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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망종(芒種)’

2378.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3년 6월 7일)
어제는 24절기 중 9 번째로 소만(小滿)과 하지(夏至) 사이에 위치한 ‘망종(芒種)’이었다. 벼같이 수염이 있는 '까시라기'가 붙어 있는 곡식의 씨를 뿌리기 좋은 시기를 뜻 한다. 이 때는 모내기와 보리 베기가 이뤄진다. 지역별로 다양한 망종 풍속을 갖는데, 농사의 한 해 운을 보거나 농사가 잘되기를 빌었다. 농촌에서는 1년 중 가장 바쁜 시기이다. '보리는 망종 전에 베라'는 속담이 있는 것은, 망종을 넘기면 보리가 바람에 쓰러지는 수가 많으니 이를 경계해야 함을 뜻 한다. 그리고 '보리는 익어서 먹게 되고, 볏 모는 자라서 심게 되니 망종이요', '햇보리를 먹게 될 수 있다는 망종'이라는 말도 있다. 망종까지는 보리를 모두 베어야 빈터에 벼도 심고 밭갈이도 할 수 있다. 또 이 시기는 사마귀나 반딧불이 나타나기 시작하며, 매화가 열매 맺기 시작하는 때이다. 모내기와 보리 베기가 겹치는 이 무렵에는 보리농사가 많은 남쪽일수록 더욱 바쁘다. 그래서 이때는 “발등에 오줌 싼다.”라고 할 만큼 일년 중 제일 바쁜 시기이다. 비가 끊임없이 내리며, 농가는 모내기 준비로 바쁘다.
 
망종에는 ‘망종보기’라 해서 망종이 일찍 들고 늦게 듦에 따라 그해 농사의 풍흉을 점친다. 음력 4월에 망종이 들면 보리농사가 잘 되어 빨리 거두어 들일 수 있으나, 5월에 들면 그해 보리농사가 늦게 되어 망종 내에 보리농사를 할 수 없게 된다. 곧, 망종이 일찍 들고 늦게 듦에 따라 그해의 보리수확이 늦고 빠름을 판단하는 것이다. '망종이 4월에 들면 보리의 서를 먹게 되고 5월에 들면 서를 못 먹는다'고 하는 속담이 있다.
 
'보리의 서를 먹는다'는 말은, 그해 '풋보리를 처음으로 먹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예전에는 양식이 부족해서 보리 익을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풋보리를 베어 다 먹었다고 하니 그때의 삶을 엿보이게 한다. 그래서 망종 시기가 지나면 밭보리가 그 이상 익지를 않으므로 더 기다릴 필요 없이 무조건 눈 감고 베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보리는 망종 삼일 전까지 베라”는 말이 있다.
 
그리고 실제로 '보릿고개'란 말이 있었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망종까지 먹을 것이 없어서 많은 이들이 굶었다고 한다. 보릿고개를 못 넘어 죽을 지경이라는 기사가 실제로 있었다 한다. 그리고 보리는 소화가 잘 안 돼 '보리 방귀'라는 말도 있었다. 그러나 보리 방귀를 연신 뀔 정도로 보리를 배불리 먹어보는 것이 소원이기도 했다. 오죽하면, '방귀 길 나자 보리 양식 떨어진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은 먹을 게 너무 많아, 살과의 전쟁 중인 사람이 많다.
 
참고로, 24절기의 이름은 중국 주(周)나라 때 화북 지방의 기상 상태에 맞춰 붙인 이름이다. 그러므로 천문학적으로는 태양의 황경이 0°인 날을 춘분으로 하여 15° 이동했을 때를 청명 등으로 구분해 15° 간격으로 24절기를 나눈 것이다. 따라서 90°인 날이 하지, 180°인 날이 추분, 270°인 날이 동지이다. 그리고 입춘(立春)에서 곡우(穀雨) 사이를 봄, 입하(立夏)에서 대서(大暑) 사이를 여름, 입추(立秋)에서 상강(霜降) 사이를 가을, 입동(立冬)에서 대한(大寒) 사이를 겨울이라 하여 4계절의 기본으로 삼았다. 그 절기는 다음과 같다.
 
