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87.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3년 9월 26일)

어제는 공주의 핫 플레이스 <루치아의 뜰>에서 와인 강의를 했다. 강의를 마치고, 언제나 처럼, 정갈한 친구 집 <러스틱 하우스, 틈>에서 온 집을 차지하고 쉬고 있는데, 밖에서 누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 눈을 뜨니 가을비가 내리고 있었다. 속 옷차림으로 나가, 다음 동영상을 찍었다.
https://photos.google.com/photo/AF1QipNrC6mX1C-P-UyAwi37woOIDqzkrTI21JKgsl-H

그 뿐이 아니다. 성유진 프로의 가야금 연주도 들었다. 그리고 친구 집에서 혼자 밤을 새고 있다. 프랑스어는 밤샘을 '라 뉘이 블랑쉬(la nuit blanche)'라고 한다. 직역하면, '하연 밤'이다. 불을 켜고 빗소리와 벌레 소리를 들으며, 수정 중인 <2022년 4월 인문 일지>를 꺼냈다. 다음 대목을 읽고, 일지를 많이 수정했다.
"지난 20세기는 이분법이 지배한 시대이다. 선과 악, 남성과 여성, 진보와 보수 등으로 이분법이 지배한 세기이다. 그리고 인생은 노동, 화폐, 가족이라는 트라이앵글만 잘 지키면 된다고 여긴 시대였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는 디지털 혁명과 함께 낯설고 기이한 시대가 전개되고 있다. 지금은 스마트폰 세상이다. 다시 말하면, 스마트폰이 도래하면서 기술과 자본이 혁명을 주도하며, 인공지능의 시대라는 4차산업혁명이 진행중이다. 이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만큼 그 기술을 활용하는 인식의 힘 역시 고양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인식의 힘이 고양되려면, 생명력인 욕망의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에로스의 충동에 로고스의 비전을 부과해야 한다."
리 호이나키(lee Hoinacki)는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에서 오늘날 권력과 부와 상상력과 지성과 문화생활을 조직하고 독점하려는 기관들은 다음과 같은 세 종류의 분리 혹은 고립을 만들어 낸다고 지적했다. 사람을 그 육체, 즉 몸과 장소와 시(詩)로부터 떼어 놓고자 노력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을 조금만 되돌아 보면, 그의 말이 과장이 아님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 육체의 연장(延長)이라 할 수 있는 도구 생활자인 우리는 몸으로부터 점점 소외되고 있다.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그리고 근대적 지각과 운동 양식에 갇혀 있을수록 직접적 감각 체험으로 부터 더 멀어지게 마련이다.
▪ 우리 몸이 머무는 일상의 자리, 곧 장소와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다. 장소로부터 소외되고 있다. 소외라는 말은 장소와 소통하거나 서로 교감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의 요구에 응답하기 위해 사람들은 자기 일상을 벗어나곤 한다. 한 자리에 오래 머물며 그 장소가 갖는 이야기와 기억들과 접촉을 유지할 수 있는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풍요로움 속에서도 내면이 빈곤한 것은 그 때문이다. 골목이 사라졌다. 누추하지만 각박하지 않고, 가난하지만 얼굴 빛 환하고, 삶이 고달파도 어울릴 줄 알았던 그 세계가 사라졌다.
▪ 세번 째로, 근대적 삶은 우리에게서 시를 빼앗아 갔다. 우리가 정신적 어둠 속을 방황하는 것은 시인들이 언어의 올가미로 낚아챈 영원의 순간에 우리 일상을 비춰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는 가운데, 우리 사회의 청춘(靑春)들이 무기력해 졌다. 청춘에는 봄 춘(春)자 들어간다. 봄은 얼어붙은 땅을 뚫고, 온갖 초목들이 막 솟아 오르는 스프링(spring)이다. 변화를 바라는 봄의 생명력을 우리는 '에로스'라고 한다. 이 에로스가 동력(動力)이다. 그런데 이 사회의 청년들은 봄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럴까? 다음과 같은 원인들 때문이 아닐까?
▪ 제도, 즉 규제가 너무 많다. 청춘들을 과도하게 어린이 취급한다.
▪ 서비스와 케어가 또 지나치다. 너무 많은 것을 즐기라고 부추긴다. 돈만 가지고 가면, 어디나 그냥 막 흥청망청 쓰라고 요구한다. 소비를 창피하지 않게 한다.
