찾아가는 과정이며, 그 과정에서 습득된 행동이 자연스럽게 주변 사람들에게 드러나는 것이다. ‘믿는다’라는 영어 동사 believe의 의미는 ‘삶에 있어서 자신에게 소중한 것(lieve/Liebe)을 찾아 우선순위를 매기고, 그것을 충실하게 지키는 삶’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다름’을 ‘참아주는 행위(톨레랑스)’에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존경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착함’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는 ‘토브’인데 그 본래 의미는 ‘향기’다. 착함은 자신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고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찾아, 그것을 인내를 가지고 지키는 행위다. 그리고 “상대방의 기준에서 내가 향기가 나는가?”를 질문하고 연습하는 삶이다. 배 교수는 붓다를 예로 든다.

"붓다의 중요한 가르침 중 하나는 ‘도덕적으로 사는 것’이 ‘남을 위해 사는 것’이라는 점이다. 그저 신비로운 종교 경험이나 금욕생활, 그리고 한계를 극복하는 자기증명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붓다는 해탈을 경험한 뒤에는 히말라야 산맥에서 홀로 유유자적하며 니르바나에 거하지 않았다. 그는 땀내가 나고 북적이는 인간 군상들이 모여 사는 시장으로 돌아와 자신뿐만 아니라 모두를 향한 헌신적인 삶을 살았다. 특히 다른 사람의 불행을 경감하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해냈다. 그는 열반에 든 뒤 초월적 평화에 탐닉하려는 영적인 유혹에 빠질 뻔했지만, 남은 40년의 생을 길거리에서 다른 이들에게 자신이 터득한 바를 가르쳤다. 대승 불교에서 영웅은 ‘보디샤트바’ 즉 보살(菩薩)이다. 그는 깨달음의 직전에 열반의 희열 속으로 사라지지 않고 세상의 고통으로 돌아가기로, 사람들과 함께 희로애락을 견디기로 결정한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 살아 가기가 쉽지 않다. 욕심덩어리가 아직 가득 차 있는 탓일까? 나를 버린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매일 매시 실감한다. 인생을 수행의 과정으로 생각하면 조금 속이 편해진다. 나무처럼 살고 싶다. "우리 나무와 나무로 만나 숲을 만들자/그런 사랑이 만드는 새로운 숲이 되자."

나무 기도/정일근

새해에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
우린 너무 빠르다, 세상은
달려갈수록 넓어지는 마당 가졌기에
발을 가진 사람의 역사는
하루도 편안히 기록되지 못했다
그냥 나무처럼 붙박여 살고 싶다
한 발자국 움직이지 않고
어린 자식 기르며 말씀 빚어내고
빈가지로 바람을 연주하는 나무로 살고 싶다
사람들의 세상은 또 너무 입이 많다
입이 말을 만들고 말이 상처를 만들고
상처는 분노를 만들고 분노는 적을 만들고
그리하여 입 속에서 전쟁이 나온다
말하지 않고도 시를 쓰는 나무의 은유처럼
온몸에 많은 잎을 달고도
진실로 침묵하는 나무가 되고 싶다

침묵으로 웅변하는 나무가 되고 싶다
삶은 베풀 때 완성되느니
그늘 주고 꽃 주고 열매 주는 나무처럼
추운 아궁이의 뜨거운 불이 되어 주기도 하고
사람의 따뜻한 가구가 되는 나무처럼
가진 것 다 주는 나무로 살고 싶다
새해에는 그대를 위한 나무가 되고 싶다
그대는 나를 위해 나무가 되어다오
우리 나무와 나무로 만나 숲을 만들자
그런 사랑이 만드는 새로운 숲이 되자

다른 글들은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에 있다.

#인문운동가박한표 #우리마을대학 #복합와인문화공간뱅샾62 #​나무_기도 #정일근 #기도 #제심합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