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1년 8월 11일)
코로나-19 4단계가 22일까지 2주간 또 연장되었다. 비상상황이라 비상한 대책을 강구할 수밖에 없지만, 이런 상황이 오래 지속된다면 좀 견디기 어려울 수도 있다. 딜레마이다. 경제적 어려움도 문제지만, 심리적인 압박감 역시 크다. 옛날이 생각난다. 사실 가까운 이들과 어울려 이야기 꽃을 피우다 보면 긴장도 좀 풀어지고,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감도 좀 덜어지건만 그럴 수 없는 형편이라 안타깝다.
우리는 가끔 식물들의 지혜를 배워야 할 때가 있다. 지금은 땅바닥에 바짝 엎드려 칼바람을 피하며 겨울을 견디는 로제트 식물(방석 식물)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민들레, 질경이, 냉이, 꽃다지, 달맞이 꽃, 개 망초 등이 여기 속한다. 우리가 곧잘 슬픔에 빠지는 것은 고통을 피하려 하기 때문이다. 고통을 피하려는 것은 모든 인간의 본능이지만, 고통은 피하려고 할수록 고통의 장악력은 점점 더 커진다. 인생은 본디 고달픈 것이다. 그 사실을 스스로에게 소환시킬 필요가 있다. 인생은 가지런하게 전개되지 않는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들이 우리 앞길을 가로막기도 하다.
인생은 풀어야 숙제가 아니다. 인생은 살아내야 하는 과정일 뿐이다. 순간순간 성실하게 한걸음 씩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 한걸음만 나아가도 주변의 풍경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먼 미래를 그려볼 것이 없이 지금 당장 절실한 문제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자기 긍정, 더 나아가 자기 신뢰가 중요하다. 다른 이들의 평가나 시선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태도를 갖추는 거다. 흔히 상황이 어렵고, 힘들수록 우리는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히기 쉽다. 그렇게 되면, 자기 비하를 하게 되고, 타자를 향할 때는 '선망'이나 '원망'을 낳는다.
우리는 구별된 장소에서 고요함을 유지하고, 자기 마음을 살피는 시간을 마련해야 한다. 외부의 자극에 반응하는 자기 마음을 살피다 보면, 우리는 별 것도 아닌 일에 온통 마음을 빼앗기고 있음을 자각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마음을 제자리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
<<장자>>의 "인간세"에 나오는 시 같은 문장이 있다. "瞻彼闋者(첨피결자) 虛室生白(허실생백) 吉祥止止(길상지지) 夫且不止(부차부지) 是之謂坐馳(시지위좌치)". ""저 빈 곳을 보라! 텅 빈 방에 밝은 햇빛이 찬다. 행복은 고요함 속에 머무르는 것. 고요함 속에 머무르지 못하면, 이를 일러 '앉아서 달림(坐馳, 좌치)이라 한다."(오강남 역) 이를 위해, 1) 고요히 머물러야 한다. 가만히 앉아 몸과 마음을 고요히 하는 것, 2) 그 중에서 특히 '마음을 모으는 일'이 기본 요건이다. 몸은 가만히 앉아 있으나 마음이 함께 앉아 있지 못하고 사방을 쏘다니게 되면 헛일이다. 이렇게 몸은 앉아 있으나 마음이 쏘다니는 상태를 '좌치'라고 하는데, 가만히 앉아 자기를 완전히 잊어버린다는 좌망과 맞서는 개념이다. 좌망이 마음의 구심(求心)운동이라면, '좌치'는 마음의 원심(遠心) 운동인 셈이다.
금방 다른 생각이 우리 마음을 사로잡는 '좌치'를 우리는 분심(分心)이라 한다. 나뉜 마음이다. 그런 식으로 마음이 떠돌고 있음을 느끼면, 다시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일이 기도이다. 그러면 흙탕물이 가만히 놔두면 흙이 가라앉듯 우리 마음도 고요함 속에 머물 때 가지런해 진다. 마음이 가지런해 졌다는 말은 단순함에 이르렀다는 뜻일 거다.
고요한 오전이다. 어제는 비대면 마을총회에서 2022년 주민참여예산 결과에서 <신성우리마을 토요학교>가 1등으로 선정되었다. 그래 우리 마을 대학 학장님들의 번개 모임이 있었다. "같이 한다는 것"에 생각해 보았다.
같이 한다는 것/이길옥
가장 쉬운 일이면서
가장 어려운 일이다.
썩는 속 덮어야 하고
타는 화 꺼야 한다.
나를 죽여
그 속에 넣어야 하고
죽이고 싶은 충동 감춰야 한다.
용서를 밥 먹듯 해야 하고
안되는 이해를
데리고 살아야 한다.
버리고 싶어도 챙겨야 하고
밀어내고 싶어도 당겨야 한다.
억지를 빼내고
고집을 헐어야 한다.
헛소리를 털어내고
변명은 묻어야 한다.
보기 싫어도
앞에 세워야 하고
넌더리나도 보듬어야 한다.
