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오늘 아침은 68혁명의 부재 때문에 지금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시대착오적인 현상들에 대해 김누리 교수의 책을 읽어가며 정리해 볼 생각이다. 우리사회의 시대착오적인 현상이란 대부분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지만 글로벌 스탠더드의 관점에서 보면 시대에 상당히 뒤떨어진다 것이 김누리 교수의 생각이다. 지난 글들은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그 시대착오적인 현상의 첫 번째가 인권 감수성의 부재이다. 독일 헌법 제1조가 "인간 존엄은 불가침 하다'라 한다. 유럽 헌법 제1조도 같다. 그리고 독일은 물론이고 프랑스 사회에서도 사회적 정의가 가장 우선한다. 우리는 사회정의 보다 사회 질서나 경쟁력을 주로 말한다. 유럽 사회는 인권 감수성도 사회 정의에 기반을 둔다. 우리 사회는 인권 감수성이 모자란다.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예의가 정말 부족하다. 특히 난민이나 이주 노동자, 장애인, 문화적, 성적 소수자에 대힌 기본적인 인식이 상당히 왜곡되어 있다. 이 글을 쓰는 나도 반성한다. 지난 2017년 예멘 난민 500명이 제주도에 들어 왔을 때 우리 국민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 시대착오적인 현상의 두 번째가 소비주의 문화이다. 지금 한국처럼 소비주의가 이렇게 전면적으로 아무런 비판 없이 확장되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유럽에는 완전 소비 없는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나도 도전해 볼 생각이다. 어쨌든 최근에 최대한 소비를 하지 않으려 한다. 환경 보호를 위해 소비를 최소화 하려 한다. 소비할 때마다, 우리는 '미래 생명에 대한 책임'을 당연히 가져야한다. 우리의 삶이란 사실 지구에서 잠시 살다가 떠나는 것이고, 지구는 다음 세대인 미래 생명이 살아야 할 터전이므로 소비를 줄이는 것은 최소한의 책임 의식을 보여주는 일이다. 그래서 유럽의 많은 학생들이나 어른들은 소비할 때 죄책감을 느낀다. 코로나-19와 기후 위기를 보면서, 우리도 이젠 지나친 소비주의를 부끄러워 해야 한다.
2020년 한국은 가장 긴 장마를 겪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올해의 비 이름을 '장마'가 아니라, '기후 위기''고 부른다. 지구는 인간이 가하는 온실가스라는 충격을 받아 오늘날 인간에게 기후위기로 되돌려 주고 있다. 우리에게는 이미 이 기후 위기를 피할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다. 그래서 우리는 빨리 생태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생태 교육을 통해, 환경 의식, 생태적 감수성을 높여야 한다. 스웨덴의 크레타 툰베리가 불러 일으킨 청소년의 "생태반란'은 이런 생태 교육을 바탕으로 해서 생겨난 것이다. 스웨덴의 소녀 크레타 툰베리 이야기는 따로 정리를 해 볼 계획이다.
어제는 모처럼 장맛비가 멈추고, 파란 하늘을 보였다. 그래 아침에 늘 다니던 산책길을 나갔다. 막 목욕을 끝낸 아이 처럼, 천 변이 싱싱했다. 오후에는 동네 분들과 탁구를 열심히 치도, 저녁에는 <우리 마을 제2대학>이 주관한 '와인문화와 소믈리에'에 대한 강의를 성공리에 마치었다. 자신감이 생겼다. 오늘 까지만 류시화 시인을 시를 공유한다. 내일부터는 길에 관한 시들을 연속적으로 공유할 생각이다. 오늘 아침 사진은 어제 산책 길에서 만난 나무 사이로 본 하늘의 모습이다. 긴 장맛비에 씻긴 초록이 눈부시다. 그러나 나는 오늘 시처럼, "짬 낫을 잃은 바닷물처럼", 나는 "생의 집착도 초월도 잊고" 오늘 하루를 또 알차게 보낼 생각이다.
짠 맛을 잃은 바닷물처럼/류시화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 걸까
마치 사탕 하나에 울음을 그치는 어린아이처럼
눈 앞의 것을 껴안고
나는 살았다
삶이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태어나
그것이 꿈인 줄 꿈에도 알지 못하고
무모하게 사랑을 하고 또 헤어졌다
그러다가 나는 집을 떠나
방랑자가 되었다
사람들은 내 앞에서 고개를 돌리고
등 뒤에 서면 다시 한번 쳐다본다
책들은 죽은 것에 불과하고
내가 입은 옷은 색깔도 없는 옷이라서
비를 맞아도
더 이상 물이 빠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 걸까
무엇이 참 기쁘고
무엇이 참 슬픈가
나는 짠 맛을 잃은 바닷물처럼
생의 집착도 초월도 잊었다
오늘 아침 말하고 싶은 것은 한국 사회의 도를 넘는 소비주의 문제이다. 온통 소비만 강조한다. 소비를 해야 일자리가 생기고, 경제가 발전하고, 잘 사는 나라가 된다는 논리가 우리 사회에 지배적이다. 소비주의와 물질주의 논리가 지배적이다. 생태적 상상력, 환경 윤리 의식을 찾아 보기 어렵다. 야수 자본주의가 판을 친다.
