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5.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2021년 3월 3일)
나는 최근 마음이 흔들리면, 루카 복음 9장 23절을 외운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우선 나를 버리려고 애쓴다. 원하는 것을 줄이고, 가진 것을 내려 놓으려 한다. 그리고 십자가의 짐을 늘 지려고 한다.
최근에 열심히 다시 읽고 있는 <이솝우화>(현대지성)의 141 이야기가 "말과 당나귀"이다. "어떤 사람에게 말과 당나귀가 있었다. 어느 날 길을 가는 도중에 당나귀가 말에게 말했다. "내가 살아 있기를 바란다면, 자네도 내 짐을 조금 덜어서 저주게나." 하지만 말은 그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고, 결국 당나귀는 기진맥진해 쓰러져 죽고 말았다. 그러자 주인은 말에게 모든 짐을 지게 하고, 거기에 죽은 당나귀에게서벗겨낸 가죽까지 얹었다. 말은 울먹이며 외쳤다. "정말 한심하게 되었구나. 작은 짐도 지지 않으려고 하다 이제는 모든 짐을 혼자 지고 거기에 가죽까지 지게 되었으니, 도대체 이 모든 고생이란 말인가?" 그리스인들은 이 이야기를 듣고, "강한 자들이 약한 자들을 도와서 협력하면 둘 다 목숨을 구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사마천의 <사기>의 '이사열전'에 나오는 이야기라 한다. 김성회 CEO리더십 연구소장·숙명여대 경영대학원 초빙교수의 칼럼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사(李斯·?~기원전 208년)는 진시황 때 법치주의 근간을 닦은 정치가다. 그는 청년기에 측간 쥐(변소 쥐)와 곳간 쥐를 보고 "같은 쥐인데도 곳간 쥐는 곡식을 먹고 측간 쥐는 오물을 먹는다. 사람도 잘나고 못난 것이 처지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다!"라며 출세를 다짐한다. 결말부터 말하자면 새드 엔딩이다.
<이솝우화>에서 시골 쥐는 도시 방문 한 번만으로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실화에서 이사는 죽음을 앞두고서야 깨닫는다. 성공을 위해 배신과 변절을 거듭했던 그는 허리가 잘리는 형벌에 처해지기 직전 아들에게 울며 말한다.
"내가 너와 누런 개를 끌고 고향인 상채 지역 동쪽 문으로 나가 토끼를 사냥하려고 했는데, 이제 할 수 없겠구나(吾欲與若 複牽黃犬俱出 上蔡東門 逐狡토 豈可得乎)!" 그의 마지막 탄식인 '동문견(東門犬)', 황견지탄(黃犬之嘆)은 평생 좇았던 성공 중독, 권력 무상에 대한 회한을 담고 있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던 권력자 이사가 죽음을 앞두고 가진 소망은 별게 아니었다. 아들과 함께 보내는 소소한 일상이었다. 알고 보면 성공을 향해 매진한 영웅호걸들의 삶이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니었다." 가족과 그리고 이웃과 함께 보내는 소소한 일상이 수많은 영웅호걸들이 꿈꾸던 삶이다. 나는 이미 딸과 소소한 일상으로 즐겁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가급적 함께 밥을 먹는 것이 제일 중요한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마을 활동을 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우리마을대학>을 협동조합으로 만들고, 더 나아가 마을기업으로 조직하여, 마을 공동체를 만들 꿈을 꾸는 것이다. 마을 공동체 살이는 장소만을 뜻하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가치관의 변화이다. 남한테 자기의 잘난 점을 과시하고, 남의 약점을 발견해 짓밟으면서 상대를 이겨 출세하려는 식의 자본주의 방식과 다르게 살아보려는 것이다. 세상의 수많은 마을공동체들처럼. 죽도록 달리다 보면 언젠가 행복해지겠지 하며 미래의 보험에 매달리는 게 아니라 지금-여기서 소박하게 이웃과 서로 돌보며 친밀해짐으로써 행복해지는 것이다. 아침 사진은 비 개인 후, 동네 공원에서 찍은 것이다. 봄이 오고 있다. 아무리 추워봐라. 오던 봄이 되돌아가나.
