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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오늘은 추석이다.

2490.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3년 9월 29일)

오늘은 추석이다. 추석의 순 우리 말은 '한가위'이다. 이 '한가위'에서 '가위'는 '가운데'를 의미한다. 음력 8월의 한 가운데, 혹은 가을의 한가운데인 8월 15일을 나타낸다. '한'은 '크다'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한가위는 '8월의 한가운데에 있는 큰 날, 혹은 가을의 한 가운데에 있는 큰 날'이다. 추석(秋夕)은 말 그대로 하면 '가을의 저녁'이다. 추석을 중추절(仲秋節), 가배일(嘉俳日)이라고도 한다. 희한하게 추석 무렵이면 날씨도 가을이 된다. 올해는 한가위가 좀 늦다. 

한가위날, 즉 음력 8월 15일에 뜨는 달이 가장 크고 밝다고 한다. 태양과 달리 달은 오래 전부터 특별한 존재였다. 태양은 항상 둥근 형태를 유지하지만, 달은 한 번 둥근 형태를 보여주고 전기나 촛불이 없었던 고대에는 둥근 달이 유일하게 빛이 되어 주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일년 중 가장 밝고 큰 음력 8월 15일은 고대부터 함께 즐기는 축제가 되어 자연스럽게 명절로 정착되었다고 본다. 

추석의 대표음식인 송편의 원래 이름은 '오려송편'이다. '오려'란 제철보다 일찍 여무는 올벼를 뜻한다. 송편이란 이름은 떡 사이에 솔잎을 깔고 찐다는 의미로 소나무 송(松)과 떡 병(餠)을 붙여 부르던 데서 나왔다. 송편이 반달인 이유는 점점 기울어지는 보름달보다 앞으로 가득 차오를 반달을 중시한 우리 조상들의 우주관에서 유래되었다고 본다. 추석에는 달도 둥글고, 과일도 둥글고, 마음도 둥글어진다.

올해 추석에는 실제로 평소보다 큰 보름달을 볼 수 있다. 오늘 올해 마지막 슈퍼문이 뜬다고 한다. 슈퍼문은 달이 공전궤도상 지구에서 가장 가까울 때 뜨는 보름달을 가리키는 말이다. 슈퍼문은 미니문(달이 지구와 가장 먼 거리에 있을 때 뜨는 보름달)보다 14% 더 크고 최대 30% 더 밝다. 그리고 올해는 보름달 오른쪽 위에선 토성, 왼쪽 아래에선 목성도 함께 볼 수 있다.

위의 사진처럼, 동쪽 밤 하늘. 보름달 왼쪽 아래엔 목성, 오른쪽 위엔 토성이 뜬다고 한다. 약 6시 40분 경이라니, 올해도 근처 높은 곳에 있는 초등학교 운동장에 나가 달맞이를 하고, 소원을 빌어 볼 생각이다. 나의 기도는 '내가 원하는 것들로부터 나를 지켜주소서(Protect me from what I want)'이다. '나'는 잠시라도 제대로 보살피지 않으면, 출세에 혹하고, 돈에도 혹하며, 미인에게도 혹해 버리기 일쑤이다. '나'라는 존재는 한번 유혹에 휩쓸리면 다시 돌아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나(吾)를 잘 못 간직했다가 나(吾)를 잃은 자'였던 정약용으로부터 배운 것이다. 그는 욕심과 야망에 이끌려 진정한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과거를 부끄러워했었다. 정말 '나 자신을 지킨다'는 것은 쉽지 않다. 정말 늘 깨어 있지 않으면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 정약용은 자신의 방 이름을 "수오실(守吾室)"이라 지었는가 보다. '나를 지키는 방'이란 말이다. 이 이름은 정약용의 형 정약전의 서재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굳이 나를 지킬 필요가 있는가? 항상 나 자신에게 '나'는 찰싹 달라붙어 있는데 말이다. 정약용은 형님의 서재에 붙인 이름에 대해, '유배 생활을 하다 보니 그 깊은 뜻을 깨달었다 한다. 

