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교육자의 양성 교육부터 문제이다.

4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어제에 이어, "위대하고 위태로운" 우리의 "86세대" 이야기를 이어간다. 많은 이들이 휴가를 떠났는데, 나는 김누리 교수의 글을 읽으며 많은 사유를 하고 있다. 현재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자 없는 민주주의"라는 정상적이지 않은 사회가 된 것은 우리가 소위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 대한 비판과 성찰이 없었기 때문이다. 앞에서 했던 86세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86세대가 정치 민주화를 넘어선 실체적 민주화까지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한 것 같다. 그래 정치적 상상력이 지금부터는 많이 필요하다. 다시 말하면 이상 사회에 대한 비전과 상상력의 지평이 확장되어야 한다. 지난 글들은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1980년대 86 세대들 앞에는 독재 타도라는 명백한 목표가 놓여 있었다. 따라서 새로운 사회에 대한 비전, 이상적인 세계에 대한 상상력 등은 당시로서는 사치였다. 그 당시 내 기억으로, 우리들은 군사 독재의 기나긴 계승 과정(박정희 장기 집권-전두환-노태우로 이어이지는)을 보고 모두 절망에 빠져 있었다. 당시 내 관심은 내가 죽기 전에 내 손으로 대통령을 뽑을 수 있을까 였다. 그런데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말이 현실이 되었다.

그 후 86세대가 보인 행보는 실망스럽다. 그들은 정치 공학적으로 정치 게임에는 능수능란한 반면, 사회 개혁에 무능했다. 김누리 교수는 우리의 교육 시스템과 언론의 문제로 예를 든다. 자세한 내용은 책을 읽어 보시라.

독일의 68혁명 세대들은 1970년대에 교육계와 언론계로 진출하였다고 한다. 왜냐하면 이 분야가 68혁명 정신을 사회적으로 정착 시키고, 영속 시키기에 가장 중요한 영역이라고 본 것이다. 이런 움직임을 사람들은 당시에 "제도 속으로의 행진"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꿈꾸었던 세상을 제도 속으로 들어가서 이루고자 했던 것이다.

반면, 한국의 86세대는 한국의 엘리트 교육 시스템, 학벌 계급 사회에 대한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었다. 그들의 일부가 사교육계의 큰손으로 사교육 기업을 이끌고 있는 것이 그 예이다. 아쉬운 일이다. 이 문제가 한국이 성공적인 정치 민주화와 경제 성장에도 불구하고 '헬조선'이 된 현실과 상당한 연관 관계가 있다는 김교수의 주장에 나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오늘은 <우리마을 2대학>이 주관하여 "와인문화와 소믈리에"에 대한 강좌를 공개적으로 우리 주민들에게 한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많은 이웃들이 '좋은 성적을 받아야 하고, 좋은 대학에 가야 하니, 아이들을 학원에 보낼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게다가 부모들은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려면 돈이 있어야 하니 학원비를 벌려고 자신들의 삶을 포기한다. 더 심각한 것은 돈만 있으면 다 된다는 가치와 돈으로 해결 못하는 것이 없다는 고정관념까지 만들어 낸다는 점이다.. 그리고 돈 때문에 가정들이 무너진다. 악순환이다. 이게 현실이다.  그래 가까운 동네에서 부모들을 위한 학습 공간, <우리마을대학>을 만들게 된 것이다.

이 고리를 어디서부터 끊어야 하나?  문제는 그 점을 항의하고, 비판하고, 저항해야 하지만, 부모들은 발 등에 떨어진 불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여유가 없다. 지면 죽는다고 덤비지만, 사실 시합 전에 승패가 결정 난 게임에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동참할 수 밖에 없다. 이런 교육 정책 실패에 저항해야 할 자는 교육자나 언론이다.

교육자의 양성 교육부터 문제이다. 사범대학에서도 일등 지상주의가 만연하고, 비판능력보다는 암기능력이 좋은 사람이 교사가 된다.  언론들은 비판기능을 상실했다. 권력이 내놓는 보도자료나 베끼는 언론은 언론이 아니다. 문제는 그래야만 살아남고 승진하고 출세하는 길이라고 언론 초년생들은 본능적으로 배워간다는 현실이다. 게다가 자본(광고주)의 눈치를 봐야 하니 선택의 폭이 별로 없다.

그래도 눈만 감고 보자는 교육자나 언론은 그래도 괜찮다. 더 큰 문제는 돈이면 다 된다는 고정관념으로 무장한 이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기득권을 정당화하는 풍토를 만들며, 비판 세력을 제거하고 저항하는 자들을 따돌린다. 비굴하게 살든지, 굴종의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이런 분위기에서 양심적이고 정의로운 사람, 비판의식을 가진 사람은 살아남을 틈새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실험적으로 나는 <우리마을대학>을 만들었다. 새로운 도전은 불안하고 힘들지만, 신이 난다. '새로운 판짜기'이다. 오늘 아침도 류시화 시인의 시를 공유한다. 아침 사진은 비 개인 틈을 이용해  내 주말 농장 진입로에서 찍은 것이다. 길고 긴 장마를 이기고 다시 털고 일어난 들풀은, 오늘 아침 시처럼, "무언의 언어"로 노래 부르며, "맨 몸으로 눞고/맨 몸으로 일어서" "함께 있되 홀로 존재하고" 있다. 우리도 그래야 한다.

