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오늘 글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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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2년 11월 19일)
서울대 한소원(서울대 심리학) 교수의 <<나이를 이기는 심리학>>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책을 펴자마자, "스마트 에이징(smart aging)"이라는 말이 눈에 들어왔다. '현명하게 나이 들기'라는 애매한 표현을 넘어, 자신의 물리적 나이에 얽매이지 않고 세상과 유리되지 않는 적극적인 사람의 태도라는 거다. 이 책은 인지노화를 학문 안에서 맴도는 이론이 아닌, "스마트 에이징"이라는 카테고리에서 현실적, 실용적 매뉴얼이라는 거다. 그리고 "기억력 감소에 좌절하지 말과 관계와 상황을 경험적으로 판단할 줄 아는 통찰력이 젊은이보다 몇 배는 높아진, 인생 후반부를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을 향한 격려라는 거다.
한 교수는 서론에서 "스마트 에이징"을 "단순히 '현명하게 나이 들기'라는 단어적 의미를 넘어, 테크놀로지를 활용하여 커뮤니티와 지속적으로 연결을 맺으며 건강하게 살아간다"는 의미로 사용했다고 했다. "스마트 에이징"은 "기술의 발달을 넘어서는, 삶을 준비하고 선택하는 방법"으로 두 가지를 말한다. 그 방법은 이전보다 더욱 적극적인 자세로 새로움을 추구하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조는 거다. 그러면 우리는 예측할 수 없는 이 미래에 누구보다도 스마트하게 나이 들어갈 수 있다는 거다.
목차의 문장들이 나에게는 거의 새로운 영역들이다. 이 문장을 읽고, 깊은 생각에 빠졌었다. 예를 들어 "어디에서 나이 들어갈 것인가?", "누구와 살 것인가? 등등 말이다. 우선 문장들만 나열해 본다.
1. 길은 하나가 아니다.
2. 최고의 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3. 뇌가능은 사용하지 않으면 사라진다.
4. 생체리듬, 아침형 인간만이 정답은 아니다.
5. 호기심을 욕망하라.
6. 마음은 뇌가 만들어 낸다.
7. 질병보다 외로움이 더 위험하다.
8. 커뮤니티, 정답 없는 질문, '누구와 살 것인가?'
9. 내 삶의 주인공으로 살지 못하는 사람들
10. 어디에서 나이 들어갈 것인가?
11. 스마트 시스템을 받아들여야 할 때이다.
경제학 이론 중에서 "비서 문제"라는 의사결정 이론이 있다. 비서를 고용할 때 100명의 지원자가 있다면, 그중 40명 정도를 만나본 후에는 결정을 하는 것이 최적이라는 수학적 모델이다. 정확하게는 0,37(37%)이 최적의 지원자를 선택하기 위해 결정을 해야 하는 확률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삶에서 무엇이 최적인지 미리 알 수 없다. 특히 미래에 무엇이 최적인지 아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나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너의 가치와 행복을 결정하는 것이 직업적인 성공이나 경제력 같은 단편적인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나이를 먹고, 과거를 되돌아 보면, 아주 좋기만 한 일도, 아주 나쁘기만 한 일도 없다. 이 대목에서, 몇 년 전에 읽은 류시화 시인의 산문집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가 소환되었다. 그때 노트에 적어 두었던 시가 생각나서 다시 공유한다. 잘랄루딘 루미의 것이다.
이 문제 많은 세상을
인내심을 가지고 걸으라.
중요한 보물을 발견하게 되리니.
그대의 집이 작아도, 그 안을 들여다보라.
보이지 않는 세계의 비밀을 찾게 되리니
나는 물었다.
"왜 나에게 이 것 밖에 주지 않은 거죠?"
한 목소리가 대답했다.
