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6.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사진 하나
(2021년 1월 13일)
원래 교육이란 이렇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공공 의무 교육이란 이름으로 교육의 본래 의미가 훼손되었다. 그러나 인공지능 시대를 대비하는 선진국은 학교 교육을 대대적으로 손 보고 있다. 우리도 지금이 교육을 개혁할 때이다. 배철현 교수의 이번 주 칼럼을 읽었더니 교육에 관한 생각들이 다음과 같이 정리가 된다. 함께 공유하고 싶다.
(1) 원칙적으로 "교육은 사회가 정해 놓은 규칙의 순응자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유일무이한 개인으로 서서히 조각 하는 예술이다. 그것은 학생의 마음속 깊은 곳에 은닉된 독창적인 영혼을 일깨워, 정답이 없는 큰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고, 자기 나름의 정답을 더듬도록 격려하는 친절이다. 그것은 삶의 여정에 자신만의 독보적인 지도를 만들도록 응원하는 배려이며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을 사랑하는 영적인 인간으로 서서히 만드는 인내다. 교육은 인생에서 중요한 두 가지를 가르친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리고 '어떻게 죽어야 할까'."
대학 시험 철이다. 난 관심이 없다. 대학 입시 생이 주변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문운동가로 교육 문제를 필링하고 싶다. "대학은 부모 집을 떠나 독립적인 인간이 되기 위해, 자신에게 어울리는 직업을 모색하는 실험장이다. 교수들은 자신만의 고유한 길을 찾아 나선 학생들을 훈련 시키고 격려하는 도우미다. 교육이란 자신과 상관없는 지식을 효율적으로 암기 시키는 강요가 아니라, 그 학생의 성향을 파악해 그에게 어울릴 만한 다양한 직업이나 취미를 소개하고, 취사 선택하게 유도하는 친절이다. 교육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에듀케이션(education)은 그 학생이 지닌 유일무이한 특성을 밖으로(e-) 유도하는(ducation) 체계적인 자극이란 의미다."
그러니 교육은 개개인에 대한 맞춤 교육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맞춤 교육 대신 서구에서 의무 공공 교육이 시작되었다. 처음에 공공 교육의 시작은 귀족들의 향유였던 지식을 대중에서 널리 펼치는 현대 문명과 문화의 기반이자 진보라고 칭송 받았다. 인간은 누구나 공평한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고 학식, 지적인 능력, 그리고 그것에 어울리는 삶을 누릴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음에 살펴 볼, 모두가 이 낙관적인 견해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공공 교육의 역사와 그것이 끼친 영향을 살펴본다면, 그 주된 목적을 알아차릴 수 있다.
(2) "공공 교육의 목적은 각기 다른 개인의 역량의 발굴이 아니라, 안정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사회 제어 수단이었다. 그 목적은 자기 삶의 목표를 발견하도록 자신이 환경에서 알게 모르게 얻는 편견을 깨우치고 깨닫는 것이 아니라, 가능하면 한 국가에 거주하는 국민들을 평균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다. 개인이 지닌 개성이나 독창성은 놀림과 제거의 대상이다."
(2)-1 그런 의무, 강제 교육은 고대 그리스 스파르타에서 시작됐다.
스파르타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강제로 분리돼 군사 교육을 받았다. 스파르타 아이들에게 덕이란, 다른 아이들과 경쟁과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었다. 나아가 다른 그리스 도시 국가의 군인들과 전투에서 이기는 것이었다.
(2)-2 오늘날 우리와 다른 다양한 분야를 갖춘 현대 공공교육 시작은 16세기 독일이다.
종교개혁을 일으킨 마르틴 루터는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해 대중교육 교재로 사용했다. 그는 당시 독일 지도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공공 의무 교육의 당위성을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저는 행정당국이 국민들을 학교로 보낼 것을 주장합니다. 만일 정부가 시민들을 창과 총을 드는 군사훈련을 강요하고 유사시 군 복무를 시키는 것처럼, 시민들의 자녀들을 학교로 보낸다면, 우리 도시들과 공국들을 비밀리에 파괴하는 악마와 (지적으로 영적으로) 전쟁을 치를 수 있습니다." 교육으로 통해, 악마들과 물리적 싸움이 아닌, 지적으로 영적으로 전쟁을 치를 수 있도록 힘을 키워준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이 점이 내가 인문 운동을 하는 이유이다. 무식이 아니라, 교육을 통해 생각하는 힘을 기르고, 동시에 내 삶을 사회가 요구하는 것으로부터 해방시켜 자신의 삶을 주인공으로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하는 힘, 인문 정신을 길러 인문적 시선이 높아져야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 시선의 높이가 우리들의 삶의 높이라 본다.
