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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일기 쓰기는 마음에 앉은 더께를 치우는 일이다.

3년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2년 12월 2일)

오늘 아침도  <나를 깨우는 하루 한 문장 50일 고전 읽기>라는 부제의 <<어른의 새벽>> 읽기 일곱 번째 이야기를 한다. 오늘의 주제는 '일기 쓰기는 마음에 앉은 더께를 치우는 일'이라는 거다. 일기 쓰기는 복잡한 마음을 정리해 준다. 이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하기 전에 다른 주제로 너무 멀리 나갔다. 오늘 아침 돌아 왔다.

하루에도 생각과 걱정은 수십 가지의 길로 뻗어 나가고 서로 얽히고 설킨다. 이미 지나간 일, 일어나지 않는 일, 내가 어찌할 수 없었던 상황에 대한 후회가 끊임없이 솟아오른다. 이렇게 무성해진 마음 속의 띠 풀은 진짜 마음을 가로막아 진심으로 걱정하고 애써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만든다. 스스로 만든 생각의 그물에서 허덕이고 빠져 나오지 못한다. 우리는 그 '스스로 만든 생각의 그물'을 범주라고 부를 수 있다.

일상에서 항상 일어나는 테두리를 우리는 범주라 한다. 그 범주 속에 들어 있는 내용은 개념이라 한다. 예컨대, 그릇이 범주라면, 그 안에 들어 있는 물이 개념이 된다. 개념은 범주를 떠날 수 없다. 예컨대, 물이 정보라면, 물 그릇으로만 그 정보를 퍼 담는다. 즉 개념은 범주를 넘어설 수 없다. 따라서 새로운 세계를 보려면 새로운 범주, 즉 새로운 창문이 필요하다. 그 창문이 새로운 지각을 여는 거다.

그리고 우리가 머릿속에 저장된 기억 속에서 어떤 것을 골라 끄집어낼 때 그 기억은 맨 처음에 범주 화된 상태 그대로다.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범주를 만들 때 우리는 상황과 맥락을 고려한다. 사람들에게 어제 한 일의 목록을 만들라고 하면, 어제 하루를 '아침 먹고, 일하고, 점심 먹고, 진화했다'와 같이 큰 덩어리로 범주화 한다. 많은 사람들이 '토스트 한 조각을 깨물고, 씹은 다음, 삼켰다'라 말하기 보다는 '아침을 먹었다'라 말한다. 과정을 생각하지 않는 결과 지향적 태도 때문으로 본다. 마음 챙김 상태의 사람은 계속해서 새로운 범주를 만들어 낸다.  아이들은 세상에 숙달되어 감에 따라 범주화와 재범주화를 거듭하고 사물에 어떤 명칭을 붙였다가 다시 새로 붙이는 일을 자연스럽게 한다. 그런데 성인이 되면 새로운 범주 만들기를 꺼린다. 어른들은 결과지향적 태도 때문에 아이들처럼 사물에 장난스럽게 접근하지 못하는 경향 때문이다.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마음에도 길이 있다'는 거다. 마음의 길도 계속 생각하고 고민하지 않으면 풀이 무성하게 자라서 막혀 버린다. 마음의 길을 왕래하지 않으면, 자기 자신에 대한 숙고는 커녕 마음의 길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고민을 이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고만하지 않으면 않을수록 마음 속 띠 풀은 점점 더 무성해진다. 그래 매일매일 일기를 쓰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일기 쓰면 나를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생각이 무엇인지, 그 생각이 진짜 고민하고 해결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진짜 생각을 가로막는 띠 풀에 불과한지 구별할 수 있다. 떠 있는 쓰레기를 치워야 수면이 드러나는 것처럼, 일기도 마음에 덮여 있는 자질구레한 것들을 치우는 행위이다. 그래서 일기 쓰기는 방을 정리하거나 책상 위의 물건들을 치우는 것과 비슷하다. 일기 쓰기는 특별한 사람이 특별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마음을 제대로 비우고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이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글로써 털어낸다는 게 처음부터 쉽지는 않다. 그러나 단순하게 내 마음을 가로막는 띠 풀과 수면을 덮어버리는 쓰레기를 적는다고 생각하면 생각보다 어렵진 않다. 그래 일기는 보통 아름다운 글이 될 수 없다. 일기는 멎진 언어로 나를 고급스럽게 표현해 내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가로막고 무겁게 만드는 것을 제거하는 활동이다.

