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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바람이 그치면 나도 그칠까/도종환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우린 흔히 더 가지지 못해서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우린 너무 많이 가져 인생이 힘든 것일 수도 있다. 스테판 M 폴란이 말하는 '8가지만 버리면 인생은 축복'이라는 것이 인터넷에 떠돈다. 흥미롭다.  그 9 가지를 나열해보는 아침이다. 나이 걱정/과거에 대한 후회/비교 함정/자격지심/개인주의/미루기/강박증/막연한 기다림. 몇 번에 걸쳐서 생각을 해 볼 예정이다.

오늘 아침은 맨 처음으로 나이 걱정에 대한 생각을 해 본다. 나이 걱정을 하지 않으려면, 인생은 산에 올랐다 내려가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힘들게 올랐으니 이제 여유를 갖고 즐거운 마음으로 내려올 줄도 알아야 한다. 젊은 사람과 경쟁하려 하지 말아야 한다. 난 나이를 먹으면서, 나의 영역과 권한은 줄었지만 대신 '3 유'를 알게 되었다. 자유(自由)/사유(思惟)/여유(餘裕). 특히 여유가 생겼다.

초조하고 조바심을 느낀다든가 성급하다는 것은 부족함과 두려움의 반영이다. 그 까닭에 앞뒤가 맞을 리 없고 손발이 맞을 리 없다. 그 상태로는 도움이 될 리 없고 협력이 될 리 없다. "빨리빨리"가 습관인 자는 실은 가장 늦는 자이다. 입만 빠르고 마음만 바쁘며 정작 손발은 허투르다. 마음과는 다르게 '대충대충'으로 끝나는 경우가 일상다반사이기 때문이다.

가장 빠른 자는 가장 정확한 자다. 빠르게 끝내고 싶은가? 그렇다면 정확하게 하라. 정확한 자가 냉철하고 여유가 있기 마련이다. 고저장단(高低長短), 경중완급(輕重緩急), 경유강약(硬柔强弱) 전후좌우(前後左右), 모두 정확하지 않으면 지닐 수 없는 것들이다.

그리고 지지(知止), 즉 멈춰야 할 때 멈출 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인간사 지혜의 근본은 '지지(知止)'일 수 있다. 멈출 때를 안다는 것은 부족함을 안다는 것이며, 부족함을 안다는 것은 채워야 할 것을 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채워야 할 것을 안다는 것은 생각할 줄을 안다는 것이며, 생각할 줄 안다는 것은 자신을 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로 '나는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Cogito Ergo Sum. Je pense donc je suis. 나는 생걱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여유의 반대인 초조함은 죄악이다. 초조함은 문제를 정면으로 응시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초조한 사람은 문제의 진행을 충분히 지켜볼 수 없기에 어떤 대체물을 문제의 해결책으로 간주하려 한다. 다시 말하면, 성급한 해결을 원하는 조바심이 해결책이 아닌 어떤 것을 해결책으로 보이게 만든다. 그리고 이 때문에 사태의 종결은 불가능해진다. 파국을 막기 위한 조급한 행동이 파국을 영속화하는 것이다. 우리가 믿는 많은 지름길들, 금방 치료가 되고 금방 구원이 되고 금방 개선이 될 것으로 보이는 그런 많은 길들이 실상은 비극의 수레바퀴를 굴리기 위해 우리의 초조함이 닦아놓은 것들인지도 모른다.

초조함을 몰아내려는 치열한 노력이 또한 인문학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문학에서 나오는 인문정신은 곧바로 반응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지름길을 믿지 않는 것이다. 삶의 정신적 우회이다. 삶을 다시 씹어보는 것, 말 그대로 반추하는 것이다. 지름길이 아니라 에움길로 걷는 것, 눈을 감고 달리지 않고 충분히 주변을 살펴보는 것, 맹목이 아니라 통찰, 그것이 인문학이다. 인문학은 한마디로 초조해하지 않는 것이다.
  
인문학은 삶의 정신적 우회라는 말이 있다. 삶이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라는 말일 것이다. 지름길이 아니라 에움길로 걷는 것, 눈을 감고 달리지 않고 충분히 주변을 살펴보는 것, 맹목이 아니라 통찰.

어제 오후에는 동네 벤 치에 앉아 비 몰고 오는 바람 소리를 많이 즐겼다. "바람이 그치면 나도 그칠까". 시인처럼, 아직은 나도 모르겠다. 봄비가 굵게 내리는 아침에 여유를 즐기자.

바람이 그치면 나도 그칠까/도종환

바람이 그치면 나도 그칠까
발이 멈추면 나도 멈출까
몰라 이 세상이 멀어서 아직은 몰라
아픔이 다하면 나도 다할까
눈물이 마르면 나도 마를까
석삼년을 생각해도 아직은 몰라
닫은 마음 풀리면 나도 풀릴까
젖은 구름 풀리면 나도 풀릴까
몰라 남은 날이 많아서 아직은 몰라
하늘 가는 길이 멀어 아직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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