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오늘 아침에 공유했던 시이다.
요즈음 나를 가장 잘 위로하는 말이 "다음에"이다. 다음에 꼭 북-미 회담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신한반도 평화체제가 잘 구축되길 바라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음에"라는 말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이 말을 좋아하고 자주 하는 사람은 이런 식이기 때문이다.
▫ 자신이 원하고 바라는 일은 다음에 하려고 하고, 바람직한 일을 하려한다.
▫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다음에 하려고 하고, 해야만 하는 일을 한다.
▫ 자신이 좋아 하는 일은 다음에 하려 하고, 좋은 일을 한다.
나는 노자의 "거피취차(去彼取此)"라는 말을 좋아 한다.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하라!"는 말이다. 저 멀리 걸려 있으면서 우리를 지배하려 하는 것들과 결별하고, 바로 지금 바로 여기 있는 나 자신의 욕망에 주목하라는 것이다. 지금까지와 다른 삶, 그것은 어떤 거대한 기회가 찾아올 때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이 순간, 내 삶을 바꿔야겠다고 결심한 이 순간부터 기적은 시작된다.
최근 나의 즐거움 중의 하나가 배철현 교수의 페북 포스팅을 읽는 것이다. 거기서 나는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나를 온전한 개체로 인정해 주는 환경은 둘 뿐이다. 하나는 ‘지금’이라는 시간이고 다른 하나는 ‘여기’라는 장소다. ‘지금’과 ‘여기’가 없다면, 나로 존재할 수 없다. 또한 이 둘은 모든 만물을 현존하게 만드는 존재의 집이다. 과거를 삭제하고, 미래를 앞당겨 이 순간을 종말론적으로 전환하는 것이 ‘지금’이라면, ‘여기’는 ‘나’라는 존재를 새롭게 인식하게 만들어 줄 뿐만 아니라, ‘나’를 생경한 나로 전환시켜주고 더 나은 나로 수련시키는 혁명의 장소이다.
나도 늘 과거는 지나가 버렸고, 미래는 오지 않은 것이니, 지금의 시간과 내가 있는 여기가 나의 가장 확실한 일상의 재료라고 보며, 일상을 지배하려 노력한다. 새로 시작하는 모든 분들이여! 오늘부터 '다음'이라 말보다 '지금-여기'서 부터 행복을 쌓아가는 겁니다. 산수유가 이 봄을 시작했습니다. 산수유는 지우개를 품고 있는 나무입니다. 살짝 폈다가, 몰래 지우개로 지웁니다. 놓치지 마세요. "다음에"는 다른 꽃이 핍니다.
다음에/박소란
그러니까 나는
다음이라는 말과 연애하였지
다음에, 라고 당신이 말할 때 바로 그 다음이
나를 먹이고 달랬지 택시를 타고 가다 잠시 만난 세상의 저녁
길가 백반집에선 청국장 끓는 냄새가 감노랗게 번져 나와 찬 목구멍을 적시고
다음에는 우리 저 집에 들어 함께 밥을 먹자고
함께 밥을 먹고 엉금엉금 푸성귀 돋아나는 들길을 걸어 보자고 다음에는 꼭
당신이 말할 때 갓 지은 밥에 청국장 듬쑥한 한술 무연히 다가와
낮고 낮은 밥상을 차렸지 문 앞에 엉거주춤 선 나를 끌어다 앉혔지
당신은 택시를 타고 어디론가 바삐 멀어지는데
나는 그 자리 그대로 앉아 밥을 뜨고 국을 푸느라
길을 헤매곤 하였지 그럴 때마다 늘 다음이 와서
나를 데리고 갔지 당신보다 먼저 다음이
기약을 모르는 우리의 다음이
자꾸만 당신에게로 나를 데리고 갔지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고의 하루를 사는 거다." (0) | 2021.03.04 |
---|---|
'자초한 고독', '자초한 불편' (0) | 2021.03.04 |
"먼데서 이기고 돌아"오는 봄 (0) | 2021.03.04 |
“내가 지고 가야 할 짐이 없을 때가 인생에서 가장 위험할 때입니다.” (0) | 2021.03.03 |
<신체 방어 능력을 키우는 생활습관 5 > (0) | 2021.03.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