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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우리는 죽음을 알고 있지만, 그것과 알고 지낼 생각은 없다.

2725.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5월 20일)

죽음은 최종적이고 어길 수 없는 홀로 됨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이 약속하는 소멸을 공포로 바라볼 뿐이다. 우리는 죽음을 알고 있지만, 그것과 알고 지낼 생각은 없다. 사실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은 살아 있는 기간만큼 죽어가고 있다. 우리 인간도 삶이 우리를 죽인다. 그러나 우리가 성취한 모든 것, 예술, 시, 과학은 이런 죽음의 직접 산물이다. 그러니까 죽음은 결코 무감각하거나 흉측한 것이 아니라 행성이라는 이 엔진을 돌아가게 하는 연료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세계에 죽음의 최종적 고독이 없다면 재앙일 것이다. 그런데 최근 인간들이 불멸의 상태를 꿈꾸고 그곳으로 달려간다. 수렵채취 단계 인간들의 평균수명은 고작 30-40세였다. 높은 영아 사망률은 평균 수명의 연장을 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었고, 최근까지도 믿기 힘들 정도로 흔한 현상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예만 들어도 1960년대 평균 수명이 70세였고, 2014년에는 79세였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그 기간동안 32세에서 60세로 늘었다. 이런 수치는 물론 불평등하지만, 그래도 전 세계적으로 수명이 연장되고 있다. 한편 유전공학들에 의하면, 유전자를 변형시키거나 인간의 노화 프로그램에 제동을 걸든 혈류에 세포 오염을 청소해줄 나노 로봇을 쏟아 붇는 방법 등으로 우리의 기대 수명을, 수명의 한계라고 추정되는 120세마저 넘어서도록 늘려줄 거라 한다.

문제는 과학 발전이 인간의 수명을 늘려주는 동안, 그것들은 죽음의 본질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 또는 그것에 대한 경외심을 쫓아버린다는 점이다. 그래서 영원히 지속되는 고립을,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의 영구적인 격리를 고집하는 죽음은 '치료'하거나 무시해야 하는 어떤 것이 되었다. 과학자들은 노화를 자연적인 진행 과정이 아니라, '의학의 문제'라 본다. 그들의 생각에 따르면, 인간은 기계이므로 노화와 노화로 인한 죽음은 우리의 하드웨어나 프로그래밍의 결함, 우리가 해결할 수 있어야 하는 결함임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물론 삶을 최대한 건강하게 만들고, 고통을 최소화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문제는 미래 세대를 영구적인 경제적 실패에 빠뜨릴 수 있다. 예컨대, 젊은 성인들이 일자리와 자원을 놓고 고조부들과 경쟁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 더 나쁜 시나리오는 우리의 고조부들이 경쟁력을 잃고 집단적 치매 상태로 후퇴할 가능성이다. 

그렇지만 탄소를 재료로 하는 생명체는 불멸을 누리기에는  너무 허약하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영원히 죽지 않는 여인이 나온다. 그 이름이 시빌레이다. 그녀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무녀를 총칭하기도 하지만 원래는 아름다운 여인의 이름이었다. 시빌레가 젊고 아름다울 무렵, 아폴론은 그녀에게 구애하며 약속했다. "내 사랑을 받아준다면 무슨 소원이든 들어주겠소." 시빌레는 손에 한 움큼의 모래를 쥐고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이 모래알의 수만큼 오래 살게 해주세요."

영원히 사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없는 신의 영역이었지만 아폴론은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런데 시빌레가 깜빡 잊고 놓친 것이 있었다. 그것은 젊음이었다. 모래알의 수만큼 오래 살게 해 달라고는 했지만, 젊은 모습 그대로 살게 해달라는 말을 미처 하지 못한 것이다. 시빌레는 소원을 이루었다. 그러나 마음이 변하여 더 이상 아폴론을 사랑하지 않았다. 화가 난 아폴론은 그녀에게 약속한 대로 모래알만큼의 수명을 주었다. 그런데 늙도록 내버려 두었다. 시빌레는 결국 늙고 지친 몸으로 무수히 많은 세월을 살아야 했다. 700년도 넘게 살고 나니 시빌레의 소원은 오직 한 가지였다. "제발 나를 죽게 해주세요."  

늙어서 몸이 점점 줄어든 시빌레는 나무 구멍 속에 넣어져 매달려 있었다. 오직 죽고 싶다는 소원 하나를 마음에 품고서. 시빌레는 영원히 살았으나 영원히 살았기 때문에 불행한 사람이었다. 제발 죽게 해달라는 소원 하나만 품고 살아야 했던 그녀가 우리에게 전해준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축복처럼 받아들이라고. 죽음이 있기에 주어진 생이 소중한 것이라고.

