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오늘 아침에 공유했던 시입니다.
829.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천지불인(天地不仁, 하늘과 땅은 편애(仁)하지 않는다.)를 확인하려고 <도덕경>을 폈다가, 이 세상을 먼저 끝낸 아내가 그은 밑줄이 눈에 들어 왔다. 다언삭궁 불여수중(多言數窮, 不如守中). 이건 '말이 많으면 궁지에 몰리는 법. 중심(中)을 지키는 것보다 좋은 일은 없습니다.'란 뜻이다. 오늘은 사자성어 작렬이다. "인심유위(人心惟危)하고, 도심유미(道心惟微)하니, 유정유일(惟精惟一)하고, 윤집궐중(允執厥中)하라." 사람의 마음은 위태롭다. 즉, 금방 이랬다 저랬다 하며, 조금 있으면 또 바꾸고 바뀐다. 그래서 위태롭다. 반면 도(道)의 마음은 사람 마음의 반대다. 그래서 아주 미미하고, 동요됨이 없다는 뜻이다.
마음이 흔들릴 때 마다, 내가 노래처럼 외우는 구절들이다. 얼마만 벌면 그만 해야 지 해놓고 마음이 금방 변한다. 그만큼 인간마음은 보 잘 것 없고 위태롭다는 뜻이다. 그래서 오직 순수하고 오직 한결같이 초발심(初發心)으로 정월 초하룻날 먹은 마음 섣달 그믐날까지 가야 된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도심(道心)은 유약하기 때문에 잘 얻어지는 것도 아니고 아주 약하고 미미하고 작다. 도라는 것은 마음을 깨닫고 천지의 마음을 얻고 천지와 하나되는 것은 그만큼 '하늘의 별 따기'와 같다는 뜻이다. 그래서 윤집궐중, 도를 닦고 중(中)을 잡기 위해서는 인간의 그 위태로운 마음을 벗어나 초월하여 도를 이루어서 일편단심으로 한결 같이 하라는 이야기이다.
어젠 나의 <예훈농장 2019버전>을 시작한 날이다. 흙을 만났다. 봄의 흙은 헐겁다. 봄이 오면, 언 땅이 녹고, 햇볕이 땅속으로 스며들어 흙의 관능은 노곤하게 풀리면서 열린다. 봄의 흙이 헐렁해 지는 과정은 아름답다. 초봄의 햇살은 흙 표면의 얼음을 겨우 녹이고 흙 속으로 스민다. 흙 속에서는, 얼음이 녹은 자리마다 개미집 같은 작은 구멍들이 열리고, 이 구멍마다 물기가 흐른다. 밤이 되면 다시 기온이 떨어져, 이 물기는 다시 언다. 그러나 겨울처럼 꽝꽝 얼어 붙지는 않는다. 다음날 아침에 햇살이 다시 내리 쬐이면, 구멍 속의 얼음이 다시 녹는다. 얼고, 녹기를 거듭하면서, 흙 속의 작은 구멍들이 조금씩 넓혀진다. 그 넓혀진 구멍들로 햇볕이 조금 더 깊게 스민다. 이런 식으로, 봄의 흙은 헐거워지고, 헐거워진 흙은 부풀어 오른다.
작년은 "뽑으려 하니 모두 잡초였지만, 품으려 하니 모두 꽃이었다."는 이 말에 풀에 져 여름에 포기했지만, 올해는 초발심을 잊지 않고 싶다.
나를 살 게 하는 말들/천양희
얼음이 녹으면 봄이 된다는 말이
나를 살게 한다
불완전하기에 세상이 풍요하다는 말이
나를 살게 한다
나를 잘못 간직했다가 나를 잃는다는 말이
나를 살게 한다
시가 없는 세상은 어머니가 없는 세상과 같다는 말이
나를 살게 한다
그 중에서도 나를 살게 하는 건
사람을 쬐는 것도 필요하다는 말
날마다 나를 살게 하는 말의 힘으로
나는 또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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