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오늘 글이에요.

와인 파는 인문학자의 인문 일기
어제 선거의 결과를 보고, 다시 한 번 나의 만트라를 소환한다. "모든 것은 우주 전체의 조화로운 원리와 상호 관계에 따라 순리대로 되어갈 뿐이다." 우주에는 하나의 로고스가 있는데, 그게 조화롭다. 그런데 고지식하게 그 원리에 따라 우주가 조화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상호 관계가 있다.
장자는 "마음의 재계(心齋)"를 강조한다. 즉 이름이나 명예를 버리고 무심한 경지에 이르러야 일체의 사물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심재(마음 굶김)란 '자신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심재를 하면, 일상의 의식 속에서 이루어진 옛날의 '작은 나(self, 小我)'가 사라지고, 새로운 큰 나(Self, 大我)'가 탄생한다. 그런 근본적인 변화가 생겼을 때 명예나 실리 추구에 초연하게 되고, 그 때 비로소 새장 같은 조정이나 정치판, 사회 어느 곳에 있더라도 위험 없이 할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걷지 않고 자취를 안 남기기는 쉽지만, 걸으면서 자취를 안 남기기는 어려운 일"이다. 이어지는 문장은 "사람을 위해 일할 때는 속이기 쉬우나, 하늘을 위해 일할 때는 속이기 어려운 일"이다. 이는 <장자> "양생주" 제14장에 나오는 말이다. 원문은 이렇다. "絶迹易(절적이) 无行地難(무행지난) 爲人使易以僞(위인사이이위) 爲天使難以僞(위천사난이위)."
하늘이 시민이다. 민심을 따라야 한다. 민심이 하늘이다. 노자는 "천망회회, 소이불루(天網恢恢, 疎而不漏 하늘의 그물은 넓어서, 성기 기는 하나 새지 않는다.)"라고 했다. 하늘의 그물은 구멍이 촘촘하지 못해 엉성하지만 오히려 빠져나가지 못한다는 말이다. 민심의 그물에 빠져나갈 정치인은 없다. 마음을 굶기고, 민심을 읽어야 한다. 민심만 보고, 자신을 비워야 텅빈 방에 뿜어내는 흰 빛을 볼 수 있다. 민심만 보고, 대오를 정비하여 개혁의 고삐를 다시 쥐어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 드러난 적폐들을 조금이라도 더 덜어내야 한다.
마침 이 부분이 매주 목요일마다 함께 읽는 <장자>의 내용이다. 꼭 정치에 적용되는 것만 아니다. 우리 개인의 삶에도 적용된다. '자신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을 심재라 한다. 심재를 하면, 일상의 의식 속에서 이루어진 옛날의 '작은 나(self, 小我)'가 사라지고, 새로운 큰 나(Self, 大我)'가 탄생한다. 그런 근본적인 변화가 생겼을 때 명예나 실리 추구에 초연하게 되고, 그 때 비로소 새장 같은 조정이나 정치판, 사회 어느 곳에 있더라도 위험 없이 할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 일이 쉽지는 않다. 세상과 완전히 인연을 끊고 은둔하면 몰라도, 사회에 참여하면서 마음을 비우고 살기란 몹시 어렵다. 그렇지만, 진정으로 심재를 하며 마음을 완전히 텅 빈 방과 같은 상태가 되면 그 '텅 빈 방이 뿜어내는 흰 빛', 곧 순백의 예지가 생기는 것을 체험하리라는 것이다. 오늘 아침 사진 처럼. 그리고 오늘 시는 사실 어제 공유하고 싶었는데, 오늘 다시 공유한다. 승자에게는 오만을, 패자에게 위로를 주면 좋은 시이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This, Too, Shall Pass Away)./랜터 윌슨 스미스(Lanta Wilson Smith) -
슬픔이 거센 강물처럼
네 삶에 밀려와
마음의 평화를 산산조각 내고
가장 소중한 것들을 네 눈에서 영원히 앗아갈 때면
네 가슴에 대고 말하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끝없이 힘든 일들이
네 감사의 노래를 멈추게 하고
기도하기에도 너무 지칠 때면
이 진실의 말로 하여금
네 마음에서 슬픔을 사라지게 하고
힘겨운 하루의 무거운 짐을 벗어나게 하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행운이 너에게 미소 짓고
하루하루가 환희와 기쁨으로 가득 차
근심 걱정 없는 날들이 스쳐갈 때면
세속의 기쁨에 젖어 안식하지 않도록
이 말을 깊이 생각하고 가슴에 품어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너의 진실한 노력이 명예와 영광
그리고 지상이 모든 귀한 것들을
네게 가져와 웃음을 선사할 때면
인생에서 가장 오래 지속될 일도, 가장 웅대한 일도
지상에서 잠깐 스쳐가는 한 순간에 불과함을 기억하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눈 앞의 암울한 현실에 움츠려 들지 말자. 고난은 우리를 파괴할 수 없다. 고난 그 자체는 풍뎅이 한 마리 죽일 힘조차 갖고 있지 않다. 고난이 위협을 발휘하는 것은 우리가 거기에 무릎을 꿇었을 때 뿐이다. 우리 삶은 기쁨과 슬픔의 연속이다. 삶의 여정에는 오르막길도 있고 내리막길도 있다.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다. 실패와 성공은 번갈아 찾아오기 마련이다. 인생은 파도와 같다. 한 파도가 끝나면 이내 다른 파도가 밀려온다. 그러니 썰물에 한탄하지 말고 곧 돌아올 밀물에 자신의 배를 띄울 채비를 하자. 그 진리를 믿고 용기 있게 나아가자. 그것이 인생이다. 셀라비(c'est la vie)!
