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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들녘에서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대전문화연대 걷기 모임에서 어젠 김제(金堤)라는 낯선 도시를 걸었다. 삼국시대부터 한국 농경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최근에는 서해안 새만금 개발을 진행함에 따라 농공중심도시로의 발전이 계속되고 있다. 이 지역은 해발고도 50m 미만의 구릉과 만경강, 동진강 유역의 충적평야로 구성되어 호남평야의 중심을 이룬다. 걷다 보니,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최초 저수지였던 김제 벽골제(碧骨堤)까지 갔다.

그 곳에서 우리는 우연히 <벽골제가든>이란 식당을 만났다. 전라도 지역 식당들이 거의 다 그런 것처럼, 이 식당도 어제의 점심을 올해 들어 최고의 식사 자리로 만들어 주었다. 순간을 영원으로 만들어 주는 시간이었다. "비타 브레비스 아르스 롱가(Vita brevis Ars longa)." 그리스 의사 히포크라테스가 한 말이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배철현 교수는 이렇게 해석한다. "인간의 수명은 짧습니다. 순간과 같은 인생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삶에서 최선을 찾고, 그것을 추구하는 삶인 '예술'은 순간을 영원으로 만드는 기술입니다." 그 식당 주인의 음식이 예술이었다.

‘예술'에 해당하는 라틴어 단어 ‘아르스(ars)’의 원래 의미는 ‘우주의 질서에 맞게 만물을 정렬 시키다'라고 한다. 그 후, ‘아르스’는 유럽인들이 정착생활을 하고 문명을 구축하던 시절의 씨앗이었다. 그러니까 서양문명은 바로 ‘아르스’의 씨앗이 발아(發芽)하며 만개한 결과인 셈이다. 로마인들은 이 단어를 채택하면서 ‘예술'이란 개념을 로마제국 건설의 중요한 원칙으로 삼았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최선의 삶이 무엇인지, 깊이 묵상하고, 그 안에서 최선의 원칙을 발견하였다. 인간문명은 이 원칙을 작동하여, 인간의 오감으로 확인할 수 있는 다양한 모양으로 드러내는 다양한 과정(科程)이라고 볼 수 있다. 삶의 원칙을 예술 하는 마음으로 찾고, 그것을 일상에 잘 작동시킨다면, 우리의 삶도 예술로 승화된다.

그래 우리는 전라도를 "예향(藝鄕, 예술을 즐기는 사람이 많고 예술가를 많이 배출한 고을)"이라 부른다. 그런데 김제 겨울 들녘엔 사람은 없고, 볏짚 덩어리만 무심하게 모여, "이년 아, 소식 한 장 없냐"고 합창하고 있다.

들녘에서/황지우

바람 속에
사람들이……
아이구 이 냄새,
사람들이 살았네

가까이 가보면
마을 앞 흙벽에 붙은
작은
붉은 우체통

마을과 마을 사이
들녘을 바라보면
온갖 목숨이 아깝고
안타깝도록 아름답고

야 이년아, 그런다고
소식 한 장 없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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