내가 바라는 세상/이기철
이 세상 살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가에
꽃모종을 심는 일입니다
한 번도 이름 불려지지 않은 꽃들이
길가에 피어나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 꽃을 제 마음대로
이름 지어 부르게 하는 일입니다
아무에게도 이름 불려지지 않은 꽃이
혼자 눈시울 붉히면
발자국 소리를 죽이고 그 꽃에 다가가
시처럼 따뜻한 이름을
그 꽃에 달아주는 일입니다
부리가 하얀 새가 와서
시의 이름을 단 꽃을 물고
하늘을 날아가면
그 새가 가는 쪽의 마을을
오래오래 바라보는 일입니다
그러면 그 마을도
꽃처럼 예쁜 이름을 처음으로 달게 되겠지요
그러고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남아 있다면,
그것은 이미 꽃이 된 사람의 마음을
시로 읽는 일입니다
마을마다 살구꽃 같은 등불 오르고
식구들이 저녁상 가에 모여 앉아
꽃물 든 손으로 수저를 들 때
식구들의 이마에 환한 꽃 빛이
비치는 것을 바라보는 일입니다
어둠이 목화송이처럼 내려와
꽃들이 잎을 포개면
그날 밤 갓 시집 온 신부는
꽃처럼 아름다운 첫 아일 가질 것입니다
그러면 나 혼자 베갯모를 베고
그 소문을 화신처럼 듣는 일입니다
최근에 세계일보 배연국 논설위원이 카톡으로 보내주는 글을 읽는 재미가 크다. 그의 글에 나오는 이야기 하나를 공유한다. 이 글을 읽고 내 십자가의 짐이 가벼워졌기 때문이다. "'맨발의 전도자’ 선다 싱이 히말라야 산길을 걷다 어떤 이와 동행을 하게 되었다. 두 사람은 도중에 눈 위에 쓰러져 있는 노인을 발견했다. “여기에 있으면 이 사람은 죽어요. 함께 업고 갑시다.” 선다 싱의 제안에 동행자는 이렇게 대꾸했다. “안타깝지만 이 사람을 데려가면 우리도 살기 힘들어요.” 동행자는 그냥 가버렸다. 선다 싱은 하는 수 없이 노인을 등에 업었다. 그는 얼마쯤 가다 죽은 사람을 발견했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먼저 떠난 동행자였다. 선다 싱은 죽을힘을 다해 눈보라 속을 걸었다. 온 힘을 다해 걷다 보니 등에선 땀이 났다. 두 사람의 체온이 더해져 매서운 추위도 견뎌낼 수 있었다. 결국 선다 싱과 노인은 무사히 살아남았고, 혼자 살겠다고 떠난 사람은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배연국 위원에 의하면, "사람을 가리키는 한자 ‘人’은 두 사람이 서로 등을 맞댄 형상"으로, "나와 등을 맞댄 사람을 내치면 나도 넘어진다는 게 人의 이치"라고 했다. 그렇게 서로의 등을 기대고 살아가는 것이 바로 사람 살이라는 것이다. 히말라야의 동행자는 그걸 잊고 행동하다 보니 자신의 생명마저 잃어버린 것이다.
이어지는 것도 배연국 위원의 글이다. "훗날 어떤 이가 선다 싱에게 “인생에서 가장 위험할 때가 언제입니까?”라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내가 지고 가야 할 짐이 없을 때가 인생에서 가장 위험할 때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짐이 가벼워지기를 바라지만 그때가 위험하다는 게 선다 싱의 일침이다. 먼 바다를 떠나는 선박도 항해를 시작하기 전에 배의 밑바닥에 물을 가득 채운다. 배의 전복을 막기 위해 채우는 바닥짐(밸러스트)이다. 우리 인생 역시 마찬가지이다. 자식이나 남편이 속을 썩일 때 혼자 훌쩍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들 것이다. 하지만 나와 등을 맞댄 그 사람 덕분에 내가 넘어지지 않을 수 있다. 나를 힘들게 하는 그 존재가 삶의 항해를 지켜주는 바닥짐이다."
나에게 이 바닥짐은 예수가 말씀하신 십자가를 지라는 말로 받아들인다. 그러니 일상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의 짐이 무겁지 않다. 더 나아가, “내가 지고 가야 할 짐이 없을 때가 인생에서 가장 위험할 때"라 생각하니, 이웃들의 짐도 지고 싶고, 두렵지 않다.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음에 (0) | 2021.03.04 |
---|---|
"먼데서 이기고 돌아"오는 봄 (0) | 2021.03.04 |
<신체 방어 능력을 키우는 생활습관 5 > (0) | 2021.03.03 |
미세먼지 (0) | 2021.03.03 |
섬/정현종 (0) | 2021.03.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