우리 청춘들은두 원인들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며 힘들어 한다. 학교에선 스트레스가 엄청 쌓이고 인터넷이나 TV를 보면 상품들이 엄청 유혹한다. 예를 들어, 몇 개월 알바로 돈을 모았다가 한 방에 지르는 변태에서, 돈이 떨어지면 삶을 지루해 하는 권태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이런 상황으로는 삶의 주인이 될 수 없다.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는 것은 능동적으로 사는 일이다. 수동적이지 않고, 자율적이여야 한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에로스의 충동과 로고스의 비전을 결합하여, 소유와 집착에서 로고스의 네트워크로 건너가야 한다. 여기서 에로스라는 말은 그냥 연애, 성 그런 것이 아니라, 생명의 원동력이다. 타자를 향해서 맹렬하게 돌진하는 힘이다. 그 힘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경이(驚異, 놀랍게 신기하게 여김)를 만들어 낸다.
우리는 외모에 대한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서 당당하게 신체의 능동적 에너지로 사랑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그러지 못하니 에로스가 억압을 겪고, 신체에 엄청난 소외가 일어난다. 소외는 소통의 반대로 교감이 일어나지 못하는 상태이다. 그런 소외는 늘 결핍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 결핍은 또 청춘의 상징인 에로스의 에너지가 억압되고 봉쇄된다. 즉 흐르지 못하고 막힌다. 그러니까 에너지가 흐르게 하려면 화폐와 소비가 제공하는 기준들을 과감하게 거절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젊은 청춘들이 예뻐지려고 자기를 꾸미고 타인의 시선에 갇혀 있으면 어린애 취급을 당한다. 그런 현상은 봄이 왔는데 새로운 게 생성이 안 이루어지는 것과 같다. 예컨대 화초가 되는 거다. 화초(花草)는 누군가가 계속 길러 줘야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런 에로스적 충동에는 목적이 없어야 한다는 점이다. 타자를 향해 돌진하는 에로스로 일어나는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에로스적인 충동이 막 솟구치면 그냥 세상을 모험하는 거다. 원가 계산하고 목표를 먼저 설정하지 않는 거다. 목표를 정해 놓으면 그 목표에 도달하지 못할까 불안하다. 그러면 모험심이 줄어든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어떤 관계, 활동, 자신의 삶의 비전이 아니라, 그 목표가 화폐의 양과 권력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화폐의 양이나 자신이 누리는 권력이 우리들에게 평정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냥 타자를 만나는 것이다. 타자와 접속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도 하고, 더 나아가 우정도 맺고, 우정의 가장 최고 경지인 사제 관계도 만드는 거다. 어제가 그런 자리였다. 문제는 에로스가 '카오스적인 힘'이라는 것이다. 그래 이 카오스를 향해 달려갈 때 거기에 리듬과 비전을 부여하는 것을 로고스라 한다. 이 문제는 내일로 넘긴다.
오늘 아침 사진처럼, 우리는, 에로스의 열정에 사로잡힌, 청춘들이었다. "세월은 우리의 주름살을 늘게 하지만/열정을 가진 마음을 시들게 하지는 못한다."
청춘/사무엘 울만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기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그것은 장미빛 뺨, 앵두 같은 입술,
하늘거리는 자태가 아니라,
강인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는 열정을 말한다.
청춘이란
인생의 깊은 샘물에서 오는 신선한 정신,
유약함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를 뿌리치는 모험심을 의미한다.
때로는 이십의 청년보다
육십이 된 사람에게 청춘이 있다.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우리가 늙는 것은 아니다.
이상을 잃어버릴 때 비로소 늙는 것이다.
세월은 우리의 주름살을 늘게 하지만
열정을 가진 마음을 시들게 하지는 못한다.
고뇌, 공포, 실망 때문에 기력이 땅으로 떨어질 때
비로소 마음이 시들어 버리는 것이다.
육십 세이든 십육 세이든
모든 사람의 가슴속에는 놀라움에 끌리는 마음,
젖먹이 아이와 같은 미지에 대한 끝없는 탐구심,
삶에서 환희를 얻고자 하는 열망이 있는 법이다.
그대와 나의 가슴속에는
남에게 잘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 간직되어 있다.
아름다움, 희망, 희열, 용기
영원의 세계에서 오는 힘,
이 모든 것을 간직하고 있는 한
언제까지나 그대는 젊음을 유지할 것이다.
영감이 끊어져 정신이 냉소라는 눈에 파묻히고
비탄이란 얼음에 갇힌 사람은
비록 나이가 이십세라 할지라도
이미 늙은이와 다름없다.
그러나 머리를 드높여
희망이란 파도를 탈 수 있는 한
그대는 팔십 세일지라도
영원한 청춘의 소유자인 것이다.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행복 하려면 먼저 자유로워져야 한다. (1) | 2023.09.30 |
|---|---|
| 에로스의 충동과 로고스의 비전의 결합 (2) (0) | 2023.09.30 |
| 슬픈 환생/이운진 (1) | 2023.09.29 |
| 뒷담화/최정란 (0) | 2023.09.29 |
| 9월의 시/조병화 (0) | 2023.09.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