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2년 11월 21일)
오늘 아침도 서울대 한소원(서울대 심리학) 교수의 <<나이를 이기는 심리학>>이라는 책을 읽으며, '어른'이 되는 길을 찾아 볼 생각이다. 2020년 기준으로 국민 4명 중 1명은 60대 이상이라 한다. 몇 년 전까지 만해도 30세까지는 직업을 준비하고 그 이후 30년간 열심히 일하며 노후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이후에 이어지는 30년을 또 준비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이전에 노후 준비라는 것이 나이 들어서 먹고 살 수 있는 경제적인 준비를 해놓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노후의 기간이 평생 열심히 일하면 된다고 생각하던 그 기간보다 훨씬 더 길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 '길어진 나의 삶의 어떻게 살 것인가'는 새로운 문제이다.
한소원 교수가 소개한 하버드 심리학자 댄 길버트에 의하면,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의 고유한 특성이 "자신의 미래를 기대하고 상상하는 능력"이라 했다. 그런데 우리는, 나이가 들어가면서는 더 이상 미래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물어 보는 사람도 없다. 노후가 이렇게 길어진 신인류의 시대에는 인생의 모든 단계를 보는 패러다임도 그에 맞춰 바뀌어야 한다. 65세에 은퇴하고 100세를 산다고 하면 35년이라는 기간 동안 쉬기만 하는 것이 좋은 인생일까? 인생은 결코 결정되어 있는 게 아니다.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이 활력을 만든다. 똑같은 것을 되풀이할 때 뇌는 활동을 줄인다. 나이가 들어서 뇌가 굳어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경험을 하지 않아서 뇌가 굳어지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대비는 현재진행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 인생의 전성기는 지금 살고 있는 이 순간이다.
인생 경험을 통해 얻은 지혜는 나이를 먹으면서 늘어가는 소중한 재산이다. 지혜는 인터넷 검색으로 찾을 수 있는 지식이 아니라, 실제 경험을 통해서 얻어진 성숙이며, 정서적으로 나를 관리하고 인생의 중요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능력이기도 한다.
"지나간 세월이 아니라, 만들어 놓은 친구로 나이를 세어라.
흘린 눈물이 아닌 웃었던 순간으로 삶을 세어라." (존 레논)
그간 살아온 인생 중 어느 때로 돌아가고 싶은지, 돌아가면 무엇을 어떻게 바꾸고 싶은지 물으면 많은 경우에 "지금보다 조금 더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조금만 더 젊기를 희망하는 이유는 현재 중심의 관점에서 삶을 보기 때문이라는 거다. 살아온 만큼 쌓이는 삶의 경헌이 선물이다. 그러니까 추억거리가 많다는 것은 삶이 풍요로워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경제적인 성공이나 업적을 말하는 게 아니라, 살아온 인생에서 얻어지는 경험은 그 자로서 큰 의미가 있다.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는가'라는 말은 스티븐 핑거(Steven Pinker)가 한 말이다. 그는 하버드 대학교 심리학 교수로 우리 시대 가장 중요한 지성인이다. 그의 인생 좌우명이 랍비 힐렐의 말이라고 한다. 나도 그의 말을 외우고 있다. "내가 나를 위하지 않으면 누가 나를 위해줄 것인가?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할 날이 있겠는가?" 이 두 문장이 그를 지금-여기에 존재하게 이끈다고 했다.
다시 내가 외우고 있는 것을 공유해 본다. "내가 나 자신을 위하지 않는다면, 누가 나를 위할 것인가? 내가 나 자신을 위한 유일한 존재가 아니라면, 나는 누구인가? 지금이 아니면, 언제라는 말인가?"(랍비 힐렐,『선조들의 어록』 1장 14절) 나는 그 때가 아침 글 쓰는 시간이다. 그래 그 시간이 매일 지겹지 않고, 나에게는 새롭다.
다음의 다섯가지는 스티븐 핑거가 팀 페리스 책,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는가(Tribe of Mentors)>> 에서 우리들에게 해주고 싶어했던 말들이다. 다시 공유한다.
1. 소수의 사람들은 지지하지만 아직 문화적인 유행이나 보편적인 통념으로 뿌리내리지 못한 새로운 주제나 영역 또는 새로운 관심사를 찾으라.
