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9월 5일)
어제 다 못한 이야기를 오늘 더 이어간다. 어제 우리는 다음 문장에서 멈추었다. 그리스 정신을 이어받아, 로마인들은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고 독립적인 인간이 되기 위한 노력을 교육 과정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를 ‘아르테스 리버랄리스(artes liberalis)라고 불렀다. 여기서 ‘리버랄리스’는 ‘자유로운’이란 의미이다. '자유로운 인간'이란, 자신에게 중요한 가치를 선별해 알고, 그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그는 스스로에게 자연스럽고 의연(毅然-의지가 굳세어서 끄덕 없는)한 사람, 즉 ‘자유인(自由人)’이다.
참고로 ‘자유’의 소극적인 의미는 '탈출(liberty)'이다. 남들이 만들어 놓은 정신적이며 육체적인 굴레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한다. 그러나 소극적인 자유는 자유가 지닌 가치를 드러내지 못한다. 적극적인 자유는 탈출이 아니라 '열망이며 추구(freedonm)'다. 속박됨이 없음으로 볼 수 있 그 자유는 자신이 간절하게 원하는 것이 있을 때, 자신의 개성을 최선으로 발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속한 공동체를 다양하고 조화롭게 만들 역동적인 힘이다. 자유라는 말을 좀 더 명확하게 이해하고 넘어가자.
자유(自由)라는 말은, 서양으로부터 freedom, liberty 등이 소개되자 이들의 번역어로 선택되었다. “스스로(自)” “말미암다(由)”로 구성된 자유라는 말은,
1. ‘속박 됨이 없음’의 'freedom'과
2. ‘억압에서 벗어남’의 'liberty(해방)'의 개념을 담아내기에 적합하다고 판단한 결과였다.
자유를 축자적으로 말하면, “스스로 말미암는다"는 거다. 그러니까 '그 어떤 것에 의해서도 간섭 받거나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며 행동한다'는 의미로 알면 된다. 그래서 자유는 “스스로가 자신의 주인이 된다"는 뜻의 자주(自主)나 “스스로 세운 규율에 따라 행한다”는 뜻의 자율(自律) 등과 늘 함께한다. 중요한 것은 자율이 “무율(無律)”, 곧 규율 없음을 뜻하지 않는 것처럼, 자주가 “나 자신의 주인이라고 하여 남을 부릴 수 있음”을 의미하지 않는 것처럼, 자유 또한 자기 멋대로 마음대로 할 수 있음을 가리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유는 절대 '자기 멋대로 할 수 있음'이 아니다. 사람들이 많이 혼동한다. 자율이 '스스로 세운 규율을 자발적으로 지킴'인 것처럼, 자주가 타인도 그 자신의 주인임을 인정하는 전제 아래 자신의 주인됨을 실현 함인 것처럼, 자유도 어디까지나 타인의 자유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서의 자유다. 자기에게만 자유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고, 누구나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어느 개인이나 한 집단에만 허용된 자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요약하면, 자유는 '스스로 말미암는 것'이지만, 1차적으로는 신체적 억압이 제거된 상태일 뿐만 아니라 내가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다. 따라서 내가 스스로에게 이유가 되어 하는 언행은 거침이 없는 거다.
그러나 자유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데서 출발한다. 삶에서의 많은 문제들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르는 데서 나온다. 자기 인식이 우선이다. 자기 인식은 자신을 알려는 마음가짐이고 그 마음가짐을 가지고 자신을 항상 응시하려는 과정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런 노력을 하지 않고, 사제나 목사에게 달려가면 해답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은 어리석다.
우리는 실제 삶에서 쉽게 자유를 포기하고, 어떤 외부 권위에 의존하려 한다. 외부 권위는 명령하고 억압하고 부자연스럽고 억지일 때가 많다. 우리 사회는 우연히 부여잡은 권위를 가지고 휘두르며 다른 이에게 명령하며 복종하라고 윽박지른다. 그러나 세상의 변혁은 한 번도 이념, 정책, 교리, 리더의 카리스마를 통해 성취된 적은 없다. 자유를 위해 자신을 안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3인칭으로 두어, 자신의 생각과 말, 그리고 행동에 대한 관찰을 하는 데서 시작된다. 그 뿐만 아니라, 주변인들과 관계에서, 그들이 반응하는 자신을 응시하여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스스로 수정하려는 수고를 하는 일이다.
그리고 우리가 사회를 꾸리고 사는 한, "자유는 그 자체로 정당화될 수 없다. 예컨대 자유는 그 소산(所産, 어떤 행위나 상황 따위에 의한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이 무엇이냐에 따라 정당 화된다. 매우 중요한 언설이다. 다시 한 번 더 말한다. '자유는 그 소산이 무엇이냐에 따라 정당화된다.' 자유의 결과가 일탈과 탈법이고, 그것의 소산이 자기만의 또는 자기와 연관된 이들만의 누림이고 군림이라면 이는 어느 한 자락도 정당화될 수 없다.
이 문제를 정확하게 설명했던 김월회 교수의 말을 들어 본다. 전근대 시기 한자 권에서의 자유는 “자득(自得)”이나 “자적(自適)”, 곧 스스로 충족된 상태의 실현 같은 내면의 수양과 긴밀히 연관되었고, 고대 그리스에서는 '모든 자유인은 법이라는 한 가지에 복종한다. 노예는 법과 주인이라는 두 가지에 복종한다'와 같은 준칙이 공유되고 있었다. 또한 자유는 진실, 평화, 관용, 공공선 같은 가치들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었다. 자신이나 일부만을 위한 자유를 누리고자 한다면 ‘자유민주적’ 제 가치가 기본인 여기가 아니라 무인도에 가서 살면 된다.
