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귀와 우물" 당나귀가 빈 우물에 빠졌다. 농부가 슬프게 울부짖는 당나귀를 구할 도리가 없었다. 마침 당나귀는 늙었고 쓸모 없는 우물도 묻어 버리려고 했던 터라 농부는 당나귀를 단념하고 동네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동네 사람들은 그 우물을 파묻기 위해 제각기 삽을 가져와서 흙은 파 우물을 메워갔다. 당나귀는 더욱 더 울부짖었다. 그러나 조금 지나자 웬 일인지 당나귀가 잠잠해졌다. 동네 사람들이 궁금하여 우물 속으로 들여 다 보니 놀라운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당나귀는 위에서 떨어지는 흙더미를 털고 털어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렇게 해서 당나귀는 자기를 묻으려는 흙을 이용하여 무사히 우물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김종천이라는 분의 페북 담벼락에서 읽은 이야기이다.
사람들이 자신을 매장하기 위해 던진 비방과 모함과 굴욕의 흙이 오히려 자신을 살렸다. 남이 진흙을 던질 때 그것을 털어버리고 자신이 더 성장하고 높아 질 수 있는 영혼의 발판으로 만든다. 그리하여 어느 날 곤경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날을 맞이한다. 뒤집어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모든 삶에는 반대가 되는 거울 뒤쪽 같은 세상이 있다. 불행이 행이 되고, 행이 불행이 되는 새옹지마(塞翁之馬)의 변화가 있다. 우물 속 같이 절망의 극한 속에서도 불행을 이용하여 행운으로 바꾸는 놀라운 역전의 기회가 있다. 우물에 빠진 당나귀처럼, 남들이 나를 해칠지라도 두려워 말 일이다. 인생사 새옹지마이다.
중국의 한 노인이 기르던 말이 국경을 넘어 도망갔다. 이에 이웃들은 위로의 말을 건넸다. 하지만 몇 달 후 도망친 말이 암말 한 필과 함께 돌아왔다, 이때 이웃들은 축하를 아끼지 않았다. 이후 노인의 아들이 그 말을 타다가 낙마해 다리가 부러졌으나 전장에 나가지 않아도 됐다는 내용이다. 새옹지마를 직역하면, '노인의 말'이다. 그 말때문에 복이 화가 되기도 하고, 화가 복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눈 앞에 벌어지는 결과만을 가지고 너무 연연해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인생은 본래 자신의 모습을 찾아오는 긴 여정이다. 그런 시도를 '정신을 차렸다' 혹은 '제정신이다'라고 부른다. '제정신'은 순수 한국어 '저의'의 준말 '제'와 '정신'의 합성어다. 우리가 자신의 정신으로 사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자기하고는 상관이 없는, 혹은 자신하고 연관된 타인들이 좋다고 제시한 세계관, 종교관, 삶의 철학을 수용하여 자기 삶의 문법을 구축하려 한다. 타인의 이념, 철학, 교리, 가르침은 아무리 훌륭하다 하더라도 허물어질 수밖에 없는 모래 위에서 세운 집이다.
인간의 마음은 두 가지다. 하나는 그런 외부의 유혹에 경도된 '욕심'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되어야 하고 자신이 될 수 있는 그 마음인 '본심'이다. 본심은 성배와 같아서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선물이 아니다. 그 존재가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지 가만히 추적하고, 그것을 찾기 위해 매일 매일 수련할 때, 슬그머니 등장하는 밤하늘의 작은 별이다. '욕심'은 '과유불급'이라는 진리를 모르는 무식한 사람들의 처사다. 그것은 배가 부르면서도 자신 앞에 차려진 진수성찬을 게걸스럽게 먹으려는 식탐과 같다. 인간은 동물 중에서 자신이 배부른지 알면서도 과도한 음식으로 배를 채우는 유일한 동물이다.
욕심(慾)이란 한자가 그렇다. 깊은 골짜기(谷)에서 끝없이 흘러내려 오는 물을 자신의 작은 입을 벌려(欠)다 마셔보겠다는 마음(心)이다. 욕망이란 단어가 근사한 것 같지만, 사실은 자신을 매일 값싸게 만드는 마음의 마약이다. 이 욕심에서 벗어나 자신으로 돌아와야 자신에게 온전하고 타인에게 친절한 사람이 된다. 인간은 모두 그런 마음을 지니고 있다. 바로 '본심'이다.
본심은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웅장한 나무의 뿌리와 같다. 저 큰 나무가 언제나 중력을 거슬러 저 하늘 높이 치솟아 오를 수 있는 이유는, 그 높이와 너비에 어울리는 뿌리가 있기 때문이다. 나무가 저 우주 끝에 도달하기 위해서 위로 올라가면 갈수록, 그 나무의 뿌리는 정확하게 지구의 중심으로, 아래로, 어둠으로, 심연으로 내려가야만 한다. 그 보이지 않는 근원이 나무의 품격을 만든다. 태곳적에 바람에 의해 씨앗이 날라 왔다. 그 이름 모를 야산의 모서리에 안착하였고, 바람, 공기, 안개, 비, 햇빛을 통해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고 잎과 가지를 내고 비바람과 눈보라를 통해 이렇게 우뚝 선 나무가 되었다. 구도자는 그런 나무와 같다. 나무의 특징은 단순함이다. 자신의 뿌리로부터 중력을 거슬러 올린 생명의 환희를 간직하고 항상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단순함은 궁극의 사치이며 최선의 아름다움이다. 세상에는 자연이 있고 사물이 있다. 앞에서도 말했던 것처럼, 자연의 원칙은 무위(無爲)이며 인간이 만든 사물의 원칙은 인위(人爲)다. 격은 산에 심긴 나무의 뿌리와 같이 볼 수는 없지만, 그 웅장하게 하늘 높이 가지를 펼친 나무의 기반이다. 격은 그 대상이 그 대상 답게 하는 품격이다. 나무에게서 성품을 배운다. 그 성품이 격이고, 매력이고 카리스마이다. 오늘도 그 뿌리를 위해 "가지 않을 수 없던 길"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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