2. '결실이나 보상이 있는 행동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직관을 따르는 것이라'는 조언은 절대 무시하라. 결실이나 보상을 늘 확보하라. 그리니까 자기만족에 그치는 행동이나 시도는 하지 마라.
3. 귀천을 따지는 것처럼 천한 것은 없다. 지성인은 인문이나 언어계열 등의 고상한 직업에만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마라. 상업이나 산업에도 신경을 쓰라는 말이다.
4. 세상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 생각하라. 부와 명예는 사라지지만 우리의 기여는 언제나 남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티븐 핑거가 일상에서 늘 하는 습관들을 우리는 본받을 만 하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지루하고 상투적이지만 필수적인 행동을 빼먹지 않고 하기. 재미로 읽는 것을 제외하고 글을 디지털화 해서 축적하기. 나는 가급적 중요한 책들을 전자 형태로 보관하려 한다. 전자 버전은 검색까지 가능하고, 환경이 '한계'에 이른 지금 유익한 비물질적 생활에 참여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나도 남은 삶을, 스티븐 핑거처럼, 찬란한 한순간 한순간의 합으로 만들고 싶다. 지금-여기, 내 자신에게 치중하는 삶을 살고 싶다. 나는 그런 삶을 '우아한 성실주의'라 표현한다. 그렇게 사는 '우아한 성실주의자'는 일상을 지배하며, 단조로운 일상을 사는 사람이라고 나는 정의하고 싶다. 그런 사람은 과거와 미래로 분열되지 않고 오롯이 '지금-여기'에 존재하는 주체적이고, 자유롭고 독립적인 존재이다. 그런 사람은 늘 충만한 삶을 산다. 그는 아무리 바빠도 분주하지 않다. 조급해 하거나 초조해 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스스로의 가능성을 무한하게 확장하면서 점점 넓어지게, 더 깊어지게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에 다시 이렇게 살기로 다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둥지둥 현실에 쫓기며 살다 보면, 무엇 때문에 사는 지도 잊고 살 때가 많다. 채워지지 않는 것들로 늘 가슴 속이 먹먹해 져 올 때면, 그리운 이름들이 바스락거릴 때면, 가끔은 뒤를 돌아 보라. 어쩌면 우리가 잊고 살아온 모든 것들 그리운 것들이 거기 있을지 모른다. 이 시를 소개한 시인의 말이다.
모든 그리운 것은 뒤쪽에 있다/양현근
아쉬움은 늘 한 발 늦게 오는지
대합실 기둥 뒤에 남겨진 배웅이 아프다
아닌 척 모르는 척 먼 산을 보고 있다
먼저 내밀지 못하는 안녕이란 얼마나 모진 것이냐
누구도 그 말을 입에 담지 않았지만
어쩌면 쉽게 올 수 없는 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기차가 왔던 길 만큼을 되돌아 떠난다
딱, 그 만큼의 거리를 두고
철길 근처의 낯익은 풍경에게도 다짐을 해두었다
그리운 것일수록 간격을 두면 넘치지 않는다고
침목과 침목사이에 두근거림을 묶어둔다
햇살은 덤불 속으로 숨어들고
레일을 따라 눈발이 빗겨들고
이 지상의 모든 서글픈 만남들이
그 이름을 캄캄하게 안아가야 하는 저녁
모든 그리운 것은 왜 뒤쪽에 있는지
보고 싶은 것은
왜 가슴 속에 바스락 소리를 숨겨놓고 있는 것인지
써레질이 끝난 저녁하늘에서는 순한 노을이
방금 떠나온 뒤쪽을 몇 번이고 돌아보고 있다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인문운동가_박한표 #우리마을대학 #유성관광두레 #사진하나_시하나 #양현근 #시간 #지금_여기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자가 꿈꾸는 이상형은 '성인(聖人)'의 모습 (0) | 2024.11.23 |
---|---|
노자가 꿈꾸었던 '성인'의 모습 1 (4) | 2024.11.23 |
'도가구계(道家九階)' 중 일곱 번 째인 현명(玄冥) 이야기 (0) | 2024.11.23 |
도에 이르는 9 계단 (5) | 2024.11.23 |
남을 아는 자는 지혜롭고(지, 知), 자신을 아는 자는 현명(賢明)하다. (3) | 2024.1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