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돈키호테는 제정신을 되찾자 죽는다, 그러나 우리들의 마음 속에 있는 돈키호테는 아직도 살아 있다.

5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는 8월이 되면 다시 읽어보고 싶은 시이다. "8월/오르는 길을 멈추고 한번쯤/돌아가는 길을 생각하게 만드는/달이다. (…) 8월은/정상에 오르기 전 한번쯤/녹음에 지쳐 단풍이 드는/가을 산을 생각하는/달이다." 그러나 더위가 극에 달하고 있다. 이런 더운 날에는 동네 시원한 카페에서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광기(狂氣)를 즐기는' 돈키호테를 만나는 것이 좋다. 그는 꿈을 꾸기 때문이다. 비록 이룰 수 없는 꿈일지라도.

돈키호테는 스페인 작가 세르반테스가 쓴 소설 『재기 발랄한 시골 귀족 라 만차의 돈키호테』의 주인공이다. 이 책을 이야기 하는 것은 지금은 방학이지만 8월 27일 화요일부터 <초연결 시대, 인간을 말하다>라는 주제 아래 연이어 8번의 특강을 더 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그 때를 위해 강의 교재를 만드는 중이다. 이어서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와 유발 하라리 『호모 데우스』이야기 까지 정리하면 끝이다. 할 일이 많아 더운 줄 모른다.

세르반테스가 창조한 돈키호테는 400년이 흐른 지금도 세상 사람들이 친숙하게 화제에 올리는 사랑받는  ‘인물’이다. 소설이 발표된 이후 돈키호테는 과대망상에 빠져 어이없는 소동을 일삼는 충동적 몽상가로 회자돼 왔다. 다른 한편으로는 꿈과 이상을 위해 행동을 아끼지 않는 불굴의 인간형으로도 받아들여졌다. 그러면서 우스꽝스럽긴 하나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한번쯤은 그처럼 살아보고 싶게 만드는 매력을 가진 인물이고, 우리를 더워도 활동하게 만드는 동력을 준다. 휴가철에 읽을 거리로 강력 추천한다.

다 잘 알다시피, 돈키호테의 장엄한 이야기는 '라 만차(La Mancha)라는 스페인의 어느 시골마을에서부터 시작한다. 한국 시장에는 이 지역의 와인 수입된다. 그 마을에 사는 알론소 키하노는 쉰 가까운 나이에도 군살 없이 골격이 튼튼하고 얼굴이 삐쩍 마른 시골 귀족이었다. 마흔이 넘은 가정부와 스무 살이 채 안된 조카딸과 함께 농사일을 관리하며 살아가던 그는 언제부터 기사소설에 탐닉하게 된다. 당대 유행하던 기사소설에 너무 빠져든 그는 좋아하던 사냥도 그만두고, 책을 사느라 경작지까지 모두 팔아 치운다. 며칠이고 잠도 자지 않고 밤을 새워 책을 읽던 그는 소설 속 이야기들을 모두 현실이라고 믿기 시작한다. 결국 그는 스스로 기사가 되어 세상을 떠돌아다니기로 마음먹는다.

증조할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낡은 칼과 창, 그리고 얼굴을 가리는 아래 덮개가 떨어져 나간 투구를 어설프게 손질한다. 그리고 당당한 기사로서 "돈키호테 데 라 만차(라 만차의 돈키호테)"라는 이름을 스스로에게 붙인다. 또 머리는 부스럼 투성이에다 볼품없이 삐쩍 마른 자신의 말(馬)에도 ‘로시난테’라는 근사한 이름을 붙여준다. 그리고 돈키호테 못지않게 흥미로운 인물은 같은 마을 농부인 '산초 판사'이다. 어리석어 보이면서도 입담 좋고 착한 그는 돈키호테의 충직한 하인이 된다. 산초 판사는 섬 하나를 정복한 후 그 섬의 영주로 앉혀주겠다는 돈키호테의 약속에 솔깃해서 처자식을 남겨두고 험난한 모험의 길에 함께 나선다. 돈키호테는 도탄에 빠진 세상을 구하고 부정과 비리를 바로잡으며 가난하고 천대받는 자들을 도와주겠다고 다짐하며 긴 여정을 시작한다. 비록 망상에서 비롯된 다짐이었지만 실제로 그는 약하고 상처받은 자에게는 부드럽고 겸손한 태도를 보이며 악당으로 ‘보이는’ 상대를 마주하면 불굴의 용기를 발휘한다.

이 책은 한 번 잡으면 놓을 수 없다. 너무 흥미진진해서. 그런데 사람들은 책이 너무 두껍고, 두 권이나 된다고 처음부터 겁을 먹는다. 내가 알고 있는 이 세상의 모든 소설 중에 가장 가치 있고, 재미난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처움에는 이름들이 익숙하지 않아 당혹스럽다. 그래 몇 줄로 이야기를 요약하며, 등장인물을 잘 소개했다.

돈키호테는 미친 듯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소설의 끝 부분에서, 흥미 반 장난 반으로 돈키호테를 자신들의 저택에 정중히 초대해 돈키호테의 망상에 맞장구 치며 함께 생활한 어느 공작 부부가 있었다. 이들은 돈키호테가 산초에게 섬의 영주를 시켜주겠다고 약속한 사실을 알고는 실제로 산초에게 바라따리아라는 섬을 다스리도록 해준다. 섬으로 떠나기 전 산초에게 건넨 충고를 읽어 보면, 그는 미친 것이 아니라, 그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행동으로 벌을 주어야 될 사람을 말로 학대하지는 말게. 그 불행한 자에게는 형벌의 고통만으로도 충분한데, 다른 나쁜 말까지 덧붙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자네의 관할 아래서 죄를 지은 사람은 타락한 우리 인간 본성의 양태를 벗어나지 못한 불쌍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나.” 라 만차 마을 신부는 돈키호테를 또 이렇게 평가한다. “이 착한 양반이 순진한 엉터리 소리를 해서 미친 것 같아 보이지만, 다른 일을 말하는 걸 보면 아주 기막히게 논리 정연하고, 무엇에나 온전하고 밝은 지혜를 가진 것 같거든요.”