송충이 같아도
두손으로 감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순해야 한다. 이번에는 <<장자>>의 제4편 "인간세" 2절에서 만난 문장이다. 夫道不欲雜(부도불욕잡) 雜則多(잡즉다) 무릇 도는 잡되지 않아야 한다. 잡되면 용무가 많아지고, 多則擾(다즉요) 擾則憂(요즉우) 용무가 많아지면 어지러워지며, 어지러워지면 근심이 생기고, 憂而不救(우이불구) 근심이 생기면 남을 구원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잡다하지 않은 "단순(單純)은 궁극의 정교함"(배철현)이다. 아인슈타인은 "무언가를 간단하게 설명하지 못한다면, 당신을 그것을 잘 모르는 것입니다"고 말했다. 단순함이 아름다움이다. 그런데 그 단순은 오랜 수련을 거쳐 도달한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거의 완벽한 상태이다. 그러니까 단순은 모자란 것이 아니다. 서툰 것도 아니다. 무용수들의 춤을 보면, 그들은 인간의 한계를 확장하는 고된 훈련을 통해 최적의 몸 상태를 만든다. 그들의 움직임의 가장 큰 특징이 단순이다. 이들은 군더더기(장자는 '익다(益多)'라고 표현) 없는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동작을 만들어 낸다. 나는 <아르떼(ARTE)>라는 방송으로 가끔 세계 최고 무용 공연을 넋 놓고 볼 때가 있다.
배철현 교수가 소개한 영국의 스콜라 철학자 윌리엄 오컴에 의하면, 어떤 명제가 진리인지 거짓인지를 판가름하는 추론의 기준은 불필요한 가정의 제거라 보며, "필요 없이 복잡하게 만들지 마십시오'라 말했다. 이 문장 더 풀이 하면, 문제의 핵심을 모르는 사람은 복잡하게 설명한다. 쓸데 없는 말들로 오히려 본질을 흐린다. 필요 이상으로 복잡하게 설명하는 사람을 피하라는 말이다. 인생이란 삶을 위한 최적의 상태인 단순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인간에게 문명을 가져다 준 두 가지 요소를 배철현 교수는 도시와 문자로 삼는다. 도시는 사적인 이애가 상충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대화와 양보를 통해 공동체 적인 삶을 살겠다고 결심한 추상적인 공간이다. 문자는 이 추상적인 공간을 유기적으로 엮어주는 거룩한 끈이다. 그런데 고대 사람들은 문자를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는 데 사용했는데, 기원전 8세기에 그리스의 호메로스가 알파벳을 완성했다.
호메로스의 천재성은 자신들에게 절실한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해 창조적으로 변용 했다. 영어를 포함한 오늘날의 대부분의 유럽 문자들은 페니키아 알파벳을 수정한 그리스 알파벳의 후손이다. 알파벳은 26개의 문자로 인간의 거의 모든 생각을 표현 수 있는 단순함의 극치이다. 혁명이란 자신이 애지중지하는 이름을 바꾸는 용감한 행위이다. 혁명의 핵심은 꼭 필요한 몇 개만 남기고 나머지를 모두 제거하는 단순함이다.
난 4S를 늘 기억한다. Simple: 단순하게 산다. Small 작은 것으로 만족한다. Smile 화내지 않고 웃으며 산다. Slow: 천천히 느리게 산다. 제1번이 '단순하게 산다'이다. 이 말은 나는 깨끗이 살려고 고집한다'는 말이다. 다른 말로 순박(淳朴)하게 산다는 말이다. 어지러운 시대일수록 들뜨고 부픈 마음을 가라앉히고 진리라는 중심에 연결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자주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야 한다. "나는 매일 매일의 삶에서 단순함과 정직함을 실천하고 있는가?" "나는 함께 하는 공동체 안에서 사랑과 조화를 잘 나누고 있는가?" 이런 질문은 대답이 중요하지 않다. 다만 우리를 성찰로 이끌기 때문이다. 스스로 묻지 않을 때 삶은 깨끗함을 유지하지 못하고, 더러워진다.
단순하게 산다는 것은 세상에서 좋은 일을 하려는 욕구를 쫓는 거다. '박이약지(博而約之)'라는 말이 있다. 폭넓게 섭렵하되 하나의 초점에 집중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제 아무리 폭넓은 섭렵도 하나의 초점으로 집약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널리 읽어라. 그렇지만 그것을 하나의 초점으로 집약 시켜라, 요점을 잡는 것은 눈으로 보아서는 안 되고, 마음에 비추어 보아야 한다. 이게 '박이약지'이다. 코로나-19 상황은 부산하기만 한 우리 삶을 단순하게 만들 것을 요구하고 있다. 기후 위기 시대가 요구하는 삶의 태도도 마찬가지이다.
그 길은 주변 사람들에게 유쾌함을 선물하는 일이다. 그리고 유쾌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일이다. 허위단심(순수 우리말, 허우적거리며 무척 애를 씀)으로 올라간 산마루에서 만나는 서늘한 바람이 지친 몸과 마음을 소생시키는 것처럼, 누군가에게 시원한 바람이 되는 하루를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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