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7. 인문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1년 9월 1일)

장자는 이어서, 진인, 즉 인간의 참 모습을 다음과 같이 11가지로 더 설명하고 있다. 한번쯤 꼼꼼하게 읽고, 나의 모습을 뒤돌아 보는 것은 자기 구원의 길이기도 하고, 나아가야 할 우리 인간의 참모습을 그려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본다. 좀 읽기 싫어도 원문, 즉 텍스트에 충실하게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아, 우선 직역을 해 본다.
(1) 기상의이불붕(其狀義而不朋): 그 모습이 높이 솟은 산처럼 당당하면서도 무너지지 않는다. 외물과 더불어 마땅한 관계를 유지하되 붕당을 만들지 않는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2) 약부족이불승(若不足而不承): 부족한 것 같지만 남에게서 받지 않는다. 외물에 의지하지 않고 독립된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부족하면 반드시 남에게서 물건을 받게 되는데, 부족한 듯하지만 실제로 부족한 것이 아니니 어찌 다시 자잘한 물건을 받겠는가'로 풀이 할 수 있다.
(3) 여호기고이불견야(與乎其觚而不堅也): 몸가짐이 법도에 꼭 맞아 태도가 단정하면서도 고집하지 않는다. 여기서 '여호'는 몸가짐이 법도에 꼭 맞는 모양, '고는 모난 그릇으로 여기서는 모난 그릇처럼 태도가 단정함을 뜻한다. '불견'은 고집하지 않음이다.
(4) 장호기허이불화야(張乎其虛而不華也): 넓고 크게 마음을 비운 듯하면서도 꾸미지 않는다. '불화' 화려하게 꾸미지 않는다. 백제의 아름다움이라 하는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라는 말에 나오는 "화'가 기억난다. 이 말은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는 말이다.
(5) 병병호기사희호(邴邴乎其似喜乎): 환하게 밝은 모습으로 마치 기쁜 일이 있는 듯한 모습이다. 얼굴표정이 늘 밝은 거다. 여기서 '병병'은 환하게 밝은 모양, 곧 기뻐하는 모양이다.
(6) 최호기부득이호(崔乎其不得已乎): 임박해서 움직여 마지못한 듯하다. 여기서 '최'는 임박한 모양으로 부득이한 모습을 표현한다.
(7) 축호진아색야(滀乎進我色也): 가득하게 자기의 안색을 나타내다. 곧 자신의 기쁜 감정을 얼굴에 드러낸다는 뜻이다. 여기서 '축'은 가득한 모양으로 자기 얼굴색을 드러내는 모습의 표현이다. '진'은 안색을 가득하게 드러낸다는 뜻이다.
(8) 여호지아덕야(與乎止我德也): 몸가짐이 법도에 꼭 맞아 자신의 참다운 덕에 머무른다. '지'는 앞 문장의 '진'과 상반되는 표현이다. 자신의 덕을 안으로 간직하고 드러내지 않는다는 말이다.
(9) 여호기사제호(勵(廣)乎其似世乎): 넓은 도량으로 세속 사람들과 함께 하는 듯하다. 여기서 '여호'는 '광호(廣乎)'로 읽기도 한다. '화광동진(和光同塵)'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이 말은 '자신의 광채를 누그러뜨리고 이 풍진 세상의 눈높이와 함께 한다'는 것이다.
(10) 오호기미가제야(謷乎其未可制也): 오연히 제약 받지 않는다. 여기서 '오연(傲然)히 초월한 모양이다. '謷'가 '傲'와 통한다. '미가제'는 세속적인 규범으로 제약할 수 없다. '오연'은 태도가 거만하거나 그렇게 보일 정도로 담담하다는 뜻이다.
(11) 연호기사호폐야(連乎其似好閉也): 아무 말도 하지 않아서 감추기를 좋아하는 듯하다. 마치 일부러 말을 하지 않고 감추는 듯하다는 뜻이다. '여기서 연호'는 말하지 않고 침묵하는 모습이라는 말이다. '폐'는 감춘다는 말이다.