  1. 입춘(立春): 2월 4일 또는 5일, 봄의 시작
  2. 우수(雨水): 2월 18일 또는 19일, 봄비 내리고 싹이 틈
  3. 경칩(驚蟄): 3월 5일 또는 6일, 개구리 겨울잠에서 깨어남
  4. 춘분(春分): 3월 20일 또는 21일, 낮이 길어지기 시작
  5. 청명(晴明): 4월 4일 또는 5일, 봄 농사 준비
  6. 곡우(穀雨): 4월 20일 또는 21일, 농사 비가 내림
  7. 입하(立夏): 5월 5일 또는 6일, 여름의 시작
  8. 소만(小滿): 5월 21일 또는 22일, 본격적인 농사 시작
  9. 망종(芒種): 6월 5일 또는 6일, 씨 뿌리기 시작
  10. 하지(夏至): 6월 21일 또는 22일, 낮이 연중 가장 긴 시기
  11. 소서(小暑): 7월 7일 또는 8일, 더위의 시작
  12. 대서(大暑): 7월 22일 또는 23일, 더위가 가장 심함
  13. 입추(立秋): 8월 7일 또는 8일, 가을의 시작
  14. 처서(處暑): 8월 23일 또는 24일, 더위 식고 일교차 큼
  15. 백로(白露): 9월 7일 또는 8일, 이슬이 내리기 시작
  16. 추분(秋分): 9월 23일 또는 24일, 밤이 길어지기 시작
  17. 한로(寒露): 10월 8일 또는 9일, 찬 이슬이 내리기 시작
  18. 상강(霜降): 10월 23일 또는 24일, 서리가 내리기 시작
  19. 입동(立冬): 11월 7일 또는 8일, 겨울 시작
  20. 소설(小雪): 11월 22일 또는 23일, 얼음이 얼기 시작
  21. 대설(大雪): 12월 7일 또는 8일, 겨울 큰 눈이 옴
  22. 동지(冬至): 12월 21일 또는 22일, 밤이 연중 가장 긴 시기
  23. 소한(小寒): 1월 5일 또는 6일, 겨울 중 가장 추운 때
  24. 대한(大寒): 1월 20일 또는 21일, 겨울 큰 추위
 
서양에는 7일을 주기로 생활했으나 중국과 우리나라는 24절기를 이용해서 15일을 주기로 생활하였었다. 실제도 음력에 따르는 것이 농경 사회에 적합했다. 왜냐하면 해를 기준으로 하기보다는 달을 기준으로 하면 어김없이 15일 주기로 변화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해와 달의 순기가 1년을 기준으로 서로 차이가 난다는 점이다. 생활 속에서 느끼는 하루하루의 편리성은 달을 기준 삼는 것이 좋지만, 양력으로 짜 맞추어진 절기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계절과는 차이 난다는 단점이 있다. 달이 지구를 1번 공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29.5일이고, 12번이면 354일이 된다. 하지만 지구가 해를 공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365일로 11일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24절기의 배치는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나누고 각 계절을 다시 6등분하여 양력 기준으로 한 달에 두 개의 절기를 배치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즉, 태양의 움직임에 따른 일조량, 강수량, 기온 등을 보고 농사를 짓는데, 순태음력(純太陰曆)은 앞서 말한 대로 불편함이 있었다. 그래서 태양의 운행, 즉 지구가 태양의 둘레를 도는 길인 황도(黃道)를 따라 15°씩 돌 때마다 황하 유역의 기상과 동식물의 변화 등을 나타내어 명칭을 붙인 것이다.
 
이젠 망종과 함께 여름이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오늘 시 처럼, 여름다운 여름이 왔으면 한다.
 
 
여름/권오삼
 
해는 활활
매미는 맴맴
참새는 짹짹
까치는 깍깍
나뭇잎은 팔랑팔랑
개미는 뻘뻘
모두모두 바쁜데
구름만 느릿느릿
 
어제는 우연히 <한겨레 신문>의 '휴심정(조현 종교전문 기자)'에서 김용규 <여우숲생명학교> 교장의 멋진 글을 아침 내내 읽었다. 거기서 만난 글을 갈무리해 본다. 그는 "그믐으로 기울어 사라졌던 달이 다시 차올라 만월(滿月)이 되는 과정을 알아채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다시 사위어 그믐, 다시 차올라 보름이 되는 과정을 알아챌 수 있는 사람이라면, 삶에 관한 준엄한 진실 하나쯤은 너끈히 깨달을 수 있"다고 했다. 다음과 같은 예들을 들었다.
  • 달의 차오름과 기움과 다시 차오름의 무한 반복 속에서 우주의 모든 것이 순환과 리듬 위에 놓인 것
  • 겨울이 봄과 여름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다시 가을과 겨울로 이어지듯, 음울한 날은 희망찬 날로 새 길을 내지만, 그 길에 희망이 언제 있었냐는 듯 온갖 회의감 속으로 빠져드는 날이 다시 찾아올 수 있는 것이 인생인 것
  • ‘새옹지마’(塞翁之馬)의 고사처럼 삶이 수많은 모순의 통합 과정으로 점철되는 것
  • 달의 순환과 그 리듬을 인생에 비추면, 인생이 그러한 것임을 알고, 그것을 다시 역사에 비추면, 역사 또한 그러할 것임도 알 수 있"다고 했다.
 
