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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인문에세이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참구하는 시간 (1) 죽음이 삶을 부른다.

5회에 걸쳐서 죽음 수업(Death Class)을 하는 셸리 케이컨 예일대 교수를 만난다.

오늘 우리 시간은 그 속에서 사려할 기회를 얻지 못한 채 그냥 흘러가는 것은 아닌지. 결국 우리가 붙잡아야 할 지푸라기는 ‘지금 살아 있는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일 것이다.

죽는다는 사실이 우리 삶을 어떻게 흔드는지? 노화를 몸으로 자각하고 시간의 흐름을 서서히 인지하면서 짓눌리게 된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그 불안의 실체에 대해 말을 들어본다.

죽음의 상태를 규정하는 자세가 살아 있는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죽음을 물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삶을 살아낼 방식을 구하기 위해, 잘 살아야 하는 근거를 얻기 위해서이다.

1. 나는 지금 죽고 싶은가? 아니다. 이 삶을 더 오래 지속하고 싶다. 영원히 살고 싶다는 말과는 다르다. 사람들은 불멸의 시간을 상상하지만, 그 시간을 세밀하게 채우며 그리지는 않는다. 그냥 그러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2. 불멸이 고통이라는 말에서 죽음도 변화하는 질서가 주는 희망일 수 있다. 영생이 그다지 반길 일이 아니라면, 곧 죽는다는 사실도 나쁜 일만은 아니다.

3.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마지막을 맞는 과정보다는 죽음 너머를 두려워한다.  죽어 있는 그 상태를 두려워한다. 그러나 그건 부질없는 짓이다. 왜냐하면 죽은 다음에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가 죽음과 동반하는 마지막 과정의 고통이나 죽음이 빨리 닥칠까 봐 염려하는 걱정 때문이 아니라 죽음 자체에 대한 무지 때문이다. 죽음은 진정한 '끝마침'이고 거기에는 아무 것도 없다.

4. 죽음은 진정 끝인가? 모른다. 나도 옛 사람들이 말하던 사후 세계가 진실인지 알고 싶다. 천국과 지옥, 아니면 환생 등이 사람들이 말하는 것이다. 끝난 것이 아니라는 설명은 듣기가 좋아, 그런 이야기가 없는 것보다 낫다. 종교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종교는 죽음을 팔아먹는 장사일 수 있다. 왜 사람들은 사후 세계를 믿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편안함을 준다. 새로운 기대, 현실을 견뎌낼 희망이기도 하고 상실에 대한 위로가 되기도 한다.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특히 위로가 된다.

5. 죽음은 생이 끝나는 것이다. 나라는 존재는 이 몸 뿐이다. 나는 살과 뼈, 피로 이루어진 조각이다. 모든 정신적인 활동도 뇌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니까 죽음은 몸이 망가져서 생각하는 활동에 다른 방식으로 참여할 수 없는 상태이다. 여기, 지금의 생이 오직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이다. 케이건은 사후 세계를 믿지 않는다. 그러니 이젠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말하는 대신, 고통의 삶을 끝낸 것을 축하한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명복 (冥福): 죽은 뒤에 저승에서 받는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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