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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고요를 수련하라.

3년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1년 11월 24일)

어제에 이어, 오늘은 도에 이르는 9 계단인 '도가구계(道家九階)' 중 여덟 번째인 삼료(參廖) 이야기를 한다. 어제 살펴 본 그윽한 경지(⑦현명, 玄冥), 조용하고 텅 빈 경지(⑧삼료, 參廖)를 체험한 다음 시원(始原)의 도(⑨의시, 疑始)와 하나 되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는 거다.

여기서 '삼료'는 텅 비어 있는 도(道)에 참여하는 사람, 또는 그것을 깨달은 사람으로 조용하고 텅 빈 경지에 있다는 뜻이다. 삼(參)은 '참여하다'는 뜻이고, 료(寥)는 공허(空虛)의 뜻이다. 곧 아무런 작용이 없는 도(道)의 경지에 도달했음을 형용한 표현으로 본다. '의시'는 시작을 알 수 없는 경지에 도달한 사람을 뜻한다. 도(道)는 스스로를 근본으로 삼기(자본자근, 自本自根) 때문에 그 시작을 추측할 수 없다는 뜻이다.

'삼료(參廖)'에서 료(廖)는 '공허할 료'자이다. 그래 오늘 아침 화두는 고요이다. 헛 것들로 넘쳐 나는 도시에서 자신을 잃지 않고, 내면의 평화를 찾아가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TV를 안 보거나 도시를 떠나 자연이 가까운 곳에서 사는 거다. 고요를 즐기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나라고 생각하는 내가 진짜 나인지' 더 자주 숙고해야 한다. 그래야 진짜 '나'를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나의 욕망'이 아니라, '자본의 욕망'에 포섭될 확률이 높다. 시인 김선우는 이런 것들을 하라고 한다.
- 하루에 몇 시간이라도 스마트 폰 꺼 놓기
- 침대나 소파 곁에 언제든 손에 잡을 수 있게 책 두기
- 가방 속에 일기장 넣어 다니기
- 하루에 10분 하늘 바라보기
이런 소소한 일상에서 실천은 개인의 정신을 새롭게 갈무리하고, '더 나은 나'로 존재하고 싶은 욕망의 성장을 돕는다는 것이다. 소유보다 존재의 풍성함을 챙기고 싶은 욕망의 성장을 도울 것이다.

코로나-19가 다시 극성을 부릴 채비를 한다. 바이러스가 물러서기는 커녕, 또 다시 기승을 부리기 시작해 암울하고 혹독한 겨울을 준비하라고 호통친다. 인간에게 삶의 재미, 기쁨 그리고 의미를 부여하는 대면 활동을 금지하라 한다. 먹을 것을 마련해주는 생계를 위태롭게 만들었으며, 집 밖으로 나가지 말 것을 요구한다. 타인과의 만남을 통해 공동체를 이루고 공공의 이익을 위한 문명을 건설해왔던 인류에게 그러지 말라고 명령한다. 지인이나 타인이나 상관없이 누구를 만나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하고,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건네지 않겠다는 표시로 마스크를 쓴다. 마스크는 당신도 나에게 말을 걸지 말라는 경고다. 대면 문화를 구축한 문화의 문명 핏줄인 경제는 벼랑 끝에서 깊은 바다로 몰락하기 직전이다.

배철현 교수는 한 칼럼에서 다음과 같이 두 개의 대안을 제시한다. 하나는 오늘이라는 일상에 감사하라고 한다. "아무리 장구한 시간이라도 지나고 보면 순간이 인생이란 사실을 깨달은 인간에게 희망이 있다. 그는 자신의 사적인 일상에서 삶의 의미를 발굴하기 때문이다. 그는 매 순간 자신을 살아있게 만드는 움직임을 응시하고 기뻐한다. 들 숨과 날 숨은 나의 생명을 지켜주는 알파와 오메가다. 누군 가가 나에게 호흡을 선물해 내가 의식하지 못하거나, 심지어 잠을 잘 때도 호흡을 유지해 준다. 누군가 저 높은 산과 저 깊은 샘에서 물을 만들어 나에게 선물했다. 내 입으로 들어간 물 한 모금이 목구멍을 통해 온몸으로 퍼져 나를 살아있게 할 것이다. 이 위기는 내가 지나쳤던 일상을 응시해 감사하게 만든다."

또 하나는 고요를 수련하라고 한다. "애벌레는 고치를 삶의 끝이라고 부르지만, 고요를 수련하는 인간에게 고치란 나비가 되기 위한 필수 불가결한 준비과정이다. 다가오는 겨울은 '우울'이 아니라, 우리에게 '고요'를 이야기한다. 이 겨울은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내는 나비가 되라는 총성이다. 희망은 절망이 낳은 자식이며 확실은 불확실의 제거이기 때문이다."  아마 이 고요가 장자가 말하는 도에 이르는 9 계단인 '도가구계(道家九階)' 중 여덟 번 째인 삼료(參廖)가 아닐까? 오늘 사진 속에서도 고요를 보았다. 그리고 오늘 시도 제목이 '고요'이다.

고요/김원길

달도 지고
새도 잠든

정적 속
눈 감고

귓전에
스스스스

지구가
혼자서

조용히
자전하는

소리
듣는다.