루터는 국가 공권력을 이유로 한 의무교육을 통해 젊은이들을 루터교 교리를 주입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 결과 많은 독일 공국들은 최초의 공공학교를 세웠다. 루터는 현대적인 공공교육을 창안했을 뿐만 아니라 국가가 이 교육을 통해 특정한 세계관을 주입시킬 수 있다고 확신했다.
(3)-3 현대 공공교육의 또 다른 축은 18세기 초 프로이센의 국왕이었던 빌헬름 1세다.
북 독일 연방의 의장이며 독일 제국의 황제였던 그는 프로이센을 일등 국가로 개조하기 위해 1717년 전국적인 의무 교육을 시작했다. 루터의 공공 교육이 공권력을 이용한 주입 교육이라면, 빌헬름 1세의 공공 교육은 동일한 시민을 생산해 내는 공장식 학교 교육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초,중고 학교 건물은 공장 모양이다. 학교는 공장처럼 직사각형이며, 교실은 정사각형, 복도는 선형이다. 선생은 교실 맨 앞 강단 위에 서서 학생들에게 정보를 주입 시키고 암기를 강요한다. 선생은 어디에서 나 볼 수 있도록 계단 식 교실의 아래 중앙에 있거나, 평면 식 교실의 맨 앞 단위에 서서 지식을 전달한다.
공장식 교육 모델은 동일한 교재(국정교과서), 국가고시, 과정보다는 점수 획득, 질문보다는 해답, 진리 탐구보다는 권위에 복종, 혁신이나 진보보다는 획일과 정통을 우선 가치로 삼는다. 프로이센에 효과적이었던 이 모델은 사립학교를 중심으로 한 귀족 교육 중심이었던 미국으로 건너와 정착한 후, 다시 대한민국을 포함한 아시아와 아프리카로 전파돼 주요 교육 모델로 자리를 잡았다. 오늘날 우리가 왜 이런 학교 문법을 가지게 되었는지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된다. 그러나 최근에, 일부 학자들은 이런 교육 문법을 비판하고 있다.
교육자이자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교육 행정 교수였던 엘우드 패터슨 커벌리는 1916년 <공공교육행정>이란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 교육은 공장들이다. 가공되지 않는 원료들(어린이들)이 다양한 삶의 요구에 어울리는 모습으로 변모한다. 그런 제조를 위한 구체적인 조건은 21세기 문명의 요구에서 결정된다. 학교가 할 일은 이 구체적인 조건에 맞게 학생들 개조하는 것이다." 공공교육자들은 99% 학생들을 로봇으로 봤다. 개성을 제거하고 사회가 과학적이며 효율적이라고 결정한 공공교육을 수용하고 따른 것이 최상의 교육이라고 주장했다.
오스트리아 철학자 이반 일리치는 '학교 없는 사회'에서 학교를 이렇게 비판한다. "학교는 당신이 사회가 필요하다고 믿게 만드는 광고 대행업체다." 20세기가 낳은 400명의 천재들의 교육 과정을 다룬 <세계적인 인물들을 어떻게 교육 되는가> 라는 책은 5명 중 3명, 즉 60%가 학교 교육에 적응하지 못했다고 기록한다.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학교 교육을 송장이나 견딜 수 있는 복종을 요구한다고 비판한다. 그에게 학교 교육은 호기심을 자극하지 못하게 억제하거나 제거하는 폭력이었다. 대부분 학생들은 창문이 없는 컨테이너 박스와 같은 공간에서 조용히 앉아, 쏟아지는 잠을 쫓으며, 선생이 하는 말을 유심히 경청하고 진리라고 무조건 수용하는 극기를 훈련한다. 이렇게 잘 정리할 수 있도록 칼럼을 써 준 배철현 교수를 늘 존경하고, 그로부터 많이 배운다, 감사하다. 21세 인공지능 시대를 맞이하여 그리고 팬데믹 이후 새로운 뉴-노멀이 요구되는 이 시점에서 우리도 대대적인 교육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마을에서 길지만 공유한다.
공장식 교육을 받은 우리는, 오늘 아침 시처럼, "쥐약을 덥석 삼키듯이, 불 난 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지도 모르고 파티를 즐기듯이, 떼를 지어 절벽으로 내달리는 레밍처럼, 집어등 불빛을 향해 맹목적으로 달려드는 오징어처럼, 우리 역시 현란한 빛과 향기에 취해 떼거리로 달려가고 있는지 모른다. 그 방향은 죽음으로 가는 길이라고 아무리 외쳐도, "미친 놈!"이라고 손가락질하면서...."([먼. 산. 바. 라. 기.]). 오랜만에 읽어 보는 유하 시인의 시이다.
