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25.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8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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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더위가 그친다'는 처서(處暑)인데, 연일 폭염이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는 온열질환 예방을 위해 외출을 자제해야 한다. 수시로 수분을 섭취하고 장시간 농작업이나 홀로 일하는 것을 피한다. 특히 실내외 작업장이나 논·밭, 도로 등은 기상장비가 설치된 곳보다 체감온도가 더 높을 수 있으니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가정집은 전력량 사용 증가로 에어컨 실외기 화재가 나지 않도록 주의한다.
처서(處暑)는 일 년 24절기 중에서도 사람들이 가장 많이 기다리는 절기이다. 더위에 지칠 만큼 지치고 나면 한 번쯤 챙겨 보는 게 처서이다. 가을이 기지개를 켠다는 입추(立秋)와 이슬이 서리를 흉내 내 흰색을 띠기 시작한다는 백로(白露) 절기 사이에 들어 있는 게 처서이다. 그 `처(處)’ 자의 새김(訓) 중엔 `그치다’는 뜻도 있어 `더위가 그친다’는 절기이다. ‘더위(暑)가 그친다(處)’는 글자 그대로 더위가 물러가는 날이다. 그리고 '처'에는 '처리하다'라는 뜻이 있으니 '더위를 마무리 짓는다'는 의미도 있다. 그건 여름과 작별한다는 뜻이다. 작별은 결별과는 다르다. 결별은 기약 없는 헤어 짐이고, 이별이 어찌할 수 없는 헤어짐이라면, 작별은 서로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는 일을 가리킨다.
처서 무렵의 날씨는 한해 농사의 풍흉(豊凶)과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조건이라 한다. 그런데 오늘 일기예보는 비가 내린다고 한다. 칠석에 음양을 맞추었다면, 처서 시기에는 숙성 단계에 들어가야 한다. 태양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아침저녁으로 제법 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오지만 햇살은 땡볕처럼 왕성하고 날씨는 쾌청해야 한다. ‘처서에 장 벼 패듯'이란 표현은 무엇이 한꺼번에 흥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처서 무렵 빠르게 성장하는 벼의 모습을 설명하는 것이다. 벼 뿐만 아니라, 이 시기의 만물은 외적 번성보다는 스스로 내적 성숙을 지향한다. 농가에서는 ‘어정 칠월, 동동 팔월’ 또는 ‘어정 칠월, 건들 팔월’이라는 말을 한다. 칠월은 한가해 어정거리고, 팔월은 추수 일손이 바빠 발을 동동 구른다는 의미와 그래도 추수는 건들거리며 쉽게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처서가 지나면 풀이 더 이상 자라지 않기 때문에 논두렁의 풀을 깎고, 산소에 벌초하는 시점이기도 하다. 처서에 비는 도움이 안 된다. 처서에 오는 비를 ‘처서우(處暑雨)’라고 하는데, 비가 오면 ‘십리에 천석 감한다’거나 ‘독 안의 든 쌀이 줄어든다’고 한다. 오곡백과가 맑은 바람과 왕성한 햇살을 받아야 결실을 맺는데, 비가 내리면 결실을 맺지 못하거나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는 것이다. 더위만 빼앗아 가고 얼른 비가 그치면 좋겠다. ‘처서에 비가 오면 큰 애기들이 울고 간다’는 속담은 농작물이 결실을 맺지 못하면, 결국 수입이 준다는 것이다. ‘농부는 곡식을 말리고, 부녀자는 옷을 말리고, 선비는 책을 말린다'는 처서 풍속은 처서를 맞는 의례였다. 이처럼 선인들은 선선한 바람이나 따가운 햇볕으로 눅눅해진 주변을 말리며 힐링의 계절 가을을 맞았던 것이다.
처서/정끝별
모래내 천변 오동가지에
맞댄 두 꽁무니를
포갠 두 날개로 가리고
사랑을 나누는 저녁
매미
단 하루
단 한사람
단 한번의 인생을
용서하며
제 노래에 제 귀가 타들어 가며
벗은 옷자락을 걸어 놓은
팔월도 저문 그믐
멀리 북북서진의
천둥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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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제철에 있다면 계절마다 '아는 행복'을 다시 느끼는 거다. 봄에는 봄에 해야 좋은 일을 하고, 여름에는 여름이어서 좋은 곳에 가는 것이다. 제철을 즐기는 거다. 제철 과일이 있고 제철 음식이 있는 것처럼 제철 풍경도 있고 제철에 해야 좋은 일들이 많다. 제철은 '알맞은 시''이란 말이다. 장마가 지나면 수박은 싱거워진다. 때를 지나 너무 익은 과일은 무르기 시작한다. 다 제철이 있다. 알맞은 시절을 산다는 것은 계절의 변화를 촘촘히 느끼며 때를 놓치지 않고 지금 챙겨야 할 기쁨에 무엇이 있는지 살펴 보는 일이다. 비 오는 날과 눈 내리는 날 어디에 있고 싶은 지 생각하며 사는 것은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해보는 거다. 김신지 작가의 <<제철 행복>>을 읽고 한 생각이다.
