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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다산(多産)으로 요란한 골목. 눈부신 출산이다.

5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장미는 그리스 신화의 아름다움의 여신 아프로디테(로마신화 비너스)의 꽃이다. 이 화려하고 아름다운 꽃과 함께  즐겁고 행복한 오늘을 맞이하고 싶다. "눈부신 출산"이다.

어제는 이미 과거 속에 묻혀 있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날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날은 바로 오늘이다. 난 이런 '화장실 교훈'적인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진부하다. 진부(陳腐)는, 한자로 풀이하면, '썩은 고기(腐)'를 남들이 보라고 '전시하는(陳)' 어리석음을 뜻한다. 이렇게 고기가 썩는 줄도 모르고 남들에게 과시하는 사람을 가리켜 우리는 '진부한 사람'이라고 한다. 그런 사람은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자신의 강점인 줄 알았던 고기 때문에 결국 망하고 만다. 그 반대가 참신이다. 참신(斬新)은 한자어만 봐도 어렵다. '참(斬)'자는 고대 중국에서 죄인을 죽이던 극형 틀인 수레와 도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니까 참신이란 도끼로 치듯 과거의 구태의연함과 완전히 단절한다는 뜻이다. 과거와 결연히 단절하고 새로 태어나는 일은 쉽지 않다.
  
소크라테스 식의 대화법이 자신들의 진부함을 스스로 헤아려 알도록 하는 것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에게 편견과 무지에 사로잡혀 있음을 넌지시 알려준다. 그런 식으로 내가 참신한지, 진부한지는 스스로 자신에게 질문해 보아야 한다. 반면, 참신한 사람은 자신의 본모습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채찍질을 한다. 그래 인문운동가는 매순간 진부함을 떨쳐버리려 애를 쓴다.

"내일은 없다. 오늘이 좋습니다." 이 말은 내 인생의 만트라이다. '만트라'는 산스크리트어로, '만'은 '마음'을 의미하고, '트라'는 '도구'이다. 만트라를 말 그대로 하면, '마음 도구'이다. 특정한 음절이나 단어, 문장을 반복하면 강력한 파동이 생겨 마음이 힘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만트라는 나를 정신차리게 만드는 경종이다.

부패와 발효는 똑같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어떤 미생물이 작용하는가에 따라 해로운 변화와 이로운 변화로 나뉘듯이, 어떤 문장이나 단어는 무의식 속에서 정신을 부패 시키고, 어떤 단어와 문장은 기도처럼 마음에 희망과 의지를 발효시킨다. 이게 '만트라'이다.

"내일은 없다. 오늘이 좋습니다"는 라틴어로 '카르페 디엠'이라 말 말 수 있다. '가르페 디엠'에서 '디엠'은 '하루'라는 의미이다. 이 하루는 하늘이 주신 기회이다.  우리는 그 기회를 낚아채야 한다. '카르페'는 카르페레carpere라는 동사의 단수 명령형이다. '카르페레'는 '과실을 따다', '곡식을 추수하다'라는 말이다. 농부들이 사용하던 말이란다. 농부에게 가을은 자신이 봄에 심은 씨앗이 만들어 낸 기적을 거두는 때이다. 농부가 잘 익은 과일을 나뭇가지에서 떼어내려면 과일의 당분과 싱싱함이 최고인 순간을 감지해야 한다. 즉 수확의 시점을 정확하게 잡아야 한다. 그 시간이 지나면, 과일은 땅에 떨어지고 만다. 다른 각도로 말하면, 잘 익은 곡식을 얻기 위해서는 봄에 씨앗을 심고, 여름에 거름을 주고, 병충해를 막기 위한 노동을 해야 한다. 봄에 씨앗을 심고, 오랜 기간 그 과일이나 곡식을 돌 본 사람만이 '카르페레' 할 수 있다. '카르페레'에 고대 그리스어의 어원을 적용하면, 과일과 곡식은 봄부터 쓸데 없는 것들을 걸러내는 오랜 작업을 통해 얻어지는 신의 선물이다. 정리하면, 카르페 디엠이란 말은 '오늘이라는 과일을 따먹어라', 혹은 '오늘이라는 곡식을 추수하라' 정도가 될 것이다. 또한 오랫동안 쓸데 없는 가지를 쳐왔는가를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나에게 오늘은 수확할 과일이 너무 많다. 오전에는 마을활동가들에게 <다르게 살기란 일상을 바꾸기다>라는 강의를 하고, 점심에는 오랫동안 만나고 있는 <예~~~술>팀과 양정무 교수의 <미술사 이야기>를 함께 읽는다. 그리고 늦은 오후에는 <초연결 시대, 인간을 말하다> 특강 2회차 강의가 있다. 유발 하라리의 <호모 사피엔스>에 대한 이야기를 할 예정이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저녁 7시부터는 <몸짓으로 소통하다>는 주제로 춤을 배우기 시작한다. 카르페 디엠이다. 장미 나무가 "눈부신 출산'을 하는 것처럼.

넝쿨장미/마경덕
                                            
봄볕이 등 기대고 간 담벼락, 만삭의 오월 산모들, 설핏 젖꽃판 비치더니 발그레 젖가슴 벌어진다. 휘늘어진 치맛자락 땅에 젖는다. 한나절 벽을 잡고 몸을 뒤튼, 벌겋게 달아오른 앙다문 신음소리, 미끈 불끈 양수가 터진다. 지나가던 바람이 아이를 받아낸다. 산파의 손을 찌르는 가시 탯줄, 좁은 골목에 줄줄이 아이들이 태어난다. 설익은 풋배꼽들, 투명한 햇살에 배꼽이 익는다. 배내똥 묻은 기저귀 담벼락에 널린다.

까치발을 한 젊은 여자, 장바구니에 장미 한 송이를 담아간다. 입양 가는 아이가 울음을 터뜨린다. 다산(多産)으로 요란한 골목. 눈부신 출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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