신과 인간이 다른 차이는 '신은 죽지 않는다'이다. 그러나 인간은 죽는다. 누구나 언젠가는 죽는다. 생로병사, 그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숙명이다. '늙는다는 것은 신의 은총'이라는 독일 속담이 있다. 장 폴 사르트르도 단언했다. '나이 듦은 또 하나의 축복'이라고. 그러나 과연 늙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아무도 늙고 싶지 않아 한다. 늙고 싶지 않다는 것은 죽고 싶지 않다는 것과 통한다.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 모두 살고 싶어 한다. 그것도 아주 오래오래. 그러나 영원히 죽지 않고 살아 있다면, 그것은 축복일까, 형벌일까? 

우린 인생이 너무 짧다고 한탄한다. 그러나 짧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 얼마나 많은가. 꽃이 아름다운 것은 그 꽃이 속절없이 지기 때문이다. 사랑이 아름다운 것은 뜨겁던 그 사랑이 쓸쓸히 식어 가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 역시 언젠가는 죽기 때문에, 그래서 소중하고 그래서 아름답다. 


삶을 살지 않은 채로 죽지 않으리라/도나 마르코바

나는 삶을 살지 않은 채로 죽지 않으리라.
넘어지거나 불에 델까
두려워하며 살지는 않으리라.
나는 나의 날들을 살기로 선택할 것이다.
내 삶이 나를 더 많이 열게 하고,
스스로 덜 두려워하고
더 다가가기 쉽게 할 것이다.
날개가 되고
빛이 되고 약속이 될 때까지
가슴을 자유롭게 하리라.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하지 않으리라.
씨앗으로 내게 온 것은
꽃이 되어 다음 사람에게로 가고
꽃으로 내게 온 것은 열매로 나아가는
그런 삶을 선택하리라.


그렇지만, 때가 되면 잘 죽고 싶다. 서양의 웰 다잉 선구자는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사회 운동가였던 스콧 니어링(1883~1983)이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의 부인 헬렌 니어링은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에서 남편의 유언을 전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오면 나는 자연스럽게 죽게 되기를 원한다. 나는 병원이 아니고 집에 있기를 바란다. 어떤 의사도 곁에 없기를 바란다. 의학은 삶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이며, 죽음에 대해서도 무지하다고 생각한다. 가능하면 나는 죽음이 가까이 왔을 무렵 지붕이 없는 열린 곳에 있기를 바란다. 나는 곡기를 끊고 단식을 하다 죽고 싶다. 나는 죽음의 과정을 예민하게 느끼고 싶다. 그러므로 내 몸에 어떤 진정제나 진통제, 마취제도 투약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회한에 젖거나 슬픔에 잠길 까닭이 없다. 임종 자리를 함께하는 사람은 조용함, 위엄, 이해와 감사, 기쁨과 평화로움을 갖춰 죽음의 경험을 나누기 원한다. 죽음은 광대한 우주적인 경험의 영역이다. 나는 힘이 닿는 한 열심히, 충만하게 살아왔으므로 기쁘고 희망에 차서 새로운 길을 간다. 죽음은 옮겨 감이나 깨어남에 불과하다. 나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존중 받으면서 가고 싶다."

그는 필요 이상의 치료를 거부했다. 의사 친구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다달이 소변을 받아 다 자네에게 갖다 주고 필요한 처방이나 치료를 받기를 권하지만 그렇게 한다면, 내 삶의 남은 기간을 의사의 감독 아래 수명을 늘리려고 애쓰는 셈이 되는 걸 세. 올바른 식사와 절제된 생활로도 잘 지낼 수 없다면, 될 수 있는 한 빨리 죽는 것이 나와 내가 속해 있는 사회를 위해서 좋을 것이라 생각하네’. 그는 몸에 이상이 생기자 스스로 곡기를 끊고 딱 100세가 되던 해 세상을 떠났다. 그는 시신에 작업복을 입힌 후 침낭 속에 넣어 화장해 달라고 부탁했다. 남은 재는 자신이 살던 집 근처의 나무 밑에 뿌려 달라는 말을 남긴다.

나도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존중 받으면서 가고 싶다. 그 때는 내가 올바른 식사와 절제된 생활로도 잘 지낼 수 없을 경우이다. 나도 시신에 평상시 입던 놋을 입힌 후, 관이 아니라 침낭 속에서 넣어 화장한 후, 남은 재는 내가 지정한 나무 밑에 뿌려 달라고 할 예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법정(1932~2010) 스님이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때가 되면 생을 마감한다"며 연명치료를 거부했다. 그는 소탈하게 피안(彼岸)으로 갔다. 스님은 “관을 짜지 말고 승복이면 족하니 수의를 입히지도 말고, 삼일장도 하지 말고 지체 없이 화장하라”고 했다. 그는 또 “사리를 찾지 말고 탑도 비도 세우지 말라.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이 남아 있다면 모두 맑고 향기로운 사회 구현 활동에 사용해 달라. 일절 장례의식을 행하지 말고 관과 수의를 마련하지 말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