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71.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3년 5월 30일)
유시민 작가는, 김남주 시인을 통해, "받아들이기 어려운 세상의 변화 때문에 심란해진" 자신을 위로 받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자신이 자유로운 존재임을 잊지 않는다면 대통령 자리에 앉은 어떤 남자의 어리석고 기괴한 행위가 너의 존엄을 해치지 못할 거야!”
김남주 시인은 숨을 쉬듯 자연스럽게 사람과 세상과 삶에 대한 생각과 감정을 문자로 옮겼을 뿐, 자신을 시인이라 말하지 않았다 한다. 그러나 그는 시인이었다. 냉정하게 말하면 시 말고는 세상의 변화에 힘을 보탤 능력이 없었던 사람이었다. 그는 시 말고는 세상의 변화에 힘을 보탤 능력이 없었던 사람이었다. 남민전은 온몸 가득 억압과 불평등에 대한 분노를 채운 인간 김남주가 시대의 어둠에 길을 잃고 절망감에 쫓기다 들어섰던 골짜기였을 뿐이다.
사람이 훌륭해도 시가 그만 못한 경우가 있다. 시는 훌륭한데 사람은 그렇지 않은 경우 또한 없지 않다. 김남주는 삶과 시 모두 매력이 있다는 게 유시만 작가의 말이다. 오래 전 시인 윤동주는 「쉽게 씌어진 시」에서 자신을 이렇게 질책했다.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부끄러운 일이다."
타고난 시인은 쉽게 시를 쓰고, 그 때문에 스스로를 학대하는 것 같다.
"시가 술술 나오는구나
거미줄이 거미 똥꾸멍에서 풀려나오듯이
막힘없이 거침없이 빠져나오는구나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나 같은 놈에게
멋도 없고 가락도 없고 서정도 없는 엉터리 시인에게" (김남주, <시를 쓸 때는>의 일부)
김남주는 도대체 왜 시를 썼는가? 자유로운 인간으로서 자신의 존엄을 실현하려고, 같은 세상을 사는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그 이야기를 하려고 썼다. 나는 그렇게 그를 이해한다. 다음은 시 <자유에 대하여>의 일부다. 여기에 그는 맹자가 말한 ‘호연지기(浩然之氣)’, 모든 속박을 뿌리치고 스스로 자신을 해방한 자유인의 마음을 터뜨렸다.
자유를 내리소서 자유를 내리소서
십자가 밑에 무릎 꿇고 주문 외우며
기도 따위는 드리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대지의 자식인 나는
자유 좀 주세요 자유 좀 주세요
강자 앞에서 허리 굽히고 애걸복걸하면서
동냥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직립의 인간인 나는
왜냐하면 자유는
하늘에서 내리는 자선냄비가 아니기 때문이다
왜냐면 자유는
위엣놈들이 아랫것들에게 내리는 하사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유는 스스로 말미암는 것이지만, 1차적으로는 신체적 억압이 제거된 상태일 뿐만 아니라 내가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다. 내가 스스로에게 이유가 되어 하는 언행은 거침이 없다. 자유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데서 출발한다. 삶에서의 많은 문제들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르는 데서 나온다. 자기 인식이 우선이다. 자기 인식은 자신을 알려는 마음가짐이고 그 마음가짐을 가지고 자신을 항상 응시하려는 과정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런 노력을 하지 않고 사제나 목사에게 달려가면 해답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은 어리석다.
우리는 실제 삶에서 쉽게 자유를 포기하고, 어떤 외부 권위에 의존하려 한다. 외부 권위는 명령하고 억압하고 부자연스럽고 억지일 때가 많다. 우리 사회는 우연히 부여잡은 권위를 가지고 휘두르며 다른 이에게 명령하며 복종하라고 윽박지른다. 그러나 세상의 변혁은 한 번도 이념, 정책, 교리, 리더의 카리스마를 통해 성취된 적은 없다. 자유를 위해 자신을 안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3인칭으로 두어, 자신의 생각과 말, 그리고 행동에 대한 관찰을 하는 데서 시작된다. 그 뿐만 아니라, 주변인들과 관계에서, 그들이 반응하는 자신을 응시하여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스스로 수정하려는 수고를 하는 일이다.
내가 살고 세상은 내가 스스로 변혁할 때, 비로소 변하기 시작한다. 세상의 변혁은 외부의 권위가 만들어 주지 않는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무식한 것이다. 자기 변혁은 자기가 누군인지 알려는 수고의 부산물이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데, 올바른 말과 행동이 나올 수 없고, 자기 변혁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자신을 안다는 것은 마음의 움직임에 대한 면밀한 관찰에서 시작한다. 나는 내가 오늘 마주치는 정보들과 사람들을,내가 경험하여 획득한 나의 시선이라는 색안경으로 볼 수밖에 없지만, 편견을 가진 내 자신을 그대로 인정하고 인식하는 것이 자유로운 인생의 시작이라고 나는 믿는다. 신념과 이념처럼 사물이나 사람에 대한 인식을 왜곡하는 없다고 믿는다. 자기 인식을 토해 얻은 자유는 나에게 자연을 편견 없이 탐색할 수 있는 여유를 선물한다. 자유로워야 조급해 하지 않고, 초조해 하지 않고, 여유를 갖게 된다.