올해는 처서가 안 통한다. 처서 이후에도 여름 불볕 더위가 계속된다. 원래는 에어컨 냉매가 순환하며 내는 소리 대신 풀벌레 소리를 들릴 때인데, 아직도 창문을 열지 못한다. 처서의 소개 말이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 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 이다. 귀뚜라미 등에서 혹여 떨어질까 더듬이를 꼭 붙잡고 있는, 뭉게구름을 타고 어디에 내려앉을까 살피고 있는 처서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데, 올해는 예외이다.
그렇지만 절기는 달력 적힌 그날 '하루'로 여기는 것이 아니다. 사실 그날부터 다음 절기까지의 기간을 '한 절기'로 본다. 처서는 하루가 아니라 백로(白露) 절기가 오기까지의 열다섯 혹은 열 여섯 날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처서는 저무는 여름과 시간을 들여 인사하고 천천히 작별하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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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서 무렵과 관련해서, 두 가지 풍습이 있다. 하나는 이 무렵 찾아오는 백중(百中, 음력 7월 15일)의 세시 풍속이었던 '호미씻이', 여름에 매만지던 호미와 농기구들을 깨끗이 씻어놓고 잔치를 여는 날로, 대서(대서)의 세시 풍속인 '복달임'과 비슷한 농부들의 회식이라 할 수 있다. 지금껏 뙤약볕 아래 김매기를 해야 했던 농부들에게 주어진 휴가이자, 바쁜 한 해 농사를 얼추 마무리 짓고 수확만 남겨둔 상태에서 벌이는 즐거운 잔치이기도 했다. 글을 쓰는 나는 이 날 펜이나 키보드 등을 먼지라도 닦아주고 책상 위에 있는 물건들을 정돈하는 날로 삼을 예정이다.
두 번째 풍습은 '포쇄' 이다. 볕에 쬘 포(曝)에, 볕에 말릴 쇄(曬), 여름을 지나는 동안 눅눅해 진 책이나 옷 등을 모두 꺼내어 햇볕에 쬐고 바람에 말리는 일을 뜻한다. 줄 1년 중 햇빛이 가장 좋은 시기에 정기적인 '포쇄'를 했다. 햇볕에 쬐고 바람에 쐬어 습기나 곰팡이, 해충으로 인한 소산을 방지하기 위한 필요에 의해 생긴 풍습 같다. 조선 시대에는 국가의 중요 기록물인 <<조선왕조실록>> 등을 보관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포쇄'를 실시하여 서적의 장기 보존을 꾀했으며, 이 업무를 담당하는 관직을 '포쇄관'이라 불렀다. 나도 어느 날을 잡아 여러 가지를 햇볕에 말릴 생각이다. 햇볕 외에도 바람을 쐬어 말리는 것을 '거풍(擧風)', 그늘에 말리는 것을 '음건(陰乾)'이라 불렀다. 여름에 지친 내 몸과 마음을 바람 부는 날에 '거풍'하고 싶다.
김신지 작가가 권하는 처서 무렵의 제철 숙제로 다음 세 가지를 권한다.
▪ 가을이 왔음을 알리는 풀벌레 소리에 귀 기울어보기
▪ 여름내 눅눅해 진 나를 데리고 나가 햇볕과 바람에 말리기
▪ 하루 종일 잘 말린 마음을 차곡차곡 접어 집으로 돌아오기
이어지는 글은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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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화면을 떠나야 한다. 칼 세이건은 지구를 가리켜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이라고 불렀다. 그곳이 우리 집이고, 그 위에서 우리가 아는, 들어본, 역사상 존재한 모든 인간이 삶을 보냈다고 말이다. 정보의 바다가 아닌 실제의 바다, 푸른 모니터가 아닌 밤하늘에 펼쳐진 은하수를 통해 우리가 마주하는 건 결국 내 안의 목소리다. 광대함은 우리에게 시간의 흐름과 존재의 의미를 성찰할 여유를 준다. 모니터 속 픽셀 단위로 쪼개진 세상만 바라보던 눈이 거대한 지평선과 마주하는 순간, 우리는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기억한다.

사진 구글에서 캡처: 가운데 있는 "창백한 푸른 점"(칼 세이건)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이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부탁으로 우주선 보이저 1호가 태양계에서 600억 km 떨어진 거리에서 촬영한 지구 사진을 전송하였던 것이다. 칼 세이건의 말을 공유한다. "저 점이 우리가 있는 곳입니다. 저곳이 우리의 집이자, 우리 자신입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당신이 아는, 당신이 들어본 그리고 세상에 존재했던 모든 사람들이 바로 저 작은 점에서 일생을 살았습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 지구는 생명을 간직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입니다. 적어도 가까운 미래에 인류가 이주할 수 있는 행성은 없습니다. 잠깐 방문할 수 있는 행성은 있겠지만, 정착할 수 있는 곳은 아직 없습니다. 좋든 싫든 간에 당분간 지구에서 삶을 영위해 나가야만 합니다. '나에게 이 사진은, 우리가 서로를 더 배려 해야 하고, 우리가 아는 유일한 삶의 터전인 저 창백한 푸른 점을 아끼고 보존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대한 강조입니다." (칼 세이건)
우주비행사들이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본 후 겪는 ‘조망 효과’라는 현상이 있다. 그들은 우주에서 파란 구슬처럼 떠 있는 지구를 보며 인류에 대한 연민과 공동체 의식을 느낀다고 한다. 국경, 종족, 이념도 보이지 않는 그 작은 행성에 우리 모두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깨달음 말이다. 한 우주비행사는 먼 지구를 향해 “그만 싸우고 정신 좀 차려라!” 소리치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우주 비행사가 아닌, 평범한 우리도 높은 산에 올라가 아래를 보면, 조망 효과를 본다.
