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부터 우리 인간은 모두 무언 가에 대하여 질문을 하고 대답을 구하며 살았다. 하지만 어느 때부터 인가 질문을 하고 대답을 구하지만, 그 대답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질문하는 그 자체에만 의미를 두고 사는 것 같다.
코로나-19 이후의 세상에 대해 많은 문제의식을 갖고 그 대안 찾으려는 질문으로 우리는 '현재를 살아가는 일'을 대신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묻는 아침이다. 즉 문제를 쫓아가기에만 급급해 정작 중요한 지금을 소홀히 하지 않고 있는가 말이다. 미래에 얽매이지 않아야 지금 현재를 살 수 있다. 지금이라는 시간 속에는 과거도 미래도 별개의 것이 아니라, 그대로 함께 녹아 들어 있다. 이게 '대답을 실천하는 삶'이다.
인간과 달리, 모든 생명체들은 서로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생명 공동체 안에서 모든 것은 순환할 뿐, 어느 한 곳을 지향해 가는 것은 아니다. 그곳에 있으면서 현재를 살며 삶을 영위해 갈 뿐이다. 거기에는 목적도, 시작도 끝도 없고, 과거 현재 미래의 구분도 없다. 물론 순환의 각 부분 부분에는 '목적-수단-역할'이라는 목적론적 관계를 이루고 있는 것들도 많다. 특히 인간은 목적을 설정하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을 강구하고, 수단을 실천하기 위해 역할을 설정하고 그 역할을 수행해 나간다.
옛날 인간들은 질문만 던지며 살았던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실천하며 바로 '지금'이라는 현재를 살았다. 그런데 현재 우리는 문제 제기에 대한 대답을 실천하며 살고 있지 않고, 문제만을 제기하고 자신은 그 대답과 괴리된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되물어야 한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들이란 바로 대답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사람이어야 한다.
코로나-19의 충격 속에서, 우리는 "삶의 속도를 늦추어야 한다"고들 말한다. 속도를 늦출 때 우리는 세상이 부과한 목표들을 요리조리 살펴 볼 수 있다. 나 아닌 것의 힘에서 풀려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다. 그래야 삶의 아름다움이 스스로 드러난다. 그리고 그 마음이 어우러져 넉넉한 시공간을 빚어낸다. 인터넷에 <한국인을 고문하는 8가지 방법>이라는 제목이 떠다닌다.
1. 라면 먹을 때 김치를 안 준다.
2. 인터넷 속도를 10mb이하로 줄인다.
3. 식후에 커피를 못 마시게 한다.
4. 버스가 완전히 정차하고 난 뒤 자리에서 일어나 내리게 한다.
5. 삼겹살에 소주를 못 마시게 한다.
6. 요거트 먹을 때 뚜껑을 핥지 못하게 한다.
7. 화장실에서 대변을 볼 때 핸드폰을 못 갖고 가게 한다.
8. 엘리베이터 문닫기 버튼을 누르지 못하게 한다.
산다는 것은 시간이 내는 일이다. 작은 것들을 보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인생이란 시간이 걸리는 것 그리고 시간을 들이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는 일, 일상에 시간을 투자하여야 한다. 먹고, 배설하고, 자고, 집 주변을 돌보고, 산택하고, 아이들과 놀고, 사랑을 하고, 일을 하고, 주변을 청리하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청소를 하고, 목욕을 하고 등등. 모든 일에 있어서, 이처럼 느리게 사는 '슬로 라이프'를 실천하여야, 결국은 지름길을 가려고 애쓰지 않아 정말 다행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우리는 살 수 있다. 느리게 간다는 것은 그냥 천천히 가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조절하는 속도의 굴레에서 벗어나 나만의 보폭으로 걸어가는 것이다. 오늘 아침 만난 달팽이처럼. 그래야 우리는 인생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지난 월요일 저녁에는 우리들의 4중주단 <혼수상태>가 레슨을 마치고, 연습도 할 겸 집에 안 가고 와인을 마시며 음악을 듣고 노래 연습을 했다. 그러다가 <블랙 핑크>라는 우리나라 여성 아이돌 그룹의 동영상을 보았다. 이 그룹이 최근 세계적으로 '크게 떴다'고 한다. 그런데 난 매우 불편했다. 현란한 색깔에 한 시도 멈추지 않고 변하는 화면이 내가 꿈꾸는 '삶의 속도를 늦추자' 것의 반대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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