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02.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2월 11일)
1.
<<주역>>이 제일 먼저 <중지건괘>를 내세운 것은 '하늘의 이치에 따라 순리대로 살라'는 것을 먼저 말하고 싶어 서가 아닐까? 그러면서 말한다. 겨울이 오면 봄이 멀지 않았고, 밤 너머에는 새벽이 기다린다. 모든 때는 우리들에게 저마다 다른 삶의 자세를 요구한다. <중천 건괘>의 괘사가 "건(乾), 원형이정(元亨利貞)"이다. 이 말은 쉽게 말하면, '시간은 생장쇠멸(生長衰滅) 혹은 성주괴멸(成住壞滅)의 과정을 영원히 순환하도록 관장한다'로 이해할 수 있다. 다르게 말하면, 만물의 일년 생성(生成)은 생겨나고, 자라고, 거두어, 깊이 들어가는 생장수장(生長收藏)의 원리에 따른다. 이를 예쁘게 표현하면, "쥐리락, 펴리락"이다. 봄에 만물이 새싹을 잘 틔우고, 건강하게 생겨나려면, 그 전년 가을부터 열매를 잘 거두어 깊이 수장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수장(收藏)이 잘 되어야 생장(生長)이 좋고, 생장이 좋으면 수장이 좋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모든 일은 먼저 쥐고 펴야 한다.
2.
비슷한 말로 '성주괴멸(成住壞滅)'이 있다. 삼라만상은 '생겨나서(成), 머물러 존재하다가(住), 명이 다하면 허물어져(壞), 없어져 버린다(滅)'는 뜻이다. "이세상 만물은 성주괴멸하는데, 모든 것이 다 그 운명에 의해서 그렇다. 만들어진 모든 그릇이 언젠가는 깨어질 운명을 타고 나듯이 인간도 태어나 살다가 죽는 것이 그러하다." (탄허스님) 같은 말로 <<주역>>에서는 "원형이정(元亨利貞)"이라 한다. <<주역>>의 '건괘'에서 나오는 것으로, '원(元)'은 '으뜸 원'으로, 시작함을 나타내고, 형(亨)은 '형통할 형'으로 번창함을 나타나며, 이(利)는 '이로울 이'로 유익함을 나타내고, 정(貞)은 '곧을 정'으로 바르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한다. 퇴계 이황의 <<천명도설>>을 보면, 나무(木)는 동쪽에 있고, 거기 원(元)이라 적혀 있고, 불(火)은 남쪽에 형(亨), 서쪽에 이(利), 북쪽에 정(貞)이라고 적혀 있다. 나무는 생명이 시작하는 봄의 원기(元)을 상징하고, 여름은 뜨겁게(火) 곡식과 열매가 성장(亨)한다. 가을은 서늘(金)해지면서 수확(利)하는 계절이고, 겨울은 검은(짙은) 물(水)의 긴 잠으로 꿋꿋하게 버티는 계절이다.
3.
언젠가 써 둔 시이다.
겨울 나무/박수소리
여름 나무가
한 여름의 폭염에도 견디며
산소를 뿜어내는 것은 겨울에 알몸으로
눈 바람을 맞고 견뎠기 때문일 거다.
겨울 나무가
한 여름의 화려했던 추억을 먹고
나목 - 이 말만 떠올려도 가슴이 시리다 -으로
견디는 건 다가올 여름에 대한 희망 때문일 거다.
4.
"원형이정(元亨利貞)"은 '하늘이 갖추고 있는 네 가지 덕 또는 사물의 근본 원리'를 말한다. 이렇게 풀이하기도 한다. "원은 착함(=仁, 사랑)이 자라는 것이고, 형은 아름다움이 모인 것이고, 이는 의로움이 조화를 이룬 것이고, 정은 사물의 근간이다. 군자는 사랑(仁)을 체득하여 사람을 자라게 할 수 있고, 아름다움을 모아 예절(禮)에 합치시킬 수 있고, 사물을 이롭게 하여 의로움(正義)과 조화를 이루게 할 수 있고, 곧음을 굳건히 하여 사물의 근간이 되게 할 수 있다." 선비를 꿈꾸는 나는, 이 네가지 덕(德)을 행하며, '원형이정"의 순환을 마음농사의 도구로 삼고 있다.
5.
