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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1년 12월 14일)
연말 모임에 가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들이 있다. 한국의 언론이 문제가 있다는 거다. 그 이유를 이봉수 MBC 저널리즘스쿨 책임교수는 "균형 잡힌 가치관을 형성하지 못한 채 저널리즘의 기본도 배우지 않고 언론사에 들어가 선배들의 잘못된 보도관행과 문장, 심지어 가치관까지 닮아가는 게 한국 언론인 양성 충원, 재교육 과정의 핵심 오류"라고 했다. 이에 대안으로 인문사회학 전 분야에 걸친 교양 쌓기는 언론인에게 역사의식과 윤리 의식을 심어줄 뿐 아니라 수준 높은 기사를 쓰고 프로그램을 만드는 언론인 양성 또는 재교육이 필요하다. 포털을 뒤덮은 비슷비슷한 기사의 홍수 속에서 전문적인 시각도, 치열한 탐사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기사는 아주 드물다.
손석희에 의하면, 언론은 담장 위를 걷는 존재들이다. 진실과 거짓, 공정과 불공정, 견제와 옹호, 품위와 저열 사이의 담장, 한발만 잘못 디디면 자기 부정의 길로 갈 수 있다고 했다. 개인 미디어인 유튜브의 위력이 점점 커지면서, 지금은 탈진실 시대이다. 이 시대에는 객관적 사실조차 자신의 확증편향에 부합하지 않으면 무조건 거부하는 시민들이 적지 않다. 자신이 동의하는 사실과 관점을 전하는 뉴스만 믿는 세상이다.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지적했듯이 개인간, 국가 기관 등에 대한 신뢰는 소중한 사회적 자산이다. 불행히도 한국은 불필요한 비용이 막대한 저(저)신뢰사회이다. 빨리 회복되어야 한다. 언론 개혁이 이 시대의 적폐청산 1호이다. 언론의 목적은 인본주의와 민주주의를 지키고 실천하는 것이다. 보도의 원칙은 다음 네 가지이다. (1) 가장 우선시 되는 것은 팩트 (2) 이해관계 속에서의 공정 (3) 이데올로기에 있어서는 균형 (4) 마지막으로 품위이다.
언론 불신의 시대에 시민 저널리즘이 해결책이다. 시민과 언론이 저널리즘의 회복을 위해 서로 공생(共生)해야 할 때이다. "뉴스를 생산하는 사람의 잘못이 80%라면, 이를 선택하는 사람도 20%의 잘못이 분명히 있다. 뉴스를 올바르게 만들어야 하는 것도 있지만, 올바르게 찾는 것도 각자의 몫이다."라는 박훈규 PD의 말처럼 소비자들도 책임감을 지니고, 이제는 그동안 행해졌던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 박훈규 PD는 자신을 '길바닥 저널리스트'라고 한다. "기자는 때로는 질문에 공격성을 가져야 한다. 기자는 시민을 대신하기 위해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였다.
우리는 뉴스를 선택할 때, 저널리즘이 추구하는 뉴스(News)로서의 가치가 있는가? 이러한 기사가 독자에게 알아야만 하는 필수적인 정보일까? 질문해야 한다. 현재 레거시 미디어에는 호흡이 긴 탐사보도는 이미 거의 다 사라졌다. 시민들은 훌륭한 그래픽이나 허례허식보다 '정확한 정보와 사실 보도'를 원한다. 그런데 레거시 미디어는 이러한 시민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 레거시 미디어는 '보여지는 뉴스'에만 집착한다.
