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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인문에세이

'참나'를 찾는 여행

모든 사물을 귀하게 보면 한없이 귀하지만 하찮게 보면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법이다.  정말 나 자신도 나를 귀하게 여기는 자긍심이 필요하다.

살다가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하면,  우리는 실망하고 실패감에 괴로워 한다. 그러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실패가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위로한다. 그러나 당시의 감정 상태로는 위로가 되진 못한다. 좀 더 냉철하게 생각
해보면, 인간은 실패를 모르고 계속 성공만 한다면 오만에 빠진다. 오만이 찾아오는 것은 자신이 이룬 현재의 성취가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아니 착각하는 마음에서 나온다. 오만을 그리스어로는 '휴브리스(hubris)'라고 한다. 휴브리스란 자신의 초심을 잃고 난 뒤, 반드시 따라오는 극도의 자만심이자 과도한 확신이다. 사람은 오만에 빠지면 눈이 먼다. 두 눈을 부릅뜨고 직시해야 할 현실에 대한 감각을 상실하고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기 시작한다. 게다가 자기 앞에 다가오는 위험을 감지하지 못한다.

오만이 자만심을 낳는다. 자만심이란 자신을 깊이 되돌아 보지 않고 자신의 경험과 생각이 옳다고 착각해서 행동하는 성급함이다. 그리고 깊이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자신이 현재 누리는 혜택을 스스로 성취했다고 착각하는 마음의 상태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며 자신이 있어야 할 시간과 장소를 헤아려 아는 사람이다. 반면 오만에 빠진 사람은 장님이 되고 나면 찾아오는 불행을 반드시 만나게 된다. 그것을 그리스어로는 '네메시스'라고 부른다. 이 말은 '복수'라고 번역되는데, '내가 당연히 감수해야 할 그 어떤 것을 받는 것'이란 뜻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받고 있는 이 모든 혜택들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나오는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아야 한다. 나 혼자 이룬 것은 없다. 그러니 살면서 특히 잘 나갈 때, 오만에 빠지지 않도록 늘 자신에 대해 관조해야 한다.

'관조'는 나보다 높은 위치에서 나를 살펴보는 것이다. '관조'의 다른 말은 관찰이다. 우리가 본다고 할 때 그 보는 방식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이다.

(1) 그져 보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의 과거 습관과 편견대로, 또는 자신의 기준으로 상대를 보는 행위이다.  내 눈 앞에 나타나는 것에 대한 즉각적이고 수동적인 시각적 반응으로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이 보는 행위에는 대상이 없다. 이 행위는 의지가 개입되지 않은 그냥 일어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 순간 그 대상을 판단하는 기준은 오로지 내 안목에서 비롯한다. 결국 그저 보는 것은 그냥 눈에 보이는 것을 보는 행위에 불과하다.

보이는 것만 보는 이런 시선이 고착화되는 것을 '무식'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하나는 쉽게 화를 낸다는 것이다. 화를 내는 것은 자신이 멋대로 만들어 놓은 허상 속에 대상이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허상과 실제 대상이 불일치할 때 느끼는 감정이다. 또 다른 하나는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해를 끼친다는 것이다. 남들이 자신의 이데올로기에 맞춰 행동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쉽사리 폭력을 행사한다. 일상에서 자주 화를 내고 폭력적인 사람은 '무식'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2)  살펴보는 것이다. 이 행위에는 보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 있다. 이 행위에는 주체도 있고 객체도 있다. 나의 보려는 행위가 의도적이며 그 대상이 확실할 때 우리는 '살펴본다'라고 말한다.어떤 것을 공부할 때의 경우이다. '살펴보는' 행위의 주체로서 우리는 보고 싶은 대상을 취사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문제는 살펴보는 행위는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힘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살펴보는 것'은 약간의 주의와 노력만 기울이면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행위이므로 여기에는 변화와 혁신에 필요한 에너지가 개입되거나 발휘될 여지가 없다.

(3) 관찰이다. 관찰은 깊이 보는 행위이며, 이것의 특징은 무아성이다. 특히 살아 움직이는 어떤 것을 응시할 때 의도를 갖고 볼 뿐만 아니라 그 움직이는 어떤 것을 응시할 때, 그 움직이는 모습을 온전히 따라가기 위해 집중하고 몰입한다. 관찰이란 가시적으로 보는 것을 넘어 '안보이는 것을 보는' 행위이다. 우리는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도록 뇌와 눈을 훈련해왔다. 하지만 그 대상의 배후에 있는 어떤 것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내가 지닌 관습과 편견의 시선을 제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져 보기' 때문이다. 오래 관찰하여야 사물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