우리는 추석 보름달을 '중추망월(仲秋望月)' 또는 '중추명월(仲秋明月)'이라고도 했다. 어릴 적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추석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빌곤 했다. 오늘 저녁은 꼭 달을 보고, 한 해의 삶을 반추하고, 다시 '건너 가기'를 준비할 생각이다. 배철현 교수에 의하면, 한가위 명절에 달이 보름달인 이유는 더 이상 자신만만하지 말고, 자신의 주장을 살펴보고 소멸시키라는 시기이다. 보름달은 자신이 이제 초승달을 향해 자신을 변신하겠다는 약속을 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 보름달의 충만한 원을 유지하려 하는 오만함에서 빠져나오라는 것이다. 여기서 오만(傲慢)은 세상의 심판자인 시간을 거슬리겠다는 몸부림이며, 시간을 멈춰 영생하겠다는 망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한가위의 보름달은, 우리 인간에게 이제 덜어 낼 준비를 시키는 때가 아닐까? 덜어내는 행위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덜어내야 다시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우주가 창조되기 위해서는 걷어 내야 한다. 덜어내는 행위 없이, 새롭고 참신한 시작은 없다. <창세기> 1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맨 처음에, 신이 우주를 창조하기 시작 했을때"라는 종속절로 시작한다. 여기서 '창조하다'라는 단어는 그리스와 로마인들이 잘 못 번역한 것이라 한다. '창조하다'는 전에 없는 것을 새로 만든다는 의미가 되었지만, 히브리어로 '바라'라는 말은 '덜고 덜어 더 이상 빼낼 수 없는 상태로 만들다'란 의미라 한다. 배철현 교수에 의하면, 창조는 자신의 삶에서 쓸데 없는 것, 굳이 필요하지 않은 것을 가려내는 지혜에서 출발한다.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는 과거에 의존하는 부실한 것을 걷어내거나 과감하게 제거해야 한다. 그러니까 <창세기> 1장의 의미는 "처음에, 신이 혼돈으로 가득한 하늘과 땅에서 쓸데없는 것을 걷어 내기 시작 했을때"란 의미라는 거다.

우주의 원리는 균형(均衡)이다. 올라간 것은 내려오고, 내려간 것은 퉁겨져 올라오기 마련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아레떼(德)'는 인간이 추구해야만 할 것이다. 그건 극단을 피하고 그 중심을 잡는 일이라고 했다. 용기는 만용과 성급함의 중간 어디이며, 절제는 낭비와 인색의 가운데이다. 그 가운데를 찾으려는 마음이 중용(中庸)이다. 

중용의 존재를 배운 적도 없고, 중용을 자신의 삶에 적용한 적이 없는 사람들은 극단의 유혹에 빠진다. 왜 유혹에 빠지냐 하면, 자신의 보 잘 것 없는 정체성이 보상받기 위해서는, 자화자찬이 특징인 극단적인 무리에 속해, 자신의 쓸모를 끊임 없이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좌도 없고 우도 없다, 왜냐하면 나에게 우가 상대방에겐 좌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좌와 우 같은 명칭을 가지고 네 편과 내 편을 가르는 행위는, 열등감과 이기심으로 가득한 인간들의 속임수일 뿐이다. 나부터 한 진영에서 나올 생각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주와 인간의 삶을 두 개로 구분하는 것을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선과 악, 정의와 불의, 아름다움과 추함은 서로 섞일 수 없는 독립적이며 개별적인 개체가 아닐 뿐만 아니라, 이런 구분은 생각에서만 존재하는 허상이라고 믿었다. 인간의 삶을 조절하는 중요한 가치와 해악의 구분은 모호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선과 악의 경계는 희미해서, 그것은 구분의 문제가 아니라 정도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만일 A라는 사람이 악인이라면, 그는 악의 화신이 아니라, 그 사람에서 악이 차지하는 비율이 선이 차지하는 비율보다 높은 것이다. 단지 51% 대 49%일 수도 있다. 또는 B라는 사람이 착한 사람이라면, 그는 자신으로부터 나쁜 요소들을 제거하길 힘쓰고, 선을 지향하는 과정 중에 있을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두개의 대립되는 가치의 정도와 경중을 깊이 관찰하고 측정하는 과정을 '쎄오리아(theoria)'라고 했다. 이를 우리 말로 하면 '관조(觀照)'이다. 이것은 사물을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어제의 관습대로 보지 않고, 그 대상 자체로 보려는 시도를 말한다. 이 그리스어는 영어의 '씨오리(thory)'가 된다. 한국 말로는 '이론(理論)'이라 한다. 그러니까 이론은 '한참 보기'란 인내를 통해, 그 대상 그 자체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섬광을 포착하는 행위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을 항상 제 3자가 되어 관찰하는 행위를 최고의 삶으로 여겼다.

오늘은 조카집에서 조상들에게 기도를 드리고, 성묘를 다녀온 후, 친구 밤 과수원에서 밥을 좀 주워 올 생각이다. 그리고 집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저녁에 동네 초등학교 운동장에 나가, 보름달을 맞이하며, 나를 되돌아 볼 생각이다. 추석 아침이면 생각나는 시이다. 추석 명절이면 어머니의 선물은 빨간 내복이었다. 마치 빨간 내복 하나면 혹한의 겨울도 너끈히 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빨간 내복의 선물은 부모님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마음에 다름 아니었다. 어머니가 보고 싶다. 그래 오늘 공유하는 시 속의 사나이는 "풀 빵"을 먹다가 목이 멘다. 오늘 아침 사진은 오늘 저녁에 떠오를 보름달이다. 위키미디어 코먼스에서 얻어왔다.


빨간 내복/공광규
 
강화오일장 꽃  팬티 옆에
빨간 내복 팔고 있소
 
빨간 내복 사고 싶어도
엄마가 없어서 못 산다오
 
엄마를 닮은
늙어가는 누나도 없다오
 
나는 혼자여서
혼자 풀 빵을 먹고 있다오
 
빨간 내복 입던
엄마 생각하다 목이 멘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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