들풀/류시화

들풀처럼 살라
마음 가득 바람이 부는
무한 허공의 세상
맨 몸으로 눕고
맨 몸으로 일어서라
함께 있되 홀로 존재하라
과거를 기억하지 말고
미래를 갈망하지 말고
오직 현재에 머물라
언제나 빈 마음으로 남으라
슬픔은 슬픔대로 오게 하고
기쁨은 기쁨대로 가게 하라
그리고는 침묵하라
다만 무언의 언어로
노래 부르라
언제나 들풀처럼
무소유한 영혼으로 남으라

김누리 교수는 한국 사회가 질적으로 새로운 사회로 변화하지 못한 또 하나의 중요한 요인으로 86세대가 가지고 있는 일종의 도덕적 우월감을 지적한다. 그들은 자신들보다 더 왼쪽에 있는 자유롭고 정의롭고 평등한 세계를 주장하는 진보주의자들과 대결해 본 적이 없다. 그들의 상대는 언제나 외세에 기대어 기회주의적으로 사적인 이익만을 탐하는 수구 보수들이었다. 그들은 도덕적 하자가 너무나도 분명해 상대적으로 86세대가 도덕적으로 우월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86세대들은 자기들보다 더 도덕적으로 우월한 진영과 싸워본 적이 없는 상태에서 그들의 내면에 뿌리내린 깊은 도덕적 우월감은 그들을 무능하게 했다. 생산적인 논쟁이 가능했단 진보 세력과 보다 이상적인 사회를 건설하는 방법을 놓고 경쟁했더라면 그들도 지금처럼 무능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의 상대인 수구 보수 세력은 이미 역사의 썰물을 타고 자연 소멸될 세력이다.

여기서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의 흥미로운 분석을 다시 한 번 공유해 본다. 오구라 기조의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를 보면,  "한국에서는 '리(理)'의 중추로부터 배제되는 쪽은 '리'를 장악하는 쪽에 의해 가혹하게 지배 받는다." 그러므로 지금 보수와 진보, 좌파와 우파가 벌이는 '리'의 쟁투는 대한민국 최초로 주류교체를 걸고 벌이는 진검승부이다.

비주류의 선봉에 선 현 정권을 중심으로 한 촛불세력은 두 개의 역사적 전쟁을 동시에 치르고 있다. 안으로는 '적폐 청산'의 '리'를 들고 '대한민국 주류 교체'라는 큰 전쟁을 치르고 있고, 밖으로는 '한반도 평화'의 '리'를 들고 국가의 명운이 걸린 생존 싸움을 하고 있다. 둘 다 위험하다. 왜냐하면 하나라도 패배한다면 상상하기도 싫은 끔찍한 결과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두 싸움 모두 국민적 지지가 관건이다.

주류였던 보수는 단순히 정권을 잃은 것이 아니라 세상을 지배하는 대의명분인 ‘리’를 빼앗겼다. 보수의 사상/이념/비전/이론/정책이 국민의 동의를 잃고 있다. 매력 있는 인물도 없는데, 조직은 사분오열됐고, 메시지는 설득력이 약하다. 그냥 '혐오 정치'를 계속하고 있다. 지역/이념/세대/계층의 전선에서 보수는 주류에서 비주류로, 상수에서 변수로 전락하고 있다. 정치의 기본적인 네 가지 전선, 즉 '혁신 대 기득권', '새로움 대 낡음', '미래 대 과거', '통합 대 분열''서 보수는 패배할 수밖에 없는 뒷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박성민 정치평론가의 분석이다.

그러나 이 전쟁을 우리는 지금도 한창 진행중이다. 지금은 부동산 정책으로 대결하고 있다. 어쨌든 김누리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수구 보수 세력과 싸우는 것은 이젠 역사적 정당성을 갖지 못하다고 본다. 우리는 정치적으로 민주화를 이루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우리가 발 딛고 선 바닥은 지극히 불안하고, 사회적 성숙은 여전히 요원하다는 분석이다.  사실 발전은 압축적으로 할 수 있지만, 성숙은 압축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사회적인 측면에서는 개인들이 성숙해야 발전을 이룬다. 그래 나는 틈나는 대로 위대한 개인이 위대한 사회를 만든다고 주장한다.  개별적으로 브레히트가 말한 것처럼, 우리 사회는 군사독재가 남긴 유산을 내명적으로 잘 청산하지 못하였다. 그것이 성숙한 민주사회로 나아가려는 지금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다.  지금 시간이 없다.

86세대의 내면에 남아 있는 도덕적 정체성이 한국 사회를 개혁하고 변혁하는 동력으로 살아나야 한다. 한 때 정의를 외쳤던 86세대, 도덕적이라고 간주되었던 한 세대의 정치적 실패는 사회 전체에 앤소주의 패배감, 좌절감, 무력감 같은 굉장히 나쁜 사회적 결과를 남기게 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나브로 빠져든 기득권 의식에서 벗어나 사회 변혁의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인문운동_박한표 #우리마을대학_인문운동연구소 #사진하나_시하나 #류시화 #복합와인문화공간_뱅샾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