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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인문에세이

우리 각자는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각자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

어제 뉴스에 2020년  교수들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가 발표되었다. '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라는 뜻의 '아시타비(我是他非)'를 1등으로 뽑았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뜻의 '내로남불'과 겹쳐진다. 나는 이걸 보고, 우리 교수 사회의 타락을 읽었다. 대학도 상아탑으로 그 본분을 급격하게 잃어가는 그 흐름과 같이 간다. 그 많은 고전에서 뽑지 못하고, 새로운 신조어를 만들어 내는 것이 예능 수준이다. 왜냐하면 원전 없이 한문으로 옮긴 신조어이기 때문이다.  왜 우리 사회가 "모든 잘못을 남 탓으로 돌리고 서로를 상스럽게 비난하고 헐뜯는 소모적 싸움만 무성할 뿐, 협업해서 건설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노력"(정태연, 중앙대 교수)을 보이지 않는 것일까? 교수들의 역할은 없는가? 이게 내 의문이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양비론(양비론, 맞서 있는 양쪽의 주장이나 태도가 다 그르다고 하는 견해나 입장)'이다. 지성인들이 모인 교수 사회가 이런 양비론을 택했다는 것은 무책임한 처사이고, 이게 우리 한국 사회의 교수들의 모습이다.  

중앙대 정태연이라는 심리학과 교수가 제안하고, 906명이 2개씩 선정했는 데, 그 중 32.4% 588명이 이걸 골랐다고 한다.  정교수의 주장은 "(권력자들의) 언어를 보면 그들이 과연 우리 사회의 지식인이고 대표인지 의심스러울 때가 적지 않다"며 "자신에 대한 반성이나 성찰, 상대를 위한 건설적 지혜와 상생의 소망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런 지경까지 오는 데, '소위' 지성인이라고 하는 교수들의 역할과 노력은 보이지 않고 있다. 다들 자기 앞가림에만 신경을 쓰는 모습들이다.

차라리 2등한 '후안무치(厚顔無恥)"가 나는 더 마음에 든다. '낯이 두꺼워 뻔뻔하고 부끄러움을 모른다"가 우리 사회를 더 잘 반영하는 사자성어가 아닌가 생각된다. 3위는 '격화소양(隔靴搔癢)'이다. '신발을 신고 가려운 곳을 긁는다'는 뜻의 사자성어를 택했던 교수들에게서, 우리 사회가 문제의 본질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는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이 사자성어도 마음에 든다. 그리고 4위도 솔직한 우리  교수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코로나-19로 발생하는 답답한 현실을 '첩첩산중(疊疊山中)'으로 표현한 것과 우리들에게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말라 가는 연못에서 물고기가 서로 돕는다'는 뜻의 '천학지어(泉학之魚)'도 괜찮다. 물이 마른 연못의 물고기들이 입에서 거품을 내어 서로를 적셔주고 있는 것을 보고 장자가 감동을 받았는데, 곤경에 빠진 같은 처지에서 서로 의지하고 돕는 모습을 본 것이다.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사자성어이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한낱 물고기들도 서로 돕는다. 물고기들은 물이 없으면 입에서 거품을 내어 서로의 몸을 적셔준다.

<장자>의 원문을 공유한다. "천학 어상여처어륙 상구이습 상유이말 불여상망어강호(泉학 魚相與處於陸 相呴以濕 相濡以沫 不如相忘於江湖)" "못이 마르면 물고기들은 진흙 위에 모여 서로 물기를 뿜어주고 거품으로 적셔주지만, 이는 넓은 강과 호수에서 서로를 잊고 사는 것만 못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상황이 어려우면 서로 돕고 살아야 한다.

