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1년 11월 16일)
코로나-19가 발생한 이후부터 중지되었던 서울 와인 강의를 오늘부터 다시 재개했다. 이번에는 서울 목동에 있는 양천구평생교육원부터 시작되었다. 모처럼, 무궁화호를 타고 신탄진에서 영등포까지 기차 여행을 했다. 조용한 시골에서 하루 종일 사람들을 몇 안 만나다, 지하철 역마다 엄청나게 밀려가는 군중의 틈에 끼어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는 나 나름대로 호흡을 하며 불안해 하거나 초조해 하지 않았다.
오늘 아침 하고 싶은 말은 사람은 평생 쉴 호흡의 총량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데, 도시에 살면 폐활량이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염려이다. 도시는 느린 호흡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호흡이 빠르면 심장박동도 빨라지고, 그에 따라 수명도 짧아진다고 한다. 팔십 년 사는 코끼리나 삼 년밖에 못사는 쥐나 평생 동안의 심장박동 수는 같다고 한다. 파도의 느린 호흡처럼 깊은 호흡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다.
세계일보 배연국 논설위원에 의하면, "바쁨과 부지런함은 다르다"고 했다. 바쁜 것은 대개 시간관리를 하지 못한 탓이 크다는 거다. 중국 당나라의 조주 선사는 “바쁘실 텐데 어떻게 항상 느긋하냐”는 승려들의 물음에 이렇게 대답했다. “너희는 스물네 시간에 부림을 당하지만 나는 스물네 시간을 부리느니라.” 이처럼 시간은 내가 그것의 주인이 되면 누구보다 너그럽고 온화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생활이 여유롭고 재촉하는 법이 없다. 반면 시간이 나의 주인이 되면 어떤 것보다 가혹한 주인이 된다. 온종일 조금의 쉴 틈도 주지 않고 노예를 부린다. 배위원이 소개하는 부처님의 말씀은 요즈음 나에게 정말 필요한 지혜이다.
부처가 제자에게 물었다. “출가 전에 어떤 일을 하였느냐?” “거문고를 연주했습니다.” “거문고 줄이 느슨하면 어떠하더냐?” “소리가 나지 않았습니다.” “거문고 줄이 너무 팽팽하면 어떠하더냐?” “오래 가지 못하고 끊어졌습니다.” “느슨하고 팽팽한 것이 적당하면 어떠하더냐?” “맑은 소리가 나게 됩니다.” 그러자 부처가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도를 배우는 것도 마찬가지란다. 마음을 적절하게 조절하면 도를 얻을 수 있느니라.” 부처의 말처럼 하루의 일정도 너무 느슨하거나 팽팽하지 않게 조절하는 것이 필요하다.
오늘 강의 시간에는 호흡 이야기를 좀 했다. 그리고 배 위원의 다른 글에서, 아메리카 대륙에 사는 짧은꼬리땃쥐를 알게 되었다. 그 쥐는 못 먹는 게 없다 한다. 몸길이 10cm에 불과한 포유류지만 식성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독을 분비하는 이빨로 곤충, 달팽이, 지렁이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먹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기보다 몸집이 큰 개구리, 들쥐, 뱀까지 해치운다. 그 쥐는 바쁘게 사는 동물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깨어 있는 동안 온종일 바쁘게 사냥을 하기 때문이다. 심장 박동수가 분당 1200회에 이를 정도로 몸의 대사가 빨라서 3시간 동안 먹지 않거나 하루에 자기 몸무게만큼 먹지 않으면 굶어죽기 때문이다. 이렇게 밤낮 없이 바쁘게 살다 보니 수명은 2년에 불과하다. 그래 나는 살면서, 심장 박동수를 줄이자고 생각했다. 그러려면 너무 바쁘게 살지 말고, 여유를 가져야 한다고 다짐했다. 그래 강의 시간에 호흡 이야기를 했던 거 갔다. 강의 제목이 "와인 인문학"이라 할 말의 범위가 매우 넓다. 사람, 아니 인간과 관계 되는 영역은 다 인문학이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우리의 몸을 지탱해 주는 것은 음식을 섭취하는 일과 매 순간 목숨을 지탱해 주는 심장 박동과 호흡하는 일 두가지라 본다. 심장은 하루에 십만 번 정도 박동한다고 말한다. 사람은 최대 30일 정도 먹지 않아도 살 수 있는데, 심장이 1분 이상 작동하지 않으면 죽는다. 그리고 사람은 하루에 약 2만 3천 번 대기 중에 있는 공기를 입과 코를 통해 호흡하는 데, 사람은 숨을 최대 3분 정도는 참을 수 있다고 한다. 그 이상으로 숨을 쉬지 못하면 바로 죽는다. 숨은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가 자기 보존을 위한 가장 근본적인 활동이다. 그래 호흡훈련을 잘 하면,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다. 특히 제 명(命)만큼 살다가 죽을 수 있다고 본다.