레거시 미디어는 '미디어 소외자'에게 더 집중해야 한다. 미디어 소외자는 미디어에서 분명히 다뤄야 할 사람들이지만 '클릭 수'와 화제성을 유발하지 못해 언론이 주목하지 않는 이들을 뜻한다. 그래 시민 미디어가 필요하다. 상당수 언론은 연성 뉴스만을 내보내고, 독자는 길들여져 타의적으로 재미만을 쫓게 된다. 언론은 또 다시 독자들이 원하는 재미있는 기사거리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악순환이다. 그 대안이 시민 미디어이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누군가는 다뤄줘야 하는데, 항상 유명한 이슈ㅡ 대선과 같은 보도는 하면서 정작 우리 주변에서 일어난 일들을 다루는 사람은 없다. 이를 보여주고 들려주려면 시민 미디어 활동가들끼리 역량을 더 모으고 알릴 수 있는 채널이 있어야 한다.
분명한 것은 레거시 미디어는 점점 힘을 잃고, 1인 미디어가 대세이다. 지금은 디지털 시대이고, 이용자들이 뉴스를 선택하고, 거르기도 한다. 레거시 미디어는, 현재에도 여전히 사용되지만, 과거에 출시되었거나 개발된 미디어를 뜻한다. 레거시 미디어라고 하면 웹 기반의 새로운 미디어 플랫폼에 견주어 신문이나 지상파 방송, 케이블 TV 등의 전통 미디어를 의미한다.
지금 현안 문제는 언론사 사주의 탐욕과 기자들의 나태 및 악의에 의해 선량한 시민이 피해를 보았다면 구제받는 일이다. 그런 차원에서 재발 방지를 위해 징벌적 손해배상의 도입은 정당하다. 그러나 '전략적 봉쇄 소송"이라는 게 있다. 요즈음 대선 선거판에 흥행 중이다. 비판적 언론을 잠재우기 위해 질 걸 뻔히 알면서도 무조건 소송을 거는 형태를 뜻한다. 이것 또한 막아야 한다. 어쨌든 언론이 현재 우리 사회의 커다란 적폐 중의 하나인 것은 틀림 없다. 그러나 SNS에 기반을 둔 1인 미디어에 굴복 될 것으로 나는 본다. 어쨌든 내 눈에 보이는 일부 언론은 검증을 하랬더니 검증 대신 아부를 하고, 분칠로 미화하고, 잘못을 가리는 방패막이 되어주고, 받아쓰기나 하고, 거짓 정보로 국민을 오도하고 있는 모습으로 보인다.
오늘 아침 시를 소개한 문태준 시인의 덧붙임이다. 오늘 아침은 춥다. 어느덧 추위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거다. "시인은 생활의 곳곳에서 이 추위를 발견한다. 마음속에는 쓸쓸함이라는 웅크린 짐승이 살고, 집 주변 길고양이는 한곳에 고드름처럼 얼어붙어 있다. 살아나갈, 살아남을 방도만을 찾는 계절이 겨울이다. 시인은 또 어느 날 실직한 친구를 만나 막막한 사연을 듣고 눈물을 쏟는다. 삭풍의 시간인 겨울은 일상을 문득 막다른 종점에 내려놓기도 한다."
"겨울의 초입에 들어서면 ‘한월(寒月)’을 생각한다. 겨울의 달은 마냥 차가워 보인다. 달은 본래 밝고 깨끗한 빛이지만 우리의 처지가 한파 속에 있는 까닭에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때때로 동천(冬天)에 높게 솟은 한월을 정신의 높이로 받아들이면 어떨까 한다. 서리가 내리는 밤의 차가워 보이는 달처럼, 상월(霜月)처럼 매섭고 곧은 정신은 추위의 시간에 구속되지 않는다."
