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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탐진치( 貪瞋痴)의 무명(無明) 밝혀 진여(眞如) 깨치게 하소서"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화란춘성 만화방창(花爛春盛 萬化方暢)'의 호시절이다. 노래도 있다. "화란춘성 만화방창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 꽃이 만발하고 화려하여 한창 때인 봄날에 온갖 생물이 나서 자란다. 만화방창에서 화가 꽃 화(花)자가 아니다. 그런 어제는 부처님 오신 날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의미를 되새기보다 '대체휴일'에 더 관심이었고, 정치권은 "협치, 상생을 강조하면서, 서로 다른 말들을 '실없이' 하였다.

나는 어린 시절에 들은 '사월초파일'로 기억한다. 석가모니(=싯다르타, 고마타 붓다)의 석가는 부처님 당시 인도의 특정 부족명이지 부처님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고, 석가탄신일보다는 부처님 오신 날로 바꾸자고 불교계는 주장하며, 다음의 메시지를 전한다. "탐진치( 貪瞋痴)의 무명(無明) 밝혀 진여(眞如) 깨치게 하소서"

붓다는 탐욕과 증오에 따른 번뇌에 휘말리지 않았기 때문에 마음을 다스림으로써 자아(에고)를 초월하여 살았다. 그는 계속 이 세상에서 살았지만(이 세상을 버리지 않고), 동시에 다른 성스러운 영역에 속해 있었다. 자아를 초월한다는 것은 에고(욕심의 세계)를 초월하여 '참나(진아眞我, 양심의 자아)'를 만나는 것이다. 이 곳이 성스러운 영역이고, 이 세상의 논리와 다른 세상이다. 욕심의 자아 세계는 '호리피해(好利避害, 이익을 좋아하고, 손해를 싫어한다)'로 요약된다면, 양심의 자아 세계는 '호선오악(선을 좋아하고, 악을 싫어한다)'의 세상을 말한다.

진여(眞如)란 무상(無常) 무아(無我)하고 괴로운 것이 인생의 진실한 모습이며, 연기緣起하고 있는 이 세계가 틀림없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라고 하는 말이다.

붓다는 영적 삶의 원형이고, 담마(진리)와 립바다(열반)의 화신이다. 어제가 그분이 태어나신 날이었다. 불가에서는 연등행사를 하였다. 연등을 닮은 꽃인 연꽃은 진흙 속에서 피어나기 때문에, 혼탁하고 어지러운 세상(진흙) 속에서 물들지 않고 깨달음의 꽃을 피우라는 것이다.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이 붓다의 마지막 가르침이다. "너희들은 저마다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기를 의지하라. 또한 진리를 등불로 삼고 진리를 의지하라. 이밖에 다른 것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 원래는 등(燈)이 아니라 섬(島)이었다고 한다. "자신을 섬으로 삼고 자기를 의지하라"였는데, 한역하면서 섬이 등불로 바뀐 것이란다.

붓다가 다음과 같이 말하지 않은 것이 불교가 다른 종교와의 차이이다. "나는 세상을 구제하는 자이므로 나를 등불로 삼고 의지하라. 그렇지 않다면 지옥에 가게 될 것이다." 이렇게 말하지 않고, 자등명, 법등명을 말한 것은 우리 안에 있는 불성을 깨우치라는 말이다. 여기서 불성을 다른 말로 하면, 우리의 마음이다. 또는 성품, 심성, 자성, 정신세계라고 말할 수 있다. 법등명보다 자등명을 먼저 말씀하신 것은 내가 아닌 바깥 세상에 휘둘리지 말고 자신에 의지하는 게 부처님 말씀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는 듯하다. 인간 존재의 무한한 능력을 그 분은 간파하신 것이다.

예수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진리가 무엇이냐? 묻지 말고,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고 하셨다. 비슷한 말이 아닌가? 붓다는 어떤 말이 진리인가에 대해 이렇게 말씀 하셨다. "전승되어 온 것이라고 해서, 어느 권위자가 말했다고 해서, 세간에 널리 인식되어 있다고 해서 진리로 승인하지 마십시오. 깊이 사유하고 그것이 이치에 맞는 것인가를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실천하여 자유롭고 평온한 삶을 성취하면 그것을 진리로 받아들이십시오, 나의 말도 무조건 믿지 마십시오." 진리가 너희를 편안하게 할 것이라는 말도 이치에 맞게 살면, 편안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행위가 그 사람을 규정하는 것이지 절대적 권좌에 있는 사람일지라도 그의 행위를 왜곡할 수 없다. 연등을 밝히고, 내 안의 등불과 진리의 등불을 밝히고, 붓다의 가르침의 핵심인 지혜와 자비, 깨달음과 사랑의 실천을 다짐한다.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가? "제행무상, 제법무아"이니, 집착이 일으키는 고통("일체개고")을 벗어나면, 열반적정에 이른다는 진리를 깨닫는 것이다. 그리고 그 힘으로 자비를 베푸는 것이다.

격동하는 사회로 심란했던 70-80년대의 청년 시절에 나를 차분하게 해 주셨던 분이 법정 스님이시다. 난 그 분 책을 좋아했다. 그래 어젠 그분의 글을 꺼내 보고, 나의 주말농장을 두 번이나 갔다 왔다. "우리가 살만큼 살다 갈 곳이 어디인가를 깨우쳐 주는 소리 없는 소리"를 듣고 싶었다. 그런데 아카시아 향에 취했다.

삶의 가치/법정

삶은 놀라운 신비요, 아름다움이다.
내일을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것은 이미 오늘을 제대로 살고 있지 않다는 증거이다.
오늘을 마음껏 살고 있다면 내일의 걱정 근심을 가불해 쓸 이유가 어디 있는가.
죽음을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것은 생에 집착하고 삶을 소유로 여기기 때문이다.
생에 대한 집착과 소유의 관념에서 놓여 날 수 있다면 엄연한 우주 질서 앞에 조금도 두려워 할 것이 없다.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 묵은 허물을 벗어 버리라는 것이므로 물소리에 귀를 모으라.
그것은 우주의 맥박이고 세월이 흘러가는 소리이다.
우리가 살만큼 살다 갈 곳이 어디인가를 깨우쳐 주는 소리 없는 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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