지난 4월 2일에 운명을 달리하신, 채현국 어른의 인터뷰를 묶은 책, <쓴맛이 사는 맛>(채현국 구술하고, 정운현 기록하다)을 읽으며, 나는 수련하고 있다. 그리고 2014년에 큰 반향을 일으켰던 저널리스트 이진순의 인터뷰를 다시 찾아 읽기도 했다. 몇 가지 공유한다.
# 옳은 이야기라도 너무 말을 자주 많이 하지 말자. 그 옳은 말을 남이 해주기를 바라지 말고, 나부터 실행한다. 그냥 말만 하면 그 말이 부메랑이 된다. 일단 말을 했다면, 가능한한 약속을 지키도록 노력한다. 신뢰의 문제이다. "지식을 가지면 '잘못된 옳은 소리'를 하기가 쉽다. 사람들은 '잘 못 알고 있는 것'만 고정관념이라고 생각하는데, '확실하게 아는 것'도 고정관념이다. 세상에 '정답'이란 건 없다. 한 가지 문제에는 무수한 '해답'이 있을 뿐, 평생 그 해답을 찾기도 힘든데, 나만 옳고 나머지는 다 틀린 '정답'이라면, (…) 악습이다. (…) 모든 '옳다'는 소리에는 반드시 잘못이 있다."
(1) "모든 건 이기면 썩는다. 예외는 없다. 돈이나 권력은 마술 같아서, 아무리 작은 거라도 자기가 휘두르기 시작하면 썩는다." 다 이기려 하지 말고, 지기도 하자. 큰 통찰이다.
(2) "세상에는 장의사적인 직업과 산파적인 직업이 있다. 갈등이 필요한 세력, 모순이 있어야만 사는 세력이 장의사적인 직업인데, 판사, 검사, 변호사들은 범죄가 있어야 먹고 살고, 남의 불행이 있어야 성립하는 직업들 아닌가. 그 중에 제일 고약한 게, 갈등이 있어야 설자리가 생기는 정치가들이다." 산파적인 직업은 "시시하게 사는 사람들, 월급 적게 받고 이웃하고 행복하게 살려는 사람들이다."
(3) "쓴맛이 사는 맛"이다. "인생이 쓸 때 거기서 삶이 깊어진다." 지난 주말부터 내 머리를 떠나지 않고 있는 박성민의 글에서 만난 다음 세 문장과 맥락이 비슷하다. (1) "역경을 이기긴 쉬워도 풍요를 이기긴 어렵다." (2) “자기가 가진 것을 사랑하면 행복하고 못 가진 것을 사랑하면 불행하다.” (3) "사람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과 가질 수 없는 것이 있다."
덕분에, 나는 저널리스트 이진순이 5년간 122명을 인터뷰한 글을 스마트폰에 찾았다. 틈나는 대로, 한편 씩 읽어볼 생각이다. 그녀의 필력이 대단하다. 그녀는 "사람 사이의 수평적 그물망이 어떻게 거대한 수직의 권력을 제어하는지, 평범한 사람들의 따뜻한 힘이 어떻게 얼어붙은 세상을 되살리는지 찾아내는 일에 큰 기쁨을 느낀다"고 했다. 내 삶의 철학도 비슷하다. 작은 글씨로 자신의 소명도 밝히고 있다. "경험과 논리에 갇히지 않고 즐겁게 소통하고 진화하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한다고 했다. 그래 그녀는 5년 2개월간 '열린 사람들과의 어울림(줄여서 열림)' 코너를 <한겨레신문>에 연재했다고 한다.
그녀의 글을 읽으며, 다시 한 번의 애 삶의 옷깃을 다듬었다.
(1) 개인적 경험의 틀 속에 갇히지 않고, 낯선 것, 새로운 것, 나와 다른 것에 자신을 열러 그 신선한 소통으로 스스로 진화하고 싶다. 그리고 그런 열림 사람들과 만나며 살고 싶다.
(2)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애정과 신뢰가 갖고, 우여곡절이 있더라도 세상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할 것이라고 희망을 지니며 살고 싶다.
(3) 나는 세간의 호기심의 대상으로 내가 소개되는 걸 꺼린다. 장자가 주장하는 '3무(無)'가 더 자신을 자유롭게 하고, 영성적이고 성숙한 사람이 되게 한다고 믿는다. '3무'는 무공(無功), 무기(無己), 무명(無名)이다. 자기가 없고, 공로가 없고, 이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이런 것들에 집착하거나 연연해 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자아나 공로나 명예의 굴레에서 완전히 풀려난 사람이다. 그 반대가 속물근성(俗物根性)이다. 즉 그들은 칭찬받기를 좋아하고, 비난을 싫어한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으로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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