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2월 23일, 3월 2일, 3월 17일, 3월 31일, 5월 11일. 무슨 날들일까요?
교육당국이 코로나-19 집단 감염을 우려해 전국 유치원 및 초,중,고 등교 연기를 발표했던 날들이다. 불과 석 달 동안에 등교 일정이 5번이나 바뀌었다. 코로나-19 확산세를 감안한 불가피한 조치였지만, 이때마다 학교 현장은 학사일정을 변경하는 등 대 혼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이제는 임기응변식 대책에서 벗어나 중, 장기적인 로드맵을 구상해야 한다. 교육부의 '결단'이 필요할 때이다. 차라리 1학기 전체를 원격수업으로 진행하면 어떨까? 나도 대학 당국이 무심하게 메일만 매일 보낸다. 행정직원이 뭔 말인지 모르는 글을 써, 집단 메일로 그냥 쏘기만 하는듯 하다. 총장도 형식적인 인사말을 단체 메일로 보낼 뿐이다. 지난 글들은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내 생각으로는 시험과 평가 가이드 라인만 명확하다면 등교를 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학사 일정을 조율하는 게 혼란을 줄일 수 있다. 일선에서 "교사들이 행정 업무를 하다 수업 준비할 시간이 뺏겨 지친 상황"이라고 볼멘 소리를 한다. 이젠 등교 연기가 아니라, 교육 혁명을 고민할 시기이다. 지난 4월 9일부터 오전 9시부터 전국 중,고등학교 3학년부터 온라인수업을 시작했다. 16일부터는 중,고등학교 1-2학년과 초등학교 4-6학년이, 20일부터는 초 1-3학년이 온라인 개학을 했다. 이렇게 온라인 개학의 시대를 맞으면서 우리는 과연 학교란 무엇이며 교육이란 무엇인가? 교사는 무엇을 하는 사람이며 아이들은 왜 학교에 가는가? 이런 본질적인 문제에 대답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이런 상황에서 여론도 여러 가지로 난무하다.
▪ 막상 이런 시대가 닥치고 나니 진작부터 온라인 교육을 강화했어야 한다는 개항 파
▪ 외국의 특정 교육프로그램이나 제도가 우리 교육을 구원할 것이라는 해외 파
▪ 아이들은 무조건 아날로그적으로 길러야 한다는 쇄국 파
그 와중에 교사들은 교육방송(EBS)과 온라인 사교육 시장의 세계에 내동댕이쳐지고 말았다. 교사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수업이 전파를 타고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공개된다는 부담 뿐만 아니라 교실에서 하는 수업이 아니라, 카메라 앞에서 선다는 것은 이중 삼중의 부담이다. 교육부야 궁여지책으로 꺼낸 카드이지만, 지식주입이 아닌 교육을 전파를 통해 가능한 것인가 질문해야 할 때이다.
교육 혁명을 논할 때이다.
이렇게 온라인 시대가 지속된다면 그리고 여전히 교육의 중심이 ‘지식의 전달’에 한정된다면, 디지털 에듀테인먼트에 최적화된 소위 ‘강의의 신’ 한두 사람으로 교육은 충분할 가능성이 크다. 어느 교사는 이번 사태를 겪으며 아이들이 학교에 ‘와주고 있었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었다고 토로했다. "아이들은 학교 없이도 아무렇지 않게 잘 지내더라는 거죠. 기껏해야 애들이 학교에 오고 싶은 이유는 친구와 놀이고, 학부모들도 세끼 식사와 돌봄이 가장 현실적인 이유더라는 겁니다. 과연 코로나 이후의 세계에서 학생들에게 학교는 꼭 와야 하는 곳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자신 없습니다."
국가가 개입하는 전 국민 대상의 교육기관으로서 학교의 기원을 들여다보면 이미 그 시발점에는 (학대나 아동노동으로부터의) 아동 보호와 (교육)기본권 보장이라는 중요한 사회적 요구가 있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더구나 온라인 시대일수록 공공적 고민은 ‘관계'에 있어야 한다.
오늘 아침은 우리 교육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고발했다. 교육부도 이젠 착각을 하지 말고, 교육 혁명을 사회 담론으로 내 놓고 고민을 시작하여야 한다. 전교조의 논평이 시의적절 하다. "9월 학기 제 검토는 물론 원격수업의 안정적 운영 방식, 수업일수와 수업시수 대폭 감축, 학습 격차 보완책 등 다양한 관점에서 초유의 사태에 대응하는 확장된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 이젠 온라인 수업 뿐만 아니라 학습 방법을 다양화하고, 각 지역과 학교가 교육과정을 결정할 수 있게 유연성을 부여해야 한다. 지역과 학교의 연계로 학습공간을 확대하는 것도 고민할 때이다. 그래 나는 마을대학(마이크로 칼리지 Micro college)을 고민하는 것이다. 교육이 평가를 위한 준비가 아니다.
우리 학부모들도 이젠 미몽(迷夢)에서 깨어나야 한다. 교육이란 지식을 암기해 일등에서 수만 등까지 한 줄로 세워 SKY 대학에 보내기 위한 준비과정이라 믿었다면 깨어나야 한다. 내 아이가 공부만 열심히 하면 SKY에 진학해 의사나 변호사, 판,검사를 할 수 있다는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 교육은 시험을 치루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다재 다능한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안내해 주는 일이 교육이다. 그 외 내가 생각하는 교육의 정의를 나열해 본다.
교육이란 상대방 입장에 서 보는 연습이다. 교육은 누구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인내하며 스스로 깨닫기를 가만히 기다리는 것이다. 교육은 정답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는 다양한 답이 있으니, 자신에게 알맞은 답을 찾도록, 격려하는 것이다. 교육은 회초리로 학생들을 다그쳐 빨리 많이 외우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핸드폰에 세상의 모든 지식이 이미 있기 때문이다. "교육(敎育)하다"라는 영어는 'educate'이다. 이 말은 학생들이 각자 지니고 있는 고유함을 자극하여, 그것을 '밖으로(e-) 끄집어내는(-ducate) 것이다.
아이들을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처럼, "숭어"로 "일없는 저녁바다의 수면 위로// 뛰어오르게" 해야 한다. 어제는 봄바람이 불고, 기온도 내려갔다. 나의 복합와인문화공간 <뱅샾62>를 가는 길은 여러 골목이 다 가능하다. 오늘 아침 사진은 우연히 접어든 골목의 서예 학원 앞 화단에서 찍은 것이다. 원예 용 양귀비가 심하게 흔들렸다. 원래 사는 건 흔들리는 것이다. 오늘 이 사진을 공유하는 이유는 '마을이 학교'라는 말을 첨언하고 싶어서 이다.
숭어/안도현
숭어가 연락도 하지 않고
뛰어오른다 불쑥불쑥, 숭어는 왜 뛰어오르는가
이 일없는 저녁바다의 수면 위로
뛰어오르며 숭어는
바다가 차갑게 펼쳐 놓은 적막의 치맛자락을 찢어보자는 것인가
저렇게 숭엄한 하늘의 구름장과 노을에다
수직의 칼금이라도 내보겠다는 것인가
보이지 않는 바다의 뱃속은
이 세상처럼 짜고, 끓는 찌개냄비처럼 뜨거울 수도 있겠다
평평하고 멀리까지 뻗어 눈에 가물가물해야 길인가
숭어가 뛰어오르는 저,
저 찰나의 한순간도 찬란하고 서늘한 길이 아닌가
#인문운동가_박한표 #유성마을대학_인문운동연구소 #사진하나_시하나 #안도현 #복합와인문화공간_뱅샾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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