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어젠 TV에서 '태풍의 눈'을 보았다. 나는 그 속을 상상해 보았다. 아마 고요, 적막 그 자체일듯 하다. 언젠가 읽은 배철현 교수의 칼럼이 생각났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거대한 태풍의 눈에 들어선 돛단배와 같다." 거친 바다를 지나 적막한 태풍의 눈으로 진입하면 이성이 마비되고 이전에 몰랐던 새로운 감정이 솟아오른다. 그러면 Vita nuova(비타 누오바,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새롭다'는 것은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 자신의 상식과 정반대되는 것, 상상할 수 없는 저 너머의 무엇을 꾸며주는 말이다. 사랑 그 자체가 아니더라도, 사랑이란 삶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이다. 그 가치를 받아들이면, 우리는 세상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랑을 자신의 가슴에 있는 영혼에서 찾을 때라는 조건이 붙는다. 자신과 유리된 이념에서 출발하면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은 자신의 최선을 이끌어 내기 위해, 상대방과 나와의 간격을 소중하게 여기고,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더불어 자신의 고결한 품위를 유지하는 절제이다. 사랑은 절제이다. 상대의 경계를 무단침입하고, 정제되지 않은 감정을 육체적, 정신적으로 강요하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 색욕(色慾)이다. 색욕은 무절제하다. 배철현 교수에 의하면, 단테는 무절제를 이탈리어로 '인콘티넨차(incontinenza)'라 했다고 한다. 이 말의 원래 의미는 '요실금'이다. 인간이 자신의 정신을 다듬지 못하고 영혼을 돌보지 않으면 요실금처럼 품격을 망치는 어이없는 실수를 하게 된다. 현대인들은 성적인 방종, 과도한 음식 섭취, 쇼핑중독, 과도한 분풀이 그리고 자신에 대한 과대망상이라는 요실금에 걸려 있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은 고도의 훈련이 필요한 기술이라고 했다. 그는 "사랑에 빠진 감정이 사랑인가' 질문하기도 한다. 사랑은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황금률처럼 진정한 겸손, 용기, 믿음 그리고 훈련 없이는 소유할 수 없는 보물이다. 사랑은 한순간에 빠지는 동사가 아니라, 상대방을 내 몸처럼 아낄 수 있도록 수련으로 도달하는 마음의 상태, 즉 형용사이다. 배철현 교수의 멋진 정의이다.
'개운 찮은 뒷맛'을 나는 싫어한다. 검찰은 고위공직자 후보의 '도덕'과 '염치'에 대한 '국민적 판단'을 구할 사안을 '불법'과 ;탈법'에 대한 '사법적 판단'을 들이대겠다고 나섰다. 또 다른 '태풍의 눈'이다. 페북에서 읽었다. "소문이란 목소리만 있을 뿐 형태는 없다. 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고 잡으려고 해도 잡히지 않는다. 실로 무(무)가 생(생)이 되어 사람을 미혹한다." 조선 말 연암 박지원이 한 말이란다. 실체 없는 소문을 쉽게 믿고 사람을 평가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소문을 이길 수 있고, 평판을 바꿀 수 있는 것은 행동과 실천이다. 이젠 그건만 남았다.
"자신의 이해와 충돌하는 경우 선을 악이라고 평가하거나 비록 올바른 일임에도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공격한다면 악행이 된다."(전병덕) 국민을 대표하는 일부 의원들의 모습도 개운하지 않다. 그러나 긴 방학을 마치고, 어제 '새통사'가 개학해, 반가운 사람들을 만나 즐거웠다. 강의도 의미가 있었다. 서울대 홍성욱 교수님이 "과학기술은 인간 삶의 표현이다"라는 제목으로 "과학자는 자연에 있는 것을 발견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연에 있는 법칙을 만들어 낸 사람이다"고 하시며, "과학이란 자연을 이해하려는 인간의 활동과 그 결과로 얻어진 지식 체계"라 하셨다. 인상적인 강의였다. 많은 통찰력을 얻었다.
뜨거운 돌 /나희덕
움켜쥐고 살아온 손바닥을
가만히 내려놓고 펴 보는 날 있네
지나온 강물처럼 손금을 들여다보는
그런 날이 있네
그러면 내 스무 살 때 쥐어진 돌 하나
어디로도 굴러가지 못하고
아직 그 안에 남아 있는 걸 보네
가투 장소가 적힌 쪽지를 처음 받아들던 날
그건 종이가 아니라 뜨거운 돌이었네
누구에게도 그 돌 끝내 던지지 못했네
한 번도 뜨겁게 끌어안지 못한 이십대
火傷마저 늙어가기 시작한 삼십대
던지지 못한 그 돌
오래된 질문처럼 내 손에 박혀 있네
그 돌을 손에 쥔 채 세상과 손잡고 살았네
그 돌을 손에 쥔 채 글을 쓰기도 했네
문장은 자꾸 걸려 넘어졌지만
그 뜨거움 벗어나기 위해 글을 쓰던 밤 있었네
만일 그 돌을 던졌다면, 누군가에게, 그랬다면,
삶이 좀더 가벼울 수 있었을까
오히려 그 뜨거움이 온기가 되어
나를 품어 준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하네
오래된 질문처럼 남아 있는 돌 하나
대답도 할 수 없는데 그 돌 식어 가네
단 한 번도 흘러 넘치지 못한 화산의 용암처럼
식어 가는 돌 아직 내 손에 있네
#인문운동가_박한표 #대전문화연대 #사진하나_시하나 #나희덕 #복합와인문화공간_뱅샾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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