(12) 문호망기언야(悗乎忘其言也): 무심히 모든 말을 다 잊어버린다. 일부러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말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여기서 '문호'는 무심한 모양이다.
오강남은 이 문장들을 다음과 같이 시처럼 만들었다. 그러나 바로 마음에 와 닿지 않나 괄호 안으로 다시 내가 이해한 대로 다시 써보았다.
그 모습 우뚝하나 무너지는 일이 없고, (그 모습이 높이 솟은 산처럼 당당하면서도 무너지지 아니하며,)
뭔가 모자라는 듯하나 받는 일이 없고, (부족한 것 같지만 남에게서 받지 않으며,)
한가로이 홀로 서 있으나 고집스럽지 않고, (몸가짐이 법도에 꼭 맞아 태도가 단정 하면서도 고집하지 않으며,)
넓게 비어 있으나 겉치레가 없었습니다. (넓고 크게 마음을 비운 듯하면서도 꾸미지 않았다.)
쉽게 자신의 모습이 흩트려져 무너지지 않고, 무엇을 구걸하지 않으며, 그렇다고 고집스럽지 않고, 겉치레가 없이 진실한 사람이 진인, 인간의 참모습이라는 말로 요약 가능하다.
다음은 진인, 참된 인간의 얼굴 모습이 그려진다. 관상, 아니 얼굴상이 그려진다.
엷은 웃음 기쁜 듯하고, (환하게 밝은 모습으로 마치 기뿐 일이 있는 듯하고,)
하는 것은 부득이한 일 뿐, (임박해서 움직여 마지못한 듯하고,)
빛나느니 그 얼굴빛, (가득하게 자기 안색을 나타내는 일도 있지만,)
한가로이 덕에 머물고, (몸가짐이 법도에 맞아 자신의 참다운 덕에 머물며,)
넓으니 큰 듯하고. (넓은 도량으로 세속과 함께하는 듯하다!)
초연하였으니 얽매임이 없고, (담담하게 제약 받지 않으며,)
깊으니 입 다물기 좋아하는 것 같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아서 감추는 것을 좋아하는 듯하지만,)
멍하니 할 말을 잊은 듯했습니다. (무심히 모든 말을 다 잊어버린다.)
오늘 아침의 시로는, 언젠가 적어 두었던 황지우 시인의 <화공동진>을 공유한다.
화광동진(和光同塵)/황지우
이태리에서 돌아온 날, 이제 보는 것을 멀리 하자!
눈알에서 모기들이 날아다닌다. 비비니까는
폼페이 비극시인(悲劇詩人)의 집에 축 늘어져 있던 검은 개가
거실에 들어와 냄새를 맡더니마는, 베란다 쪽으로 나가버린다.
TV도 재미없고 토요일에 대여섯 개씩 빌려오던 비디오도 재미없다.
나에게는 비밀이 있다; 그건 자꾸 혼자 있고 싶어한다는 점이다.
뜯긴 지붕으로 새어 들어오는 빛 띠에 떠 있는 먼지.
나는 그걸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침대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페이스북>에서 만났다. 나에게 페이스북은 세상과 만나는 창이다. 물론 대충 보고 지나가는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가끔은 좋은 글들을 만난다. 다음과 같은 글을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좋은 얼굴을 가지기를 원한다. 관상을 잘 믿지 않는 사람도 누가 '당신 관상이 좋다'고 하면 금세 입이 벌어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백범 김구 선생이 젊었을 때의 일이다. 청년 김구는 열심히 공부해서 과거시험에 응시했지만 번번이 낙방했다. 당시엔 인맥과 재물이 없으면 출세할 수 없는 시절이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밥벌이라도 하려면 관상이라도 배워보라고 권했다. 김구는 <<마의상서>>라는 관상책을 구해 독학했다. 어느 정도 실력을 연마한 그는 거울을 갖다 놓고 자신의 관상을 보았다. 가난과 살인, 풍파, 불안, 비명 횡사할 액운이 다 끼어 있었다 최악의 관상이었다. '내 관상이 이 모양인데 누구의 관상을 본단 말인가!' 때마침 장탄식하던 김구의 눈에 책의 마지막 구절이 들어왔다.
