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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확행(小確幸)'

이 단어는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만든 신조어란다. 의미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란다. 소소한 가치에 집중하는 행복 키워드이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 미니멀 라이프 속에서 찾는 행복을 말한다.

'소확행'은 타인과의 관계를 줄이고 집에서 자신만의 소소한 행복을 찾는 일이다. 먼 미래의 거창한 행복보다 자주 느낄 수 있는 작은 행복에 만족한다. 그래서 여행은 가까이, 더 자주 떠난다. 예를 들어 동네 산책이나 카페 투어 등을 한다.

방송이나 영화에도 '소확행'이 스며들고 있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 속에서 하루하루 충실히 살아가는 모습이 인기를 끈다. 지금 이 순간 '손에 잡히는 행복'을 좇는 주인공에게 관객은 공감과 지지를 보내고 있다.

'인생은 한 번뿐!'이라는 YOLO(You Only Live One)는 시간이 갈수록 소비를 부추기는 마법의 주문으로 통했고, '탕진잼(돈을 탕진하면서 재미를 느끼는 것)이라는 신조어가 생겼고, '욜로 좇다가 골로 간다', '욜로도 돈이 있어야 가능하다' 고 하는 말이 나왔다.

'소확행'은 삶의 가치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다가 나온 것이다. 그리고 '소확행'은 저성장시대로 접어들면서 자연히 따라오는 현상처럼 보인다. 경제 성장이 정체되면서 남에게 보여지는 게 아니라,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행복을 추구하는 트렌드이다.

그러나 한국의 젊은이들의 '소확행' 뒤에는 행복하지 않는 척박한 현실, 소득 격차, 취업난, 무한경쟁의 현실이 깔려 있다. 그들에게 '소확행'은 '작고 확실한 행복'이기 보다는 주어진 현실에서 가장 큰 행복, 너무 짧아 놓고 싶지 않은 찰나의 행복이 아닐까? 씁쓸한 면도 있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사회에 '소확행'이 유행하는 것은 고성장 시대의 종말이 결정적인 이유라고 강준만 교수는 지적하고 있다. 일자리는 부족하고, 취직한다 해도 대부분 비정규직이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는 신분제를 방불케 할 정도로 크며, 이런 상황이 바뀔 가능성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나의 경우를 보면, 대학의 교수와 시간 강사는 모든 면에서 하늘과 땅 차이만큼 격차를 보인다. 그래서 나타난 것이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과 최저 수준의 출산율이다. '소확행'은 이런 '헬조선'을 무대로 해서 '그래도 행복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몸부림의 표현일 뿐 '정신의 고령화'로 인해 나타난 게 아니라고 강교수는 진단한다.

여기서 '정신의 고령화'란 '출세 대신 작은 행복'은 전형적인 중년 이후의 라이프스타일인데, 이런 경향이 20-30데에서 나타난 것으로 고령화 사회의 특징 중 하나가 '정신의 고령화'라는 것이다.

자신의 한계까지 밀어붙이며 능력을 시험해보는 소수의 사람이 결국 사회를 한 발짝씩 전진시키는 법인데, 작은 행복을 누리며 재미있게 사는 사람들은 그런 선구자를 뒤따라갈 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 우리는 지난 반세기 넘게 그런 식으로 열심히 살아왔다. 그렇지만 우리는 승자가 독식하는 서열 사회 속에 살고 있다. 게다가 모든 것이 서열화된 구조 속에서 경쟁의 수혜는 상층부의 극소수에게만 돌아간 불공정 사회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그 극소수의  승자는 이러한 사회의 시스템이 공정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들러리를 서주는 사람들이 필요했다. 사실 경쟁에 진 대부분의 사람들은 '들러리'였다. 나도 몇몇의 교수들의 '들러리'였다. 그래서 난 노는 물을 바꾼 것이다.

문제는 이 '들러리'들이 기존 시스템의 불공정성을 문제삼기보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부여잡고 사실상 그 시스템을 떠받쳐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불공정 시스템은 개혁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우리들의 삶이 이러했다.

치열한 노력과 투쟁으로 어떤 서열 그룹에 진입한 사람들은 승자가 독식하는 이 시스템이 공정하다고 주장한다. 자신은 엄청난 노력과 투쟁을 했고, 시스템이 인정하고 보상을 해주는 것이고 주장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공정했는지 모르지만, 그들은 서열 체제 자체의 불공정을 바꾸려는 사회적 공정의 시도는 하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우리 사회는 '소확행'이 유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젠 극소수의 승리를 위한 '들러리' 노릇을 더 이상 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자기 주도하에 하겠다는 것이 '소확행'의 유행이다. 이는 '욕망의 거세'가 아니다. 욕망 없는 인간에게는 '소확행'도 없다. 이 유행은 욕망을 재정의하고 있는 것이다. 욕망의 다양성을 부정하고 모욕하면서 속물적인 것으로 획일화시킨 세상에 대한 반란이다.

직장에서 "사장까지 올라가고 싶다"는 욕망은 사주의 온갖 추잡한 갑질에 순응하게 만든다. 그런 욕망을 갖고 있는 사원이 90%라면, 그 기업의 사주는 무엇이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왕국을 가진 거나 다름 없다. 나의 경우, 교수가 되지 않았다 해도 요즈음은 더 바쁘다. 요청받는 특강도 많고, 원치 않는 것을 가르치며 존재 이유를 상실한 교수보다, 원하는 어른 학생들과 호흡을 같이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지금이 더 행복하다.

그러나 사장까지 올라가길 원하는 사원이 10%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정의롭게 살겠다는 사회적 욕망과 출세를 꿈꾸는 개인적 욕망 사이의 균형이 가능해진다.

이게 '소확행'이 줄 수 있는 뜻밖의 선물이라면, '소확행'은 개혁이 씨앗이다. 강준만 교수의 주장에 나는 동의한다. (참고: 한겨레, 2018년 7월1일자)

이젠 승자의 '들러리'를 서지 않고, 소소하지만 확실한 작은 행복, '소확행' 라이프스타일로 승자독식과 서열 사회 그리고 불공정한 사회에 나는 '격하게' 저항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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