참고로 2019년에는 공명지조(共命之鳥, 한 몸에 두 개 달린 새로 목숨을 함께 하는 새)였고, 2018년에는 '임중도원(任重道遠, 짐은 무거운데 갈 길은 멀다)'이었다. 두 해 다 멋진 선택이었다고 본다. 교수들의 지성이 느껴진다. 그러나 올해는 코로나-19의 팬데믹이 우리 사회를 어렵게 하였지만, 나는 개인적 의견으로 우리 정부가 잘 대처하고 있고, 특히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개혁의 방향은 잘 잡은 듯하다. 그러나 대안 없이 무조건 반대하는 일부 정치 세력이 발목을 잡아 현실적으로 그 개혁의 방향이 보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고 본다. 그 이유는 '대안 없는' 야당도 야당이지만, 관료 조직과 언론이 아직 준비가 안 되어 그렇다고 본다. 검찰 개혁, 부동산 투기 문제, 칸막이 행정 하는 관료조직 등 개혁의 방향은 잡았으니 좀 차분하게 더 기다리고, 개혁의 당사자는 빨리 기득권을 내려 놓고 함께 잘 사는 길을 찾아 서로 노력해야 할 때이다. 시간이 별로 없다. 코로나, 조류 독감, 돼지 열병 등을 보면 심각하기 때문이다. 내 개인적으로는 '맡은 책임은 무겁고, 실천할 길은 어렵고 아득하니" 심기일전하여, 책임을 맡은 사람들은 밤낮 없이 일을 해야 한다.

어제 저녁에 "아시타비'라는 것을 보고, 속상하던 차에 '견인견지(見仁見智)'라는 말을 알게 되었다. 어진 이는 어질게 보고 그렇게 말하고, 지혜로운 이는 지혜롭게 보고 그렇게 말한다는 뜻으로, 같은 사물이라도 사람에 따라 생각이 다르거나 각자 자신의 견해를 가진다는 의미로 쓰인다. <주역> '계사' 5장에 도(道)라는 게 일음일양(一陰一陽)이라고 한 구절이 나오는 대목에서 나온다. 원래는 "인자견인(仁者見仁), 지자견지(智者見智)"를 줄인 말이다. 사람은 저마다 생각과 관점에 따라 마음이 다르다는 말이다. 사실 인간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그러니 나는 옳고, 너는 틀리다는 말보다 우리 각자는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각자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 그 시비를 가릴 수 있는 이가 누구인가? 그래 '양비론'으로 흐르는 책임 없는 말이 나온다.

'견인견지'라는 사자성어를 나는 우연히 인터넷을 서핑하다 알게 되었다. 박헌주라는 분이 '데일리즈"라는 인터넷 신문에 <박헌주 견인견지>로 기고한 칼럼을 여러 개 읽은 적이 있다. 이 칼럼에 신문의 편집자는 다음과 같은 주를 달고있다. "'견인견지'는 다양하고 생각이 많은 세상, 사람이 보는 것에 따라 생각을 달리 할 수 있다는 뜻으로 (…) '다른 생각'이 결국은 '같은 의미'라는 점을 일깨운다. 그리고 그것은 나 자신을 지키고, 도전하게 하는 말 한 마디가 될 수 있다." 상대의 다른 생각이 나를 새롭게 도전하게 할 수 있는 것으로 이해했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무조건 틀리다고 할 필요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서로 진솔하게 대화를 하고, 접점을 찾아 나아가야 한다.

답답한 마음에 카피라이터 정철의 <사람사전>을 펼쳤다. 사람 냄새나는 '대화'는 어떤 것일까 찾아 보았다. "눈빛으로 마음을 주고 받는 일. 표정으로 마음을 주고 받는 일. 손을 잡는 것으로 마음을 주고 받는 일, 가슴의 껴안는 것으로 마음을 주고 받는 일. 썩 좋은 방법은 아니지만 입을 사용할 수도 있다." 코로나로 비대면을 강조하고, 만나도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소통이 안되는 것이다.

바로 위에 "대통령"을 이렇게 정의했다. "꼭 필요한 자질은 소통. 국민과의 소통, 역사와의 소통. 세계와의 소통. 이름이 꼭 대통령일 이유가 없다. 하는 일이 소통이라면 소통령이라는 낮은 이름도 괜찮아 보인다." 좀 웃자고 이야기 한 것이다. 최근에 보고 싶은 사람을 못 보고, 가고 싶은 곳을 못가니 세상과 소통이 안되며, 나는 웃음을 잃었다. 그래 웃자고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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