매일 일기 쓰면서 마음을 놓지 않는 노력을 지속하는 게 중요하다. 마음의 짐은 해결되는 법이 없다. 치워도 어느새 채워지고, 해결되었다 생각해도 바로 해결될 수 없는 일이 된다. 마치 깨끗한 방이라도 며칠 지나면 먼지가 쌓이고 더러워지기 시작하는 것과 같다. 끊임없이 관리하지 않으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은 마음 역시 다르지 않다. 공자는 "군자는 태평하면서 너그럽고, 소인은 늘 걱정에 휩싸여 있다"고 했다. 상황의 차이가 사람의 태도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본래 마음을 잘 다스릴 수 있느냐의 여부가 군자와 소인의 기준이라는 것이다. 상황은 언제나 달라진다. 누구에게나 좋을 때와 나쁠 때가 번갈아 찾아오기 때문이다. 언제나 변화 속에서도 마음을 놓지 않는 노력을 지속해야 자기 마음을 다스릴 수 있다. 맹자도 마음이라는 것이 보이지 않지만, 지속적으로 들여다 보고 관리해야 하는 소중한 것이라고 했다. 그게 매일매일 일기를 쓰는 이유이다. 일기 쓰기는 마음을 치우는 행위, 즉 마음을 청소하는 일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써내려 가다 보면 진짜 내 마음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마음을 놓치면 다른 것을 다 가져도 가진 것이 아니고, 다른 것을 다 놓쳐도 더 이상 모든 것을 잃었다고만 볼 수 없다.

지난 주에 읽은 오은 시인의 글이 기억난다.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저물지 않으면 해는 다시 떠오르지 못한다." "저문다는 말에는 어두워진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날이 저물고 밤이 찾아오는 일처럼 한 해가 저물고 새해가 찾아오는 일 또한 자연스러워야 할 것이다. 밤에 생활하는 이들을 위해 거리에 가로등은 필요할 테지만, 밝음이 지나쳐 어둠을 해쳐서는 안 된다. 밤은 밤 나름의 역할을 다하고 있을 텐데, 인위적으로 자연을 바꾸려는 시도는 인류에게 부메랑이 되어 날아들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스스로 빛을 발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어둠 속에서도 어떻게든 빛을 밝히는 사람을 멀찌감치서 동경했다. 다가오는 새해, 나는 어둠을 어둠 그대로 긍정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더 오래, 더 늦게까지 머무는 사람이 아닌 때맞춰 자발적으로 어두워질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빛이 넘칠 때는 한 줄기 빛살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를 테니, 이는 어둠의 미덕을 발견하는 일이기도 하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나도, "어둠을 어둠 그대로 긍정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더 오래, 더 늦게까지 머무는 사람이 아닌 때맞춰 자발적으로 어두워질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면서 오은 시인의 나희덕 시인의 시 ‘어두워진다는 것’을 소개하였다. 이 시는 “그토록 오래 서 있었던 뼈와 살/ 비로소 아프기 시작하고/ 가만, 가만, 가만히/ 금이 간 갈비뼈를 혼자 쓰다듬는 저녁”이라는 구절로 끝난다. 오늘 아침 이 시의 전문을 공유한다. 오래, 비로소, 가만히, 혼자…. 어둠을 긍정하는 일은 시간을 내 쪽으로 끌어당기는 일일지도 모른다. 어둠은 고요하고 차분한 상태로 나를 이끌어준다. 하루를 정리하며 스스로 들여다보는 시간이 밤인 이유도 어둠 덕분일 것이다. 바깥의 열기와 흥분은 어둠 속에서 내일을 살 수 있는 에너지로 변환된다. 그게 일기를 매일 쓰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어두워진다는 것/나희덕

5시 44분의 방이
5시 45분의 방에게
누워있는 나를 넘겨주는 것
슬픈 집 한 채를 들여다보듯
몸을 비추던 햇살이
불현듯 그 온기를 거두어가는 것
멀리서 수원은사시나무 한 그루가 쓰러지고
나무 껍질이 시들기 시작하는 것
시든 손등이 더는 보이지 않게 되는 것
5시 45분에서 기억이 멈추어 있고
어둠은 더 깊어지지 않고
아무도 쓰러진 나무를 거두어 가지 않는 것

그토록 오래 서 있었던 뼈와 살
비로소 아프기 시작하고
가만, 가만, 가만히
금이 간 갈비뼈를 혼자 쓰다듬는 저녁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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