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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인문 운동가에게 철학은 인생의 문제를 이론으로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일상에서 푸는 것이다.

6년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한가하게 보내는 겨울의 토요일 오전이다. 그러나 속은 불이 붙었다. 어제, <새통사> 동계 방학이었고, '주님'을 많이 모셨기 때문이다. 우린 공동체(커뮤니티)를 만들어, 관계를 다양화할 때 삶이 행복하다. 어젠 나를 내가 방심(放心)했다. 일부러. 그러나 이불이 주는  따뜻함의 유혹을 뿌리치고 일어났다. 이 문장을 스마트폰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키케로)

나는 최근에 인문운동가의 삶에 대해 묵상을 하고 있다. 그럴 때마다 영감을 주는 글이 배철현 선생이 매일 써서 공유하는 <배철현과 함께 가보는 심연>이다. 지난 주에 그가 <월든 호수>에서 쓴 헨리 데이빗 소로의 글을 소개했다. 여기서 철학자 대신에 그걸 인문운동가로 바꾸면 내 고민이 풀린다.

"철학자가 된다는 것은 (…) 삶의 명령에 따라서 지혜를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가 쓰고 있는 철학(哲學)이라는 말이 나는 금방 와 닿지 않아 무슨 말인지 모른다. 철학을 영어로 하면 Philosophie이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이 말은 사랑하다는 philo와 지혜라는 sophie가 합쳐진 말이다. 그러니까 필로소피는 '지혜를 사랑하다'는 말이다. 소로는 지혜를 사랑하는 것으로 다음과 같이 네 개를 말하고 있다. 이 말들을 갖고 다시 한 번 내 삶을 점검한다.
▪ 단순한 삶
▪ 자립하는 삶
▪ 타인에 관대한 삶
▪ 자신, 타인 그리고 자연을 신뢰하는 삶

매일 아침마다 질문해야 한다. 네 삶은 단순한가? 네 삶은 자립하는 삶인가? 나는 타인의 차이를 인정하며 관대한가? 그리고 나, 타인 그리고 세상을 신뢰하는가?

인문운동가에게 철학은 인생의 문제를 이론으로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일상에서 푸는 것이다. 지식인들이 보통 권력자에게 아첨하며, 그들이 주는 돈을 가지고 누리는 것을 우리는 성공이라 부른다. 그리고 많은 지식인들은 그런 성공에 만족한다.

인문운동가는 자신이 숙고한 생각을 당당하게 말하고, 자신의 삶으로 여실히 보여주는 사람이다. 인문운동가는 인생을 지혜롭게 사는 방법을 고민하고 제시하는 사람이다. 일상의 삶 속에서 우리가 숙고하는 것은 두 가지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 자신을 알려고 하며,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많지 않다는 것을 숙고하며, 자만이나 오만을 경계하고, 부족한 것을 늘 배우려는 자세를 갖는 일이다. 그리고 죽음에 대한 숙고를 하면서, 탐욕스런 사람이 되려는 것을 경계하는 일이다. 키케로는 "철학을 공부하는 것은 스스로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다"라고까지 말한다. 그럼 우리는 다 죽어야 할 인간이지만, 스스로 죽음을 준비하라는 것은 무슨 말인가?

배철현 선생이 그 답을 준다. "자신을 돌아보는 심오한 공부와 그 공부에 대한 깊은 묵상은 내 안에 이전에 들어가 본 적이 없는 (…) 발이 디뎌본 적이 없는, 그래서 이전에 인식되지 않는 내면(內面)으로 입장하는 것이다. 그 완전한 입장은 감각과 감정에 쉽게 휩싸이는 육체로부터의 이탈에서 시작한다. 그런 행위가 바로 죽음을 연습하는 것이다." 장자가 말하는 '자기를 살해하라'라는 '오상아'가 생각난다. 배교수는 실제 예로 무술을 배우는 초보자가 과거의 습관을 살해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죽음에 대한 생각은 역설적으로 내가 살아있다는 점을 각성하게 하고, 또한 감사하게 만드는 처방전이다.

인문운동가에게 철학은 부자 혹은 권력자를 위한 심심한 놀이가 아니다. 삶을 예술로 승화하기 위한 가장 적절한 재료인 인생을 조각하는 기술이다. 늘 배우면서. 그리고 인간 존재를 없음으로 만드는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고 자신이 살아 있다는 마음가짐에 대해 훈련하는 일이다. 우리는 흔히 죽음을 잊기 위해서 쾌락을 즐긴다. 그건 죽음으로 부터 도망치는 비겁한 행위이다. 쾌락을 통해 죽음 두려워 하며 도망가는 것은 비겁한 짓이다. 그 반대는 죽음과 직면하여 새로운 삶을 살아 보는 것이다. 이게 인문운동가의 꿈이다. 어제 모신 '주님'으로 머리가 아픈 아침이지만, 오늘 하루도 최선을 다한다. 친구 아들 결혼식에 간다. 오늘 사진은 서울 강의 중에 밖에 나왔더니, 구름과 달이 속삭이고 있어, 한 컷 찍은 것이다.

속삭임/이원로

마음을 부르는 속삭임 있어
지평선에 발돋움하고
두리번거려도 아무도
보이는 이 없네

하늘 꼭대기에는 조각달만 홀로 빛나고
미칠 수 없는 뇌수의 깊은 곳에서
흙이 삶을 짓는 소리
가느단 메아리로 우주에 울려 펴지네

그 속삭임을 따라 노을은 타고
지구의 그림자를 벗어나
머나먼 우주의 밖으로 나서면
두려움 서린 수수께끼 속

깊으나 깊은 뇌세포에 이르니
그곳은
신이 기식하는 곳
흙으로 영혼을 반죽하는데

마음을 흔드는 속삭임을 찾아가 만나는 곳은
처음과 끝이 서로 닿고
가장 큰 것이 가장 작은 것 속에
담겨지는 곳

활화산처럼 약동하는 원자와 분자들
부딪히는 소리와 바람이
영혼의 안개를 피우는
신의 눈이 사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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