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신종인지 변종인지 하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나 개인적으로는 크게 위축당하지 않는 일상 생활을 하고 있다. 오늘 아침 사진은 내가 흙을 만나는 공간이다. 흥미로운 것은 파를 모종할 때는 뉘어 심는다. 그러면 몇 일 후에 자리를 잡고 일어선다. "감염병 대유행은 과학과 대자본의 영리적 결합에 따른 생태파괴에서 비롯된 것인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치료약과 백신만 나오면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중심에서 벗어나 생태학적 경계를 확장해야 한다." (신영전 한양대 예방의학 교수) 이 글을 읽고 마음을 바꾸어 먹고,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지난 글들은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미국과 유럽에서 보내오는 암울한 뉴스들이 나를 슬프게 한다. 이럴 때일수록 노자가 주장하는 삶의 방식과 세계관이 답이 아닌가 하며, 그의 글을 다시 읽게된다. '소국과민(小國寡民)', '나라를 적게 하고 주민의 수를 적게 한다'는 말이다. 초 연결이니, 글로벌이니 하면서 너무 키우고 채운 결과, 좋은 점도 있지만, 요즈음 같은 바이러스가 창궐하면 '좋은' 대책이 없다. 그 '잘난 척"하는 구글은 뭐 하는가? 네이버는 뭐 하는가? 바이러스 앞에서. 노자 『도덕경』 마지막 장인 제 80장을 한문 없이 내 방식대로 번역하여 본다.
"나라를 작게 하고, 주민의 수를 적게 한다. 많은 문명의 이기들을 잘 갖추지만, 굳이 쓸 일이 없게 삶을 경영한다. 주민들이 자신들의 죽음을 소중히 여기고, 자신의 의지와 관계 없이 멀리 가지 않아도 되게 한다. (…) 자기가 먹는 음식이 세상에서 가장 달고, 맛있다고 여기고, 자기가 입은 옷이 가장 아름다우며, 자기가 사는 집이 제일 편안하고, 자기가 누리는 문화를 가장 즐겁게 여기는 삶을 산다. 이웃나라는 서로 바라볼 수 있고 서로 닭 우는 소리와 개 짓는 소리가 들릴 정도의 거리에 있지만, 주민들이 죽을 때까지 왕래하지 않아도 되게 한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가 그걸 실천 가능하게 한다. 전면적으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방식을 되돌아 볼 시간이다. 많은 행사들이 취소되고, 불특정 다수가 모여 있는 장소에 가길 꺼려 하는 '강요 받는' 삶 속에서 숙고할 많은 시간들이 주어졌다. 오늘 아침은 전국 마을공동체가 제안하는 10대 공약을 공유한다. 코로나 19같은 전염병이 계속 창궐할 것이다. 이젠 피할 곳은 마을 공동체이다. "소국과민(小國寡民)의 마을에서 노자가 말하는 삶을 살 수 있다면 각종 재난으로부터 보호받을 것이다. "내 삶이 편안한 마을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 오늘 아침 시처럼, 이런 시골길이 그립다.
오늘 아침도 에피쿠로스가 말한 불행의 원인, 일상의 쾌락이 아닌 불쾌함의 원인인 두려움과 허영 그리고 무절제한 욕망이란 병을 고치기 위한 네가지 치료법 중 첫 번째 "신을 두려워 하지 마라" 이야기를 좀 더 해본다. 특히 종교에 대해 배철현 교수의 이야기를 공유해 본다.
배교수에 의하면, 인간은 '종교'의 도움으로 동물적 유인원에서 신적인 인간으로 변모하였다'고 한다. 그러니까 인간은 자신이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사후 세계를 상상하여, 죽은 동료들을 위해 장례식을 치루고 죽음을 애도하였다는 것이다. 여기서 종교가 나왔고, 그 종교는 교리나 건물이 아니라, 순간을 사는 인간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안타까워 하며, 지금-여기에서 자신에게 최선이 무엇인지 발견하여, 주위 사람들과 함께 공생(共生)하는 삶의 기술이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제 카톨릭의 교종인 프란체스코가 코로나 19로 고통받고 있는 세계인들에게 보낸 메시지는 여러 번 읽을 가치가 있다.
"강은 자신의 물을 마시지 않고, 나무는 자신의 열매를 먹지 않으며, 태양은 스스로를 비추지 않고, 꽃은 자신을 위해 향기를 퍼트리지 않습니다. 남을 위해 사는 것이 자연의 법칙입니다. 우리 모두는 서로를 돕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말입니다. 인생은 당신이 행복할 때 좋습니다. 그러나 더 좋은 것은 당신 때문에 다른 사람이 행복할 때입니다."
에피쿠로스는 사후세계의 존재를 거부한다. 단테의 <신곡> 지옥편 제 10곡에 에피쿠로스와 그의 신봉자인 피렌체의 기벨당 정치가 파리나타가 등장한다.
고통과 욕심이 없는 상태인 '평정심'을 최선으로 여겼던 에피쿠로스는, 종교집단의 교주처럼, 많은 추종자들과 함께 공동체를 만들어 함께 생활했다. 여자와 노예까지 수용한 최초의 학교이자 공동체였다. 그건 아테네 교외에 정원이 달린 '철학학교'이기도 했다. 아테네인들은 이 학교를 '정원'이라고 불렀다.
우리는 에피쿠로스 사상을 '쾌락주의자'로 착각한다. 에피쿠로스 사상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육체의 '위'를 찬양하는 식탐주의이다. 또 하나는 지적인 쾌락, 대화의 쾌락, 우정의 쾌락, 명상의 쾌락에 탐닉하는 '고상한 에피쿠로스인'이다. 그들은 '정원'에서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신경 쓰지 않고, 자신들의 영혼을 돌보고 고상한 철학을 논하였다. 코로나 19 이후, 우리도 이젠 소유적 삶보다 존재적 삶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정원'에 모인 에피쿠로스의 공동체들은 육체의 요구에 탐닉하는 '천한 에피쿠로스인'들이 아니라, 정신적인 쾌락을 즐기는 숭고하고 '철학적인 에피쿠로스인'들이었다. 이들은 빵 한조각과 철학적인 대화와 친구와 명상을 최고의 행복으로 삼았다. 에피쿠로스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걱정하지도 않는다. 죽음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테네 교외의 조그만 정원에서 시작한 공동체 운동은 지중해 전역에 퍼져 많은 사람들의 생활규범이 되었다. 당시 사회 약자들을 받아들인 에피쿠로스 공동체는 1 세기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회당과 교회운동의 모델이 되었다. 그후 4세기 로마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그리스도교를 수용하면서 에피쿠로스 공동체는 이단으로 낙인 찍혀 사라졌다. 기록에 의하면, 4세기 에피쿠로스 공동체는 지중해에 수백 개가 있었고 구성원도 40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에피쿠로스 공동체는 4세기 이후 그리스도교 수도원으로 전환되었다.
시골길 또는 술통/송수권
자전거 짐받이에서 술통들이 뛰고 있다
풀 비린내가 바퀴살을 돌린다
바퀴살이 술을 튀긴다
자갈들이 한 치씩 뛰어 술통을 넘는다
술통을 넘어 풀밭에 떨어진다
시골길이 술을 마신다
비틀거린다
저 주막집까지 뛰는 술통들의 즐거움
주모가 나와 섰다
술통들이 뛰어내린다
길이 치마 속으로 들어가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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