오징어/유하
눈앞의 저 빛!
찬란한 저 빛!
그러나
저건 죽음이다
의심하라
모오든 광명을!
지난 해 12월 23일 이후, 기회가 안 생겨, 다음의 7번과 8번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있다가, 오늘 아침에 7번 "문화인류학적 여행을 경험하라"와 8번 "'나'에서 '너'로, '우리'를 보라"는 문제를 둘 다 살펴보고, 이 이야기는 오늘 로 멈춘다. 사람들은 인공지능에 대체되지 않는 인공지능의 주인이 되는 능력, 즉 공감 능력과 창조적 상상력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달부터 나는 여러 번에 걸쳐서 인공지능의 주인이 되는 나를 만드는 법으로, 이진성 작가가 제시하고 있는 8가지를 살펴보고 있는 중이다. 참고로 이진성 작가가 말하는 그 방법은 다음과 같이 8 가지이다.
- 디지털을 차단하라
- 나만의 '평생유치원'을 설립하라
- 노잉(knowing)을 버려라. 비잉(being)하고 두잉(doing) 하라
- 생각의 전환, '디자인 씽킹(designe thinking)' 하라.
- 인간 고유의 능력을 일깨우는 무기, 철학 하라
- 바라보고, 나누고, 융합하라
- 문화인류학적 여행을 경험하라
- '나'에서 '너'로, '우리'를 보라
문화인류학적 여행이란 적게는 몇 개월, 많게는 몇 년 동안 현지에 거주하면서 현지인들의 삶에 깊게 녹아 드는 여행을 말한다. 나와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의 진짜 문화를 온몸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그러면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이 근본적으로 바뀐다. 2014년에 개교한 미네르바 스쿨의 교육 과정이 문화인류학적 여행 그 자체라 한다. 이 대학의 기숙사는 한국의 서울, 미국의 샌프란시스코, 영국의 런던, 독일의 베를린, 대만의 타이베이,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인도의 하이데라바드에 있다. 학생들은 4년 동안 이 도시들에서 거주하면서 현지 문화와 산업을 배운다. 물론 인문학, 수학, 과학, 인공지능 등도 배운다. 교육방식은 플립러닝이다. 플립러닝은 교과서와 강의가 사라진 수업을 의미한다. 수업 시간에는 토론을 한다. 학생들은 집에서 미리 공부해온 내용을 중심으로 열띤 토론을 하고, 교수도 학생들 사이에 앉아서 함께 토론한다. 토론은 인공지능이 절대 가질 수 없는 공감 능력을 기르는 것을 목적으로 이루어진다. 단 온라인 화상 토론 교육이다.
잠시 언젠가 적어 두었던 미네르바 스쿨에 대한 단상을 다시 한 번 더 공유한다. 미래학자들에 의하면, 2030년에 세계 대학의 절반 사라질 것이라 한다. 그 이유는 기존 대학이 위협받는 건 지식 습득 위주인 기존 교육체계가 붕괴 위기에 놓였기 때문이다. 왜 붕괴하는가? 인공지능(AI)이나 4차산업혁명 등으로 상징되는 미래의 혁신기술 때문이다. 앞으로 10년 뒤엔 현재 일자리 중 절반이 AI로 대체된다는 전망(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나오는 상황에서 인간은 AI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새로운 역량을 길러야 한다.
이어령 교수님은 말과 달리기에서 이길 수 없으니 말을 올라타는 것처럼, 우리도 AI를 올라타야 한다고 일갈하셨다. 그 말은 인공 지능을 만든 사람들에게 기대를 거는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을 컨트롤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과학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다 함께 행복을 추구하고, 어려운 사람에 대해서 아픔을 함께 하는 마음, 이 세 가지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 한다. 이 사람이, 말에 올라타듯이, 인공지능에 올라타서 컨트롤해야 한다. 이제는 이렇게 질문해야 한다. "인간지능은 인공지능을 컨트롤 할 만한 능력이 있는가?"
미네르바 스쿨에서는 전 수업이 온라인 토론과 현장실습으로 이루어진다 한다. 예를 들어, 위에서 말한 전 세계 7개 도시를 돌며 문화와 산업을 체험한다. 위 7개 도시에 기숙사가 있어 학생들은 4년간 기숙사가 있는 도시들을 돌며 현지 문화와 산업을 배운다. 다음과 같은 면에서, 미네르바 스쿨은 미래 대학의 대안으로 떠오르는 교육기관이다.
- 학비가 미국의 웬만한 사립대 2/3정도 수준이다. 캠퍼스를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 수업은 월-목이다.
