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97.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3년 6월 26일)
노자 <<도덕경>> 제63장을 읽는다. 제목은 '어려운 일은 쉬운 일에서 시작되고, 큰일은 작은 일에서 시작된다'는 것으로 정할 수 있다. 그러니 '작은 것에 집중하라'는 말이다. 이 장은 우리의 일상에 효유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삶의 지혜를 준다.
우선 "爲無爲(위무위, 제3장) 事無事(사무사, 제48장, 제57장) 味無味(미무미, 제35장 )", 즉 '하지 않음 하고, 일 벌이지 않는 일 처리를 하고, 가미되지 않은 순수한 맛을 맛보라'는 것은 노자의 역설적인 논리는 <<도덕경>> 전반에 걸쳐 나오는 논리이다. 박재희 교수 식으로 말하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이 세구절은 도를 구현한 성인의 삶의 자세를 표현하는 명구이다.
행(爲)하라!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일(事)하라!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처럼!
맛(味)보라! 아무 맛도 넣지 않은 것처럼!
그리고 "대소다소(大小多少)"가 키워드이다. 이 말은 '작은 것이 큰 것이 되고, 적은 것이 많은 것이 된다'는 거다. 노자는 천하를 얻는 것도 작은 일에서 시작되고, 천하를 잃는 것 역시 작은 문제를 소홀히 여기다가 벌어지는 일이라고 말한다. 작은(소) 일을 크게(대) 여기고, 적은(소) 것에서 많은(다) 것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다. 내가 지금 하찮게 요기는 일이 나중에 나에게 줄 영향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클 수 있다. 한 푼 두 푼 모으는 돈이 큰 돈이 된다. 작은 병을 무시하다가 결국 큰 병으로 도진다. 작은 문제점을 그냥 넘기고 지나치다가 망할 수 있다. 작은 거, 별거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사람은 큰 일을 이룰 수 없다. 작은 것이 큰 것이 반전되고, 적은 것이 많은 것으로 반전된다는 것이 노자의 반(反) 철학이다.
'초윤장산(礎潤張傘)'이라는 말이 있다. '밖에 나가기 전에 주춧돌에 습기가 적어 있으면 비가 내릴 징조이니, 미리 우산을 준비하라'는 말이다. 어떤 일이 벌어지기 전에 반드시 조짐들이 있기 마련이다. 언젠가 적어 둔 글이다.
조짐/박수소리
세상은 소리로 자신을 표현한다.
많은 이들은 이 소리를 듣는다고 생각 하지만,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소리에도 그림자가 있다. 그 그림자가 신호이다.
우린 소리 속에 숨어 있는 신호를 보지 못한다.
그 신호는 '진실'과 '진실 같은 것', 즉 사이비를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진실은 전면에 등장하기 전에 신호를 보낸다.
아주 작은 미세한 파동으로 자신의 진실 전체를 드러내려 한다.
그 파동을 우린 '낌새' 또는 '기미'라고 한다.
기미는 작은 조짐이다.
조짐은 거대한 현상을 이끌고 다가온다.
조짐을 파악한 사람만이 예측 가능한 미래를 대비할 수 있다.
낌새를 읽어야 삶의 존재가 풍성하다.
삶의 길목에서 낌새를 알아차리려면 마음이 열려 있어야 한다.
실제로 1:29:300이라는 '하인리히 법칙'이 있다. 큰 일이 벌어지기 전에 중간 급 사건이 29번 터지고, 그 전에 작은 일이 300번 벌어진다는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좋은 큰 일이 벌어지기 전에도 작은 조짐이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갑자기 행운이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그 행운이 오기 전에 작은 행운의 조짐이 있었다는 거다.
지금부터는 제62장의 정밀 독해를 한다.
爲無爲(위무위) 事無事(사무사) 味無味(미무미): 무위로 도모하고, 무사로 실행하고, 무미로 맛을 본다.
'무(無)'는 '~이 없다'라는 의미이다. 그런다 "무위(無爲)", "무사(無事)", "무미(無味)" 앞에 '위', '사', '미'라는 동사가 있다. 그러나 이렇게 풀이할 수 있다. '무위를 하라!' 무사로 일하라!' '무미로 맛을 보라!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무위(無爲)"나 "무사(無事)"는 '무위도식'한다고 할 때의 '무위'나 '무사태평'하다고 할 때의 '무사'와 그 의미가 완전히 다르다. '무위도식'은 '삶의 기본 조건인 노동을 포기한 채 그냥 놀고먹는다'는 의미이고, '무사태평'은 '미래에 닥칠 변화나 위기에 대해 아무런 대비를 하지 않는 안일한 자세'를 뜻한다. 노자가 말하는 "무위"나 "무사"는 '무리수나 편법을 동원하지 않고 순리에 맞춰 자연스럽게 일을 계획하고 추진한다'는 의미다. 유위한 책략이나 유사(有事)한 계획에는 필연적으로 사람의 과도한 욕망이 개입되어 중도에 난관에 봉착하거나 뒤탈을 일으키기 쉽다. 이에 비해 "무위"나 "무사"는 적당한 목표와 방법을 설정하고 시기도 적절하게 조절하므로 순탄하게 일을 끌고 갈 수 있으며 아무 탈 없이 마무리도 깔끔하게 할 수 있다.