"이 것만이 너를 저것으로 인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곧바로 자신이 원하는 목적지에 도착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어떻게 길 끝에 있는 아름다움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모든 작가들이 진정한 작가가 되기 전에 미완의 작품을 수없이 완성해야 하고, 모든 새가 우아하게 날 수 있기 전에 어설픈 날개를 파닥여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과정을 거치려 하지 않고, 우리는 삶에게 묻는다. "왜 나에게는 이것 밖에 주어지지 않은 거야?"하고. 그러나 보이지 않는 목소리가 답한다. "이 것만이 너를 저것으로 인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속삭임을 듣지 못할 때, 우리는 세상과의 내적인 논쟁에 시간을 허비한다. 스스로가 자신의 삶의 여행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자신이 결코 팔을 갖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새의 몸에서 날개가 돋아나기 시작한다는 것을 우리는 모른다.
류시화 시인은 가을이 모면, 햇빛과 비를 당분으로 바꿔 풍요와 결실을 이뤄 내는 나무의 연금술에 깊이 감동한다고 했다. 우리는 나무의 한 계절에만 해당하는 모습을 보면, 그 자체적으로 틀리지 않지만, 전적으로 옳지도 않다. 나무에 대해서든 사람에 대해서든 한 계절의 모습으로 전체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 나무와 사람은 모든 계절을 겪은 후에야 결실을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힘든 계절만으로 인생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한 계절의 고통으로 나머지 계절들이 가져다 줄 기쁨을 파괴하지 말아야 한다. 겨울만 겪어 보고 포기하면 봄의 약속도, 여름의 아름다움도, 가을의 결실도 놓칠 것이다.
타인에 대한 판단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평가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연약한 움을 틔운 시기에는 그 연약함이 오므려 쥔 기대를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자신이 한 그루의 나무이다. 어떠한 계절도 영원히 지속되지 않음을 나누는 잘 안다. 어떤 겨울도 견디고 남을 만하다는 것을 나무는 잘 안다. 나무는 계절의 흐름에 자신을 맡기는 것이 여행의 시작이다.
한 시기의 모습으로 자신이나 타인의 존재 전체 혹은 삶 전부를 판단하는 것은 누구나 쉽게 범하는 오류이다. 꽃이 피면 알게 될 것이다. 지금은 나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고, 설명할 수 없어도 언젠가 내가 꽃을 피우면 사람들이 그것을 보게 될 것이다. 자신의 현재 모습에 대해, 자신이 통과하는 계절에 대해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시간이 흘러 결실을 맺으면 사람들은 자연히 알게 될 것이므로. 류시화 시인의 산문집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에서 적어 두었던 것이다.
우리의 삶을 만드는 것은 단편적인 한 가지 모습이 아니라, 순간 순간을 채우는 많은 활동들이다. 예를 들어 새로운 것을 배우는 일이다. 그것은 우리의 뇌를 깨우고 또다시 새로워진 자신을 개발해 보는 일이다. 인간은 그 어떤 작은 단위의 시간에서도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존재이다.
노벨상을 만든 알프레드 노벨의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노벨은 발명가로 원래는 사업가였다. 다이너마이트를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는 평생 동안 수백 개의 특허를 가지고 이었고 군사용품 제작회사를 소유하고 있는 무기 거래상이었다. 어느 날 그의 형 루드비그 노벨이 사망했을 때 프랑스의 한 신문사에서 이를 잘못 전달 받고 알프레드 노벨의 부고 기사로 신문에 실은 것이다. 그 기사의 제목은 '죽음의 장사꾼이 죽었다'였다. 무기 거래상인 알프레드 노벨은 그 기사를 보고 충격을 받아, 이후 자신의 전 재산을 돌려서 인류에게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에게 상을 주는 노벨상을 만들게 되었다는 거다.
지금 나의 인생에서 행복과 사랑과 의미를 주는 것이 무엇인가? 나는 미래의 어느 하루를 재미있고 풍성하고 가치 있게 보낼 수 있을까?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한 교수는 "끊임없이 변화를 찾으라"고 조언한다.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하는 연주자들도 똑같은 곡을 수백 번 연습하며 반복 연주하면 지루할 뿐더러 집중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런데 그 연주자들에게 "오늘은 다른 사람이 아무도 모르게 아주 약간 다른 방식으로 연주해주세요"라 부탁하면 그 변화를 만들기 위해 집중하게 되고, 그럼으로써 좋은 연주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변화의 아름다움과 신기함과 재미를 경험해 보라고 한다.
