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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행복 하려면 먼저 자유로워져야 한다.

2489.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3 9 28)

"우리가 쉬지 못했다고 느끼는 건 ‘뇌’가 쉬지 못하기 때문이다. 달리기를 비롯한 운동이 격렬한 움직임에도 휴식을 주는 건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행위 때문이다. 뇌는 반복을 좋아한다. 우리 뇌가 후크송에 중독적으로 반응하는 이유도 그렇다. 작가인 내 경우 읽고 쓰는 행위를 떠나는 게 휴식인데, 색연필로 ‘컬러링 북’의 빈칸에 다양한 색을 칠하다보면 곤두선 신경이 가라앉고 온전히 현재에 머무는 느낌을 받는다. 어쩌면 휴식은 무용지물의 세계로 침잠하는 일일지 모른다. 넷플릭스의 창업주 리드 헤이스팅스는 자사의 경쟁 상대로 ‘인간의 수면’을 꼽았다. 내게 이 말은 추석 연휴 동안 침대와 넷플릭스만이 휴식의 정답이 아니라는 말과 같다" 말하면서, 소설가 백영옥은 " 연휴에는 다양한 쓸데없는 일들을 해보자" 말했다. 원래 휴식은 나를 고독(孤獨)하게 만들어 나의 고유임무가 무엇인지 조용하게 점검하는 시간이다. 휴식(休息)이란 한자가 말하는 것처럼, 나는 나무처럼 나의 뿌리를 아무도 볼 수 없는 저 깊은 곳에 숨기고, 나를 가만히 응시하는 데서 출발한다.

 

6일간의 황금 연휴인데, 쓸데없는 일보다는 뭔가를 하려고 하니까 '진짜' 휴식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어제 하루를 몰입하지 못하고, 없이 보냈다. "하루를 살아도 행복하게!" 이 말은 100% 다 맞는 말은 아니다. 행복이란 맛있는 거 먹고, 일하지 않고 휴식을 취하는 것과 관련된 것들을 많이 생각하지만 이와 같은 소소한 행복도 삶에서 어떤 조건이 충족되어 있을 때만 약속한 행복을 가져다 준다. 우리가 흔히 소확행(사소한 것에 확실한 행복)을 이야기 한다. 이 말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한 말이다. 일상의 작은 일들이 주는 행복이 그가 누리는 행복의 전부가 아니다. 큰 행복에 빠져 있다가 작은 행복도 발견한 것이다. 그는 작은 행복을 연료로 큰 행복을 생각하는 사람이다. 소소하고 작은 행복이 그의 행복의 전부가 아니라는 말이다. 자잘한 행복이 전부인 줄 알면 하루키에게 속은 것이다. 소확행이 전부인 젊은이는 자기의 포부나 꿈이 없이 자본주의의 부스러기나 먹으며 얻는 심리적 만족감이 행복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 최진석 교수의 한 인터뷰에서 들은 이야기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을 '유데모니아(eudaimonia)'라 불렀다. 이 말은 자신을 존재의 수준에서 차별화 시키는 삶의 목적을 각성하고, 이 목적을 현재 자신의 삶과 일로 가져와서 실현시키는 과정을 의미한다. 또한 현재 자신의 삶에서 그 목적이 조금씩 실현되어 자신이 성장하고 성숙해지고 결과적으로 번성하는 체험을 의미한다. 번성과 성숙은 고사하고 우리 삶이 지속적으로 쪼그라드는데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런 본질적인 행복과 차별되는 순간적 쾌락을 가져다 주는 소확행의 행복을 아리스토텔레스는 '헤도니아(hedonia)'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삶의 목적을 각성하지 못하고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이 행복을 느끼는 것은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기보다 어렵다고 보았다. 우리가 행복의 원천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소확행은 위에서 말한  유데모니아가 전제되어야 행복을 가져다 준다. 예를 들어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에서 여행을 즐기는 삶은 소확행이고, 열심히 일한 당신과 관련된 부분은 여행을 더욱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유데모니아이다. 일상에서의 실천으로 열심히 일함을 통해 스스로 성장체험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매일 여행만 다닌다는 것은 지루한 고역이 될 수 있다. 소위 '불금'이 기다려지고 즐거운 이유는 주중에 유데모니아의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내가 바나나를 싫어하는 이유는 과일 껍질을 벗기는 수고가 들어가지 않기 때문과 같다. 자신의 수고 후에 얻은 소확행이 더 값지다. 마치 주요리를 먹지 않고, 디저트만 먹게 되는 상황과 마찬가지이다.

