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2년 8월 2일)
오늘은 이 번주 읽을 노자 <<도덕경>> 제34장을 정밀 독해 한다. 원문과 번역을 우선 공유한다. 3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아침에 노자 한 장을 읽는 것은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 일이다.
1. 大道氾兮(대도범혜)하니 其可左右(기가좌우)하고, 萬物恃之而生而不辭(만물시지이생이불사)하고 功成不名有(공성불명유)하고 衣養萬物而不爲主(의양만물이불위주)한다. 이는 '큰 도가 넘치니 좌우 어느 쪽이든 만물이 생을 의지해도 사양하지 않고 일을 이루고도 이름을 드러내지 않는다. 만물을 입히고 먹이지만 주인 노릇을 하지 않는다.'
2. 常無欲(상무욕)하니 可名於小(가명어소)하지만 萬物歸焉(만물귀언)하고 而不爲主(이불위주)하니 可名爲大(가명위대)하다. 이는 '언제나 욕심이 없으니 이름 하여 작음이라 한다. 만물이 귀의 해도 주인 노릇 하려 하지 않으니 이름 하여 큼이라 한다.'
3. 以其終不自爲大(이기종부자위대)하니 故能成其大(고능성기대)하다. 이는 '일을 끝내고도 스스로를 크다고 여기지 않으니 능히 큰일을 이룰 수 있다'는 거다
도올 김용옥의 해석을 들어 본다. "큰 도는 범람하는 물과도 같다. 죄로도 갈 수 있고 우로도 갈 수 있는 것이다. 만물이 이 도에 의지하여 생하는데도 도는 생하는 역할을 사양하는 법이 없다. 공이 이루어져도 그 공명을 가지려 하지 않는다. 만물을 입히고 먹이면서도 주인 노릇 하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항상 무욕하니 작다고 이름할 수도 있다. 또한 만물이 모두 그에게로 돌아가는데 주인노릇 하지 않으니 크다고 이름할 수도 있는 것이다. 끝내 스스로 크다 하지 않으니 그러므로 능히 그 큼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도는 넓고 크고 깊다. 인간의 잣대로는 도저히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광활하다. 좌우 어느 쪽에서 보아도 그 크기와 넓이 깊이는 변함없다. 도는 만물을 껴안고도 남을 정도로 그 품이 넉넉하다. 내가 낳고 길렀지만 ‘내 자식’ ‘내 소유’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름을 드러내는 일도 없고 공로를 인정받으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아무런 욕심이 없다. 티끌만한 크기의 욕심도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도는 지극히 작다. 그러나 마음속에 옹졸함이나 욕심이 없기 때문에 그 어떤 것도 배척하지 않고 다 수용한다.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그래서 가장 크고 가장 위대하다. 인터넷에서 읽은 것이다.
정밀 독해를 한다.
1. 大道氾兮(대도범혜)하니 其可左右(기가좌우)하고, 萬物恃之而生而不辭(만물시지이생이불사)하고 功成不名有(공성불명유)하고 衣養萬物而不爲主(의양만물이불위주)한다.
도는 홍수 때 물이 범람하여 사방에 퍼져 있듯이 없는 데가 없고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이 어디에나 편재한 우주의 근본 원리이다. 이런 도는 묵묵히 온갖 존재의 근원으로 모든 존재를 현존하게 하고, 생성화육(生成化育)을 가능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위대한 그 무엇이지만 그렇다고 자기를 드러내거나 이것들을 지배하거나 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범(汎)"은 '넘친다'는 뜻이지만, 넘쳐서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는, 부족함이 없이 어느 곳 어디 에든 그야말로 무소 부재하다는 뜻으로 읽는다. 그래서 대도는 두루미친다고 한다. 좌며 우며 어느 곳에도 치우침이 없다. 그래서 좌우 구별이 없다. 내편 내편도 없다. 공정하다. 원근친소, 희로애락에 끌림이 없다. "불사(不辭)"의 "사(辭)"는 '말한다'와 '사양한다'는 두 개의 뜻이 있으나 여기서 후자의 것으로 읽었다. 도는 생성의 기능을 거절하거나 중단하거나 사양함이 없다는 것으로 보았다. 도의 꾸준한 생성 작용을 말한 것이다. 오늘 아침의 사진 속에서 나는 도를 보았다.