이 조망 효과가 때로는 우리가 ‘광대한 것’을 봐야 하는 이유다. 사막의 끝없는 모래언덕, 거대하고 우람한 협곡들, 몇 시간을 달려도 끝나지 않는 밀밭, 이런 광대함 앞에서 우리는 나의 작음을 깨닫고 동시에 그 작은 존재들이 모인 공동체의 소중함을 느낀다. 2002년 월드컵 때 광장에 모인 붉은 악마들의 무리 속에서 내가 이 나라의 일원임을 느꼈던 것처럼 말이다. 매일 스마트폰 화면 속에 갇혀 있는 우리에게 이런 경험은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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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로 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 살다 보면 결국 '꾸준함', '버티는 것'이 많은 것을 좌우한다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예를 들어 아무리 잘하더라도 금방 질려서 그만두면 실제 성공 여부를 좌우하는 경험과 전문성, 인맥, 기회 등을 갖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실제로 자신이 선택한 일에서 잘 버티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왠지 초인 같은 의지력, 싫어도 꾸역꾸역 어떻게 든 해내고 마는 끈질긴 정신력 같은 것이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연구에 따르면 실제로 자신이 선택한 영역에서 (어느 정도 잘 맞는다는 전제 하에) 꾸준함과 좋은 자기 통제력을 보이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을 좋아하고 같은 행동에서도 더 많은 의미를 느끼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어떤 분야에서 꾸준히 오래 열심히 해서 계속해서 경험과 능력치가 향상되고 그 분야의 최고가 되는 사람들은 누가 뭐라 하든 비교하거나 일희일비하지 않고 내적 의미를 잘 찾는 사람들인 것 같다.
일주일에 한 번씩 올라오는 박진영 심리학자의 칼럼을 꼭 읽는다. "카타리나 베르네커 베른대 사범대와 취리히대의 심리학자 등의 연구에 따르면, 자기 통제력이 강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시간적 여유가 생길 때 그저 기분이 좋은 일을 고르기보다는 자신에게 의미 있다고 느껴지는 일(예를 들어 새로운 것 배우기, 자기 관리)을 고르는 편이었다. 이들은 또한 비슷한 활동을 해도 자신이 선택한 활동을 더 의미 있다고 바라보는 경향이 있었다. 예를 들어 똑같이 집 청소를 해도 평소 자기 통제를 잘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지겹고 하기 싫고 의미 없는 잡무라고 생각하기보다 자기 자신을 돌보는 중요한 활동이라고 느끼고 더 뿌듯함을 느끼는 편이었다.
비슷하게 자기 통제력이 좋은 사람들은 운동과 같은 활동을 해도 하기 싫지만 주위에서 하라고 하니까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로 생각하기보다 나를 위해 필요한 일이기 때문에 결국은 자신이 원해서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가 있었다. 종합하면 자기 통제력이 좋은 사람들은 지루하게 느껴지기 쉬운 활동에서도 의미를 찾고 성취감을 느끼는 능력이 탁월한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임제 선사가 말한 "수처작주(隨處作主), 입처개진(立處皆眞)"의 가르침이 소환된다. “이르는 곳마다 주인이 되면, 자신이 서 있는 곳이 모두 참 되다”는 뜻이다. 진정한 주인이라면, 자기 자신이 주인이 아니라, 자신이 처한 곳이 주인이 되면 안 된다는 말이다. 장소가 중요하지 않다. 어디서든지 자신이 주인이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굳이 절에 들어가지 않아도 일상의 삶 속에서 주인으로 살아가는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생각을 당하지 않는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가진 자이다.
박진영 선생에 의하면, 실제로 주변에 있는 연구자 선생님들과 대화하다가 대중적으로 인기가 없어도 본인이 자기 연구를 좋아하는 것이 학계에 오래 남는 비결인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곤 하는데 이 또한 비슷한 맥락인 것 같다. 즉각적인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일을 하면서 그 일을 의미 있게 여기거나 즐기지도 못한다면 오랜 시간을 바쳐 그 일을 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물론 자기 통제력이 좋은 사람들이라고 해서 항상 의미감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방황하기도 하고 아무것도 안 하기도 하지만 이들은 다시 원래의 길로 돌아오는 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른 글들은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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