 

자신이 재력과 체력 그리고 시간 여유가 있어서 유데모니아 없는 소확행을 지속적으로 즐길 수 있더라도 그 소확행은 결국 햇빛과 같다. 햇빛이 쨍쨍한 날을 갈망해도 매일매일 해가 쨍쨍 뜨는 삶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삶은 사막화되어 금방 황폐화된다. 삶의 목적을 자기 일과 삶을 통해서 실현시키는 성장체험인 유데모니아가 행복의 본질이다. 결혼의 경우도 두 부부가 결혼생활을 통해 서로 성숙시키는 유데모니아가 끊어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서로에 대한 유데모니아 체험을 할 수 없다면 결혼생활은 그냥 지루한 일상에 불과할 수 있다.

 

, 명예, 권력 등을 획득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 명예, 권력을 획득하면 획득한 상태를 당연한 상태로 받아들이는 데 걸리는 몇 주 정도만 행복하다. 하지만 새로운 상태에 적응된 후에는 더 나은 사람과의 비교를 통해서 기대치를 높이는 톱니바퀴적 성향 때문에 점점 더 큰 것을 얻어야 해복해진다. 얻은 대가로 짧게 행복한 기간을 지내다 더 긴 기간 동안 불행한 삶을 사는 것이다. 이를 우리는 '톱니바퀴 효과"라 한다. 사막 효과도 결혼 생활의 경우와 같다. , 명에, 권력을 포기하지 못하면 이것들도 매일 내리쬐는 햇볕이 되어 삶을 지속적으로 사막화 시킨다.

 

행복은 자신의 성장 체험과 직접 관련을 맺지만 자신으로 인해 다른 사람이 성장체험을 한 경우에도 이어진다. 자신 때문에 세상이 더 행복해지고, 더 건강해지고, 더 아름다워지는 상태를 구현한 것이다. 결국 자신이 성장한 결과로 이런 상태가 만들어지고 소중한 사람들과 소통이 더 활발해진다면 최고의 행복한 상태를 체험하는 것이다.

 

행복은 아리스토텔레스가 규정했듯이 성장 체험을 통해 더 성숙해짐에 대한 되어감을 통해서 증진된다. 목표 자체의 달성보다 달성하는 과정이 우리들에게 더 행복을 갖다 준다. 그리고 성장 체험의 본질은 지속적 학습을 통한 성장과 성숙이지 실수를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행복한 사람은 항상 자신만의 일인칭 프로젝트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다. 언젠가부터 내가 그렇다. 매일매일 <인문 일지> 쓰며, 세상에 관심을 두는 프로젝트이다. 이런 프로젝트가 중요한 이유는 남들과 비교할 필요가 없이 자신의 목적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존재의 수준에서 차별 화시킬 수 있는 목적을 각성했고 이 목적을 실현시키기 위한 자신만의 일인칭 프로제트가 있다는 유데모이나의 조건에서 우리는 행복해 질 수 있다. 내 삶이 내재적 기준에 의해서도 지속적으로 쪼그라들고 있는데 행복을 느낀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사람들이 유데모니아가 없는 소확행에 빠져 살다가 결국 삶이 사막화되면 무언가 더 심각한 것에 자신을 중독 시킨다. 이게 문제이다. 소확행으로 행복을 쫓는 것은 영원히 잡을 수 없는 파랑새를 쫓는 것과 같다.

