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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땅끝/나희덕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오늘도 '절망 속에서 희망'을 주는 나희덕 시인의 멋진 시, <땅끝>을 공유한다. 땅끝은 뒷걸음질만 허락한다.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곳이다. 마치 심연(深淵)같다.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다. 그러나 거기서부터 희망이다. 그 땅끝은 젖어 있다. 그러나 그 땅끝에서 시인은 아름다움을 찾았다. 나는 그 아름다움이 자유(自由)라고 본다.

아내가 몹시 아플 때, 그리고 하늘 나라로 먼저 가기 전에 우리는 함께 땅끝을 간 적이 있다. 오늘 함께 하는 사진이 꽃으로 돌아 온 아내이다. 이젠 아내를 이렇게 객관적으로 볼 수 있으니 이젠 나도 자유롭다.

오늘 오후에는돈키호테의 자유에 대해 강의할 차례이다.『돈키호테』의 속편 제58장에서 주인공 돈키호테는 자유에 대래 이렇게 말한다. "산초, 자유란 하늘이 인간에게 내려주신 가장 고귀한 선물들 중 하나이다. 땅 속에 묻혀 있는 보물도 바닷속에 숨겨져 있는 보물도 자유와 비교할 수는 없지. 자유와 명예를 위해서는 목숨을 걸 수 있거나 목숨을 걸어야만 한다. 반대로 포로 생활이란 인간에 닥쳐올 수 있는 가장 큰 불행이다." 돈키호테가 생각 하는 자유란 삶에 가해지는 외부의 간섭이나 강요가 없는, 오직 자기 의지와 생각으로 갖게 되는 절대적인 주권을 말한다. 그게 어떠한 권력이든, 외부의 힘을 배제하고 거부할 수 있는 자유를 말한다.

어제 오후는 법무장관에 지명된 조국 교수의 기자간담회가, 예정되어 있던 청문회를 대신해서 10시간이나 넘게 진행되었다. 나도 간간이 틈나는 대로 시청했다. 오늘 공유하는 시처럼, 그가 땅끝에 섰다면, 돈키호테처럼 자유로워야 한다. 나는 그가 과거를 잊고, '진짜 진보'로 삶의 주인이 되기를 기원했다.

소설 속에서 돈키호테는 기존의 자신을 모두 부수어 과거가 없는 자유인으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그의 종자 산초도 기존의 생활을 접고 꿈을 지닌 채 돈키호테를 따라 나선다. 주인의 생각에 전염 되어, 산초도 또한 자기 삶의 주인으로 우뚝 선다. 속편 제60장에서 산초는 이런 말을 한다. "다만 제 자신을 도울 뿐이지요. 저의 주인은 저니까요." 작가 세르반테스는 자기의 판단으로 살아가는 등장인물들에게 "할 수 있다면 내가 너 자신을 구하라"라고 말한다.

나는 조국 교수에게 말하고 싶다. 내가 나를 구하는 것이다. 그때부터 자유는 시작된다. 나를 땅끝에 세우는 것이다. 오늘 시에서 보는 것처럼, 예전에는 땅끝을 찾아나섰지만, 찾아나선 것도 아니었는데 오게 되는 곳이 땅끝이다. 물러서지 않기를 바란다. "끝내 발 디디며 서 있는 땅의 끝,/그런데 이상하기도 하지./위태로움 속에 아름다움이 스며 있다는 것이/땅끝은 늘 젖어 있다는 것이//그걸 보려고/또 몇 번은 여기에 이르리라는 것이."

땅끝/나희덕
      
산 너머 고운 노을을 보려고
그네를 힘차게 차고 올라 발을 굴렀지.
노을은 끝내 어둠에게 잡아먹혔지.
나를 태우고 날아가던 그넷줄이
오랫동안 삐걱삐걱 떨고 있었어.

어릴 때는 나비를 좇듯
아름다움에 취해 땅끝을 찾아갔지.
그건 아마도 끝이 아니었을지도 몰라.
그러나 살면서 몇 번은 땅끝에 서게도 되지.
파도가 끊임없이 땅을 먹어 들어오는 막바지에서
이렇게 뒷걸음질치면서 말야.

살기 위해서는 이제
뒷걸음질만이 허락된 것이라고.
파도가 아가리를 쳐들고 달려드는 곳
찾아 나선 것도 아니었지만.

끝내 발 디디며 서 있는 땅의 끝,
그런데 이상하기도 하지.
위태로움 속에 아름다움이 스며 있다는 것이
땅끝은 늘 젖어 있다는 것이

그걸 보려고
또 몇 번은 여기에 이르리라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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