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가 사는 곳이 마을이 아닌 사람은 불행하다. 그래 만든 게 우리마을 대학이다. 긴 공부만 하는 곳이 아니다.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우리 동네 <대덕연구단지>에는 금기어가 하나 있다. "논다"는 말이다. 우리 동네는 놀기보다는 공부만 하는 먹물들로 가득하다. 우리 동네를 '수박밭'이라 한다. 수많은 박사들로, 단위 면적당 박사가 가장 많이 사는 동네일 것이다. 길에서 "김 박사"하면, 여러 명이 고개를 든다. 그래서 놀면, 큰 일 나는 줄 안다. 그러다 보니, 아픈 사람들이 많다. 재미있게 놀다 보면 병이 낫는 걸 모르기 때문이다. 이웃들과 어울려 웃으며 즐겁게 놀다 보면, 아픈 병이 나아버린다. 어쩌면 평소 안 쓰던 근육까지 쓰는 동안 그렇게 되는 것 같다. 여기서 말하는 근육은 몸의 근육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근육까지 포함한다.
연구소나 회사를 다니다 보면, 우린 가면을 쓰거나, 대외용 맞춤 식 안면 근육만 사용하며 산다. 그러다 병이 난다. 원래가 무엇이든 한 곳으로 쏠리면 병이 나는 것이다. 과도한 정신 노동으로 스트레스를 유발해 몸과 마음의 근육이 한쪽으로만 쏠려 굳어지면서 아픈 것이다. 그 약은 다른 이들과 웃으면서 즐겁게 노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맨 얼굴(불교에서는 '본래면목(本來面目)'이라는 말을 사용한다.)을 되찾는다. 복잡한 머리를 비우는 놀이를 하다 보면, 스트레스를 날리고 안 쓰던 근육을 사용하면, 병이 낫는다.
사람은 움직여야 즐거울 경우가 많다. 이는 노래 부르고, 춤을 추며, 놀이하고, 운동하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현실에서 여가는 어떤 부담도 없는 완전 무위의 상태까지는 아닐지라도 최대한 홀가분한 상태 같다. 홀가분한 상태에 있다는 것은 자신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자유롭다는 뜻이다. 사람은 홀가분할 때 자신에서 벗어나 주위를 둘러보게 된다. 즉 개인의 이해득실로부터 자유로운 순간을 맛보게 된다. 주위를 둘러보면 다른 사람들이 보이게 된다. 그리고 평소 보지 못했던 세상을 보게 된다. 세상을 좀 더 넓고 깊게 보게 된다. 그래 오늘은 몇몇이 함께 전북 삼례로 기차를 타고 가 걷는다. 생각 다 비우고 온다. 이런 시(詩) 속의 동네를 그리워 하면서.
좋은 친구들/이동재
사람 귀한 동네
군대에서 얻어맞아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윤 형
어려서부터 말 못하는 벙어리 심 형과
초저녁부터 마당에 벌려 놓은 술판
마른장마 잔뜩 흐린 하늘은 애써 터지지 않고
윤 형은 엊그제 산에서 캔 도라지 얘기만 반복하고
지난 주말 교회 갔다 용주골 색시집 갔던 심 형의 필담에도 지친다
윤 형은 취하면 또 영지버섯 얘기를 할 테고
심 형의 글씨는 획이 무뎌질 터
윤 형, 우리 동네 뒷산에 산삼은 없어?
심 형, 쉬운 말 두고 왜 자꾸 필담을 해, 말 좀 해!
지나가던 노인 회장도 덩달아 한마디 거들고
이 박사, 거 맨날 병신들하고 뭐해?
그나저나 내 장례식 땐 올 거니?
사람 귀한 동네
윤달, 하지 지나 맘껏 긴 여름날 저녁
끝내 과묵한 창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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