자아 확장을 위한 사랑을 시작하려면 우리는 우선 삶과 성장을 선택하는 거다. 그런데, 그 선택은 변화와 죽음의 가능성을 함께 선택한 것이다. 상실에 대한 모험이 없다면 죽은 것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 예컨대 죽음이란 언제나 곁에 있다는 것을 느끼고 산다면, 두렵기는 하지만 지혜로운 교훈의 원천이 되어 준다. 살고 사랑할 시간이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시간을 최선으로 이용하고 최대한 충만한 삶을 살려고 노력할 것이다. 죽음이라는, 항상 변화하는 삶의 본질을 피하면, 어쩔 수 없이 삶도 피해버리게 된다. 사랑이라는 모험을 위해서는 상실을 두려워 하지 말아야 한다. 모든 삶은 그 자체가 모험을 의미한다. 그리고 삶을 사랑할수록 모험도 더 많아진다. 그러면서 우리는 성장한다. 성장이란 어린아이가 어른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는 것이다. 그것은 한 걸음 살짝 내딛는 것이 아니라 두렵게도 단숨에 도약하는 것이다. 사유의 시선을 높이는 거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평생 동안 실제로 해보지 못할 수도 있는 도약을 말하는 거다. 많은 '어른들'은 겉으로는 어른처럼 보여도 심리적으로는 죽을 때까지 아이로 남아 있다. 이들은 부모에게서 자신을 분리하지 못하고 부모가 행사하는 권력에서 전혀 헤어나오지 못한다. 성장의 과정은 대체로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여러 번의 작은 도약들로 이루어지며 아주 점진적으로 일어난다. 많은 사람들은 거대한 도약을 절대로 택하지 않는다. 그래서 결국은 실제로 전혀 성장하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외양과는 달리 심리적으로는 아직도 부모의 아이로 남아 물려받은 가치에 따라 살고, 주로 부모의 승낙과 반대에 따라 움직이고(부모가 오래전에 돌아가신 경우에도), 감히 운명을 자기 손안에 쥐어 보지 못한다. 자신의 삶을 주인으로 살지 못한다.
6.
<<주역>>의 <건괘> 하늘은 굳셈(建)이다. '건'은 굳세어 쉼이 없는 것이다.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인문 일지>를 쓰는 힘이다. <<주역>>의 제1괘인 <중천 건(중천 건)> 괘에서 취하고 싶은 것은 '구삼'의 다음 효사이다. "君子終日乾乾, 夕惕若, 勵無咎(군자종일건건, 석척약, 려무구)"다. '군자가 종일 굳세고 굳세게 최선의 노력을 다하였다 해도, 저녁에는 하루를 돌아보고 반성하고 걱정하면 아무리 위태로워도 허물이 없을 것'라는 거다. 그리고 천(天), 건(乾, 하늘)의 모습처럼, "자강불식(自强不息)"의 괘의이다. '쉼 없이 굳세어라', '천지의 운행이 쉬지 않는 것과 같이 끊임없이 노력하라'는 거다.
다산 정약용은 <<시의재기(四宜齋記)>>에서 <중천 건> 괘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오늘 나는 주역의 <건 괘>를 읽었다. <건괘>는 굳셈(健)이다. 정자가 말하길, 건은 하늘(天)이요, 굳세어 쉼이 없는 것을 일러 건이라 한다." 하늘이 힘 있게 움직이는 것처럼, 군자도 쉬지 않고 스스로 힘을 내서 일하여야 한다는 거다. 사심 없이 최선을 다해 하늘같은 본성이 실현되는 삶을 살아가는 거다. 다산 정약용은 강진으로 유배를 왔을 때, 아무도 그에게 거처를 내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밥과 술을 팔면서 숙박도 겸하는 주막에서 겨우 방을 구할 수 있었다. 대역죄인이라 그 마저도 감지덕지했다. 그러나 양반 가의 자손으로 그런 궁핍한 생활을 이어 가기가 쉽지 안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작은 방에 이름을 "사의재(四宜齋)"라 붙이고 지냈다.
7.
"사의(四宜)"란 다음과 같이 '네 가지 마땅함'을 가리킨다.
▪ 생각은 마땅히 담백해야 하고
▪ 외모는 마땅히 장엄해야 하고
▪ 말을 마땅히 과묵해야 하고,
▪ 동작은 마땅히 중후해야 한다.
다산의 글을 직접 읽어 본다. "사의재는 내가 강진에 유배 와서 사는 방의 이름이다. 생각은 담백해야 하니 담백하지 않은 점이 있으면 부디 빨리 생각을 말게 해야 한다. 용모는 엄숙해야 하나 엄숙하지 않은 점이 있으면 부디 빨리 의젓하게 해야 한다. 말은 참아야 하니 침지 않은 점이 있다면 부디 빨리 말을 그쳐야 한다. 행동은 진중해야 하니, 진중하지 않은 점이 있으면 부디 빨리 느긋해야 한다. 이에 이 집을 '사의재'라고 이름하였다. '의(宜)는 마땅하다는 뜻의 의(義)이니, 마땅함으로써 자신을 바로잡는 것이다. 다산 정약용은 <건괘>, 하늘처럼 '사의'를 쉼 없이 굳세게 밀고 가겠다는 거다. 수지 않는 하늘처럼 부지런하고 상실하겠다는 다짐하였기에 우리는 그를 기억하고 있는 거다.
8.