오늘 아침은 노예였다 스토아 철학자 된 에픽테토스가 말하는 하루를 행복하게 살기 위해 필요한 세 가지 훈련을 다시 소환한다. 에픽테토스의 철학은 추상적이 개념에 대한 논쟁이 아니라, 일상을 개선하기 위한 실천 가능한 조언들이다. 오늘 다시 기억하는 문장은 이 거다 "너희들은 간절히 원하는 것을 반드시 얻으며, 너희들이 피하고 싶은 상황에 절대 빠지 말아라!" 쉽고도 어려운 조언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간절하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스스로 자신이 간절히 원하는 것을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 '인문 운동'이 필요한 것이다. 인문 운동에서 말하는 인문 정신이란 자신에 주어진, 자신에게  알맞은 인생의 과업을 심사숙고하여 찾아내는 거다. 만일 그가 인생의 과업을 발견했다면, 자신답지 않은 것, 즉 자신이 피하고 싶은 상황을 미리 감지하고 피할 것이다. 간절히 원하는 것을 알아야, 우리가 피하고 싶은 상황을 피할 수 있다. 이젠 그의 조언을 이해했다.

에픽테토스는 우리가 일상의 훈련을 통해, 일상을 지배하기 위한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음 세 분야를 훈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1) 욕망(慾望) (2) 선택(選擇) (3) 승복(承服).
• 에픽테토스가 말하는 욕망은 팔을 움츠리지 말고 최대한으로 펴는 연습을 하라는 조언이다. 세상에는 내가 팔로 획득할 수 있는 것과 획득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걸 구별하는 것이다. 내 팔로 획득할 수 없는 것을 욕망하는 것은 탐욕이라고 본다. 그러니 내가 잘 할 수 있는 한 가지에 몰입하여 최고의 성과를 내려는 마음이 에픽테토스가 말하는 욕망이다.
• 에픽테토스가 말하는 선택은 나의 최선을 집약 시킬 대상을 선별하는 능력이다. 나에게 주어진 오늘 하루를 훌륭하게 마칠 수 있게 하는 내 일은, 심사숙고를 통해, 내가 사적으로 한 선택의 결과이다. 또한 선택은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것을 과감하게 거절할 수 있는 단호함도 포함한다.
• 에픽테토스가 말하는 승복은 자신이 선택한 대상에 완전히 몰입하여 완수하려는 결심이다.

에픽테토스는 매일 아침 자기 안에서 이 세가지 원칙을 찾으라고 조언했다. 이것도 배철현 교수한테 배운 것이다. 매일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가지를 발견하고, 그것을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집중하여 그것을 즐기는 것이다. 너무 힘들게 살 필요 없다.

'욕심을 버려 마음을 비우고, 맑고 고요한 상태를 굳세게 지켜라'는  "치허극 수정독(致虛極 守靜篤)"은 노자의 행복론이다. 욕심을 비우면 존재가 채워지고, 고요함을 지키면 삶의 진면목을 보게 된다. 소유하려는 마음을 비우면, 그 양만큼 존재가 자리한다. 행복은 소유가 아니라, 존재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면서 추구하는 목표는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다. 문제는 근데, 그걸 얻었다고,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다. 왜 만족하지 못하니까. 그리고 목표를 찾아 나서는 첫 마음이 '가지는' 것이 아니라, '누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거나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 방법은 법정 스님이 가르쳐 주신대로, 하나가 필요할 때는 하나만 가져야 지 둘을 갖게 되면 애초 그 하나 마저도 잃게 된다. 인간의 목표는 풍부하게 소유하는 것이 아니고 풍성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소유와 소비 지향적인 삶의 방식에서 존재 지향적인 생활 태도로 바뀌어야 한다. 소유는 우리의 최종 목표가 될 수 없다. 목표를 끝내 달성하는 것도 즐겁지만, 무엇보다도 날마다 살아가면서 추구하는 과정 자체에서 기쁨을 갖고 즐겨야 하는 것이 행복하게 사는 길이다.

삶을 살아가면서, 내가 좋아하는 말이, 앞에서도 말했던,  <<도덕경>>의 제16장에 나오는 이 말이다. "완전한 비움에 이르십시오. 참된 고요를 지키십시오, 온갖 것 어울려 생겨날 때 나는 그들의 되돌아감을 눈여겨봅니다.”라고 한다. 원문은 이렇다 “致虛極, 守靜篤, 萬物竝作, 吾以觀復(치허극 수정독 만물병작, 오이관복)” 그리고 "반자도지동(反者道之動)"(<도덕경> 40장)이다. 도(道)의 핵심 내용은 반대 방향을 지향하는 운동력, 즉 반反이다. 어떤 것도 변화하지 않거나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이것이 동양철학이고, 이를 '음양오행(陰陽五行)'으로 해석한다. 나는 오늘 아침 '되돌감'을 읽는다. 달도 차면 기울고, 낮이 밤이 되고 밤이 낮이 된다. 아주 더운 여름이 되면 다시 추운 겨울로 이동하고, 심지어 온 우주도 팽창과 수축을 반복한다. 이 모든 것은 어느 한 쪽으로 가다가 극에 도달하면 다른 쪽으로 가는 '도'의 원리에 따르는 운동이라는 것이다. 너무 그리워하지 말자. 때는 기다리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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