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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선택하기에/임영준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2년 5월 27일)

어제 읽은 노자 <<도덕경>> 제26장 이야기를 더 이어간다.
• 重爲輕根(중위경근) 靜爲躁君(정위조군): 무거운 것은 가벼운 것의 뿌리가 되고, 안정된 것은 조급한 것의 머리가 된다.

어제 우리는, 이  문장에서, '중(重, 무거움, 중후함)'과 '경(輕, 가벼움, 경솔함)'에 대하여 이야기를 했다. 이 문장에서 나는 '자중(自重)'과 '경솔(輕率)'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자중(自重)하다'는 말은 '말이나 행동, 몸가짐 따위를 신중(愼重)하게 한다'는 뜻이다. 중(重)이 무게라는 말이다.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지구의 중력과 함께하며 낮게 깔려가며 무겁게 흘러가는 것 같이 말이다. 반대가 지구의 중력을 벗어나 가벼움으로 흩어지는 것 아닐까? 우리는 그것을 '경솔하다'고 말한다. 사전에서 경솔(輕率)은 '말이나 행동이 조심성 없이 가벼운 것'을 말한다.

우리의 뇌(특히 좌뇌)는 항상 재잘거린다. 한순간도 쉬지 않고 뭔가를 떠들어 댄다. 그러면서 생각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그러면서 가벼워진다. 그래 우리는 이 산만함에 맞서는 훈련을 해야 한다. 그것이 수렴과 집중이다. 이 또한 인문정신을 고양시키는 일이다. 요즈음 자신의 '넘쳐나는' 힘을 절제하지 못해, 원심력에 의지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 배철현 교수가 그런 사람들을 잘 표현해 주었다. 많이 먹고, 마시고 해서 힘을 절제하지 못해, 원심력에 의지하는 "사람은 중독을 유발하여 결국 자신을 파멸시키는 쾌락, 자극, 새로운 것을 항상 하이에나처럼 찾아다닌다. 쉽게 웃음과 울음을 자아내는 촌극을 감동이라 평가하고, 세네카의 구심력 찬양문구인 ‘카르페 디엠(carpe diem)을 건배사로 착각하고  니체의 고통을 삶의 일부로 수용하라는 혜안인 ‘아모르 파티(amor fati)'를 노래방 춤 쯤으로 여긴다. 원심력에 경도되어 있는 사람은 힘이 없고 불안하고 산만하다."

반면, 원심력을 구심력으로 제어하기 위해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힘이 있다. 그런 힘을 가지기 위해서는 원심력의 과시를 희생하여야 한다. 나는 이 구심력과 원심력의 조화를 위해, 아침 마다 <인문 일기>를 쓴다. 자꾸 밖으로만 출렁이는 생각과 본능에 영향을 받는 사람은 무기력하지만, 그것들을 제어하고 조절하여, 그 힘을 비축하는 사람은 강력하고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그 원심력을 제어하고 조절하는 힘은 인문정신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인간의 욕망은 원심력의 속성이 있다. 반면 인간의 본성은 구심력(중력)의 속성이 있다. 욕망은 점점 더 커지고 높아지려 하기 때문이다. 원심력을 타고 자신의 본성을 이탈하려는 욕망을 중심 쪽으로 끌어내리려고 절제하는 태도가 검소함이다. 그걸 우리는 자중하다고 한다. '자중하다'라는 말에는 '자기를 소중히 하다'라는 뜻도 있다. 그러니까 경솔한 행동은 자신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데서 나오는 것 같다. 나를 사랑한다면서, 자신의 삶을 가볍게 날리면 안 된다. 자기 규칙이 있어야 한다. 사람이 '자중'하지 못하면, 중후하고 찰 진 토양을 지키지 못하고 점점 푸석푸석해져 풀풀 표류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솔은 바로 '조급(躁急)'과 '초조(焦燥)'를 낳기 때문이다. 조급은 참을성 없이 매우 급한 거다. 초조는 애가 타서 마음이 조마조마함이다.

누구보다 초조함에 시달렸고 그것의 문제를 잘 알았던 작가 카프카는 초조함이야말로 인간의 죄악이라고 했다고 한다. “다른 모든 죄를 낳는 인간의 주된 두 개의 죄가 있다면 그것은 초조함과 무관심이다. 인간은 초조함 때문에 천국에서 쫓겨났고 무관심 때문에 거기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러나 주된 죄가 단 한 가지라고 한다면 그것은 초조함일 것이다. 인간은 초조함 때문에 추방되었고 초조함 때문에 돌아가지 못한다.”