내 눈에, 현 정권이 주장 하는 자유는 누구를 위한 자유인지 모르겠다. 자유와 자유주의는 다르게 봐야 한다. 뭐든지 '주의'가 되면 이념이 된다. 사실 따뜻해 보이는 자유주의라는 이념은 차가운 자본주의의 외양에 지나지 않은 것 같다. 그러니 자유주의라는 단어에서 일체의 낭만주의적 열정을 읽으려 해서는 안 된다. 자유주의는 돈을 가진 사람이 그 돈을 아주 자유롭게 쓸 수 있어야 한다는 자본주의적 이념에 지나지 않다. 마음껏 소비할 수 없다면, 엄청난 부가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다는 말인가! 이것이 바로 보수주의자의 정직한 속내인 것 같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이 가진 기득권이 있는 그대로 인정되는 사회, 나아가 자신이 가진 기득권이 원활하게 확대 재생산 되는 것이 가능한 사회만을 꿈꾸는 것이 아닐까?
그리스 사회는 자유민과 노예라는 확실히 구분되는 신분제 사회였다. 그 사회에서 리더란 자유인으로 불리는 '능동적 시민'을 말했다. 피지배 계급으로서 자유가 없던 수동적인 노예들을 선도하고 끌고 나아가던 지배 계급이다. 자유인들이 지시하고, 노예들은 그 방향을 향해 나아간다.
이어서 사양 사회에서 자유는 평등과 똑같은 가치를 가지게 된다. 실질적 평등이 보장되지 않는 자유는 잡아 먹힐 자유와 잡아먹을 자유만 있을 뿐이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는 프랑스 혁명에서 주장한 자유, 평등, 박애 정신이다. 평등은 결과의 평등이 아니라 기회의 평등이다. 물론 모두가 다 같이 평등하자는 주장이 아니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나 고장 난 저울 같은 사회는 기회부터 불평등하다. 그러면 결과가 절대 평등할 수 없다. 그리고 그 평등 안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혼돈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 거듭 말한다. 윤 태통령이 말하는 자유는 편협한 극우적 이념과 닮았다. 냉전시대의 낡은 이념에 사로잡혀 자유란 단어에만 집착하는 것 같다. 사람마다 자유에 대한 이해가 다를 수 있겠지만, 대통령이라면 극단적인 이념에 치우치거나 편협한 의미로 자유를 입에 올리면 안 된다. 대통령이 말하는 자유는 대한민국 헌법이 기준이어야 한다. 헌법에 나오는 자유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확고"히 한다 거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하겠다는 다짐, 그리고 신체의 자유, 거주와 이전의 자유, 양심의 자유, 집회와 결사의 자유 등 인권을 확인하는 것들이다. 공권력으로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면 안 된다는 원칙을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다음이 매우 중요한 내용이다. 윤이 말하는 식의 자유는 헌법 어디에도 없다. 어쩌면 헌법 전문과 제4조에 규정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얼핏 비슷하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이때 말하는 질서는 전체주의, 권위주의 세력이 말하는 질서와는 전혀 다르다. 헌법이 규정하는 ‘질서’도 권력이 국민에게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법의 지배’라는 말도, 법률로 국민을 다스린다는 게 아니라, 권력자나 권력 기관을 법의 지배 아래 두겠다는 주권자의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집권 세력은 국민이 정부의 지침을 잘 따르며 질서 정연하게 살길 바라겠지만, 이런 식의 질서는 국민에게 강요할 수 없는 무례이며, 자체로 인권 침해다.
“자유는 보편적 가치입니다. 우리 사회 모든 구성원이 자유 시민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 어떤 개인의 자유가 침해되는 것이 방치된다면 우리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자유마저 위협받게 됩니다 .” 지난해 5월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식에서 강조했던 35번의 자유 중에 포함된 내용이다. 미국에 가서도 46번이나 외쳤고 , 올 광복절에서도 16번이나 ‘자유’를 얘기했다. 그리고 갖가지 형태의 자유가 목도됐다. 명품을 선물로 받을 자유, 외국에 나가서 쇼핑을 즐길 자유, 내 집 가까이 고속도로를 뚫을 자유, 국가 중대사를 앞두고 술 파티를 벌일 자유. 그리고 말 잘 듣는 이에게 혜택을 주고, 정적이나 반대세력을 빨갱이로 몰아붙일 자유, 특검을 거부할 자유 등등. 누군가는 무한한 자유를 누리는데 사회적 책임은 찾아보기 힘들다. 어떠한 제재도 없다. 말로만 자유, 진정한 ‘보편적 가치’의 실종이다.
이런 차원에서, ‘김건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특검법’ 등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는 그럴 자유가 없다. 헌법적 권한을 남용한 거다. 주권자로부터 권력을 위임 받은 대통령은 국민 전체를 위해 공정하게 국정과 사법을 운영해야 한다.
이어지는 사유는 내일로 넘긴다. 문법 이야기를 하다가 여기까지 왔다. 걱정인 것은 우리가 어렵게 만든 우리 사회의 민부주의 문법이 문너지고 있는 거다. 그리고 그 민주주의와 진정한 자유를 되찾으려면 또 피를 흘려야 하기 때문이다. 자유를 사유할 때마다 소환되는 시를 다시 한 번 더 공유한다.
푸른 하늘을/김수영
푸른 하늘을 제압(制壓)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왔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修正)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飛翔)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인문운동가_박한표 #우리마을대학 #복합와인문화공간뱅샾62 #김수영 #푸른_하늘을 #트리비움 #자유 #자율 #자주 #자유주의
다른 글들은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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