리듬과 순환을 생각하면, 노자의 <<도덕경>> 제 25장 다음 구절을 기억한다. "字之曰道, 强爲之名曰大. 大曰逝, 逝曰遠, 遠曰反(자지왈도, 강위지명왈대. 대왈서, 서왈원, 원왈반)". 이 말의 뜻은 '임시로 이름 지어 도라 하고, 억지로 이름 붙여 크다 하자. 이 큰 것은 크기 때문에 흘러 움직이고, 흘러 움직이면 끝이 안 보이는 넓이를 갖게 되고, 멀고 먼 넓이를 가지면 또 본래의 근원으로 되 돌아간다'는 거다.
 
<<도덕경>> 제1장에서 말한 것처럼, '도'는 '이름 붙일 수 없는 무엇(無名)'이다. 절대적인 것은 어떤 이름이나 범주로 한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름이 아니라 뭔가 그냥 덧붙여 보는 문자(字)로 말하면 '도(道, Dao)'라 할 수 있다는 거다. 우리 말로 어차피 움직이니까 '길'이라는 거다. 그러니까 이제 제1장의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가 새롭게 이해된다. 이 이름 없는 카오스의 '도'를 '도'라고 부른다는 것, 즉 언어의 못을 입힌다는 것이 허용될 수 없다는 거다. 그러나 하는 수 없이 이야기를 해야 하니까 부를 이름이 필요하니 그것을 억지로 글자의 옷을 입힌 방편에 불과하다는 거다. 왕필의 주를 공유한다. "도라고 언어 화한 것은 만물이 그 어느 것도 이 길을 통하지 아니할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 이 '도'라는 이름은 혼성한 가운데서 우리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 중에서 최대의 것이다."
 
그래서 노자는 "强爲之名曰大(강위지명왈대)"라 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고, 구태여 뭔가로 표현한다면 '크다'고 말해 보자는 거다. 여기서 '크다'는 어떤 물체의 크기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최대치를 일컫는 것이며 최대라는 것은 혜시의 말대로 "지대무외(至大無外)"이므로 '밖'이 없는 전체일 수 밖에 없다. 이 카오스의 '도'는 전체이기 때문에, 혼성된 것이며 잡다한 것이기 때문에, 획일적인 일자가 아니기 때문에 매우 역동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움직일 수밖에 없다. "갈 수밖에 없다(大曰逝)"는 거다. '간다'는 것은 나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다(逝曰遠). 멀어진다는 것은 나로부터 반대의 성격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예컨대, 빛으로부터 멀어지게 되면 어둠의 성격을 지니게 되고, 선(善)으로부터 멀어 지게 되면 불선(不善)의 성격을 지니게 되고, 아름다움으로 부터 멀어지게 되면 추함의 성격을 지니게 된다. 제2장에서 노자는 말하였다. 아름다움은 그 것이 곧 추함이요, 선함은 그것이 곧 불선이다. 즉 반대되는 사태는 또 다시 반대되는 사태로 복귀하게 된다. 빛이 전적으로 부정되는 어둠은 없고, 어둠이 전적으로 부정되는 빛이 없다. 빛 속에는 어둠이 내재하게 마련이고, 어둠 속에도 빛이 있게 마련이다. 흰색 속에도 까망이 있고, 까망 속에도 흰색이 있다.
 
그리고 '먼 곳까지 끝 없이 뻗어 간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자기에게 되돌아옴을 뜻한다(遠曰反). 여기서 '반(反)'은 '반대'의 뜻을 갖는 동시에, '돌아옴'을 의미하는 '반(返)'이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그러니까 '반(反)'은 '반(返)'이다. 반대 되는 부사적 상태는 서로가 서로에게 돌아간다. 노자가 말하는 우주는 유기체적 우주이기 때문에 주기성과 리듬성을 갖는다. 그래야만 조화로운 전체가 유지된다. 절대적이고, 전일적이고, 무소 부재하므로 아무리 뻗어 나가도 결국 그 자체 안에서 움직인다. 우주의 확대와 축소의 순한 과정을 이야기 하고 있는 거다. 아무튼 여기서 강조하려는 것은 '도'의 정적 존재성 측면보다 역동적 생성의 면임은 분명하다. 이런 순환을 "大曰逝, 逝曰遠, 遠曰反(대왈서, 서왈원, 원왈반)"라 표현했다. 그러니 사는 일에 너무 힘들어 할 필요 없다. 다 순환한다. 최근에 우리 시회와 정부가 돌아 가는 일에 너무 속상해 할 필요 없다.
 
이 말을 줄여 "대서원반(大逝遠反)"이라고 한다. '사물은 커지고, 확대되고, 결국 다시 돌아온다'는 거다. 여기서 헤겔의 정반합(正反合)의 논리가 겹쳐진다. 세상은 상식(正)과 상식을 부정하는 반대(反)의 원리와 갈등을 통해 새로운 상식(合)으로 전환한다는 헤겔 철학 말이다. 상식과 상식을 깨는 반대의 논리, 그것을 통해 새로운 상식을 만들어 내는 과정일 뿐이다.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