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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인문에세이

"늦게 오는 자는 삶이 벌한다."

오늘 아침은 화두가 '평화'이다. 한반도에 평화와 통일을 이루어 낼 이야기를 이어간다. 김누리 교수로부터 배운 바에 따르면, 독일의 통일은 서독이 동독을 흡수한 것이 아니다. 통일의 주체는 서독 사람들이 아니라, 동독 사람들이었다. 독일 통일은 1989년 10월 8일 동독 라이프치히에서 있었던 거대한 '동독 혁명'의 결과였다. 그리고 한달 후인 11월 9일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그때 나는 프랑스로 유학을 막 왔던 때이다. 그래 더 기억이 난다.

이 상황을 이해하려면 1985년 취임한 소련 공산당 서기장 고르바초프를 기억해야 한다. 그는 페레스트로이카(공산당의 민주적 개혁 추진 운동)와 글라스노스트(서방과의 외교적 교류를 활성화)라 하는 개혁, 개방 정책을 펼쳤다. 그러면서 국경이 터졌고, 한번 터진 물꼬는 막을 수 없었다. 우리 한반도의 통일도 북한이 개혁, 개방되면 오히려 쉽게 전개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전에 우리 사회도 정상적으로 개혁이 이루어져야만 통일 상황을 더 잘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는 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고르바초프가 그 당시 했다는 말, "늦게 오는 자는 삶이 벌한다"가 지금도 아주 인상적이다. 우주의 삼라만상 모든 것은 변화를 해야 한다. 다 때가 있다. 그런데 그 때를 잃으면 삶이 벌한다. 멋진 말이다. 독일 통일 당시 흥미로운 것은 해프닝으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독 사람들은 서독 은행 앞에 줄을 섰다. 당시 서독에서는 실제로 환영비라는 명목으로 동독인 1인당 100마르크씩(우리 돈으로 약 오만 원)을 지급했다. 이미 그런 매뉴얼을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그 다음 해인 1990년 3월에 동독 역사상 처음으로 민주적인 선거가 치뤄진다. 이 선거에서 동독인들은  빠른 독일 통일을 선택한다, 그러니까 빠른 독일 통일은 동독 주민들이 선택한 것이고, 서독은 이에 보조를 맞춘 것이다. 나는 잘 몰랐는데, 독일 통일은 서독과 동독이 통일된 것이 아니라. 동독의 5개 주가 독일 연방에 가입함으로써 이루어진 것이다.

독일 통일의 공식적인 날은 1990년 10월 3일이다. 이 말이 동서독의 외무장관이 통일 조약에 최종적으로 사인을 한 날이다. 동독인들은 이 날을 불쾌하게 생각한다. 자기들이 조롱 당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흡수통일이라는 논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을 아니다. 그러나 모든 역사는 승자의 것, 다시 말하면 패자의 역사는 잊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해석된 것이다. 해석 전쟁에서 정의 권력을 가진 쪽이 서독이었다.

이어지는 이야기, 즉 독일 통일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두 번째와 세 번째 사항 이야기는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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