성에 대한 죄책감 문제도 소비주의 문제로 접근할 수 있다. 우리는 성을 나쁜 것, 비도덕적인 것으로 악마화 하거나 부끄러운 것으로 은폐한다. 그러니 성에 대해 죄책감이나 수치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김누리 교수는 독일의 성교육을 소개했다. 흥미로운 것은 성교육의 첫 번째 원칙이다. "성과 관련해서 절대 윤리적 평가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성은 생명과 관계되고 인권과 관련된 중요하고 예민한 영역이므로, 성과 관련하여 충분한 책임 의식을 갖도록 가르쳐야 하지만, 그렇다고 성을 악마화해서 아이들의 내면에 죄의식이 생기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서 독일에서 성 범죄에 대해서는 우리 보다 훨씬 더 엄한 처벌이 내려진다고 한다.
김교수가 소개한 아도르노의 다음 말이 나에게도 많은 통찰을 주었다. "민주주의의 최대의 적은 '약한 자아'이다." 그러니까 약한 자아를 가진 사람들로 이루어진 공동체는 민주주의를 할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내 평소 지론이 '위대한 사회는 위대한 개인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하려면 구성원 하나하나가 강한 자아를 가진 성숙한 시민이 되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강한 자아는 주체적이고 자유롭고 독립적인 자아로 나는 해석한다. 김교수는, 이를 위해, 학교에서 우리는 학생들을 강한 자아를 가진 학생들로 키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교수에 의하면, 그런 측면에서 독일에서의 성교육은 가장 중요한 정치교육으로 여긴다고 한다.
이 주장을 이해하려면 프로이드의 이론을 알아야 한다. 프로이드에 따르면, 자아, 에고(ego)는 수퍼에고(super ego)와 리비도(libido) 혹은 이드(Id) 사이에 있는 존재이다. 사회적 규범이나 도덕을 의미하는 슈퍼 에고와 본능과 충동의 세계인 리비도 혹은 이드 사이에서 흔들리고 동요하는 불안한 존재가 바로 에고이다. 그런데 자아, 즉 에고가 형성되는 시기는 곧 리비도가 발현되는 시기이다. 바로 이때 인간은 처음으로 리비도와 슈퍼 에고 사이에서 분열된 에고를 체험하게 된다. 그리고 리비도는 자연적인 현상이므로 인간이 일정한 나이가 되면 이런 생물학적 충동을 느끼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거다. 성의 본능에 대해 억압적인 사회일수록 슈퍼 에고가 리비도를 윤리적으로 공격하고 '악마화'한다. 쉽게 말해, 성적 본능을 사회적으로 억압하고, 윤리적으로 나쁜 것으로 치부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그렇다.
문제는 리비도를 공격하면 리비도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에고가 점점 더 강한 죄의식을 내면 화한다는 것이다. 이 죄의식이 정치적인 의미를 갖는다. 내 안에 살아 있는 것을 악으로 공격하면, 인간의 자아는 죄의식을 내면 화할 수 밖에 없다. 깊은 죄의식을 내면 화한 인간일수록 권력에 굴종 적인 인간이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성 정치학'이 탄생한다. 죄의식을 지닌 자아는 약한 자아이다. 따라서 강한 자아는 심리학의 문제에서 정치학의 문제로 넘어가는 것이다. 그러니까 강한 자아는 성교육과 깊은 관련을 갖는다. 성적 본능을 다루는 방식이 자아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 요약하면 인간의 성을 억압하면 할수록 그 개인은 권력에 굴종 적인 인간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권위주의 성격' 이론이라 한다. 이해 하기 어렵지만, 다시 요약하면, 민주주의 는 강한 자아를 가진 개인을 전제로 하는데, 그런 개인은 권위주의적 성격을 극복한 개인이어야 한다. 그런 개인은 바로 올바른 자아 교육, 즉 성교율들 통해서 길러진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권위주의적 성격 이론에 따르면, 성교육은 가장 중요한 민주주의 교육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유럽은 성교육을 강조한다. 그러니 독일에서의 성교육은 가장 중요한 정치교육으로 여긴다고 말이 이해된다.
자아를 제대로 정립하지 못하고 죄의식을 내면 화하면 권위주의 적인 성격의 인간이 된다. 그 뿐만 아니라, 그런 인간은 자아가 약하다. 죄의식에 짓눌린 그런 약한 자아는 부당한 권력이 압박할 때 이에 맞설 내적 자아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성에 대한 억압이 자아를 약화 시키고, 약화된 자아는 권력에 굴종한다. 여기서 독일의 성교육 첫 번째 목표가 '성을 윤리적으로 비판하는 않는다'는 것, 즉 성을 악마 화하지 않는다는 원칙이라는 말을 이해하겠다. 학교에서 성은 생명과 관련된 문제이고, 동시에 인권과 관계된 민감한 영역이기 때문에 책임감 있게 행동해야 한다고 가르치지만, 결코 윤리적으로 악마 화하지는 않는다. 68혁명이 없는 한국의 상황, 그 세 번째 특징 이야기는 다음 주 월요일로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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