- 모든 수업은 온라인 화상 교육으로 이뤄져 있다. 카페든 도서관이든 노트북을 켜는 곳이 강의실이다.
- 7개 도시에 흩어져 있는 교수와 학생들이 시간에 맞춰 노트북을 연다.
- 수업 전에 영상 강의를 미리 듣거나 논문이나 책을 읽고 와서 토론식 수업을 한다.
- 글로벌 감각을 키울 수 있다.
- 실습 장소는 학생 개인의 관심에 따라 기업, 관공서, 시민단체 등에서 다양하게 고를 수 있다.
- 학생들은 인문학부터 코딩에 이르기 까지 전분야를 통섭해 배운다. 3학년 때 선택할 수 있는 전공도 ‘사회과학과 뇌신경과학’ ‘컴퓨터과학과 데이터 과학’처럼 모드 과목이 2~3개 세부 전공이 융합돼 있다.
미네르바스쿨은 개교 4년 만에 아이비리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학으로 급성장했다. 들어가기가 매우 힘들다. 2016년엔 306명을 뽑는데 1만6000여 명이 지원했다. 지원자 중 합격률이 1.9%였다. 당시 파이낸셜타임스는 “미네르바스쿨은 하버드(5.2%), 예일(6.3%), 스탠퍼드대(4.7%)보다 합격률이 낮다. 전 세계에서 가장 들어가기 어려운 대학”이라고 평가했다. 최종적으로 미네르바스쿨을 선택한 학생은 150명으로 50%의 학생들이 등록했다. 미국의 일반 사립대 등록률(35%)보다 높은 편이다. "기존 대학은 다른 사람이 연구해 놓은 지식과 이론을 배운다. 그러나 미내르바는 학생이 직접 지식과 이론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을 길러준다." 이 학교 학생인 김강산의 말이다.
언젠가 <중앙일보>가 <현대차정몽구재단>과 미래 인재가 갖출 역량을 알아보기 위해 한국 사회 오피니언 리더, 전문 직군 대표자 등 100명을 인터뷰한 결과, 창의력, 인성, 융복합능력, 협업역량, 소통능력 등이 미래인재의 핵심 역량으로 지목됐다. 하지만 현재의 교육체계는 이런 역량을 기르는 한계가 있다. 세계적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1928~2016)는 “현대의 학교 체제는 산업혁명이 있었던 19세기 방식과 똑 같다”고 일갈했다. 현재 체제는 단일화, 표준화, 대량화라는 산업사회의 가치를 실현하는 노동력을 양성하는 것이 최우선 목표였다는 그의 설명이다. 그러나 미래사회에선 현재 같은 단편적 지식 전달 중심의 수업은 큰 의미가 없다. 사회의 변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지식이 통용되는 유효기간이 갈수록 짧아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졸업장=취업' 공식이 깨지면서 대학이 위기가 현실이 되었다.
실제로 ‘졸업장=취업’의 공식도 허물어지고 있다. 대학이 이론과 기술을 제공하고 기업은 이를 바탕으로 제품, 서비스를 생산하는 ‘산학협력’ 공식도 깨지고 있다. AI와 빅데이터, 자율주행 등 미래 기술 연구에서 기업이 대학보다 앞서 있다. 김주환 연세대 교수(언론홍보대학원장)는 “학생들이 아직 대학에 오는 유일한 이유는 졸업장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학 졸업장이 좋은 일자리를 갖게 해줄 거란 기대감마저 깨진다면 대학은 붕괴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고의 졸업장'인 박사학위 소지자의 미 취업률은 조사가 처음 시작된 2014년 21.3%에서 2017년 22.9%로 증가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 따르면 박사 소지자의 46.8%가 연봉 3000만 원 이하를 받고 있다.
미래학자 토머스 프레이는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을 지상 최대의 목표로 삼는 한국 교육은 큰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난해 5월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신성철 KAIST 총장도 “지금처럼 문, 이과를 나누고 국어, 영어, 수학 중심으로 지식 암기 위주의 수업을 하면 미래인재는 커녕 현재의 인재도 키울 수 없다. 학문 간 경계를 허물고 융, 복합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교육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교문을 열고 나가면 세상 모든 일은 이마를 맞대고 협업하고 있다. 교실에서도 협업하고 함께 문제를 푸는 능력을 길러줘야 한다"고 말했다. 나도 개인적으로 빨리 대한민국이 교육문법을 바꾸어야 한다고 믿는다. 앞으로의 인재는 문제의 핵심을 날카롭게 집어내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당장 업무에 투입해도 손색이 없는 이다.