얼굴 잘생긴 관상은 몸이 튼튼한 신상(身相)만 못하고 몸이 좋은 신상은 마음씨 좋은 심상(心相)만 못하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심상>관상>신상. 얼굴보다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사람의 진면목은 마음에서 나온다. 언젠가 신영복의 『강의』에서도 읽은 적 있다. 백범 김구가 자주 인용했다는 ‘상호불여신호(相好不如身好)’를 소개하고 있었다. 얼굴 좋은 것이 몸 좋은 것만 못하다는 뜻이다. 실제 생활에서 건강은 미모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그리고 ‘신호불여심호(身好不如心好)’, 즉 신체가 건강한 사람보다는 마음이 좋은 것이 더 중요하다 했다. 여기서 우리에게 흥미를 주는 것은 ‘마음’의 문제이다.
백범 김구가 읽은 <<마의상서>>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진다고 한다. 이 책을 쓴 마의선인이 길을 걷다 나무하러 가는 머슴을 만났다. 그의 관상을 보니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마의선인은 머슴에게 “얼마 안 가서 죽을 운명이니 너무 무리하게 일하지 말게.”라고 일렀다.그 말을 들은 머슴은 하늘을 바라보며 탄식했다. 그때 나무껍질이 계곡물에 떠내려왔다. 머슴은 나무껍질 위에서 개미떼들이 물에 빠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것을 보고는 측은한 생각에 껍질을 건져 개미들을 살려주었다. 며칠 후 마의선인은 그 머슴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놀랍게도 그의 얼굴에 서려 있던 죽음의 그림자가 사라지고 부귀영화를 누릴 관상으로 변해 있었다. 작은 선행이 그의 관상과 운명까지 바꾼 것이다. 머슴에게서 개미 이야기를 들은 마의선인은 크게 깨닫고는 <<마의상서>>에 글을 남겼다. 김구가 읽은 마지막 장의 심상이 그 대목이다.
"사람들은 턱을 깎고 새 눈썹을 만드는 성형으로 자기 얼굴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의 진면목은 마음에서 나온다. 남에게 호감을 주는 얼굴을 가지려면 마음을 곱게 써야 한다. 심성이 착하고 남을 돕고 배려하면 얼굴이 부드럽게 변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이야기도 만났다. 중국 당나라에 배도라는 사람이 있었다. 길에서 유명한 관상가를 만난 그는 자기관상을 한 번 봐 달라고 청했다. 관상가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말하기 민망하지만 당신은 빌어먹을 상이오."
관상가의 말을 들은 배도는 타고난 운명을 어쩔 수 없다면 남에게 좋은 일이라도 하고 죽자는 마음으로 열심히 선행을 베풀었다. 세월이 한참 지나 배도는 길에서 그 관상가를 다시 만났다. 관상가는 배도를 찬찬히 살피더니 깜짝 놀라 말했다. "정말 놀라운 일이오. 당신의 상이 바뀌었소. 당신은 이제 정승이 될 상이오." 실제로 배도는 훗날 벼슬길에 올라 정승이 되었다.
조선 후기의 문신 성대중이 쓴 <<청성잡기>>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한다. "사람의 관상을 보는 것보다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이 낫고 사람의 말을 듣는 것보다 사람의 행동을 살펴보는 것이 낫고 사람의 행동을 살펴보는 것보다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보는 것이 낫다." 얼굴보다 말을, 말보다 행동을, 행동보다는 마음을 보라는 당부다. 좋은 마음이 좋은 얼굴을 만든다. 반면 좋은 얼굴을 가지고 있더라도 나쁜 마음을 먹으면 사악한 인상으로 바뀔 것이다.장자가 말하는 진인의 모습은 이런 마음의 태도에서 나온 것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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