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00.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8월 13일)
암놈과 새끼 침팬지를 비롯한 약자를 지켜주지 않은 알파 메일은 도전자와 권력투쟁을 할 때 무리의 지원을 받지 못한다. 가장 인기 있는 알파 메일 수컷은 관대하고 공평했다. 무리를 지배했고 경쟁자의 도전을 단호하게 물리쳤지만 다른 침팬지를 괴롭히지 않았다. 약자를 보호했고 싸움을 말렸으며 아픈 동료를 돕고 곤경에 빠진 친구를 안심시켰다. 드 발은 그를 ‘진정한 지도자’ 유형으로 규정했다.
프란스 드 발(Frans de Waal)은 호모 사피엔스를 침팬지 수준으로 비하하려고 “권력투쟁은 진화의 산물이며 정치는 인류 역사보다 오래되었다”고 주장한 게 아니었다. 인간의 정치행위와 침팬지의 권력투쟁을 공통의 생물학적 기초 위에서 설명했을 뿐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회생물학'은 ‘동물의 사회성 행동을 생물학적 측면에서 연구하는 학문’이다. 사회 생물학에 따르면, 우리 호모 사피엔스는 벌과 개미 같은 ‘막시류’ 곤충이나 침팬지를 비롯한 ‘영장류’ 동물처럼 군집을 이루어 산다. 먹이 획득과 자녀 양육을 위해 여러 세대가 함께 거주하면서 분업하고 협업한다. 그리고 사회생물학의 기본 전제인 다윈주의(Darwinism) 이론에 따르면, 인간 군집에서 사회성 행동이 진화한 것은 생존과 번식의 확률을 높여주는 ‘적응의 이익’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다윈주의는 인간을 예외로 취급하지 않는다. 호모 사피엔스도 다른 종과 마찬가지이므로 진화의 도정에서 나타난 종으로 여긴다. 인간의 사회성 행동에도 자연선택을 통해 진화한 생물학적 기초가 있다고 믿는다.
인간의 사회성 행동은 매우 다양하지만 특정한 기준을 세우면 몇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예컨대 윤리학자 피터 싱어(Peter Singer)는 <<다윈주의 좌파>>라는 책에서 사회성 행동의 유형을 셋으로 나누었다.
▪ 생산방식과 경제체제와 정부형태 같은 것은 문화마다 크게 다르다. 이런 것은 짧은 역사의 시간에 자주 바뀌었기 때문에 진화와는 직접 관련이 없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 성도덕과 인종주의는 문화에 따라 약간 차이가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생물학적 기초와 관련이 있다고 추정한다.
▪ 사회적 위계와 서열을 형성하는 것은 모든 문화에 공통적이니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의 특성으로 본다. 유전적 생물학적 기초가 확실히 존재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피터 싱어는 사회를 바꾸려고 노력하는 ‘좌파’들에게, 모든 문화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것보다는 문화에 따라 많이 다른 것에 집중하라고 권했다. 인류에게 생물학적으로 주어진 것을 없애려고 하는 개혁은 실패할 가능성이 크고, 일시 성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해도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켜 결국 무위로 돌아간다는 것이 싱어의 주장이었다. 그리고 위계와 서열을 형성하는 종은 호모 사피엔스 뿐 만이 아니라, 침팬지 군집에도 거의 비슷한 행동으로 진화했다.
<<침팬지 폴리틱스(Chimpanzee Politics)>>(프란스 드 발)는 네덜란드 아른험 동물원의 침팬지 무리 관찰기록을 정리한 책이다. 침팬지를 연구해 인간 이해를 증진했다는 평가를 받은 이 책의 핵심은 알파 메일(alpha male, 수컷 우두머리) 침팬지의 ‘보안관 행동’에 대한 서술이다. 흥미로운 것들을 공유한다.
드 발은 동물원의 모든 침팬지에게 이름을 붙이고 수컷 네 마리가 벌인 권력투쟁의 과정과 결말을 특히 세세하게 관찰하고 기록하고 분석했다. 그가 연구자로서 본 첫 번째 알파 메일 이에룬을 밀어내고 권좌를 차지한 두 번째 알파 메일 라윗의 행동이 흥미로웠다. 알파 메일이 되기 전 라윗은 다른 침팬지들의 다툼에 개입할 때 35퍼센트의 확률로 약자 편을 들었다. 그런데 왕좌를 차지한 뒤 이 수치는 69퍼센트로 늘었고 1년이 지나자 86퍼센트까지 올라갔다.