과학자들은 활발하게 몸을 움직이고 문화와 예술을 가까이 하는 것이 건강한 뇌와 마음을 만드는 길이라는 거다. 인생이란 한 가지 길로만 달려서 도달하는 종착점을 위한 준비가 아니다. 순간순간 집중하고 변화를 즐거워하면서 나이 들어간다면 더 의미 있는 삶을 만들 수 있다는 거다. 길은 하나가 아니다. 한 교수의 다짐처럼, 나도 이제부터는 순간 순간을 의미 있게 살면서 새로운 나를 만들어 가려 한다. 새로운 것을 찾아 열심히 배우고, 나와 다른 이들에게 모두 친절하게, 그렇게 또 다른 사람을 만들며 살아가려 한다. 그게 "스마트 에이징", "현명하게 나이 들기"이다.
지난 해에 공유했던 시이지만, 오늘 아침 다시 읽어 본다. 그 전에, 화장실에 붙어 있는 교훈 같은 이야기지만, 천천히 읽어 보니 일상에서 자주 기억해야 할 것들이다. 여기서 말하는 노인은 '그냥' 늙은 사람이고, 어른은 주위로부터 존경받는 노인이다. 최근 우리 출판계는 '어른'이라는 말이 화두이다. <<어른의 새벽>>(우승희), <어른의 말고부>>(사이토 다카시), <<어른의 태도>>(신재현) 등이 나와있다. 지금 우리 사회가 필요한 것이 '어른'이 되는 것이기 때문 같다.
- 노인은 몸과 마음이 세월이 가니 자연히 늙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고, 어른은 자신을 가꾸고 젊어지려고 스스로 노력하는 사람이다.
- 노인은 자기 생각과 고집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고, 어른은 상대방에게 이해심과 아량을 베풀줄 아는 사람이다.
- 노인은 상대방을 자기 기준에 맞춰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이고, 어른은 좋은 덕담을 해주고, 늘 긍정적으로 이해해 주는 사람이다.
- 노인은 상대에게 간섭하고, 잘난체하며, 지배하려는 사람이고, 어른은 스스로를 절제할줄 알고, 알아도 모른체 겸손하며, 느긋하게 생활하는 사람이다.
- 노인은 대가없이 받기만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어른은 상대에게 베풀어 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 노인은 고독하고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이고, 어른은 주변에 좋은 친구를 두고, 활발한 모습을 가진 사람이다.
- 노인은 이제 배울 것이 없어 자기가 최고인양 생각하는 사람이고, 어른은 언제나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 노인은 자기가 사용했던 물건이 아까워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고, 어른은 그 물건들을 재활용할줄 아는 지혜로운 사람이다.
- 노인은 공짜를 좋아하는 사람이고, 어른은 그 댓가를 반드시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늙어가는 길/윤석구
처음 가는 길입니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길입니다.
무엇 하나 처음 아닌 길은 없었지만
늙어가는 이 길은 몸과 마음도 같지 않고
방향 감각도 매우 서툴기만 합니다.
가면서도 이 길이 맞는지
어리둥절할 때가 많습니다.
때론 두렵고 불안한 마음에
멍하니 창밖만 바라보곤 합니다.
시리도록 외로울 때도 있고
아리도록 그리울 때도 있습니다.
어릴 적 처음 길은
호기심과 희망이 있었고
젊어서의 처음 길은
설렘으로 무서울 게 없었는데
처음 늙어가는 이 길은
너무나 어렵습니다.
언제부터 인가
지팡이가 절실하고 애틋한
친구가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그래도 가다 보면
혹시나 가슴 뛰는 일이 없을까 하여
노욕인 줄 알면서도
두리번두리번 찾아봅니다.
앞길이 뒷길보다 짧다는 걸 알기에
한발 한발 더디게 걸으면서 생각합니다.
아쉬워도
발자국 뒤에 새겨지는 뒷모습만은
노을처럼 아름답기를 소망하면서
황혼 길을 천천히 걸어갑니다.
꽃보다 곱다는 단풍처럼
해돋이 못지않은 저녁노을처럼
아름답게
아름답게 걸어가고 싶습니다.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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