그래, 돈키호테와 같은 고향 사람인 산손 카르라스코라는 학사는 신부와 함께 돈키호테가 제정신을 되찾아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도와주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그런 그에게 어떤 지체 높은 부자가 만류한다. “돈키호테가 그의 허튼 짓으로 우리 모두를 재미있게 한 그 즐거움에 비하면 그가 정신이 말짱해져 얻는 이득은 그에 못 미칠 거라는 것을 모르세요?” 결국 신부, 이발사, 학사 등 고향 마을 사람들은 속임수를 써서 돈키호테와 산초를 마을로 데려온다. 고향에 돌아온 지 얼마쯤 지나 돈키호테는 제정신을 되찾고 알론소 키하노 영감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며칠 후 돈키호테는 숨을 거둔다. 제정신을 되찾자 곧 세상을 떠난 것이다.

꿈꾸지 않고, 이상을 향해 돌진하지 않는 돈키호테는 더 이상 돈키호테가 아니며, 그런 그에게 삶이란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돈키호테는 제정신을 되찾자 죽는다, 그러나 우리들의 마음 속에 있는 돈키호테는 아직도 살아 있다. 8월은 돈키호테처럼 꿈과 이상을 가지고, 더 힘차게 모험을 떠나는 달이었으면 한다. 이 달에는 고향친구들과 회갑 기념 여행으로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 배를 타고 간다. 그 때를 생각하면, 8월의 시작이 즐겁다.

사람들은 스마트폰의 조언을 덮어놓고 따르고, 의사가 처방하는 약을 흔쾌히 복용하면서도, 업그레이드된 초인간(호모 데우스)에 대해 들으면 이렇게 말한단다.  "차라리 그전에 죽을래요." 한 친구는 나에게 늙는 것의 가장 두려운 점은 세상과 무관한 존재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세상 돌아가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세상에 도움도 안 되는, 추억만 붙들고 사는 늙은이가 되는 것이 두렵다는 것이다. 유발 하라리,  『호모데우스 : 미래의 역사』에서 읽었다. 그러니까 늙는 것이 두려우면 공부를 하며, 세상과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더욱 더 세상과 교류를 하여야 한다.

8월의 시/오세영

8월은
오르는 길을 멈추고 한번쯤
돌아가는 길을 생각하게 만드는
달이다.

피는 꽃이 지는 꽃을 만나듯
가는 파도가 오는 파도를 만나듯
인생이란 가는 것이 또한
오는 것
풀섶에 산나리, 초롱꽃이 한창인데
세상은 온통 초록으로 법석이는데

8월은
정상에 오르기 전 한번쯤
녹음에 지쳐 단풍이 드는
가을 산을 생각하는
달이다.

#인문운동가_박한표 #대전문화연대 #사진하나-시하나 #오세영 #복합와인문화공간_뱅샾62

PS
돈키호테가 벌인 가장 우스꽝스러운 소동은 풍차와 벌인 싸움이다. 평원을 지나던 중 멀리 풍차 30~40개가 나타나자 풍차들을 거인들로 착각하고 로시난테에 박차를 가하며 달려든다. 산초 판사가 그건 풍차일 뿐이라며 만류하지만 어느새 세차게 돌아가던 풍차 날개에 부딪혀 로시난테와 함께 나둥그러진다.

기행은 멈추지 않는다. 신부가 인도하는 장례 행렬을, 억울하게 죽은 자의 시신을 탈취한 악당의 무리로 여겨, 신부에게 시신을 내놓으라며 생떼를 쓴다. 초원의 양떼를 적군의 행렬로 착각해 양들을 공격하다 목동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는다. 비를 피하기 위해 머리에 쓴 어느 이발사의 면도용 대야를 빼앗고는 그게 진귀한 황금투구라며 자신의 머리에 쓰고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기도 한다. ‘사악한 무리’를 무찌르기 위한 공격에서 어쩌다 재수 좋게 ‘승리’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 두들겨 맞는 등 수난을 당하기 일쑤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일으키는 돈키호테의 소동으로 산초 판사는 물론 로시난테, 그리고 산초의 당나귀도 함께 고초를 입는다.

갈비뼈가 부러지고 온몸 성한 곳 없이 다치더라도 모험을 포기하지 않는 강인한 돈키호테지만 마음 한편에는 따뜻한 연민도 스며 있다. 한번은 양떼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는 구실로 여러 달 밀린 품삯을 주지 않고 어린 하인을 학대하는 농부를 크게 꾸짖으며 매질을 멈추게 하고 밀린 품삯을 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낸다. 연인으로부터 버림받은 어느 사내의 슬픈 사연을 들을 때는 자신의 일처럼 아파하며 위로를 보내는 모습도 보인다. 돈키호테의 기이한 모험은 서서히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진다. 많은 이들은 그에게 조롱을 보낸다. 하지만 세상과 인간에 대한 깊은 지혜와 이해심이 그의 광기 이면에 숨어 있음을 인정하는 이들도 생겨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