도의 상징인 어머니는 자식을 낳아 기르면서 자식이 깨어 있을 때, 잠잘 때나 놀 때나 아플 때나 언제나 옆에서 그림자처럼, 이슬처럼 사랑으로 덮어 주고 적셔 준다. 자식이 아무리 성가시게 하더라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자식에게 무엇을 바라지도 않으며 평생 자식을 붙들고 놓아 주지 않은 채 좌지우지하려 하지도 않는다. 참된 어머니는 자식을 소유하려 하거나 잘 길러 그 덕에 자기 위신을 높이거나 가문의 이름을 빛내려 하지도 않는다. 이렇게 헌신적으로 자기를 비우며 자식만을 위해 존재하는 어머니는 자기를 위해서는 아무런 욕심도 없고,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으니, 이런 비어 있는 상태를 묘사해야 한다면, '작음'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어머니는 모든 자식의 모태요, 자식의 필요를 채워 주는 끊임 없는 공급원이요, 또 자식을 모두 감싸 안는 한없이 넓은 품이다. 그래서 이런 상태를 묘사한다면 '크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만물이 도에 의지하여 생겨나지만 그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공을 이루고 나서 공이 있다고 하지 않는다. 노자가 다른 곳에서 말한 "功成而不居(공성이불거)"가 생각난다. 이 말은 "공이 이루어져도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한다"는 거다. 자신이 공을 쌓고 그 공을 주장하지 않는다는 거다. 쉽게 말하면, 무엇을 해 놓고도 뽐내지 않는다는 거다. 내가 무엇을 성취한다 할지라도 그 열매를 독차지하고, 그 성과를 따먹으면서, 그 성과 속에서 안주하는 삶의 태도를 근원적으로 벗어 내버리는 거다.
2. 常無欲(상무욕)하니 可名於小(가명어소)하지만 萬物歸焉(만물귀언)하고 而不爲主(이불위주)하니 可名爲大(가명위대)하다.
작다는 것은 없는 것 같이 한다는 말이다. 도를 행하고, 도를 행함에 따라 덕이 나오고 그 덕으로 인해 만물이 살아가는 데도 마땅히 행할 뿐 드러내지 않으니 없는 것 같다. 그러므로 '작다'라 하였다. 그러나 도는 작다고도 말 할 수 있고, 크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우리의 삶이 때로는 타인들에게 얕잡아 뵐 수도 있고, 또 때로는 위대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그 따위 평가에 아랑곳하지 않고 생성작용을 계속함으로써 위대함을 이룩해야 한다는 인생의 지혜를 말하고 있는 거다. 도올 김용옥의 강의에서 들은 내용이다. 삶은 그냥 계속 살아내면서 생성할 뿐이다. 그러면서 끝내 스스로 크다 하지 않으니 결국은 그 큼을 이룩할 수 있는 것이다. 노자적 삶을 사는 사람은 작게 보인다 하여 분노하지 아니하고, 크게 보인다고 자만치 아니한다. 우리가 노자를 읽고 깨닫는다고 하는 것은 이러한 덕성을 지닌 큰 인격을 이룬다는 것이다.
3. 其終不自爲大(이기종부자위대)하니 故能成其大(고능성기대)하다.
만물이 되돌아올 귀의처인데 주인이라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크다고 이름할 수 있다. 마칠 때까지 스스로 크다고 하지 않으므로 능히 큰 것을 이룰 수 있다. 이러한 대도를 본받아서 좀 겸손해지라고 한 것이다. 도를 따르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이로움을 줄 뿐 공로를 주장하거나 이름을 내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무슨 일을 하고 그것으로 남의 인정을 받으려는 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능적인 욕망이다. 그러나 <<논어>>에 나오는 것처럼,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을까 염려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아주지 않는 일이 있나 염려하는" 거다. 무슨 일을 할 때 남이 알아줄 것을 바라지도 말고, 처음부터 그런 것을 의식마저 하지 말고 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이렇게 할 때 진정으로 "큰 것을 이룰 수가 있다"는 것이다.
오늘 아침 시처럼, 나도 먼지가 되고 싶다. 어느 곳을 가야 한다는, 무엇 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없다. 어차피 먼지로 돌아가는 인생이다. 살아 애착이 다 부질없어라. 누구의 주목도 받지 않은 채, 아무것도 신경 쓸 필요 없이 한없이 가볍게 살아가고 싶다.
먼지가 되겠다/송선미
당신을 만나서
선생님이나 변호사, 검사나 약사, 의사나 화가
엄마나 아빠, 또는 그 무엇이
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았어요
먼지가 되어도 된다는 것을 알았어요
내 아주 오랜 꿈은 먼지가 되는 것
아무도 모르게
남들 눈에 띄지 않게 폴폴
어딜 가야 한다는
무엇 되어야 한다는
그런 것 없이
그냥 이러저리 떠다니다가
빗자루에 휙 쓸려 쓰레기통에 담겨 버려지기도 하는
또는 운 좋게 어느 집 방구석에서
일주일이고 한 달이고 십 년이고
가만히 아무렇지도 않게 움직일 필요도 없는
나는 먼지가 되고 싶어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싶어요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이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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