미네르바 스쿨이 학생들로 하여금 4년 동안 문화인류학적 여행을 하게 하는 이유는, 그런 여행을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사회들을 연결하는 능력이 인공 지능은 절대 가질 수 없는 인간 고유의 능력인 공감능력과 창조적 상상력을 크게 길러줄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문화인류학자처럼 관찰하는 사람을 키우자는 것이다. 그런 여행을 하다 보면,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뀐다. 그리고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곳 이상으로 확장하게 해주고, 현지인들과 어울리면서 세상에는 다양한 형태의 삶이 있고, 자신이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새로운 형태의 삶을 살 수 있음을 알게 된다.
문화인류학적 여행이란 단지 관광 위주가 아니라, 현지 역사와 문화를 통해 자신이 속한 사회를 바라보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누구나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사회와 여행생활자로 몸담은 사회를 문화인류학적으로 치열하게 연결시키면서 입체적으로 성장 할 수 있다. 문화인류학적 여행을 하는 사람은 단순한 여행자가 아니라 생활인으로, 이방인이 아닌 현지인으로 사는 자이다. 문화인류학적 여행을 하는 사람은 현지인들과 밀접한 인간관계를 맺고, 이를 통해 자신을 바꾸려고 실천하는 자이다. 현지인들과 깊은 인간관계를 맺고 이를 통해 세상과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을 변화시킨다는 말이다.
인공지능 로봇이 절대 할 수 없는 여행이 문화인류학적 여행이다. 인공지능 로봇은 단순한 패키지 여행이나 배낭 여행은 우리와 비교도 할 수 없이 잘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인공지능 로봇은 먹지도 마시지도 쉬지도 자지도 않으면 여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공지능 로봇은 그 도시의 사람들과 인격적인 교류를 할 수 없기에 현재 사회와 문화에 깊게 녹아들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경험을 통해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사회의 문화를 내면적으로 연결시키는 일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공감 능력과 창조적 상상력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대는 기계처럼 사는 인간의 시대가 아니다. 가장 인간 답게 사는 인간의 시대이다. 우리른 가장 인간답게 만들어 주는 문화인류학적 여행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여덟 첫째인 "'나'에서 '너'로, '우리'를 보라"라는 이야기를 이어간다. 이 문장은 금방 이해가 안 된다. 나는 '나'에서 '타자'로, 더 나아가 '우리'로 건너가라는 말로 이해했다. 다시 말하면, 삶의 방향을 바꾸어 새롭게 배치하라는 말로 이해했다.
이진성 작가는 인공지능에 대체되는 않는 '나'를 만드는 교육의 핵심 중에 하나로 봉사라고 보았다. 왜냐하면 인류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서 고통을 받으면서 살고 있는 누군가들을 조건 없이 섬기는 것은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고귀하고 숭고한 무엇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단지 봉사활동만을 이야기 하면 인공지능이 우리보다 훨씬 더 잘할 수 있다. 인공지능 로봇은 지치지도 않고, 먹지도 않고, 쉬지도 않으면서 여러 가지 불편을 잘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인공지능 로봇은 완벽한 봉사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공감과 창의성이 결여된 봉사 활동은 별 의미가 없다. 매뉴얼대로 만든 봉사 프로그램도 마찬가지이다.
진정한 봉사 활동이 되려면, 그 대상의 편에 서서 그들이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고민해보아야 한다. 그냥 NGO에서 제시하는 봉사 활동 프로그램을 아무 생각 없이 기계적으로 따르는 것과 다르게 하는 것이다. 자신의 머리와 가슴을 믿고 공감 능력과 창조적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물론 해외 봉사를 나가려면, NGO와 함께 해야 한다. 다만 종속되지 않는 것이다.
인공지능 시대에 '인권'은 윤리, 도덕 문제의 핵심이 된다. 인공지능 문명이 필연적으로 야기할 인간 소외 문제는 인권의 관점에서 접근할 때만 해결점이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인공 지능 시대에는 인권 문제에 관한 지식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와 인권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얼마나 갖추었는가 가 큰 경쟁력이 될 수 있다. 인공지능에게 대체되지 않는 나를 만든다는 프로젝트의 핵심은 인간다운 인간이 되는 것이다. 그 길은 나만 아는 인간에서 너와 우리를 아는 인간으로 성장할 때 얻어진다. 너와 우리를 아는 앎의 핵심은 나보다 낮은 자리에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을 위한 삶을 사는 것이다. 내 삶의 한 부분에 봉사, 기부, 인권이 있어야 한다. 그런 일들에 시간을 투자할 수 없다면, 그런 일을 하는 시민 단체나 활동가를 후원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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