호흡은 잠잘 때, 책을 읽을 때, 산책할 때와 같은 일상에서 무의식적으로 저절로 작동한다. 그런 식으로 우리는 일생동안 해야 할 호흡의 총량이 갖고 태어났다가, 그 양을 다 채우면 우리는 죽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호흡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분노하거나 두려운 상황에 처할 때, 숨이 가빠지고 심장이 빠르게 뛴다. 그래 총량을 낭비하게 된다. 그러니 화를 내거나 오지 않은 미래를 위해 지나치게 두려워하는 것은 생명을 단축시키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숨이 가빠지고 심장 박동이 빨라지면 우리는 감정이며 이성적인 사고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 현대과학은 느리고 깊은 호흡 습관으로 혈압과 심장 박동수를 줄여 주어야, 우리의 일상 생활에 활력이 더 생긴다고 말한다.
소설가 백영옥의 글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의식적으로 호흡을 해보면, 우리는 들이쉬는 숨이 내쉬는 숨보다 더 길다고 느끼고, 늘 들숨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소설가는 자신의 요가 선생님의 다음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그 편견을 깨도록 해주었다. "요가를 할 때는 의식적으로 날숨에 더 신경 써야 해요. 사람들은 대개 들숨을 생의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반대예요. 날숨이 더 중요합니다. 태어날 때 아기는 '아앙~' 하고 호흡을 터뜨립니다. 죽을 때는 어떻죠? '후흡' 하고 숨을 강하게 들이마시며 죽어요. 아이러니하죠."
호흡 명상을 해보면 감정이 진동을 담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명상 호흡법에서 중요한 것은 들숨보다 내보내고 비우는 날숨에 더 신경 써야 한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매 순간 내가 숨을 들이켜듯 더 많이 얻고, 채우고, 느끼려는 자세로 살아왔기 때문에 우리는 들숨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날숨으로 속에 있는 관성이나 낡은 습관을 버리고, 동시에 날숨으로 내 몸 안에 빈 공간을 만들어야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을 깨달은 아침이다.
호흡훈련은 정신적이고 영적인 고양의 첫 관문이다. "새로운 곳에 도달하려면 예전과 다른 선택을 해야 한다. 전과 같은 행동은 전과 같은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제까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말을 하고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아야 한다." 배런 밥티스트의 책 『나는 왜 요가를 하는가』에 나오는 문장이라 한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와는 다른 말을 해야 내가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백영옥 소설가의 말을 직접 들어 본다. 오늘 아침 내가 얻은 지혜이다. "요가를 하면서 많이 하게 되는 말은 '못 해. 할 수 없어' 같은 말이다. 이 말을 습관적으로 내뱉으면 내 몸은 그 말을 기억하고 말에 갇힌다. 습관은 요가 뿐 아니라 삶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들숨을 마시듯 채우고 말겠다는 관성으로 사는 한 내 몸 안에는 어떤 공간도 남아있지 않게 될 것이다. 빽빽한 도심 사이 숲이나 공원처럼, 중요해 보이지 않지만 실은 가장 중요한 그 빈 공간 말이다." 나의 아침 글쓰기는 어제 먹은 것, 어제 생각한 것을 버리고, 새로운 곳으로 나아가려는 의례이다.
배철현 교수처럼, 그날 그날의 생각을 기록으로 남기려는 일이다. 이젠 그게 습관이 되었다. 요즈음 글이 밀려 마음 한구석에 불안을 안겨준다. 그러나 그 불안과 걱정이 글을 쉬지 않고 쓰게 만든다.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는 그래 존 서정적이고 아주 짧지만, 내가 좋아하는 시를 택했다.
가을/함민복
당신 생각을 켜 놓은 채 잠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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