좀 쉽게 말해, 하지 않음을 하고, 일 벌이지 않는 일 처리를 하고, 가미되지 않은 순수한 맛을 맛보라는 거다. 매우 역설적인 문장이다. 온종일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고 복잡한 일에 대하여 생각을 끊고 보냈다면, 그 행위는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아무 것도 하지 않은 하루의 시간을 보낸 거다. 일종의 아무 일도 하지 않는 행위를 한 것이다. 온종일 기업의 리더가 직원에게 이래라저래라 간섭하지 않고 온전히 직원의 생각을 존중하여 그들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지켜봐 주고 기다려주었다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일'을 한 것이다. 음식을 만들면서 각종 양념과 조미료를 넣지 않고 재료 고유의 맛을 느끼며 요리를 했다면 가공된 맛을 만들어 요리한 것이다.
大小多少(대소다소) 報怨以德(보원이덕) : 큰 것은 작은 것이고 많은 것은 적은 것이며, 덕으로 원한을 갚는다.
圖難於其易(도난어기이) 爲大於其細(위대어기세): 어려운 일은 쉬울 때 도모하고, 큰일은 작을 때 시작한다.
쉽게 말해, 작은 것을 가지고 큰 것을 다스린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키워드가 "소(小, 작음)"와 "소(少, 적음)"이다. 그러니 "Small is beautiful"인 것이다.
"큰 것이 작은 것이고 많은 것이 적은 것"이라 읽으면, 다음과 같이 볼 수 있다. "유위의 관점에서 볼 때는 크고 많아 보이는 것도 "무위"의 관점에서 보면 작고 적어진다는 뜻이다. '유위'에 개입된 과도한 욕망을 걷어내면 부풀려져 있던 거품이 사라지게 되고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 의외로 쉽게 풀리게 된다. 덕으로 원한을 갚는다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유위한' 도덕률인 법을 들이댈 경우 원한을 갚을 수 있는 것은 비례적 보복밖에 없지만, 무위의 도덕률을 적용하면 덕으로 원한을 갚을 수도 있게 된다. 내 자식을 죽인 살인자를 끝까지 응징하는 부모도 있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은 후 그를 용서하고 자식으로 삼는 부모도 있지 않은가? 원한을 원한으로 갚으면 원한만이 이어지는데, 그런 고리를 끊어버리는 도의 표용성을 말하는 것이다.
天下難事(천하난사) 必作於易(필작어이) 天下大事(천하대사) 必作於細(필작어세): 천하의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 일에서 시작되고, 천하의 큰일은 반드시 작은 일에서 시작된다.
'어려운 일은 쉬운 일에서 시작되고 큰일은 작은 일에서 시작된다'는 문장도 문제를 어려움과 쉬움, 크고 작음으로 구분해서 상대적 난이도를 비교하려는 것이 아니라, '무위와 유위를' 대비시켜 "무위"에 방점을 찍기 위한 표현이다. 때로는 큰 것이 "무위"의 항에 놓일 수도 있고, 반대로 작은 것이 무위의 항에 놓일 수도 있다. "무위"하면 큰 문제도 작게 만들 수 있고, 어려운 문제도 쉽게 풀 수 있는가 하면, 보 잘 것 없어 보이는 것도 크고 위대하게 만들 수 있다. 반대로 '유위'하면 사소한 문제도 크게 만들 수 있고 크고 위대하던 것도 작고 보 잘 것 없게 만들 수 있다.
쉽게 말하면, 쉽다(易)고 생각하는 것이 어려운 일(難事)이 되고, 작은 일(細)을 놓치지 않아야 큰일(大事)를 이룰 수 있다는 거다. 문제는 발생하기 전에, 일이 작을 때 해결해야 쉽게 해결할 수 있다. 노자의 이런 철학에서 <<주역(周易)>>의 변화 원리를 느낄 수 있다. 지금 일어난 일은 결국 새로운 방식으로 변화 발전한다는 것이다.
是以聖人終不爲大(시이성인종불위대) 故能成其大(고능성기대): 그러므로 성인은 끝내 크게 되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큰일을 이루는 것이다
夫輕諾必寡信(부경낙필과신) 多易必多難(다이필다난): 무릇 가볍게 수락하면 믿음성이 부족하고, 쉽게 생각하면 반드시 난관에 봉착한다.
是以聖人猶難之(시이성인유난지) 故終無難矣(고종무난의): 그러므로 성인은 만사를 어렵게 여기고, 그 때문에 끝내 어려움을 만나지 않는다.
마지막 문장에 흥미로운 것이 "종불위대(終不爲大)"이다. 말 그대로 하면, '갑자기 커지는 것은 없다'는 거다. 그러니까 세상에 한 방은 없다는 거다. 한 방에 무엇을 이룬다면, 한 방에 그것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해야 하고, 십 층 높이 집을 지으려면 나무 한 조각부처 기초를 제대로 세워야 한다. 한강에 얼음이 얼기 위해 몇 날 며칠의 추위가 필요하듯이, 본말 꽃을 피기 위해 저 깊은 땅속에 작은 온기가 있어야 하듯이 세상의 어떤 결과는 반드시 작은 것으로 시작한다.
천하를 얻으려는 지도자 또한한 방에 크게(大) 이루려고 하지 않아야 결국 대사(大事)를 이룰 수 있다. 그러니 가볍게(輕) 처신하여 함부로 승낙(諾)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그 지도자를 신뢰(信)하게 될 것이다. 대충(易) 하는 일이 많을수록 어려움(難)도 그만큼 많아진다. 작은 일이라도 가벼이 보지 않고 어렵게(難) 생각하면 결국 어려운 일을 당하지 않을 수 있다. 교만과 과시로 조그만 일이라고 생각할 때 실패할 확률이 높고, 상대방이 별 볼 일 없다고 무시했을 때 큰코다치는 경우가 많다. 늘 처음처럼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작은 일을 대해야 결국 큰 일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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