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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인문에세이

사물을 보려면 눈이 필요하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 생각한 단어는 '오지랖'이다. 오지랍은 잘못 쓴 거다. 오지랖은 웃옷이나 윗도리의 앞자락을 뜻한다. 그런데 '쓸데없이 지나치게 아무 일에나 참견하는 면이 있다'라는 표현으로 '오지랖이 넓다'고 한다. 자기와 관련 없는 일에 나서서 이러니저러니 참견하고 훈수를 두거나, 여기저기 다니며 간섭하고 모든 일에 지나친 관심을 보이는 사람에게 사용한다.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주장했던 탈레스에게 어떤 사람이 물었다. "무엇이 어려운 일인가요? "자기 자신을 아는 것." "그럼 무엇이 쉬운 일인가요?" "남에게 충고하는 것."

귀로 들리는 것만 듣고, 눈으로 보이는 것만 보는 사람은 헛똑똑이다. 귀 밝고(聰, 귀 밝을 총) 눈 밝은(明) 사람을 우리는 '총명(聰明)하다'고 한다. 그러나 그 총명함이 '위태로움'의 근원이 될 수 있다. 그저 귀로만 듣고 눈으로만 보는 탓이다. 세상에는 귀로 들리고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예를 들어, 사랑, 관용, 용서, 신뢰 등은 눈으로 볼 수 없고, 귀로 들을 수 없다. 세상에 중요한 것들은 어느 것 하나 눈으로 볼 수 없고, 귀로 들을 수 없다. 정작 보아야 하고, 들어야 할 것을 듣지 못하면, 아무리 열심히 보고 들어도, 결국 헛똑똑이가 될 수밖에 없다.

사물을 보려면 눈이 필요하다. 하지만 눈은 물체의 상이 통과하는 렌즈일 뿐이고, 사실 물체를 보는 것은 마음이다. 마음이 딴 데 있으면 눈으로 대상을 보더라도 그것을 인식할 수 없다.  <대학>에는 ‘심부재언 시이불견(心不在焉 視而不見)’이라는 구절이 있다. ‘마음에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는다’라는 뜻이다. 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으면 들어도 들리지 않고 먹어도 그 맛을 모를 것이다. 생텍쥐페리가 <어린 왕자>에서 강조한 것도 눈이 아니라 마음이었다.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마음으로 보는 법을 알려준다. “내 비밀은 이런 거야. 그것은 아주 단순하지. 오로지 마음으로 보아야 잘 보인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 할 일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급한 일, 다른 하는 중요한 일이다. 알면서도 우리는 대부분 급한 일을 하는 데, 자신의 시간을 쓴다. 정작 중요한 일을 할 시간은 늘 부족하다. 그래 중요한 일을 우선적 해야 한다. 사형수가 형장에 끌려가면서 집행인에게 다음과 같이 조용히 부탁하는 것처럼,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저쪽 길로 가면 외상 깔아 둔 가게가 있으니 다른 길로 가주세요." 루쉰의 <아Q정전>을 보면 아Q가 사형 집행되기 전에, 서명란에 이름 대신 원을 그리면서 최대한 둥글게 그리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 한다. 뭐가 중요한 건지 모른다.

우물 속 개구리에게 바다를, 여름 벌레한테 얼음 말해도, 자신의 좁은 진리에 갇혀 소용이 없다. 인간은 동물들과 달리 진화가 아닌, 문화를 선택했다. 문화는 진화보다 더 확장성이 훨씬 크다. 그래 인간은 동물들과 달리 인식의 범위 밖으로 나가는 시도를 한다. 그게 문화이다. 그건 무모한 상상력이 그 핵심이다. 우리는 익숙함에 빠지면 제한성, 아니 한계성을 넘기가 어렵다. 우리는 밖을 꿈꾸는 질문 아닌, 과거 지향적인 대답 기능에 머물러서, 그들 만의 진영 갇혀 종속적 전략에 빠져, 진영교체를 새 세상인 냥 착각하면, 우물 안 개구리이다. 중국의 루쉰은 이들을 <아Q 정전>의 '아Q'라고 비판하였다.

눈에 보이는 대로 보고, 귀에 들리는 대로 들으며, 세상을 자기 멋대로 해석하고 덤비면 이익이 없다. 모든 지적인 공부와 수련은 다 자기 멋대로 세상을 정하는 무지를 이겨내려는 겸손한 도전이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세상을 공부와 수련 없이 자기 멋대로 해석하고 덤빈다. 나도 그렇지만, 그들은 <아Q정전>에 나오는 "정신승리법"에 기대며 시간을 낭비한다.

"정신승리법"이란 어려운 글을 읽지 않고, 수련도 하지 않으며, 심리적 기대를 객관적 사실로 착각하며 "정신승리법"을 이용한다. 그러다가는 결국 좌절을 겪을 뿐이다. 모욕을 받으면서도 거기에 저항하기보다는 모욕이 아니라고 스스로 자위한다. 무력감과 노예 근성의 발로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아Q는 건달들에게 모욕을 당하고도 아들놈에게 얻어 맞은 꼴로 바꿔 버렸다. 이것을 '정신승리법'이라고도 하는데, 아비를 때린 아들이 나쁜 놈이기 때문에, 나쁜 아들의 역할을 한 건달들이 나쁜 놈들이므로 자신은 오히려 선을 지탱했다는 것이다. 결국 이긴 거나 다름 없는 것으로 해석해버린다. 현실에서 패배를 정신적인 승리로 바꿔서 자위하는 비굴한 모습이다. 내가 본 아Q는 이념, 주관 없이 이리저리 휘둘리는 인간 상징이고, 얻어터지면서도 '정신승리'로 우리기는 중국인을 풍자한 인물이다.

살면서 무엇이 중요한 일인지 알아야 한다. 급한 일 한답시고 정작 중요한 일을 늘 뒷전으로 미루는 것은 바보짓이다. 마치 참새 한 마리 잡겠다고 결혼반지 집어 던지는 건 미친 짓인 것처럼 말이다. 급한 일 한답시고 정작 중요한 일을 늘 뒷전으로 마루는 것은 헛똑똑이, 즉 쓸데없이 오지랖을 떠는 거다. 세상에서 중요한 것은 잘 먹고, 잘 입고, 잘 자고, 잘 웃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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