올해 내 호는 '어지니'로 정했다. '어질다'에서 나왔다. 마음이 너그럽고 착하며 슬기롭고 덕이 높다. 예) 어딘지 위엄을 풍기면서도 조용하고 어질어 보였다. 내가 원하는 삶의 목표는 어진 사람이 되는 거다. 공자가 본 어진 사람은 강직하면서 의지가 굳은 사람이고, 일상에서 질박한 것을 좋아하고 과묵하면서 진중한 이다. 그래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왈: 강의목물, 근인(子曰: 剛毅木訥, 近仁(강하고 굳세고 질박하고 어눌함이 인에 가깝다. '강의목눌' 자체가 바로 인은 아니지만, 인에 가깝다. 멋진 해석도 있다. "이상을 실현하겠다는 의지가 굳세지면, 세속적 욕구에 서투르고 어두운지라 인에 가깝다."
▪ 강(剛): 강직하다는 말로 마음이 꼿꼿하고 올곧다는 뜻으로 사리사욕을 챙기기 위해 신념을 바꾸지 않으며 유리함과 불리함에 따라 태도를 바꾸지 않는 것이다.
▪ 의:(毅) 뜻한 바를 굽히지 않고 밀고 나가는 의지력이 강한 것을 뜻한다. 강이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력과 관련된다면 의는 결심한 것을 실현내려는 추진력과 관련된 표현이다. 브런치에서 팽소아라는 분은 "강은 펀치 력이 강하다는 취지라면, 의는 맷집이 강하다"고 표현했다. 나는 그것보다 강은 신념이고 의는 그것의 실천력이 강하는 것으로 읽는다.
▪ 목(木): 그냥 나무로 읽어 목석처럼 뻣뻣하거나 멍청하다는 뜻보다는 통나무를 연상시킨다. 여기서 나무는 사람이 꾸밈과 감춤이 없고 화려와 사치를 싫어하며 겉모습보다 내면의 뜻을 더 중시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 눌(訥): 말솜씨가 없어서 더듬거리며 말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입이 무겁지만 꼭 해야 할 말은 하기에 진중하다는 뜻으로 이해한다. 재잘재잘 떠들어대지 않을 뿐 입을 열면 조리 있게 말을 잘하기에 함부로 얕볼 수 없다는 거다.
어진 사람은 그냥 착한 사람이 아니다. 속이 없는 듯이 보이는 사람이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위해 갖춰야 할 덕목이 강직함이라면, 목표한 바를 이루기 위한 불굴의 추진력이 굳건함, 즉 의이다. 그에 비하면 질박함과 진중함을 갖추는 일은 일상의 생활 태도이다.
9.
몇 년 전부터 내가 정의하는 좋은 삶이다. "자기 스스로를 세우고(自立), 거기에 알맞은 소질을 개발하고, 그것으로 돈을 벌고 사회적 관계를 이룬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삶과 세계에 대한 성찰로 이어지면 날마다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 이것이 성장이고 순환이다."(고미숙) 자립(自立)이 시작이다. 배철현 교수의 묵상을 읽다 보면, 자립을 무척 강조한다. 배교수는 "인간의 마음속에는, 각자의 삶을 유지시키는 태양과 같은 것이 있다. 이 신적인 중심이 ‘자립(自立)’"이라고 하며, 자립에 대해 길게 설명하였다. 공유한다. "자립은 자족하는 삶의 비밀이다. 이 중심이 없다면 삶의 균형이 무너지고 평화가 깨진다. 고대 그리스인들 만이 인간을 자족하는 인간, 자립하는 인간으로 정의하였다. 한자 ‘인간(人間)’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 인간을 의미 하는 히브리어 ‘아담(adam)'이나 라틴어 ‘호모(homo)'는 인간이 궁극적으로 돌아가야 할 ‘흙'으로 정의했다. 그리스어 ‘안쓰로포스(anthropos)'는 ‘영웅처럼(andro-)' 고개를 쳐들고 멀리 보는(ṓps) 사람'으로 정의했다. 이족 보행하는 인간만이 고개를 들고 정면을 응시할 수 있다. 인간만이 두발로 걷기에 만물의 영장이 되었다. 그(녀)가 스스로 두발로 걷는 순간, 온전한 인간이 된다. 자신이 가야 할 길을 향해 걷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자립은 모든 인간의 심연에 자리를 잡은 부동의 중심이며 나침반(羅針盤)이다."
10.
자립이란 태양은 스스로 움직이지 않지만, 그 주위의 행성들을 정해진 공식과 규율에 따라 움직이게 만든다. 만일 이 중심이 흔들거리면, 그 사람도 흔들린다. 만일 그가 자신의 태양에 의존하지 않고, 가까이 있는 금성이나 화성에 의존한다면, 그는 금세 정해진 길에서 이탈하여 우주의 고아가 될 것이다. 인간은 홀로 서기를 연습해야 한다. 내가 걸음마를 시작하는데, 누군가의 손을 의지하거나, 전동 휠체어의 도움을 받는다면, 나는 영원히 올바로 걸을 수 없을 것이다. 나의 심연에 건재한 자립으로 부터 만족과 위안을 얻는다면, 나는 외부의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의존하도록 아이들을 키운다.
다른 글들은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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