젊은 수컷 니키는 늙은 수컷 이에룬과 연합해 세 번째 알파 메일 자리에 오르는 과정에서 잔인한 유혈사태를 일으켰다. 라윗의 손발과 고환을 물어뜯어 죽인 것이다. 그런데 니키는 라윗과 달리 권좌를 차지하고 나서도 보안관 행동을 하지 않았다. 약자를 편들어 개입하는 비율이 22퍼센트에 지나지 않았다. 분쟁 당사자 가운데 더 센 침팬지를 편드는 경우가 더 많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에룬과 더 젊은 수컷 단디가 니키를 공격했다. 니키는 급하게 도망치다가 사육장을 둘러싼 수로에 빠져 죽었다. 이에룬과 니키가 셋만 있었을 때 라윗을 공격했던 것과 달리, 단디와 이에룬은 무리가 지켜보는 가운데 니키를 공격했다. 이런 상황의 차이에 주목한 드 발은 알파 메일의 보안관 역할이 호의라기보다는 의무에 가깝다는 결론을 내렸다. 암놈과 새끼 침팬지를 비롯한 약자를 지켜주지 않은 알파 메일은 도전자와 권력투쟁을 할 때 무리의 지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드 발은 최신작 <<차이에 관한 생각>> 제9장은 미국 에모리 대학교의 여키스 영장류 연구소에서 관찰한 알파 메일 침팬지 아모스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아모스는 간과 여러 장기에 악성 종양이 생겼는데도 더 버틸 수 없게 된 시점까지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행동하면서 알파 자리를 지켰다. 아모스가 쓰러지자 다른 침팬지가 권좌에 올랐다. 그런데 다른 침팬지들이 앓아 누운 아모스에게 조심스럽게 다가와 보살펴 주었다. 아모스가 죽자 무리의 침팬지들은 며칠 동안 기괴할 정도로 조용했다. 밥을 잘 먹지 않았다. 아모스는 평생 침팬지를 관찰한 드 발이 본 알파 메일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수컷이었다. 그는 관대하고 공평했다. 무리를 지배했고 경쟁자의 도전을 단호하게 물리쳤지만 다른 침팬지를 괴롭히지 않았다. 약자를 보호했고 싸움을 말렸으며 아픈 동료를 돕고 곤경에 빠진 친구를 안심시켰다. 드 발은 그를 ‘진정한 지도자’ 유형으로 규정했다.
반대 유형의 지도자는 “둘 다가 될 수 없다면 사랑받기보다는 남들이 두려워하는 존재가 되는 편이 낫다”는 마키아벨리의 신조를 따르는 ‘무뢰한’이다. 이런 알파 메일은 모두를 공포에 떨게 하고 충성과 복종을 요구하는 데 집착한다. 제인 구달 박사가 야생 영장류를 연구했던 탄자니아 곰베 국립공원의 고블린이라는 침팬지 알파 메일은 다른 개체를 신체적으로 위협하는 방식으로 권력을 행사했다. 어느 날 젊은 도전자가 그에게 도전했다. 그러자 다른 침팬지들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 가세해 고블린의 손발과 고환을 물어뜯었다. 수의사가 항생제를 투여한 덕에 목숨은 부지했지만 권력을 잃은 고블린은 비참한 삶을 피하지 못했다.
오늘 대한민국의 알파 메일은 윤석열 대통령이다. 윤석열이 어떤 유형의 알파 메일인지 우리는 잘 안다. 그는 아모스가 아니라 고블린에 가깝다. 보안관 행동을 거의 하지 않으며, 검찰과 경찰을 동원해 법률적 위해를 가하는 방식으로 권력을 행사한다. 부자 감세, 복지예산과 서민지원 예산 동결 또는 축소, 국가연구개발예산 삭감, 대통령 해외순방 예산 증액, 간호사법, 양곡관리법, 노란봉투법 등에 대한 거부권 행사, 재벌 총수를 동원한 선거운동 성격의 떡볶이 먹방, 해외순방 중의 폭탄주 술자리, 명품백 수수와 인사 개입 등 배우자의 국정개입 의혹, 다수야당 대표와 국회의원들에 대한 무한 수사, 감사원, 권익위, 검찰을 동원한 공영방송 사유화와 언론 탄압 등 거의 언제나 자기 자신과 가족과 친한 사람과 사회적 강자의 편에서 개입했기 때문이다.
인문학의 이론은 중력법칙이나 상대성이론처럼 확실한 진리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물리법칙만큼 확실하지는 않지만 인문학보다는 신뢰할 만한 생물학 이론에 의지해 마음을 추스르고 위로를 얻는 아침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미래는 내년 총선 결과보다 확실하다. 그는 권력과 명예를 모두 잃고 남은 인생을 만인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살게 될 것이다. 언제 어떤 계기 어떤 양상으로 그 시간이 찾아 들지 분명하지 않을 뿐이다.
침팬지 아모스와 고블린의 권력 상실 과정과 상실 이후의 삶을 결정한 것은 윤리 도덕이 아니라, 알파 메일에게 보안관 행동을 요구하는 침팬지의 본능이었다. 호모사피엔스와 침팬지가 공유한 그 본능의 유전자는 두 종이 출현하기 전에 이미 존재했다. 드 발은 그래서 정치의 기원이 인류 역사보다 오래되었다고 한 것이다. 우리 인간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지 않았다. 자연이 그런 능력을 주었기 때문에 문명을 만들고 윤리 도덕을 세울 수 있었다. 본능은 문명보다 끈질기고 힘이 세다. 역사의 시간에는 사라지지 않는다. 대한민국 알파 메일 윤석열이 계속해서 지금까지 처럼 행동한다면 결국 고블린과 같은 결말을 맞을 것이다.
정의/박수소리
정의는
내가 당해서 싫은 것을
남에게 하지 않는 것이다.
정의는
옳고 그름의 기준에서 옳은 것이 아니라,
자기중심적 삶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정의는
나 자신 뿐만 아니라 이웃과 자연에 대한
자비의 마음을 갖는 것이다.
정의는
수오지심(羞惡之心)으로
잘못한 것에 부끄러워하는 마음이다.
다른 글들은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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