나는 자유롭게 살고 싶다. 그러려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소유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다른 이로부터 필요한 것이 없어야 한다. 그리고 적게 가지며 욕심을 양심으로 절제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다고 '가난하라'는 것은 아니다. 단순하게 살자는 것뿐이다. 적게 가졌다고 가난한 사람이 아니다. 끊임없이 더 많이 가지려고 하는 사람이 가난한 사람이다.
그러니까 내가 원하는 삶은 자유로운 삶이다. 그러려면 타인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영혼에 근육이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을 많이 의식하지 않아야 한다.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는 일은 자동차가 제자리에서 공회전을 하듯이 앞으로 나가지도 못하면서 기름만 태우는 것과 같다. 다른 사람을 의식하느라 내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은 자유로운 이가 아니다. 물론 인간의 본성으로 타인으로부터의 인정과 사랑으로부터 자유롭기는 쉽지 않다. 일상을 방해 받을 정도로 지나치지 말자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사회를 꾸리고 사는 한, "자유는 그 자체로 정당화될 수 없다. 예컨대 자유는 그 소산(所産, 어떤 행위나 상황 따위에 의한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이 무엇이냐에 따라 정당화된다. 자유의 결과가 일탈과 탈법이고, 그것의 소산이 자기만의 또는 자기와 연관된 이들만의 누림이자 군림이라면 이는 어느 한 자락도 정당화될 수 없다." 김월회 교수의 탁월한 지적이다.
혼돈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 거듭 말한다. 윤 태통령이 말하는 자유는 편협한 극우적 이념과 닮았다. 냉전시대의 낡은 이념에 사로잡혀 자유란 단어에만 집착하는 것 같다. 사람마다 자유에 대한 이해가 다를 수 있겠지만, 대통령이라면 극단적인 이념에 치우치거나 편협한 의미로 자유를 입에 올리면 안 된다. 대통령이 말하는 자유는 대한민국 헌법이 기준이어야 한다.
헌법에 나오는 자유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확고”히 한다거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하겠다는 다짐, 그리고 신체의 자유, 거주와 이전의 자유, 양심의 자유, 집회와 결사의 자유 등 인권을 확인하는 것들이다. 공권력으로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면 안 된다는 원칙을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다음이 매우 중요한 내용이다. 윤이 말하는 식의 자유는 헌법 어디에도 없다. 어쩌면 헌법 전문과 제4조에 규정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얼핏 비슷하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이때 말하는 질서는 전체주의, 권위주의 세력이 말하는 질서와는 전혀 다르다. 헌법이 규정하는 ‘질서’도 권력이 국민에게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법의 지배’라는 말도, 법률로 국민을 다스린다는 게 아니라, 권력자나 권력 기관을 법의 지배 아래 두겠다는 주권자의 의지의 표현인 것과 마찬가지다. 집권 세력은 국민이 정부의 지침을 잘 따르며 질서 정연하게 살길 바라겠지만, 이런 식의 질서는 국민에게 강요할 수 없는 무례이며, 자체로 인권 침해다.
다시 유시민 작가의 말로 되돌아 온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라 안에서는 검찰권이라는 ‘합법적 폭력’을 마구잡이 휘두르면서, 국가의 자주와 국민의 자존을 미국 대통령과 일본 총리 발아래 굴리는 대통령의 행태를 나는 우습게 여긴다. 탱크와 총칼과 최루탄과 고문과 백골단의 몽둥이를 겪은 우리 세대가 보기에 고소‧고발과 검찰권으로 만사에 대처하려는 정권의 행태는 장난감 총으로 하는 병정놀이와 같다. 1975년 4월 9일 새벽 박정희는 대법원 확정판결 하루 만에 인혁당과 민청학련 사건 관련자 8명에 대한 사형을 집행했다. 다들 박정희가 천벌을 받을 것이라 했지만 김남주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천벌 같은 건 없다. 이것이 세계의 참모습이다."
"그렇다. 윤석열 대통령과 그 오른팔 왼팔들에게도 천벌 같은 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정부가 한 시대를 마감하는 적절한 형식일 리도 없다. 모든 일은 사람이 한다. 김남주 시인은 하늘에 대고 무엇인가를 빌 필요는 없다고, ‘직립의 인간’으로서 자신의 힘으로 원하는 것을 이루라고 말한다. 이처럼 당연한 말이 위로가 된다니!"(유시민) 나도 하늘에 대고 빌지 않고, 나 자신의 힘으로 원하는 삶을 살 생각이다. 그래 오늘 아침도 내 힘으로 채소밭을 가꾸고, 내 힘을 사과 주스를 해 마셨다.
오늘부터 몇 일동안 김남주 시인의 시를 공유할 생각이다.
자유/김남주
만인을 위해 내가 일할 때 나는 자유이다
땀 흘려 힘껏 일하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
만인을 위해 내가 싸울 때 나는 자유이다
피 흘려 함께 싸우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
만인을 위해 내가 몸부림칠 때 나는 자유이다
피와 땀과 눈물을 나눠 흘리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
사람들은 맨날
겉으로는 자유여, 형제여, 동포여! 외쳐대면서도
안으로는 제 잇속만 차리고들 있으니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도대체 무엇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제 자신을 속이고서.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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