아마도 카프카의 문학은 이 초조함을 몰아내려는 치열한 탐구의 결과물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느끼는 두려움과 불안이 전혀 근거 없는것이라는 말이 아니다. 문제는 초조함이다. 경솔함에서 조급증이 나오고, 조급중에서 나오는 초조함은 문제를 정면으로 응시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초조한 자는 문제의 진행을 충분히 지켜볼 수 없기에 어떤 대체물을 문제의 해결책으로 간주하려고 한다. 성급한 해결을 원하는 조급증에서 나오는 조바심이 해결책이 아닌 어떤 것을 해결책으로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 때문에 사태의 종결은 불가능해진다.  결국 파국을 막기 위한 조급한 행동이 파국을 영속화하는 것이다.

우리가 믿는 많은 지름길들, 금방 치료가 되고 금방 구원이 되고 금방 개선이 될 것으로 보이는 그런 많은 길들이 실상은 비극의 수레바퀴를 굴리기 위해 우리의 초조함이 닦아놓은 것들인지도 모른다. “나는 초조함을 몰아내려는 치열한 노력이 또한 철학이라고, 철학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철학 한다는 것, 생각한다는 것은 곧바로 반응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지름길을 믿지 않는 것이다. 철학은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삶의 정신적 우회이다. 삶을 다시 씹어보는 것, 말 그대로 반추하는 것이다. 지름길이 아니라 에움길로 걷는 것, 눈을 감고 달리지 않고 충분히 주변을 살펴보는 것, 맹목이 아니라 통찰, 그것이 철학이다. 철학은 한마디로 초조해하지 않는 것이다."(고병권) 철학, 즉 인문 운동이란 '삶의 정신적 우회'라는 말이 멋지다. 삶이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라는 말일 것이다. 이 세 표현이 날 위로한다. '지름길이 아니라 에움길로 걷는 것', '눈을 감고 달리지 않고 충분히 주변을 살펴보는 것', '맹목이 아니라 통찰'.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은 자연의 지배를 받는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거다. 자연은 부자연스러운 인위의 행동을 그 자체의 조화의 법칙에 의하여 차단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초조해 하지 말고, 일상에서 조급증을 덜어내고 싶다. 오히려 마음을 비우고, 자중하며 일상을 행복하게 향유하고 싶다. 그건 하루에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해 나가는 것이다. 누구나 행복을 원한다. 행복의 기준은 저마다 다르지만 모두 행복한 삶을 꿈꾼다. 그러나 학교에 입학한 순간부터 시작된 경쟁과 적자생존의 논리는 사회생활에서도 이어졌고 지금껏 우리들의 하루하루를 만들어 가고 있다. 물론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치열하게 사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경쟁을 통해 내 안에 잠자고 있던 가능성이 십분 발현되기도 하고 발전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경쟁을 통한 성취를 최우선시하는 사회에서는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누릴 여유가 허락되지 않는다.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의 국민의식을 조사한 자료를 살펴보면 행복하기 위해 거창한 무언 가가 필요한 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으며 '남 보란 듯이' 살지도 않는다.  

비우고 덜어내 텅 빈 고요함에 이르면, 늘 물 흐르듯 일상이 자연스러워질 것이다. 그런 사람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뿐 포장하지 않으며, 순리에 따를 뿐 자기 주관이나 욕심을 고집하지 않을 것이다. 그 결과 그의 모든 행위는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항상 자유롭고 여유로울 것이다. 샘이 자꾸 비워야 맑고 깨끗한 물이 샘 솟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만약 비우지 않고, 가득 채우고 있으면 그 샘은 썩어간다. 물질보다는 마음의 여유를, 전체보다는 개인의 가치를 존중한다. 남보다 빨리 갈 필요도 없다. 조금 느릴지라도 꿈을 향해 살아갈 수 있는 삶, 경쟁에 밀릴까 조급해 하지 않아도 되고 꿈을 이루기 위해 남을 밟지 않아도 되는 삶이 진정으로 행복한 삶이 아닐까?

노자의 <<도덕경>>은 삶의 기술을 알려 주는 책이다. 그래 할 말이 많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오늘의 시를 공유한 다음 블로그로 옮긴다. 오늘 아침 사진은 사진은 지난 주에 안드레아스 거스키(Andreas Gursky) 사진전(서울 용산 아모레 퍼시픽 미술관)에서 찍은 거다. 저 여유가 부러웠다. 오늘 아침은 금요일마다 늘 하는 노자 함께 읽기가 취소되어 시간이 많다. 그래 <인문 일기>를 길게 썼다.

선택하기에/임영준

네가 서 있는 세상은
암담한 막장이 아니야
우리가 바라는 낙원은
아스라한 별이 아니야
깃드는 바람 따라
충만한 열망을 따라
기다리고 있는 거야
선택하기에 달린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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