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김기택 시는, 대상과의 관계를 심층적으로 파고드는 치밀한 언어의 끝에서, 우리를 어떤 ‘본질’과 마주하게 한다. 그의 언어는 대상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면서 그 대상이 배경 속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배경과 하나가 되게 하는 독특한 방법론을 사용하고 있다. 시인을 만나서, 우리는 그 섬세한 언어의 안쪽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껌>의 세계는 폭력의 원리를 보여준다. 폭력은 빠르고 강한 자가 느리고 약한 자를 짓밟고 먹이로 삼는 수단이다. 먹이사슬의 최상위를 차지한 인간들은 껌을 핥고 빨고 깨물고 씹는다. 그러나 씹히되 끝내 삼켜지지 않는 껌처럼, 약육강식의 문명 세계를 구원할 가능성은 이들의 '비폭력, 무저항'에 있다고 시인은 암시한다.
안도현 시인은 시를 쓰려는 사람에게 "색다른" 세 가지를 주문한다. 1) 술을 많이 마셔라. 2) 연애를 많이 하라. 3) 시 한 줄을 쓰기 전에 백 줄을 읽어라. 술은 잔뜩 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과의 소통을 위한 매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연애는 나 아닌 것들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껌/김기택
누군가 씹다 버린 껌.
이빨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는 껌.
이미 찍힌 이빨자국 위에
다시 찍히고 찍히고 무수히 찍힌 이빨자국들을
하나도 버리거나 지우지 않고
작은 몸속에 겹겹이 구겨 넣어
작고 동그란 덩어리로 뭉쳐놓은 껌.
그 많은 이빨 자국 속에서
지금은 고요히 화석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껌.
고기를 찢고 열매를 부수던 힘이
아무리 짓이기고 짓이겨도
다 짓이겨지지 않고
조금도 찢어지거나 부서지지도 않은 껌.
살처럼 부드러운 촉감으로
고기처럼 쫄깃한 질감으로
이빨 밑에서 발버둥치는 팔다리 같은 물렁물렁한 탄력으로
이빨들이 잊고 있던 먼 살육의 기억을 깨워
그 피와 살과 비린내와 함께 놀던 껌.
우주의 일생동안 이빨에 각인된 살의와 적의를
제 한 몸에 고스란히 받고 있던 껌.
마음껏 뭉개고 갈고 짓누르다
이빨이 먼저 지쳐
마지못해 놓아준 껌.
#인문운동가박한표 #대전문화연대 #사진하나시하나 #김기택 #와인비스트로뱅샾62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생각의 전환, '디자인 씽킹(designe thinking)' 하라. (0) | 2025.12.14 |
|---|---|
| 인문 운동가에게 철학은 인생의 문제를 이론으로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일상에서 푸는 것이다. (0) | 2025.12.14 |
| 위험한 사상이란 없다. 사유하지 않는 것 자체가 위험한 것이다. (1) | 2025.12.13 |
| 살면서 기본을 잘 갖추면, 기회는 부지불식간에 찾아온다. (0) | 2025.12.13 |
| 현재부터 답을 찾아야 한다. (0) | 2025.12.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