 

그리고 행복 하려면 먼저 자유로워져야 한다. 에덴동산에서 인간은 행복했지만 어리석게도 자유를 요구했다가 광야로 쫓겨났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보면, 행복한 호모 사피엔스는 존재하지만 자유로운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동일한 것을 생각하고 동일한 것을 욕망하게 만드는 사고의 동일화와 본능의 획일화가 무섭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다수가 추구하는 욕망의 충족이라는 행복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없는 신기루에 불과하다. 진정한 행복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찾아가는 자유의 발견에 있다. 다수의 생각이 아니라 나의 생각을, 물리적 욕망이 아닌 정신적 욕망을 꿈꿔야 한다. 그것이 자유이고 행복한 인간이 되는 길이다. 그 길이 쉽지는 않다. 사람들은 안전하고 편안한 삶을 갈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행복 하려면 독립적이고 창의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그 길은 용기를 내어 자신을 행해 쉼 없이 걷는 일이다. 그러면서 이런 질문들을 하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나는 어떻게 살다 가고 싶은가? 이런 질문이 없으면 더 이상의 삶은 없다. 묻는 행위를 하지 않는 인간은 쪼그라든다

 

 

자연이 들려주는 말/척 로퍼

 

나무가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우뚝 서서 세상에 몸을 내맡겨라.

관용하고 굽힐 줄 알아라.

하늘이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마음을 열어라. 경계와 담장을 허물어라.

그리고, 날아올라라.

 

태양이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다른 이들을 돌보아라.

너의 따뜻함을 다른 사람이 느끼도록 하라.

냇물이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느긋하게 흐름을 따르라.

 

쉬지 말고 움직여라. 머뭇거리거나 두려워 말라.

작은 풀들이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겸손하라. 단순하라.

작은 것들의 아름다움을 존중하라

 

 

 ‘해거리’라는 말도 있다. 과실이 한 해에 많이 열리면 그다음 해에 결실량이 현격히 줄어드는 현상을 말하는데, 감나무, 대추나무, 밤나무처럼 우리가 아는 많은 나무가 해거리를 한다. 해거리는 정신없이 달리다가 천천히 한 해를 쉬는 ‘나무들의 안식년’인 셈이다.

 

하지만 과실을 수확해야 하는 농부 처지에선 수확량 감소는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해거리를 방지하고자 이들이 하는 일이 ‘가지치기’다. 썩은 가지는 물론이고 복잡한 잔가지와 큰 가지를 ‘미리’ 잘라 병충해를 막고 성장을 좋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 가지치기는 나무를 위해 인간이 해주는 ‘나무들의 디톡스’다.

 

‘해거리’와 ‘가지치기’는 ‘힘과 쉼’처럼 우리에게 필요한 양면의 지혜다. 더 빨리 달리기 위해 멈추고, 더 가득 채우기 위해 비우는 자연과 인간 모두의 지혜이기 때문이다. 뛰느라 이마에 흐르던 땀이 눈가에 맺혀 흐르면 먼 곳에 있던 사람 눈엔 눈물처럼 보인다. 그러나 땀과 눈물이 같은 성분으로 이루어졌다고 같은 의미일 수 있을까. 놓이는 위치와 자리에 따라 냄새나는 음식물 잔반도 귀한 퇴비가 된다.

 

힘과 쉼 역시 그렇다. 얼핏 정반대 성질처럼 보이지만 실은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다. 힘을 빼고 천천히 멈춘 상태가 ‘쉼’이기 때문이다. 더 높은 성장을 위해 힘을 내고, 달리고 나면 반드시 힘을 빼야 한다. 이것이 해거리를 하는 감나무와 가지치기를 하는 성실한 농부에게 우리가 배워야 할 지혜다. 가지치기하는 농부의 마음은 지금 휑하게 잘린 텅 빈 가지에 있지 않다. 그들 눈은 더 많은 열매가 달린 미래의 나무를 본다. 열심히 노동한 후, 쉼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천지창조 후 신 역시 “보기에 좋았다”를 외치며 하루를 쉬었다. 신에게 조차 휴식은 중요했다.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