귀가/오민석
날 추워지니
쓸쓸한 짐승이 자꾸 기어 나온다
음식 쓰레기 버리러 가면
검은 길고양이 얼어붙은 채 서 있고
나는 겨울이 싫은 거다
오직 생계만 남은 생계가 두려운 게다
그래도 가끔 밥 한술 나눌 친구들이 있어
외투도 없이 술 취한 거리에서
막차를 기다리며 서 있는 거다
시간은 얼음벽을 지나가고
하필이면 누추한 계절에 실직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
막막하게 눈물이 솟는 게다
차창 밖으로 눈발 쏟아지는 꿈을 꾸다
문득 깨어보면 버스는 어느새 종점에 와 있고
나는 길고양이들이 서럽게 우는 것이 무서워
빈 주머니에 손을 넣고 발소리를 죽이는 거다
어디 빈 우체통 속에라도 들어가 오는 소식들을 듣고 싶은 게다
삭풍처럼 야위는 시간에 빈 잎사귀라도 달고 싶은 것이다
세상 일은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단순 명료하지 않다. 그러니까 복잡한 세상에 '친절한 진실'이란 없다. 뉴스가 시민들의 삶에서 조금씩 멀어져, 이제는 자본과 권력의 광고판으로 전락한 듯하다. 언론이 본연의 가치를 잃은 채 경쟁에만 몰두한 나머지 수많은 '페이크(가짜)'가 '팩트(사실)'의 탈을 쓰고 전달되고 있다. 이것이 과연 터무니 없는 실수인지, 혹은 의도된 전략인지 모를 일이다. 왜곡된 진실이 온 매체에 만연하는 가운데, 우리는 힘들어 하고 있다. 지난 주에 언론에 흥미롭게 읽은 것은 유시민이 펼치는 '이재명 학(學)'이었다. 키워드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였다. ‘생존자/발전도상인/과제중심형’였다. 이 말들이 신선하다. 역시 유시민의 작가적 기질이다.
첫째, 생존자는 이재명이 어려서 가난과 정치 입문 후 각종 논란을 겪고 살아남았다는 의미였다. 결론적으로 이재명은 ‘정치적 생존을 위태롭게 할 어떤 하자도 없는 사람’이기에 살아남았다는 평가였다. 키워드는 이재명을 방어하는데 원용돨 것 같다. 과거 범죄경력이나 욕설 논란은 ‘이런 생존과정에서 난 상처’로 이해하자고 했다. 흠이 아니라, 상처라고하는 말이 흥미롭다. 상처와 흠은 분명히 다르다.
둘째, 발전도상인은 끊임없이 발전하는 사람이란 말이었다. "머리 좋고 학습능력 뛰어나고 목표의식 뚜렷해 자기를 바꿔 나가는 사람"이기에 "앞으로도 계속 발전"한다는 주장이었다. 발전도상이란 개념 역시 이재명 방어용으로 유용하다. ‘불안한 리더십’도 앞으로 나아질 것이며, 대통령이 되면 ‘학습능력을 발현해’ 잘 할 것이란 얘기 같다. 나도 개인적으로 나를 발전도상인으로 여기고 싶다. 죽을 때까지 공부하고 배우고 싶다는 말이다.
셋째, 과제 중심형은 현안을 즉각 해결 해낸다는 말이었다. ‘일 잘 하는 이재명’을 설명하는 키워드라고 본다. 과거 정치지도자들이 철학과 가치를 세우고, 이에 따른 과제와 정책을 선택하는 방식이었다면 이재명은 이와 반대라는 해석이다. 이재명의 상대적인 정치철학 빈곤을 역설적으로 장점처럼 포장한 논리로 들렸다.
유시민은 인터뷰 첫머리에서 "이재명 캠프에 참여하지 않고, 이재명 정부가 되어도 직책을 맡지 않을 것"이라 다짐했다. 자신의 주장이 정치선전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물론 아무도 믿지 않지만, 이재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천군만마를 얻은 느낌"일 것이라며 대선승리를 기원했다. 난 원래 정치인들의 말을 믿지 않지만, 스스로 물러나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유시민의 태도는 내 삶의 멘토가 될 만 하다고 늘 생각하고 있다. 유시민은 앞으로 방송 고정출연까지 할 예정이라고 했다. 줏대 없는 몇몇 패널들에게 자극이 될 것 같다. 내년 3월 대선 끝날 때까지, 이재명의 좌충우돌을 깔끔하게 논리적으로 봉합해주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에겐 꼭 필요한 역할이다. 진짜 천군만마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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